좁아지다 사라진 따스한 공간

2015.04.05 14:01

노기제 조회 수:211



20141231                  좁아지다 사라진 따스한 공간
                                                                    노기제
  아무 소리 듣고 싶지 않아졌다. 춥다하면 추위를 면하게 해 주려 했다. 덥다면 더위를 피하게 해 주고 싶었다. 배고프다면 배 채워 주려 애 썼다. 무엇인가 사고 싶다면 사 줬다. 내가 가진 한도에서라면 모두 해 주려 허둥대며 살았다. 누구에게 그리 했느냐고 물어도 딱히 누구라 말 할 수 없는 상대들이다. 그 때마다 내 마음을 치는 사연이었고 내 마음을 동하게 하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했다.

  내가 착한 사람이라 그랬던 것도 아니다. 내가 가진 것이 많아서도 아니었다. 나는 그리 태어났던 모양이다. 누군가 아쉬운 소리 하는 걸 흘려듣지 못하는 성격이랄까. 그래서 많이 행복했었다.

  그러던 내가 갑자기 변했다. 이젠 어떤 소리도 듣고 싶지 않다. 귀를 막고 살려 비명을 지른다. 아무소리 말아라. 내게 어떤 말도 하지 마라. 도와 줄 여유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돕고 싶지 않아졌다. 아무도. 그 누구도 도와주기 싫다. 내게 기대지 마라. 내가 쓰러진다.

  그러면서 눈을 크게 뜨고 여기 저기 살핀다. 누군가 내 이야길 들어 줄 수 있겠지? 내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싶어졌다. 누구에겐가 기대고 싶다. 포근하게 안기고도 싶다. 그런 사람 어디 있으면 좋겠다.

  외로움은 아니다. 그냥 혼자가 편할 뿐이다 서로 마주 하고 있으면, 내 인생에 존재하지 않았던, 처음 보는 괴물들의 느낌만을 내게 준다. 그들도 나와 같은 생각이라고 간주한다. 어느 누구 하나 내게 부드럽게, 다칠세라, 신경 쓰면서 말하는 사람 하나 없다. 무슨 말을 할 수가 없다. 버럭 소리부터 지르거나, 한참 아래 나이임에도 반말 짓거리가 난무한다. 설명을 해서 무엇 하겠나. 너보다 10년이나 내가 더 늙었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뭘 어쩌란 말이냐고 대들가봐 더 무섭다.

  그렇게 내가 기댈만한 사람은 없다. 내게 기대오는 사람들 뿐 이다. 그들을 품다 힘이 빠져버린 나. 그래서 주저앉는다. 미열로 들뜬 투명하지 못한 눈동자가 많이 불편하다. 아스피린 한 알 찾아 먹는다면 열은 싹 내릴 터. 그런대도 난 불편한 미열 상태를 고수한다. 피해 갈 길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대로 참고 기다려 보자. 분명 지나갈 것임을 배워 알고 있으니까.

  새로 태어 나, 예전처럼 사랑 받으며 살고 싶어진다. 풍족하게 받은 사랑 때문에 넘치는 사랑 퍼 돌리며 살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젠 아무도 없다.  모두 내 곁을 떠나고 없지 않은가. 누가 나를 걱정 해 주며 돌봐 줄 것인가. 내가 많은 사람들에게 했듯이 필요한 것 채워주고, 의지할 어깨 내어 주며 달달한 위로의 말을 해 줄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면 살기 무섭다. 여지껏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살았다. 막연하게 하늘에 맡기고 산다고 믿었다. 겁 없이 아무것도 계산하지 않고 평안하게 잘 살았는데 이제와서 왜 갑자기 삶이 버겁다고 생각이 든 것일까.

  그래서 우선은 나 혼자이고 싶다. 더 이상은 어느 누구도 보살필 여력이 내겐 없다. 하늘에 부탁을 드려도 나 혼자만 단출하게 도움을 청해야 한다. 저들은 저들대로 직접 하나님과 거래하도록 연결 시켜주고 나는 빠져야겠다. 아무것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저들에게 알리고, 나는 좀 가벼워지고 싶다. 훌훌 다 털고 나면 편안 해 질 것이다.

  철가면을 쓰자. 이왕이면 옛 기사들의 긴 칼도 빌려 차자. 나를 나답게 대우 해 줄 사람만을 가려서 내 성 안으로 들여 놓자. 부드러운 음성으로 예쁜 말만 하도록 주문을 하자. 서로에게 잘 하고 있다고 등 토닥여 주며 고운 미소로 위로하자. 무어든 내가 가진 것들 나누며 행복 해 하자. 내 빈 공간이 다시 따스한 사랑으로 차 오르기까지 함께 그리하면서 살아 보자고 눈짓하고 싶다.

  풍성한 가슴이 비어가다가 급기야 사라지려 한다. 호탕하게 한 번 웃고는 나를 포옹해주던 따스한 공간이 내게서 떠난 것 같다. 급격하게 하락하는 체온에 떨면서 겁먹는 내 표정이, 살짝 얼어버린 길바닥을 통해 반사 한다. 아아 힘들다. 살기가 정말 버겁다. 귀 막고 눈감고 잠잠 하련다.

  거기, 너도 그런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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