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개판
2003.02.16 03:16
완전히 개판
노 기제
월요일이 휴일이면 사흘을 연해서 쉴 수 있다. 이런 연휴를 이용해서 관광회사에서는 스키어들에게 손짓을 한다. 여섯 시간 정도를 운전해야 갈 수 있는 명성 높은 맘모스 스키장으로 모시겠단다. 겨울이래야 하얀 눈을 기대 할 수 없는 도시. 바로 로스앤젤레스에서 사는
주민들에겐 아주 매력적인 손짓이 된다. 그것도 눈이 흠뻑 내려 쌓여서 질 좋은 스키를 탈 수 있다는 조건은 충분히 충동적이다.
두 시간 운전해서 눈 덮인 산을 만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인공적으로 눈을 뿌려 놓은 경우가 허다하다. 어쩌다 신나게 눈이 내려 쌓였다 해도 곧 이어 여름날씨 방불케 하는 더위로 곧 질척이는 상태로 변하곤 한다. 발 밑에서 전달하는 눈의 질을 느낄 수 있게 된 이후로는 2시간 짜리 스키장엔 안 가려 한다.
이렇게 해서 정월 중반에 낀 황금연휴엔 맘모스로 줄행랑이다. 마틴루터 킹 목사의 생일이 그렇게 잘 알려진 휴일이 아닌 탓에 약국을 경영하는 남편에겐 휴일이 아니다. 그러니 잽싸게 눈치봐서 줄행랑을 치기가 제격이다. 제법 처신 잘하던 Y가 남편 두고 합세했다. 나와는 띠 동갑이다. 친구를 데려 온다더니 동갑 나기란다. 개 세 마리 같은 관광회사 버스에 오르고 보니 남편이 개띠라고 합세한 여성이 있다. 남편은 한국에 있지만 어쨌던 개띠와 관련이 있다고 인정해 줬다.
스키강습을 받으면서 또 다른 개띠가 발견됐다. 스키 실력이 뛰어난 테드 리는 유일한 남성 개띠인데 그도 58년 개띠다. 첫 날 강습에 다섯 명이 참가해서 네 명이 개띠라면 이건 완전 개판이 된 거다. 강사 님이 기가 죽을 판이다. 한 사람은 남편이 개띠이니 반은 개에 속한다고 모두 깔깔댔다. 결국 강사만 양띠로 개가 지켜줘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이야기가 버스 안에 퍼지자 운전기사가 합류한다. 자기도 음력으로는 개라나. 어차피 띠 따지는 것은 음력이니 개판에 끼어 주겠다고 마음 좋은 Y가 허락했다. 이렇게 해서 설원을 장악한 개들이 완전히 개판을 이루어 신명나게 시간을 보냈다. 정말 오랜만에 큰 소리로 웃었고 얘기를 듣는 모든 사람들이 박장대소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중 테드 리의 한 마디는 또다시 모두를 웃게 했다. 58 개가 아닌 개가 펄펄 나는 것은 망령이라고 볼 멘 소리를 한 것이다. 모두들 까르르 웃었지만 유난히 난 행복했다. 그 정도의 망령이라면 얼마든지 나고 싶다. 앞으로 12년을 계속 나처럼 스키를 타다보면 12년 후에는 58개들 모두가 망령 난 개가되어 있을 것이다. 운동은 건강 유지에 필수과목 아닌가.
비록 남편과 함께 하지 못한 여행이지만 재미있었다. 마음이 맞아서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58년 개띠들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곁에서 지켜보던 사람의 놀라는 반응이다.
"12년 차이인데도 그렇게 같이 놀 수 있어요? 저 쇼크 먹었어요."
그러니 망령 난 개란 말이지. 그냥 개라면 어림없는 일 아닐까. 그래도 개판엔 꼭 참여를 해서 계속 자리 매김을 할 것이다. 다음 연휴까지 제발 다시 한 번 눈보라가 쳐주길 기대하며 활짝 웃어본다. 생각만 해도 즐거운 연휴였는데 다음 연휴까지 우리 강아지들 집 지키는 임무에 충실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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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기제
월요일이 휴일이면 사흘을 연해서 쉴 수 있다. 이런 연휴를 이용해서 관광회사에서는 스키어들에게 손짓을 한다. 여섯 시간 정도를 운전해야 갈 수 있는 명성 높은 맘모스 스키장으로 모시겠단다. 겨울이래야 하얀 눈을 기대 할 수 없는 도시. 바로 로스앤젤레스에서 사는
주민들에겐 아주 매력적인 손짓이 된다. 그것도 눈이 흠뻑 내려 쌓여서 질 좋은 스키를 탈 수 있다는 조건은 충분히 충동적이다.
두 시간 운전해서 눈 덮인 산을 만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인공적으로 눈을 뿌려 놓은 경우가 허다하다. 어쩌다 신나게 눈이 내려 쌓였다 해도 곧 이어 여름날씨 방불케 하는 더위로 곧 질척이는 상태로 변하곤 한다. 발 밑에서 전달하는 눈의 질을 느낄 수 있게 된 이후로는 2시간 짜리 스키장엔 안 가려 한다.
이렇게 해서 정월 중반에 낀 황금연휴엔 맘모스로 줄행랑이다. 마틴루터 킹 목사의 생일이 그렇게 잘 알려진 휴일이 아닌 탓에 약국을 경영하는 남편에겐 휴일이 아니다. 그러니 잽싸게 눈치봐서 줄행랑을 치기가 제격이다. 제법 처신 잘하던 Y가 남편 두고 합세했다. 나와는 띠 동갑이다. 친구를 데려 온다더니 동갑 나기란다. 개 세 마리 같은 관광회사 버스에 오르고 보니 남편이 개띠라고 합세한 여성이 있다. 남편은 한국에 있지만 어쨌던 개띠와 관련이 있다고 인정해 줬다.
스키강습을 받으면서 또 다른 개띠가 발견됐다. 스키 실력이 뛰어난 테드 리는 유일한 남성 개띠인데 그도 58년 개띠다. 첫 날 강습에 다섯 명이 참가해서 네 명이 개띠라면 이건 완전 개판이 된 거다. 강사 님이 기가 죽을 판이다. 한 사람은 남편이 개띠이니 반은 개에 속한다고 모두 깔깔댔다. 결국 강사만 양띠로 개가 지켜줘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이야기가 버스 안에 퍼지자 운전기사가 합류한다. 자기도 음력으로는 개라나. 어차피 띠 따지는 것은 음력이니 개판에 끼어 주겠다고 마음 좋은 Y가 허락했다. 이렇게 해서 설원을 장악한 개들이 완전히 개판을 이루어 신명나게 시간을 보냈다. 정말 오랜만에 큰 소리로 웃었고 얘기를 듣는 모든 사람들이 박장대소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중 테드 리의 한 마디는 또다시 모두를 웃게 했다. 58 개가 아닌 개가 펄펄 나는 것은 망령이라고 볼 멘 소리를 한 것이다. 모두들 까르르 웃었지만 유난히 난 행복했다. 그 정도의 망령이라면 얼마든지 나고 싶다. 앞으로 12년을 계속 나처럼 스키를 타다보면 12년 후에는 58개들 모두가 망령 난 개가되어 있을 것이다. 운동은 건강 유지에 필수과목 아닌가.
비록 남편과 함께 하지 못한 여행이지만 재미있었다. 마음이 맞아서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58년 개띠들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곁에서 지켜보던 사람의 놀라는 반응이다.
"12년 차이인데도 그렇게 같이 놀 수 있어요? 저 쇼크 먹었어요."
그러니 망령 난 개란 말이지. 그냥 개라면 어림없는 일 아닐까. 그래도 개판엔 꼭 참여를 해서 계속 자리 매김을 할 것이다. 다음 연휴까지 제발 다시 한 번 눈보라가 쳐주길 기대하며 활짝 웃어본다. 생각만 해도 즐거운 연휴였는데 다음 연휴까지 우리 강아지들 집 지키는 임무에 충실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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