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버리면서

2004.11.16 06:19

노기제 조회 수:644 추천:120

072004                        한가지 버리면서

                                                                        

        바람이 분다. 한창 여름이어야 할 날씨가 아직 높은 기온을 만들지 못한다. 게다가 바람까지 세차다. 물속에 들어가긴 좀 차다. 더 기다릴까? 아무리 7월이라 해도 물온도가 차고, 바깥 온도가 낮고, 바람이 있으니 수상스키 타기엔 별로 좋은 조건은 아니다. 마침 독립 기념일 연휴라서 케스테익 호수엔 사람이 붐비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호수에 들어서며 주차비를 내는데 11불 이란다. 언제 그렇게 올랐느냐니까 대단히 미안하단다. 허기사 정부에서 손들고 나간 후 개인이 인수해서 왕창 올린 모양이다. 호수를 닫겠다고 엄포를 놓더니 그나마 열어 주니 고맙게 생각 해야 할거나? 6불이었는데. 그 다음은 8불 이다가 7월부터 11불로 올랐단다. 작년에 왔을 때에도 6불이었다. 그냥 돌아서고 싶었다. 두어시간 주차에 11불은 좀 심하다. 아니 너무 아깝다.
        기분이 썩 내키지 않지만 약속을 하고 왔으니 오늘은 그냥 타자. 스쿠버다이빙 할 때 입는 웻수트로 무장을 하니 춥지 않아 기분이 한결 좋아진다. 보트주인도 차에다 보트에다 주차비가 엄청 오른데다 기름값마저 하늘 높은 줄 모르니 한 사람당 100불 씩 받는다. 나까지 세 사람이 보트에 올랐다. 셋 정도라면 기운이 지치도록 탈 수 있겠다 생각하니 다시 기분이 좋아진다. 순간 돈 생각은 다 잊고 나보다 먼저 와서 타고 있던 두 사람과 순서대로 스키를 신었다.
        일 년만에 신는 스키는 언제나 처럼 내게 설레임을 준다. 잘 될까? 일년을 더 늙었으니 기운이 떨어지진 않았을까. 그동안 가벼운 운동도 게을리 했으니 물에서 올라올 수나 있으려나. 약한 두려움마저 동반하며 던져진 줄의 삼각형을 잡는다. 웻수트 속으로 스며드는 물의 차가움이 심장을 멈추게 할 듯 두려움을 더해 준다. 내가 이짓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두렵고 떨거면 오지 않았으면 될터인데. 호수를 꽉 채운 신선한 공기를 뱃 속 저 아래까지 들이켜 본다. 또 한번, 다시 한번 심호흡이 이어지면서 차츰 안정이 된다. 됐다. 출발!
        그렇다. 난 언제나 잘 한다. 공연히 잠간 떨었다. 균형을 잡을 수 있으려나, 잘 올라 올 수 있으려나,힘들어 줄을 놓지지나 않을가. 이 모든 것은 기우였다. 작년이나 다름없이 의젓하게 물에 서서 유유자적 물위를 미끄럼 탄다. 맞 부딪며 달려오는 바람도 내게 와선 고개를 숙인다. 끄덕 없다. 그 정도 바람에 비틀할 내가 아니다. 오랫만에 나를 포옹하는 바람이 억세게 파도를 몰고 왔다. 그 파도를 넘자니 다리에 힘이 부친다. 아니 벌써 이러면 안 되는데. 살짝 졈프를 해서 파도를 보내면 그냥 이어서 달려들 온다. 난 아직 몸도 안 풀렸는데 초장부터 맹 공격이네.
        십여분을 매 달렸더니 팔도 다리도 뻐근하다. 안 되겠다. 손 신호로 스톱을 주고 물로 빠져 들어갔다. 어이쿠. 역시 나이 탓인가. 생전 이렇게 힘 들다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곰곰히 생각을 한다. 난 지금 무얼 하고 있는건가. 수상스키? 지난 5년 동안 매 해 여름이면 미친듯이 멕시코 바다로 달려갔다. 열대성 기후여서 바닷물은 따스하니 쟈쿠지 물을 연상시킨다. 마음이 안정 되고 물 속에 들어 가는 것이 하나도 겁이 안 난다. 색색의 물고기들이랑 맑고 아름다운 바다가 속살을 내 보이니 물속의 색갈에 취해 수상스키를 타곤 했다.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렁여도 빠지면 저 어여쁜 바다의 품일터 겁낼 이유가 없다. 새파랗고 고운 연두색을 섞어 내 앞에 옷을 벗는 바다는 간혹 진한 푸르름으로 파도를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나에게 기쁨을 주던 수상스키가 지금은 내게 질문을 한다. 운동? 좋다. 진짜 운동이 많이 된다. 그런데 꼭 수상스키만 운동인가? 더구나 난 수상스키의 진수를 맛 보지 못했다. 도저히 한 발로 서는 것이 안 된다. 두 발로 타다가 슬그머니 한 쪽 스키를 버리고 한 발이 될 수는 있지만 처음부터 한 발로 서지를 못한다. 내 년 이면 되겠지. 올 해엔 꼭 해야지. 그러다 결국 가을을 맞곤 했다.
        지금도 그렇다. 두 발로 시작 해서 아직 한 발로는 엄두도 못 내고 난 벌써 지치고 있다. 다시 도전을 해도 이건 아닌성 싶다. 내 나이가 몇인가? 제발 위험한 운동은 그만 두라는 친구의 간곡한 충고가 귓가를 돈다. 어차피 한 발로 일어서지 못 한다면 수상스키의 참 맛은 없다. 언제까지 초짜노릇으로 만족 할 수 있겠나. 그래. 버리자. 이젠 그만 두자. 비용도 이렇게 많이 드는 운동이라면 누군가에게 아주 많이 미안하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배를 곯는 사람들에게. 정말 미안하다.
        

        바다야, 난 네가 좋아. 겁나지도 않아. 그렇지만 네 곁을 수상스키를 타며 지키기가 싫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겠다. 고운 색의 물이 좋고 파도가 좋으니 영영 떠날 순 없다. 모래사장에 배 깔고 누워서라도 너를 가까이 하면 된다. 내 속에 꿈틀거리는 욕망을 잠 재우자. 보트가 끌어 주는 속력에 쾌감을 느끼며 발 바닥에 때려 치는 물의 애무가 나를 자꾸 유혹 해도 이 건 이제 끝내자.
        비상한 결심을 하곤 두 번째 스키를 신었다. 첫 번 보다는 훨신 수월하게 탔다. 시간도 길어 졌다. 한 쪽 스키를 벗어 보겠다고 했더니 보트 주인이 도리질이다. 벗어 버린 한 쪽 스키 찾으러 다니는 것도 사실 짜증스런 일이지만 몹시 귀찮아 하는 눈치다. 게다가 투덜대기까지. 어째 그리 힘이 좋으세요? 이를 악물고 누가 이기나 타시는 거에요? 지칠줄을 모르시네.  
그래. 이것이 마지막이다. 진짜 마지막이다. 제대로 타지도 못 하면서 뭘 기대하고 또 시도를 하겠는가. 이쯤 탔으면 그동안 많이 즐겼고 행복했다. 앞으론 돈 안 들이고 즐길 수 있는 운동을 찾아 보자. 일도 그만 둔 처지에 분명 사치가 심했다. 내가 좀 젊었다면 이렇게 내 욕망을 쉽게 버리진 않았을게다. 사실 쉽게 버리는 건 아니다. 가슴이 싸 하니 많이 아쉬운 상태다.
         아쉬울 때  접는 다는 것도 용기일 수 있다. 나이에 맞게, 형편에 맞게 살자. 그래야 아름다운 삶이 내 것이 될 것 같다. 버리는 일도 때를 맞춰야 내게 득이 될 것이다.


2004 미주문학 가을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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