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콕을 떨쳐버린 하루

2021.08.16 18:43

노기제 조회 수: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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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0                                                   집콕을 떨쳐버린 하루

                                                                                          

 

설촌

   콕, , , 집콕, 방콕. 답답해서 정신을 잃을 지경이다. 후다닥 일어나서 외출을 준비하지만 갈 곳이 없다. 편한 차림이 습관이 되어, 제대로 챙겨 입기도 짜증 난다. 잘 보이려 깔끔하게 골라 입으려니 옷장에 꽉 찬 옷들이 다 쓰레기 더미로 보인다.

   누구에게 보여 주고 싶은데?  어딜 가려구?  무턱대고 나갈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약속부터 만들자. 전화기에 입력된 250개가 넘는 전화번호를 차근차근 살피며 사람의 얼굴을 떠올린다. 우선 나만이라도 보고 싶다는 간절함이 느껴지는 사람을 찾는다. 상대방 의견을 헤아릴 처지가 아니다. 전화를 걸고 안부를 묻고 그런 후에야 그 사람이, 내가 만나자면 응해줄 건지 아닌지를 결정해 줄 테니까.

   중학교 일 년 선배가 딱 걸렸다. 스키클럽에 나를 데리고 가서 그룹으로 스키여행을 7년여 함께 했던 언니다. 매 시즌에 56일씩 세 차례 여행을 다니며 편해진 까닭에 내 나름 정이 두텁다. 스키를 은퇴하고 손주 손녀들 돌보며 어느 기관에서 어르신들 상담해드리며 쉴 틈 없이 바쁜 분이다.

   아직 스키 현역으로 지내는 내 이야기도, 스키를 접은 후에도 여분의 시간을 빼지 못하는 언니의 상황들이 좋은 대화가 될 수도 있다. 역시나 오랜만의 연락에 깜짝 놀라며 반겨준다. 일주일에 한 번, 한인 타운에 위치한 곳에서 봉사하고 있으니 점심시간에 맞춰 나오라고 흔쾌히 허락을 받았다.

   기분이 좋아진다. 다양한 김밥을 준비한 곳에 들러 색다른 김밥을 산다. 과일도 좀 준비한다. COVID 19 때문에 식당도 못가는 상황이니 언니네 사무실에서 소풍 간 듯 시간을 꾸며보자. 우선 누군가를 만나서 얼굴을 마주하고 환하게 웃는 모습 보여 주고 눈 맞춤 할 수 있는 현실이 고맙다. 생기가 넘치는 내 모습이 대견하다. 여전히 밝은 성격이 장점이라고 칭찬도 해 주니 신이 난다.

   옛날처럼 자유롭게 만나고, 함께 밥 먹고, 깔깔대며 행복한 시간을 조각조각 이어 볼 날이 언제일런가 한탄하기 보다는 오늘 하루 그런날로 지낼 수 있도록 만들어 보자. 생각만 하느라 칙칙하게 살지 말고, 발에 힘주고 벌떡 일어나자.

   끝도 없이 저장된 알록달록 수 많은 전화번호들, 자신감을 갖고 찾아보자. 그냥 한 사람만 찾으면 된다. 오늘은. 내일은 내일 다시 생각하자. 별 의미도 없이 허공으로 날아 사라지는 그랬었지, 그러게 말이야, 라고 이어지는 이야기들로 내 답답했던 가슴이 기지개를 켜고 심호흡을 한다. 시원하다.

텅 빈 사무실, 칸막이가 둘리 운 책상의 모습이 불안하다. 식사 중 간간이 밥알이 튀어나와 칸막이에 붙는다. 지저분하게 번지는 칸막이를 물티슈로 닦는다. 연애하는 사이라면 곤란하겠구나 한 마디 뱉으며 같이 까르르 큰소리로 웃는다.

   중학교 다닐 때 전교생 앞에서 독창을 하던, 안경 낀 촌스럽던 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또다시 까르르 소리를 높인다. 지금은 안경도 없어진 우아하게 변한 세련된 중년부인의 모습 앞에서 나도 덩달아 우아하게 매무새를 고쳐 본다.  이렇게 집콕을 떨치고 보니 어느새 하늘은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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