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만

2009.01.02 05:34

노기제 조회 수:875 추천:159

20081120                잠깐만
                                                        

        “내가 나갈꺼니까, 그런줄 알어. 방 구하는대로 나갈테니까”
        “나가면 내가 나가야지 …”
        “집 페이먼트도 없으니까 자기가 살아. 나가면 돈이 많이 드니까.”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남편의 반응에 순간 앗찔하니 숨이 멎는다. 이번 일을 온전히 하늘에 맡기며 기도했고, 끝장 내려고 말문을 열었던 건 아니다. 하늘이 주시는 과정이라 믿고, 일 되어가는 대로 순응 할 마음이다.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못한 아내들의 대부분은 추억으로 버틴다고 한다. 행복하단 기준이야 공식적으로 답이 있을 수 없으니 남의 일을 비교하며 따질 순 더욱 없다. 내 가정에 문제가 있으면 당하는 사람이 결정을 내려야 한다.  
        사람을 처음 만날 때 여러 조건을 나열하고 좋은점, 나쁜점 따져가며 선택하지 않았다. 뭔가 좋은 점을 보면, 바로 그 것 한 가지로 사람을 좋아한다. 내 결혼은 그렇게 이루어 졌다. 이건 전적으로 내 쪽에서의 얘기다.     내 멋에 겨워, 난, 둘 다 행복하다고 자신하며 살아 왔다.  .

        겉으로 보면 전혀 하자 없는 좋은 조건의 남편이다. 학벌 좋아, 인물 좋아, 능력 있어. 게다가 꼼꼼하기 이를데 없어 어떤 종류의 실수도 전혀 없는 사람. 문제는 바로, 어떤 종류의 실수도 없는 사람이란 것. 그 종목으로 나에게 들이대는 요구가 나를 숨 막히게 한다.

        그러나 나는 어떤가? 학벌도 인물도 능력도 모두 남편보다 못하다. 거기다 실수 투성이. 그러니 내가 저지르는 실수들을 용납치 못하고 큰소리가 터지고, 못 마땅해 하는 말투에 표정까지….이그, 싫다.

        지난 세월 어찌 살았나 하나하나 열거하며 기억 해 낼 수는 없다. 헛점을 허락지 않는 완벽한 남편과 계속 꿀밤 맞으며 완벽해지라고 종용 받으며 살았음은 확실하다. 그러나 난, 결코 남편이 원하는대로 완벽한 사람으로 변할 수가 없다는, 아니 내가 너무 부족해서 남편이 원하는 종류의 여자가 아니라고, 원하는 대로 변해 주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

        어쩌면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남편이기 때문에 매사에 잔소리로 내가 당 할 피해를 막아 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싫다. 난 숨이 막혀 헉헉대며 살았다. 돈 쓰는 용도, 물건 사는 것, 머리 모양, 옷차림, 내가 하는 일, 어느것 하나 남편의 간섭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니, 요령껏 내 멋대로 살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면서 우리 둘 사이에 높이 쌓여가는 벽을 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번 일은 약간 다른 양상이다. 그 꼼꼼한 성격이 못 참아 내는 것 중의 하나가 부엌에서 일어난다. 음식을 끓이는 도중에 잠간 딴 일을 하다보면 넘치는 경우가 있다. 끓어 넘기는 사실을 도저히 용납하지 못하는 남편과, 신경을 쓰느라고 쓰면서도 가끔 넘기는 나 사이에 생기는, 엄청난 갈등. 결국은 이혼을 예고하는 별거가 들먹여지고 만 것이다.

        남편의 아침 출근을 준비하면서 이른 아침이니 밥 보다는 국물에 국수나 만두, 혹은 떡, 오뎅 등으로 내 딴에는 정성을 들이지만 아차 하는 순간, 꼭 닫힌 뚜껑을 밀어 올리며 국물이 넘치는 소리가 들린다. 또 한 소리 듣겠구나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아직 아침도 안 먹은 사람이 있는대로 고함을 지른다. 모욕감이 밀려 온다.  .
        
“내가 얘기 했지? 큰 그릇에 끓이란 말야, 아주 큰 그릇에. 염병할.”

     그 소리를 들으며 난 이미, 이렇게 살긴 싫다고 맘을 먹는다. 왜 이러고 살아야 하나. 고단하게 사는 이민 생활에 하루도 안 거르고 아침 챙겨 주고, 도시락 싸 주는 마누라가 고맙지도 않은가?. 왜 이렇게 날 달달 복아대는 걸가.

     아뭇소리 않고 그냥 밥 차려 주고, 도시락 싸고 있으려니 남편은 후딱 뒷마당으로 나가 화분에 물을 준다. 화를 삭이느라 애를 쓰는 모양이다. 물 소리가 엄청 크다. 그렇게 해서 진정이 되면, 언제나 처럼, 머슥해진 표정으로 들어 오겠지.

“큰 그릇을 쓰란 말야, 큰 그릇. 염병할.”

     이건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하는 것 아닌가. 화분에 그렇게 쎄게 물을 뿌리며 화를 풀었으면 됐지. 뭐가 그리 화 낼 일이라고, 방으로 들어오며 또 한 번 질러대는 고함 소리에 내 심장은 완전히 멎었다.  난 아니다. 난 정말 저 사람이 원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렇게는 살 수가 없다.

     차려준 밥상 예전처럼 엎어 버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긴 하지만 이젠 나도 이 모양새로 계속 숨 죽이며 살고 싶지 않다고 숨을 고른다.

     두 번씩이나 질러대는 고함소리에 겁 먹은 강아지가 어디로 숨었는 지 안 보인다. “
“윈디야, 어디 있니? 아빠 다녀 오세요 해야지? 아빠 출근하시는데 어서. 우리 이쁜 윈디 착하지? 이리와, 아빠 나가신다. 아빠 다녀 오세요 하자.” 슬금슬금 눈치 보면서, 느릿한 걸음으로 모습을 드러 내며 내 곁에 선다. 우선은 출근하는 사람 기분, 더 이상 건들지 않기로 맘 먹고 배웅 해 줬다.

     무릎 꿇고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이거 하나님이 허락하신 삶 인가요? 전 싫습니다. 알콩달콩 재밋게 살아야 하는 데, 왜 이렇게 밖에 살 수가 없는 건가요?  전 모릅니다. 어떻게 해야 내가 원하는 대로 행복하게, 하나님 백성 답게, 후회 없는 삶을 살 수가 있는지. 무조건 하나님께 맡깁니다. 무슨 말씀이던 지시만 하시면 따르겠습니다. 그냥 침묵해야 하나요? 대화를 해야 하나요? 이대로는 정말 살기 싫습니다.

     기도하고 나면 나름대로 방향이 보인다. 마음이 평온 해 지며 웃음도 나온다. 별것 아니란 생각도 든다. 친구에게 전화해서 남편 흉 한바탕 보고 낄낄대며 지나가곤 했으니까. 흉이 흉으로 전해지는 그런 친구가 아닌 진정 예수님 모시고 사는, 마음 통하는 친구가 있다. 전화로 안부 묻고 이번 산불에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고 어려운 지경인데, 난 복에 겨워 한 바탕 열 받아서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는 내 말에, 이 친구 반응이 가슴을 서늘케 한다.

     거센 바람 동반한 무서운 불길의 행로를 테레비가 아닌 실제 불난 곳 가까이에 차 세우고 직접 보면서 스무번도 더 불속에 들어 갔다 나왔다는 얘기다. 왜? 무슨 일 있냐니까 전화론 말 못하겠고 만나면 얘기가 많다고 한다. 남편? 남자들 다 그 모양이란다. 그렇게 태어난 장애자려니 포기하고, 내가 져야 할 십자가라 생각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 왔다는 심상찮은 얘기다. 그래도 그 집 남편은 화 내고, 소리 지르고, 욕설 같은 거 안 하는 사람이니, 그런 사람이면 난 업고 다니겠다.

     흔한 말로 바람을 피우길 하나, 돈을 안 벌어 오나, 뭐가 불만야? 근데 사는 게 그게 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주 작은 말 한 마디. 억양 한 부분, 표정 한 조각, 그런 것들에 어떤 아내들은 죽음을 수도 없이 맛 보며 산다. 아주 작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당하는 아내의 입장에서 보면, 남편들이 쉽게 고쳐 줄 수 있다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작은 일로 죽고 싶다고 느끼는 사람이 나만이 아니란 걸 알았다.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그냥 묵과하고 지내는 것이 지혜롭지 못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왜냐하면 남편들도 알아야 하니까. 나 혼자만의 느낌이라면 내 탓이오 하고 사는 대로 살아보면 되지만, 다른 아내도 나 처럼 절망을 느낀다면 남편들에게 알려 주어야 할 것 같다.

     지금의 난 화난 상태가 아니다. 차분하게 내 느낌을 알려야 한다. 버럭 더 큰 소릴 지를지, 인상을 팍팍 쓸 건지, 남편의 반응에 걱정을 말자. 난 기도하고 하늘에 맡기고 남편 감정까지도 하늘에 부탁했다. 화 내지 않으려고, 음성 다듬고, 약간 떨리는 맘 정리하면서 퇴근 해 온 남편에게 얘기 좀 하자고 청하렸더니 부엌에서 렌지를 박박 닦고 있다. 별로 많이 넘치지도 않았고, 아침에 내가 다 닦았는데, 억지로 갈 앉혔던 맘이 불끈 한다. 당신 잘났다. 정말 잘났어.

     대부분 주위에선 그런 남편이 어딨냐고 고맙게 생각하란다. 그러게. 그랬으면 좋겠는데 난 자존심이 확 상한다. 자기가 깨끗하게 닦아 보여 주는대로, 이렇게 따라 하라는 암시로 받아 들여 진다. 다시 숨 좀 고르고 얘기 좀 하자 했다. 얘기라야 내 느낌을 말 할 뿐이다. 자기는 자신이 하는 말, 행동, 억양 그런걸 아무 생각 없이 하는 데 난 그만 생을 포기하고 싶기까지 심각하다고, 이젠 똑 같은 식의 삶은 싫다는, 남편의 일거수 일투족에 희희비비 상처를 받는다는 사실을 아느냐고. 제발 나 좀 살자고.

     이튿날 아침 변함 없이 남편 출근 준비 하는 내게 이쁘지 않은 높은 소리로. ”이제 부터 내가 먹을 건 내가 해 먹을테니 자기거나 해.” 그것도 해결책이라고 제시하는 건가. 아직도 문제의 핵심을 모르고 있는 남편. 정말 나를, 생긴대로 받아 줄 수는 없는가? 간단히 눈 질끈 감고 지나가면 될 일을 이게 무슨 얼토당토 않은 제안인가?  입장을 바꿔서, 남편도 그런 식으로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라 한다면, 최소한 상처 주는 말 한 마디씩 비수 되어 가슴을 찌르진 말아 달란 얘기다. 난 정말, 아무리 치밀어 올라도 상대방에게 상처가 될 말은 절대 안 한다. 안 살려 맘 먹으면, 그러니 하지 말아야 하고, 살려고 애 쓰는 거라면, 잠깐 참으면 된다고 나를 다스리곤 했다. 당신에게 상처가 되지 않는 한, 그냥 넘어 가잔 말이다. 내가 국을 넘기고 렌지가 더러워 진다는 것이 남편에게 어떤 상처가 되는지 알고 싶다. 난 남편의 큰 소리에, 한 마디 욕설에, 마음을 다치곤 아파한다..

     남자들은 다 어린애라더니. 어디 말이 통해야 무슨 해결책을 찾지. 그만 접자. 이제 한 참은 조용히 살겠지. 편해진 맘으로 하루가 또 지났다. 그런데 이틀째인 오늘 아침, 아침밥 잘 먹고, 싸준 도시락통 들고, 강아지랑 아빠 다녀오세요 하는데 나서면서 하는 말, “내가 나갈거니까 그런 줄 알어. 방 구하는대로  나갈테니까”

     잠깐만, 어디서부터 수습을 해야 할지 캄캄해진다. 기도, 기도, 기도하며 지혜를 얻고 싶다. 내가 남편의 자존심을 건드린 건 아닐까. 엊저녁 오버타임 했다며 늦었던 건, 어디서 시무룩허니 시간을 보내다 온 건 아닌지. 그러게, 악쓰고 소리지르고 욕설 퍼 붓고, 그런거 좀 안 해 주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소망이란 말인가. 찬바람 불고 추수감사절은 돌아오는데 이게 무슨 회오린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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