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행복상 후보

2012.11.08 02:02

노기제 조회 수:751 추천:164

20121017
                노벨 행복상 후보
                                                
        느낄 수 있는 기능을 가진 생물들에게 행복을 느끼게 해 주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쉽다, 어렵다로 표현하기 전에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를 생각 해 봅니다.
        요즘 한창 유행되는 웃음치료가 있습니다. 그런 모임에서 시키는 대로 몸짓, 발짓, 온갖 우스꽝스런 표정과 말로 시간을 보내면서 따라 웃어 봅니다. 그 시간이 행복 했다고 말 할 수 없습니다. 이런저런 생각 다 떨쳐 버리고 아주 단순 무식하게 머물러 본 시간이었을 뿐입니다. 그로 인해 잠시라도 행복했다는 감정은 없습니다.

        결혼 25주년 되던 해, 더는 못 참겠다고 별거를 선언하고 집을 나갔습니다. 남편에겐 그런 내가 순식간에 폭팔한 화산처럼 보였겠지만, 신혼 때부터 줄곧 쌓아 둔 결과였습니다. 내가 나로서 살지 않고 있음에 숨이 막혔던 겁니다. 이러지 마, 저러지 마, 왜 그렇게 해? 찌푸린 얼굴에 사방팔방 다 들리게 높아진 음성으로 어느 집 똥개 야단치듯, 거친 남편의 언어 폭행을 거부 하겠다 결단을 내렸습니다.
        자신의 어떤 면이 마누라를 집 밖으로 몰아냈는지도 모른다로 일관하는 남편. 자기가 하는 말은, 한쪽 귀로 듣고 다른 귀로 내 보내면 된다는 일방적 처방을 제시 합니다. 별 뜻 없는 습관성이니, 이해하고 살랍니다. 자식 없이 남편만 바라보니 별일도 아닌 것을 문제 삼는다며 주위의 비난도 대단했습니다. 함께 살아 보고, 당해 본 후라면 달리 말 할 것이 분명합니다.

        내 숨소리 외엔 들리는 소리 없이 혼자 살았던 열 한 달을 접고 집으로 왔을 때, 남편이 내게 선물한 독일산 슈나우저 작은 종자 강아지 한 마리. 털 색깔은 진한 회색에 가슴과 다리 아래쪽으로 흰색이 섞여 제 몸집보다 더 작아 보입니다. 개라도 기르며 마음 붙이고 살자는 뜻이었겠죠.

        이미 개와 함께 18년 살아 봤습니다. 또 강아지를 데려 온다고 뭐가 달라질까요. 다시는 안 기르겠다 했지만 결국 윈디는 내 딸이 됐습니다. 웃을 일 없는 집안에 살랑살랑 웃음 바람 일으키며 살라고 남편이 직접 지어 준 이름 윈디로  14년 8개월, 천수를 살고 내 곁을 떠났습니다.

        윈디는 사랑 한다는 인식도 없이 우리와 살았습니다. 윈디와 사는 동안 난 항상 웃는 얼굴이었습니다. 윈디. 이름만 불러도 슬며시 내 얼굴에 웃음이 번집니다. 흘러간 14년 반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게 살았었노라 고백하면서 그 시간들을 찬찬히 돌아보고 싶습니다.
        1998년 1월부터 강아지 분양하는 집들을 찾아 다녔습니다. 이왕이면 내가 원하는 우아하고 하얀 멀티스를 데려 오려고, 남편이 계획한 슈나우저 분양하는 곳은 리스트에서 지웠습니다. 태어난 지 2주, 3주, 한 달, 두 달 정도 된 새끼들을 보러 다니는 날들이 길어졌습니다. 도무지 맘에 드는 놈이 없습니다. 열 곳 넘게 다니며 선을 봐도 어쩜 그리 데려 오고 싶은 녀석이 없을까요.

        1,2월이 가고, 3월도 다 끝나 갑니다. 슬그머니 짜증이 나서 다 집어 치우자고, 개 안 기르겠다고 했습니다. 남편 맘대로 하라고 포기 했더니 그럼 자기가 원하는 슈나우저를 보겠답니다. 어차피 강아지 기르고 싶은 맘도 없고, 남편이 원한다면 자기가 데려오겠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남편은 여러 곳의 정보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도 꼭 암놈의 출생만을 기다리면서 말입니다.

        팔로스벌디스 어느 가정집을 늦은 저녁 시간에 갔습니다. 그 곳은 Show Dog Champion만 분양하는 곳이랍니다. 우리는 그냥 pet으로 기를 강아지를 원한다 했더니 이번에 태어난 놈들 중 가장 체격이 떨어지는 놈을 골랐답니다. 늙은 백인 여자를 따라 한 놈이 쭐레쭐레 들어옵니다. 색깔이며 얼굴이며 전혀 내가 원하던 모습은 아닌데 첫눈에 확 끌렸습니다. 이리 오라고 손을 내미니 망서림도 없이 내게 옵니다. 덥석 안아 올려 얼굴을 가까이 하니 작은 두 팔을 벌려 내 목을 끌어안습니다. 더 이상 뭘 따지고 생각 하겠니, 넌 이제 내 딸 하자고 결정 했습니다.

        전형적 쇼덕 챰피온의 족보 번호가 문신으로 새겨지고, 꼬리와 귀가 다듬어 지고, 예방 접종등 모든 절차를 기다려 태어난 지 석 달 만에 내 집에 와서 살아 준 윈디. 남편의 예상이 적중했습니다. 윈디와 함께 산 14년 반은 남편에게 생기는 불만, 불평이 불행으로 이어지질 않았습니다. 윈디를 두고 집을 나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깔도 있고, 고집도 쎄고, 남편도 나도 윈디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지가 먹고 싶으면 말없이 끈질긴 기다림으로 얻어 먹고야 맙니다. 생떼를 쓰거나 완력을 행사하지 않기 때문에 끝내는 우리가 지고 맙니다. 건강상 우리가 먹는 음식은 절대 안 주려 해도 먹고 싶다 맘먹으면 아무도 그 의지를 꺾을 수 없습니다. 밖에 나가겠다면 나가야 합니다. 문까지 가서 선 채로 몇 시간이고 기다립니다. 문 열어 주기까지. 곤하게 자고 있는데 오줌누러 나가자 깨우면 뾰족한 흰 이빨을 드러내며 내 손을 물듯이 쉬익 소리로 겁을 줍니다. 귀찮다는 겁니다. 어이없어 살살 달랩니다. 간신히 허락을 받고 잔디로 나가면 얼마나 참고 있었는지 한참을 누면서도 성깔을 부립니다.

        맨 처음 털 깎으러 갔다가 목에 끈을 매고 그 끈으로 목을 조였다 풀었다 하며 위협을 주면서 털도 깎고 목욕도 시키는 걸 봤습니다. 집에서처럼 성질도 못 부리며 그 작은 생명 살겠다고 엄청난 스트레스 견디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 후론 집에서 남편과 둘이 털 깎고 목욕 시키며 이쁘다고 착하다고 칭찬해주며 달래줍니다. 될수록 마음 편하게, 기쁘게, 즐겁게 살도록 환경을 조성 해줍니다. 그러면서 남편과 덜 부딪치고, 윈디에게 고운 말, 칭찬만 해 주면서 남편이 따라 하기를 기다립니다.

        왜? 보다는 칭찬을 먼저, 고집 부린다고 욱지르고 야단치기 보다는 살살 달래면서 부드럽게 말하게 합니다. 가끔 카펫에 실례를 해도 큰소리 치고 화를 내기 보다는 사랑으로 보듬어 주게 합니다. 그런 것들을 내가 남편에게서 원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내 삶을 돌아 봐도, 어느 누구에게 이런 뜨거운 맘 느껴 봤겠나. 연애를 해도 결혼을 해도 잠깐 불타다 사그라진 사랑하는 마음. 40년 결혼생활에 윈디에게 준 그 밀도 높은 사랑의 얼마만큼이나 남편에게 주었나. 왜 사랑했나. 어떻게 사랑했나를 기억합니다.

        아무 조건이 없습니다. 그냥 보고 있으면 미소가 절로 피어납니다. 그러던 윈디가 죽었습니다. 남편의 눈물이 나를 젖게 합니다. 비로소 남편의 어떠함이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내 보낼 수 있어집니다. 윈디의 주검 앞에 서러울 수 있다면, 언젠가 우리 서로의 죽음을 맞아 더 서러워 질 터. 무에 그리 대단해서 살겠네 못 살겠네 발버둥 치며 시간을 허비 할 건가.

        어여쁜 우리 윈디. 살랑살랑 웃음바람 일으키며 웃고 살게 하더니 이제 죽어선 우리 부부 행복하게 살도록 행복바람 몰아주고 갔습니다. 절대 녹을 것 같지 않던 싸늘한 내 가슴을 윈디가 따스하게 녹여 줬습니다. 나 없어도 아빠랑 행복하게 살라 합니다. 윈디에게 묶였 던, 남편과 나의 따로따로였던 사랑의 끈을 끊고, 엄마와 아빠를 직접 묶어 놓고 떠났나 봅니다.

        서로 들키지 않게 숨어 펑펑 눈물을 쏟는 남편과 나는 윈디로 인해 행복합니다. 조금씩 이 행복이 짙어 질 것을 압니다. 40년 동안 풀지 못 해 방황하던 숙제를 윈디가 풀어 주고 갔습니다. 울고 울어도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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