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클럽

2012.01.15 07:37

노기제 조회 수:669 추천:161

20110115                              끼리끼리 노는 재미를 긴말하고 싶다. 알게 모르게 얼굴에 나타나는 변하는 나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마음은 자신이 느끼는 만큼의 나이만 인식한다. 그리곤 마음의 나이 또래를 만나고, 같이 놀면서 깜빡 자신을 잊는다. 그러다 어느 순간 호되게 몇 대 맞는다. 훨씬 젊은 또래와 어울린다 생각하고 잘 놀고 있는데, 갑자기 그들로부터 내침을 당하는 경우다. 능력, 체력 어느면을 봐도 결코 뒤지지 않음에도 말이다.

   그렇게 재미 없는 계절들이 지나고 스키장이 문을 열었다. 선배의 소개로 미국사람들 스키클럽에 가입한 지 4년째다. 첫 해는 가입비만 내고 참가를 주저하다 시즌을 마감했다. 그 다음 해엔 무작정 따라 나섰다. 실력이 너무 처지면 혼자 타겠다는 각오를 했던 때문이다.

   사실 베이비 부머 세대인 우리 처지는 한국에서 스키 구경도 못하고 이민길에 오른 세대다. 이민 와서도 먹고 살기 바빠 스키까지 생각하기엔 시간이 한 참 걸린 현실이다. 사십 넘어 배운 스키 실력이 20년 넘게 탔다 해도 어느 정도 일런 지는 짐작이 간다. 그래서 겁부터 먹고 첫 발을 내 딛지 못 했던 거다.

   일단 함께 대여섯 시간 운전해서 여행하고 4박5일을 함께 먹고 생활하면서 같이 스키를 타는 과정에서 아주 많은 것에 놀라고 고민하게 되었다. 우선 영어만 써야 하는 불편함이다. 따라오는 상황은 이 사람들의 생활 습관, 음식들, 생각들, 대인 관계 등, 내겐 생소한 어려움이다.

   특히 정나미 떨어지는 말투. 친절한 억양에 부드러운 말투를 쓰는 사람도 있지만, 콘도나 방 배정, 여행 전체를 총괄하는 여자의 말투를 이해 할 수가 없었다. 나를 배척하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정말 피하고 싶었다. 일부러 관심을 갖고, 친절을 베풀고, 상냥하게 순종하는 모습을 보이며, 아양도 떨어 봤지만, 전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변하지 않는 여인.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난 물에 기름이라 딴 방법이 없다는 결론을 얻고 견딜 때 까지만 견뎌보리라 작정했다.

   한 해가 지나고 두 해가 지났다. 여전히 변하지 않는 모든 생소한 여건들. 그러나 그들에게 내가 섞여 지고 있다. 점점 편해지며 나의 그 편함이 그들에게 익숙해진다. 이젠 함께 까르르 웃기도 하며, 난 그들의 실력있는 사진사로 귀중한 존재가 되었다.

   처음엔 나만의 기록을 위해 사진기를 품고 스키를 탔다. 가끔 그들의 모습을 담아 스키클럽 웹사이트에 올리게 했더니 자신의 모습이 공개 될 수 있음을 다들 좋아 한다는 걸 알았다. 전에는 회장이 한 두 컷 올리는 정도로, 개인 모습이 아닌 단체 사진 정도였다.

   다행하게도 사진클래스를 한 학기 공부한 실력이다. 사진을 찍어도 구도를 생각하고, 개성 있는 모습들을 담는다. 그러니 찍어 달라는 부탁도 한다.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생긴 것이다. 많이 기쁘다. 내가 스키를 좀 덜 타더라도 그들을 기쁘게 해 주고 싶다.

   좀 떨떠름하던 사람과도 친근 해 진다. 그깟 고쳐지지 않는 말투 쯤, 내가 이해하면 된다. 특히 이들의 나이가 내 또래에서 위 아래로 네 살 상관이란 점이 나를 무지무지 편하게 만든다. 스키 실력으로 따지면 미국에서 태어나 성장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니 젊은 나이에 스키를 타기 시작한 실력을 내가 어찌 견줄 수 있으랴만, 그래도 나이가 있으니 관절이다, 무릎 수술이다, 기운 떨어졌다로 비겨 버리면 함께 타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

   오히려 내 실력에 그들이 놀란다. 겁 없이 어디건 다 올라간다. 생기 팔팔한 모습이 그들에겐 부러운 모양이다. 사실은 나도 몸 사리며 조심조심 타는데 말이다.

   미국 이민 사십년 만에 진짜 미국 생활을 체험하는 느낌이다. 미국생활 속을 볼 수 있는 기회다. 더구나 노인이 되는 과정이 보인다. 늙어가는 모양새가 우리와 사뭇 다르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다 사람 나름이겠지만 그래도 내게는 미국사람 전체의 모습으로 다가 온다.

   자유를 만끽하는 흐름이 있다. 전혀 타인에 관해선 입에 올리지 않는다. 느낌도, 판단도, 제약도 받지 않는다. 그러면 그런대로 타인을 인정하는 것으로 끝이다. 그래서 이렇고 저렇고가 따르지 않는다. 무척 신선하면서 깨끗하다. 누가 누구와 정분이 나고, 몇 번 결혼하고, 갈라서고, 또 다른 누구와 데이트 중이고..........그저 눈치로 짐작 할 뿐, 난 아무것도 들을 수가 없다. 그래서 홀가분하다. 부담도 없다. 그냥 좋다.

   오래 된 멤버중엔, 나이 들어 욕심 생기고, 얼토당토 않게 남에게 뒤집어 씌우고, 거짓말 살살 하는, 망령끼 생긴  노인도 있다.  몸은 스키 탈 형편이 안 되면서도 굳이 따라 오는 경우도 있다.  처음엔 그런 노인에게 억울한 소리도 듣고 적응 할 수 없어 펑펑 울기도 했지만, 스키 클럽 4년차인 지금은 다 고개 끄덕이고 지날 수 있다.

  

   이번 시즌엔 눈이 안 와서 인공눈으로 즐기고 있지만, 재미 있어도 함께 재미 있고, 힘들어도 함께 힘들고, 여행 중에 하차해도 함께 하차하는 같은 마음이기에 내겐 이 스키 클럽이 하늘이 주신 큰 선물처럼 생각이 든다.  항상 청춘이 아니라는 인생을 깨닫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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