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로 땅을 치기 보다는

2012.04.07 13:47

노기제 조회 수:776 추천:148

20120323                후회로 땅을 치기 보다는
        늦게 몰아친 폭풍으로 산에 쌓이는 눈이 스키어들을 유혹하는 3월이다. 계획 된 트립만도 아직 네 번이나 남았다. 어찌할까. 비용은 이미 완납 했고 나도 점점 기회가 줄어드는 상태로 변하고 있다. 스키 탈 나이가 지났다고나 할까. 마지막 발악을 하듯 이번 시즌이 마지막일 수도 있단 각오로 스키타기를 탐한다. 다음 시즌에 내 몸 컨디션이 어찌 될지 조바심이 살짝 섞인 염려도 한 몫 담당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윈디가 많이 아프다. 윈디 전에 키웠던 잡종이었던 페기가 18세에 갔으니, 그에 비하면 윈디는 아직 14살, 젊은 층이다. 독일산 미니 슈나우저 순종이다. 겁도 없이 코요테 쫓아 갔다가 간신히 살아 난 경력이 있다. 작년 내가 한국 방문중엔, 윈디가 곡기를 끊고 아프단 소리에 일정을 취소하고 불야불야 돌아오기도 했다. 이번이 세 번째 맞는 죽을 고비다. 역시 토하고, 싸고, 못 먹고, 추욱 쳐져 힘들게 가쁜 숨 몰아 쉬는 모습이, 오늘 낼 하고 있다. 개는 사람과 달라서 3일만 안 먹으면 죽는다며 남편이 뒷마당에 좋은 자리를 잡아 땅을 팠다.

        요즘 내 주위에 돌림병처럼 애완견들을 잠재워 보낸다. 9살짜리 미니, 11살짜리 타이슨, 15살짜리 룰루, 역시 15살짜리 미미.

        어딘가 아픈것 같아 동물병원에 데려 가면, 그냥 주사 맞혀 재우라고 권고 한다. 개 입장에서 생각하고 결정을 내리라고 종용한다. 늙어 힘들고 관절염에 각종 암까지 보유한 상태이니 그대로 살리는 건 잔혹한 주인들의 이기심이라나. 허기사 우리 윈디도 진통제에 제산제에 눈 멀고, 귀 먹고, 피부엔 각종 혹이 기승을 부린다.

        여기저기서 들은 개 이야기를 남편과 나누는 날이면, 의례 윈디의 태도가 눈에 띠게 바뀐다.  앞 다리를 못 쓰는 타이슨 잠재운 얘기를 하던 날엔 윈디가 벌떡 일어나 벌벌 떨 던 뒷다리에 힘을 팍 주고 선다. 마치 ‘엄마, 아빠 나 봐요. 나 다리 안 아파요. 얼마던지 잘 걸을 수 있어요. 자, 날 보라니까요.’ 씩씩하게 설명 하며 시범을 보이는 듯 해서 내 눈을 젖게 한다.

        룰루를 보내고 아쉬워하시는 행장님댁 얘기를 하던 날엔, 유난히 초롱초롱 빛나는 눈을 내게로 향해 눈맞춤 하자고, 두 눈 크게 뜨고 본다. 자신이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사실을 감추기라도 하는 듯, 애쓰는 모습에 내 가슴은 덜컹 주저 앉는다.

        그러든 윈디가 갑자기 토하고, 싸고, 못 먹고 자리 보존하고 누웠다. 기저귀를 채워도 옆으로 새는지 하루에도 몇 번씩 펑펑 젖는 자리를 바꿔 주고, 빨래 하고 말린다. 내 생활 리듬이 깨지고, 힘겨워 진다. 어떻게 해야 하나?

        못 먹어 뚝 떨어진 기운, 죽을 듯 헥헥대는 윈디를 끌어 않고 큰소리로 울며 기도 한다. 난 도무지 이런 상황 못 견디겠으니 윈디도 나도 고통 받지 않게 데려 가시던지, 낫게 해 주시던지 양단간에 빠른 결정을 내려 달라고 눈물을 쏟았다. 그리곤 윈디에게 말했다.

      “미안해 윈디야. 엄만 이런 수발 오래 들 수가 없어. 그렇지만 절대 너 잠재우려 주사 맞히진 않을게. 하나님께서 직접 해 주시도록 맡길거야. 이렇게 엄마 품에서 조용히 잠 들면 너두 좋구, 나두 좋구 할텐데, 모르지.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허락하실 지 기다려보자. 그러나 엄만 너랑 헤어질 마음 준비 했어. 너무 서운 해 하지 마.”

       한참을 끌어 안고 그러다 보니 배가 고팠다. 어느새 점심 때가 훌적 지난 2시 반이다. 야속하지만 엄만 뭐 좀 먹을게. 뭔 입맛이 있어 먹겠냐만 나까지 기운 떨어져 비실대면 남편 혼자 너무 힘들어 질터. 슬퍼도 내색도 못하는 사람, 내가 정신 차려야 한다는 생각에 쟁반에 챙겨서 윈디 곁에서 두어 숱갈 떳을 때, 죽은 듯, 쳐저 있던 윈디가 고개를 들고 콧구멍을 씰룩대며 냄새를 맡는다.

       엇? 윈디야, 너두 뭐 좀 먹을래? 근데 뭔 냄새를 맡는거야? 엄마 먹는 건, 너 먹을 거 없는데. 아하, 여기 멸치 볶음이 네 입맛을 자극했니?”
즉시 일어나 윈디 먹게끔 닭 국물 끓여 논 것 몇 수저 뎁혔다. 며칠을 못 먹었으니 갑자기 뭘 줄 수도 없다. 물도 못 넘겼던 밥통이다. 국물을 입에 대어 주니 할짝거린다. 천천히 뎁힌 국물 다 멕였다. 물도 줬다. 역시 할짝할짝 다 마신다. “오라, 이제 됐다. 그렇지만 뭘 더 줄 수는 없다. 우선 그렇게 위를 달래가며 조금씩 먹어야 할 것 같다. 미안한 마음도 사라졌다. 나도 밥 좀 먹자.

       거짓말 같이 다시 살아 난 윈디. 그런데 오른쪽 뒷다리를 전혀 못쓴다. 그냥 덜렁덜렁 흔들리며 달린 상태다. 스스로 걸을 수 없으니 볼 일 보는 일이 낭패다. 그래도 좋다. 윈디가 걸을 수 있도록 배를 바쳐주는 허리띠를 이용 해 본다. 덜렁거리는 뒷다리가 헛 짚어도 윈디 무게를 허리띠로 내가 들어 주니 살살 걸으며 운동도 할 수 있고, 볼 일도 쉽게 해결 한다. 내가 그림자처럼 함께 있어야만 된다.

       내 언제 이렇게 조건 없이 뜨거운 사랑을 쏟아 부은적이 있었나? 귀찮다는 생각도 전혀 없다. 그저 고통 없이 살아만 주면 뭐든 다 감당 할 것 같다. 스키 가고 싶지만 윈디가 혼자 외로워 겁내고 슬픈 생각 할까봐 같이 있어야 겠다. 며칠을 그렇게 불편하게 걷더니 그냥 달린 듯 덜렁거리던 다리가 힘을 받고 선다. 또 다른 기적을 본다. 만져보니 근육도 붙어 제법 단단하다. 아아, 이 뜨거운 감사함을 어찌 보여 드릴까. 내 일상을 많이 접고 윈디 위주로 바꿨다. 아쉬움이 있지만, 나중에 후회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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