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이 어떤사이?

2012.05.01 01:03

노기제 조회 수:670 추천:167

20120429                        우리사이 어떤사이?

        다른 사람들의 작품들을 모아 책을 편집 한다는 일이 어느 정도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지 짐작 하지 못 했었다. 미주한국문인협회의 편집국장이란 거창한 직함을 떠 맡게 되었을 때만 해도 장 자리 원하는 사람에게 주라고 뒤로 물러 서 곤 했다.  그러다 이번엔 호되게 야단을 맞게 됐다. 그 동안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싫도록 놀았으니 이젠 일 좀 맡아 도와 주셔야 한다고 누군 좋아서 일을 맡아 하는 줄 아느냐고 회장님 바깥 선생님이 일침을 주셨다. 그만 찔끔해서 일의 바운더리를 정하고 조건부로 맡게 됐다.

        모든 면에서 내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이다. 무조건 남의 글을 읽어야 하고, 맞춤법을 확인 하고, 가끔은 주제 넘게 뭔가를 고치고 싶은 충동까지 일어나니 참아야 하고, 이곳 저곳 같은 작품을 제출하는 문인에겐 충고까지 하려드는 오지랖하며 도무지 내가 좋아 하는 일은 분명 아니다. 그래도 정말 할 사람이 없다고 통사정 하는 바람에 그만 수락하고 말았는데, 어느덧 임기 하반기에 들어섰다.

        계간으로 발간 되는 미주 문학의 원고 마감일이 되면 초긴장 상태가 된다. 행여 이메일로 오가는 작품들이 도중에서 어디 엉뚱한 곳으로 숨어 버리지나 않을까. 혹은 분명 받아서 저장 해 놓고 확인 메일을 보냈는데 가끔은 확인 메일 안 줬다고 건방지고 불친절한 사람으로 각인 되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확인 메일부터 보내 놓고 저장하는 일을 깜빡 할 때도 있다. 어찌 되던지 분명하게 작품을 받고, 도착 확인 메일을 보내고, 장르별로 잘 묶어서 보관 했다가 마감 후 여유를 갖고 마지막 주자에게 보내는 일까지가 내 몫이다.

        임기 동안 그리 아슬아슬 불안 했던 것이 드디어 터졌다. 마감 전이었고 받았다는 확인 메일도 받았는데 어찌하여 자기 작품이 누락 되었느냐며 누구의 잘못인가를 묻고, 이럴 수가 있느냐고, 편집자의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즉 누구 잘못이건 간에 라는 뜻일게다. 이렇게 운영하면 안 된다는 훈계 메일이 왔다.

        이럴 때, 자기 작품 누락 된 것에 화부터 내고 훈계부터 하면, 이미 벌어 진 일에서 무엇을 얻게 되는가.  불이익이 왔을 때 보여주는 태도에 그 사람의 인격이 고스란히 묻어 나온다. 일하는 사람에게 슬며시 알리고 자초지종을  되짚어 가게 하는 것이 서로가 상처 받지 않는 방법 아닐까. 누가 고의로 그런 일을 하겠는가. 운영 방법 중에 남의 작품 누락시키는 방법도 있다는 뜻인가. 본인이 운영하면 어떤 방법으로 운영하겠다는 말인가.

        이런 일은 잘 했다, 잘못했다의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그야말로 있을 수 있는 착오, 실수, 뭐 그런 것 중에 운 나쁘게 자신이 걸려든 것이다. 미주한국문인협회 회원들이 작품을 모아 일 년에 네 번 책으로 묶는다. 그럼 회원이란 의미가 뭘까. 이미 재능을 인정받아 등단한 문인들이다. 우리가 뿌리 내리고 사는 여기에서 죽어 헤어질 때 까지 함께 글을 쓰며 얼굴 마주 할 사이다. 섞이기 싫어 자신이 스스로 퇴장하지 않는 한, 함께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또 다른 사실은, 언제 어느 회장단에서 자기 자신이 맡게 될 일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문인임을 포기하고 글쓰는 일을 마감하기 전까지는 계속 돌아가야 하는 상황들임을 분명하게 인지하며 글쓰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을 한 번쯤 생각 해 볼 것이다. 누구에게나 해당 되는 일이다. 어느 다른 단체가 불미스럽게 티격태격 한다 해서 우리도 그리 하며 살 필요는 없지 않은가. 우리만이라도, 오래 얼굴 마주하며 함께 살아가야 할 사이인 걸 잊지 말고 되도록 생길 수 있는 실수를 서로 포용하면서 살면 어떨까. 평상시 누군가 나에게 일부러 그런 불이익을 줄 것이란 피해 의식에서 벗어난다면, 예측하지 못한 때 어떤 일을 당한다 해도 대뜸 호통부터 치고 훈계부터 내리는 내 인격 깍아 먹는 반응은 피할 수 있겠다.

        남은 임기가 한 층 걱정되는 순간이다. 가슴이 더 벌렁거린다. 잘 마무리 져야 할텐데. 갑자기 내 주위 사람들이 아주 캄캄한 암흑 속에 있는 듯 무서워지며 그들을 피하고 싶어진다. 이런 모양새로는 끝까지 함께 갈 수 없음이 확실할 터, 밝은 관계로 바뀔 뭔가를 내가 찾아내고 노력해야 할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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