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 생일잔치

2012.07.30 02:26

노기제 조회 수:846 추천:164

20120713                대박, 생일잔치
                                            
   여름에 태어난 아기. 냉방 장치가 완벽한 요즘 시대의 병원 분만실이 아

니다. 66년 전, 인천시 금곡동 20번지, 창문과 문은 꼭꼭 닫혀있어 바람

한 점 비집고 들어오지 못한다. 작은 온돌방은 산후조리를 위해 절절 끓고

있다. 땀으로 샤워를 하며 숨이 막힐 듯한 방안 공기에 얼마나 짜증스러웠을

까. 스물 넷 꽃봉오리 같은 나이인 엄마의 네 번째 아기로 태어난 나의 첫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주위 환경이다.
  
   “하필이면 여름 삼복더위에 태어나서 그렇게 날 고생 시킬게 뭐람.”
  
   동지섣달이 생일인 두 오빠들과, 서늘한 늦가을에 태어나 나와는 서로 만

나지도 못한, 아홉 달 살고 간 언니와 비교 한 엄마의 불평이다. 한 여름에

태어 난 내가 엄마에겐 처음으로 지긋지긋한 분만의 경험이었나보다. 마치

내가 간절히 원해서 그 청을 들어 주느라 여름에 태어나게 해 준 듯이 자라

면서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원망이다.
  
   그래서 더 엄마에게 고마운 마음이었다. 그렇게 심하게 고생 고생해서 나

를 세상에 내어 놓아 주었으니, 생명 주심에 천만분의 일 이라도 보답하고

싶었다. 엄마에게 들은 다른 사연도 있다. 중국 상해에서 살면서 아빠가 엄

마에게 옮겨 준 몹쓸 병으로 뱃속의 아기를 희생시키면서라도 치료를 했어

야 했던 엄마. 요즘 임산부들은 건강한 아기를 태어나게 하기 위해 감기약

도 안 먹는다지 않는가. 감기약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독한 약에다 전기 치

료까지 받았는데도 꿈쩍도 않은 질긴 생명. 결국 날이 차서 분만을 했지만

작은 몸둥이 왼쪽 전체를 움직이지 못하는 아기였단다.
  
   차라리 독한 약물 치료에 기권하고 말지. 어찌 그리 악착을 떨고 이지경

으로 태어났느냐며 핏덩이에게 원망스레 묻기도 여러 번. 사흘 밤낮을 낭패

와 실망으로 불안에 떨던 어린 산모. 그러나 그 때 하늘은 이미 내 오른손

을 들어 주셨다.
  
   사흘이 지나니 아기가 오른쪽과 더불어 왼쪽 팔다리를 힘차게 퍼득거리더

란다. 철없는 아기엄만 그래도 마음 놓지 못하고 아슬아슬 마음 조리며 아이

의 성장을 두려움으로 지켜보았으리라.
  
   그런 사연을 듣고 부터는 한 층 엄마에게 감사하고 싶었다. 세상구경 하

겠다고 고집 피우고 태어나서 엄마에게 평안을 주지 못한 아기였던 게 미안

했다.
  
   그래서 난 내 생일을, 엄마에게 감사함을 전하는 특별한 날로 생각하며

살았다. 여름 생일이니 음식도 상하고 해서 생일잔치는 한 번도 차려 준 적

이 없단다. 철들며 생각나는 생일은, 엄마가 냉면 사 주는 날이다. 더 철들

며 내 생일은 엄마에게 맛있는 음식 대접하는 날이었다. 그 해, 그 때의 나

를 있게 해준 엄마가 진심으로 고마웠기 때문이다.  난 스물여섯에 결혼 했

는데, 내 나이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그런 어려움 속에서 나를 낳아야 했던

엄마 처지를 동정했다. 항상 그 때의 불안했던 엄마 마음을 위로하고 싶었

다.  그래서 엄마  살아생전에 최선을 다 해드렸기에 후회는 없다.
  
   아이 없이 40년 내 결혼생활에 생일 음식은 언제나 간단히 냉면이다. 환

갑에도 잔치는 없었다.
  
   그런 내가 우연히 맞은 생일잔치. 암벽등반학교 10기 동기들 모임 날짜

가 하필 내 생일로 결정이 되어,  불참을 알리고 남편과 조촐하게 냉면으로

지낼 예정이었는데......정말 우연히 모임에 참석하게 되고 젊은 총무 아가

씨의 배려로 생일 케잌이 마련되고 동기들 강사들 30 여명이 모인 자리에서

평생 한 번도 하지 않은 케익 커팅까지. 하게 된 잔치.
  
   엉겹결에 받은 많은 사람의 생일 축하 노래. 몇 갠지도 모를 숫자의 촛불

을 불어 끄면서 영화 한 편 찍은 기분이다.
  
   생명을 받아 태어 난 것만 감사해서 달리 아무것도 바라지 않던 생일.

뭐 그리 야단스레 잔치를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아 지나치던 생일. 남편

이 서운 해 하며 조카들 부부와 손주들 불러 아주 작은 케잌이라도 마련한

생일엔 촛불 킬 필요 없다며 그냥 먹고 지내던 생일이었는데.
  
   특별한 경험이다. 환하게 한 번 웃어 볼 일이다. 다시 한 번 엄마에게

뜨겁게 감사하고픈 날이었다. 칠월 12일, 66번 째 내 생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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