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싸움

2010.05.26 10:05

노기제 조회 수:855 추천:143

20100516                        몸싸움
        
        누구와 싸움이란 걸 해야 될 경우가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기껏 해 봤댔자 말싸움 정도가 고작이었던 짧지 않은 나의 삶이다. 그렇게 생각 없이 살아 왔기에 더욱 아무 준비도 하지 않은 채 싸움에 휘 말렸던 며칠 전의 아픈 경험. 세상엔 나를 힘으로 이겨 내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에게 억세게 휘둘려 상처를 입기 까지 일반적으로 당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파마를 하면 좀 예뻐 보이려나 싶어 미장원에 들렀는데, 미장원의 분위기가 이상하다.  20년 넘게 단골이지만 숨가삐 반기며 “잘 오셨어요” 란 인사는 첨 들어 본다. 게다가 주인의 얼굴은 태열로 고통스러워 하는 애기의 모습이다. 기운도 다 떨어지고 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쓰러지기 일 보 직전, 사태가 파악 되지 않아 무슨일이냐고 물었다. 앳된 아가씨가 악을 쓰며 빨리 이 머리 어떻게 좀 해 보란다.

        생전 처음 보는 손님이 들어 와 머리를 짤라 달래서 뒷 머리를 손질 했는 데 불벼락이 떨어 짐과 동시에 두 시간 동안 혼쭐이 나고 있는 중이란다.
얼마나 큰 소리로 악을 써 대는지 주인의 설명을 들을 수가 없다. 우선 화가 나 있는 손님의 변을 먼저 들어 볼 량으로 공손하게 다가가 무슨 일이시냐고 물었다. 댓뜸 나더러 누구냔다. 나도 머리 손질 하러 온 손님이라 했다.

        억양이 특이 해서 외국인이 한국말을 어렵게 하는 줄 알고, 우선 영어가 편한 신세대라 싶어 영어로 말을 건네니 대뜸 왜 영어로 말하느냐 악을 쓴다. “나 학생으로 온 지 얼마 안 돼서 영어 못해요.” 그렇담 일본 학생인가?  옳지 그런가 보구나. 영락 없는 일본 사람이 하는 한국 말 억양이다. 그렇담 일본 말로 해 주지. 다행이구나 마침 내가 할 수 있으니 제일 편한 말로 내게 자초지종을 얘기 하라고.  이번엔 더 크게 악을 쓰며 눈을 부라린다. 왜 일본말로 하는 거에요? 나 일본 말 못해요. 어라? 그럼. 무슨 말을 젤 잘 하는데?  “한국말요. 한국말.”

        아닌데, 한국 어느 지방 사투리의 억양도 분명 아닌데. 근데 소리는 왜 그리 질러대나?  진정하구 뭘 원하는 지 차분히 얘기하라 했다. 미장원 주인이 자기 머리를 망쳐 놓구 돈 안 받을 테니 그냥 가라고 했다면서 잘못 했으면 미안하다고 먼저 해야 하는 게 당연하지 어째서 기술이 없어서 못하겠다며 주저 앉을 수가 있느냐는 얘기다.  얘기만 들어 선 백 번 맞는 소리 같다. 그러면서 “내가 이미지로 한 시간에 삼 사백불을 버는 사람인데 머리를 잘 못 잘라서 이미지를 망쳐 놨으니 다시 제대로 자르라는 호령이다. 가만, 아깐 학생으로 온 지 얼마 안 되서 영어를 못 한다 했잖아. 결국 얼굴로 먹고 산다??

        미장원 주인 얘기를 잠깐 들어 봤다. 앞머리는 미처 손도 안 댄 상태란다. 겨우 뒷 머리 살짝 친 상태에서 시비를 걸기 시작 해서 두 시간째 나를 앉지도 못하게 팔을 이리 끌고 저리 끌고 했단다. 기운이 다 빠진 상태라 다리가 후들거려 더 이상 가위질을 할 수 없어서 평상시 다니던 미용실로 가라고 했단다.

        아가씨에게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어차피 머리를 망쳤다고 생각한다면 구태여 이 미용실에서 더 이상 머리 손질을 안 받는 것이 이미지 보존에 최선일 듯 하다고. 더구나 앞 머리와 옆 머리는 아직 손도 안 댔으니 이미지 훼손이란 말은 해당이 안 된다고 설명을 했다. 내겐 아직도 이 손님이 한국 사람이 아닌 일본 사람처럼 느껴졌기에 자꾸 일본말을 섞어서 잘 알아 듣게 설명을 하느라고 했다. 최선의 대우를 해 주려 노력하는 차원임을 느낄
수 있도록 정말 최선을 다 했던 것이다.

        성의를 보이란다. 내가 지시하는 대로 머리를 자르란다. 손사레 치는 주인에게 손님이 그 걸 원하니 다시 한 번 성의껏 지시하는대로 잘라 보라고 했다. 머리 제대로 해 놓기까지 밤까지, 아니 집에라도 따라갈테니 해볼테면 해 보란다. 그 동안 머리 하러 왔다 발길 돌리는 손님들이 서너명이 됐다. 물론 나도 바쁜 사람이다. 머리 손질은 커녕 중재에 나섰으니 어떡해서든 해결을 봐야 할 상황이다. 손님 비위 맞추느라 주인 말은 들어 줄 여유가 없었다.

        나는, 손님의 말을 최대한 존중하는 태도를 택 했다. 최선의 성의를 보인다면 결과에 더 이상 불평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대필하고 손님의 사인을 받았다.  머리칼을 보물 다루듯 차근차근 가위질을 하는 미장원 원장에게 최선을 다 하자며 안심을 시켰다.

        가위질 한 번에 십 분 이상이 걸린다.  “잠간만요. 그렇게 자르면 어떻해요? 자격증이나 있는 미용사 맞아요? 이렇게….이런 모양으로 자르란 말에요.” 한 동안 네네 하며 나와 원장이 그 비위를 맞추고 있었다. 이젠 내가 진이 빠진다. 이러다간 언제 끝날 지도 모르는 일이다. 너무 힘이 든다. “아가씨, 이런 식으론 안 되겠네요. 뒷 머리 대강 다시 다듬었으니 아무래도 다니든 미용실로 가세요. 어느 미용실에서 이런 식으로 손님 머리를 손질 한답니까? 그렇게 잘 하면 아가씨가 직접 자르든지. 일어나시죠. 그냥 가세요.”

        “각서 썼잖아요. 결과에 불평 안 한다고. 그냥 자르라구요. 아무래도 모양이 안 나니, 윗 부분에 파마를 해 줘요. 이젠 둘이 한 패가 돼서 잘 들 논다. 빨리 파마나 하라구요.”
        “이봐 아가씨, 원장님 말이 매직 파마 한지도 얼마 안 된 머리에다 염색도 자주 하는 머리라서 지금 파마는 안 된다잖아. 환자가 병원에 가서 나 죽여 줘요. 한다구 의사가 죽여 주냐? 몇 달 지나야 파마를 할 수 있는 상태라잖아. 그리구 머리가 컷트 한 순간에 스타일이 나는 거 아니거든. 마지막 블로우드라이로 마무리 한 후에라야 스타일이 나서 이뻐지는 거지.”

        블로우드라이란 말도 이해를 못하는 사람이다. 시늉을 해서 겨우 원장이 마지막 손질을 하니 상큼하니 애띤 모습이다. 이미지 손상이란 억지일 뿐이다. 왜 이렇게 이 아가씨가 악을악을 쓰며 파마를 하라는 건지, 머리를 잘 못 잘랐다는 건지, 난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계속 의자에 앉아서 파마를 고집하며 폴리스를 부르란다. 변호사를 부르란다.

        나도 지칠대로 지쳐서 빨리 이 곳을 나가고 싶다. 아무래도 끝이 나질 않으니 폴리스를 부르는 수 밖에. 갑자기 폴리스는 어떻게 부르나. 119를 돌렸다. 안 된다. 아차, 911 인걸. 폴리스를 부르고 싶다니까 뭔가 번호를 준다. 걸었더니 또 다른 번호를 준다. 삽십여분을 걸고 끊고, 걸고 끊고 제대로 통화를 하기까지 애를 쓰는데 이 아가씨, 자기 머리에 물을 잔뜩 붓고 드라이를 돌리며, “폴리스 빨리 불러, 왜 안 불러?, 빨리 부르라구” 도무지 통화를 할 수 없게 소리 소리 지른다. 그러더니 전화를 건다. “오빠, 나 미장원인데, 빨리 좀 와” 그 소리에 나도 덜덜 떨려 온다. 빨리 경찰이 와서 좀 도와 주면 좋겠는데.

        이리저리 몇 군데를 걸고 통화 하다 결국 올림픽 경찰서와 통화가 됐다. 물론 영어로 계속 통화를 하니 이 아가씨 전혀 못 알아 듣는다. 그러다 느낌으로 알아 차린 모양이다. 갑자기 돌변해서 내게 공격을 한다. 전화 끊으란다. 전화기를 뺏으려고 완력으로 덤벼대는데 우와 뭔 기운이 이리 쎈가. 내가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면서 전화 통화를 계속하는 동안에 어찌나 악을 써 대는지 제대로 의사 전달이 안 된다. 그러다 결국 전화기를 뺏기고 통화는 끊어지고 낭패다.

        그 오빠라는 사람이라도 와서 행패를 부리면 어쩌나. 에구, 오늘 내 일진이 이게 뭔가. 양쪽 팔은 왜 이리 아픈가. 다시 전화를 걸어 보려 전화기를 손에 잡으니 또 행패다. 기운으론 내가 당할 수가 없다. 밖으로 나가서 하려니 쫒아 나온다. 구석으로 몰린 새앙쥐 꼴이다. 슬그머니 자존심이 상한다. 평상시 운동으로 다져진 내가,  누구에게 기운이 딸린단 생각은 한 번도 안 했다. 지금이라도 내가 힘껏 저 손님을 칠 수 있을 것 같다. 발길질을 할까? 따귀를 올려 부칠까?  있는 힘을 다 해 밀어 볼까?

        그런데 법에 저촉이 되는 한계를 모른다. 공연히 폭행죄로 끌려 갈 수도 있잖을까. 나만 이렇게 당하고 그냥 끝낼 상황도 아니고, 겁도 나고 당황한 머리 속이 해결 점을 못 찾는다. 그 때, 경찰차가 도착했다. 이젠 살았구나. 통화도 완전히 끝을 못 맺었는데 어떻게 알고 왔을까?. 그저 감사하기만 하다. 내 평생 첨으로 경찰의 심문을 받았다. 우선 말하라는 지시가 떨어 질때까지 침묵해야 한다. 허락을 받고 조용조용 얘기 해야 한다. 미장원 주인이나 손님이나 영어가 안 돼니, 천상 내 얘기만 들을 수 밖에.
        ID가 있느냐는 질문에도 대답을 못하는 손님 아가씨, “왓? 왓? 아임 스튜던트, 아이 해브 머니.”  한국말 가능한 경찰관을 호출하니 곧 도착 했다. 주인에게 자초지종을 묻고 손님을 데리고 저 쪽 뒷문으로 나가서 한 참을 대화 한 후 돌아 와서 하는 말. 연세가 어떻게 되시나요. 주인이 자기 나이도 생각이 잘 안 나는 듯 머뭇거리기에 내가 말 해 줬다. 62? 61?

        “할머니뻘이신데 19살 짜리 손님과 옥신각신 하시면서, 경찰까지 부르시면 안 되시죠. 물론 어린 사람이 버르장머리 없이 굴었으니 화도 나시겠지만, 잘 타일러서 보내셔야죠. 저도 별별 사람 다 보고 별일을 다 겪고 오죽하겠어요. 어떻게 하길 원하십니까, 돈을 내라고 할까요……….”
        “돈도 안 받을테니 저 손님이나 제발 데려 가세요.”

        목이 쓰라려서 거울을 보니 턱 아래 쪽으로 가로로 길게 상처가 났다. 손톱자국인가?. 보기 흉하다. 남편에게 얘기 할 수도 없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니 상처를 가려야겠다. 남의 일에 좋은 맘으로 뛰어 들었다 이리 됐으니 잘 했단 소리 못 들을 건 뻔하다. 그런데 팔은 왜 이리 아픈가. 열 아홉살? 그래서 기운이 그리 좋은건가? 그런데 그 아이 목적이 뭐 였을까? 그 억양은 또 뭔가. 학생이라며? 뭔 짓을 해서 돈을 그리 많이 버는지 그것도 궁금하다.

        몸싸움에 상처 뿐인 사람은 난데, 왜 내겐 말 한마디 묻지를 않나? 그 아이가 무슨 거짓말을 어떻게 했는지 그냥 그것으로 끝내고 말다니. 두 시간이나 시달렸으니 점심도 걸렀다. 미장원 원장은 네 시간을 시달린 후니, 머리 손질 할 에너지도 없을 터. 그냥 미장원을 나섰다. 문 밖에서 경찰관 셋과 그 아가씨가 아직도 서 있는 모습을 보며 뭔가 잘 해결 되겠지, 다시는 어디가서 똑같은 행패 못 부리게 신분이라도 확인하려니 했다, 다른 미용실에 알려 주어 저런 손님이 있다는 걸 인지하도록 하고 싶다.  

        시간 뺏기고, 몸에 상처 나고,  억울하지만 마음은 뿌듯하다. 내가 당한 것이 오히려 감사하다. 나를 보는 순간 구세주 만난 듯 기뻣다는 미장원 원장의 말이 감사하다. 하늘이 나를 쓰셨구나. 나도 누군가를 위해서 뭔가를 할 수 있었구나. 그러나 힘으로 밀렸다는 사실 하나는 여전히 자존심 상하는 일로 남았다. 가을학기엔  유도 클래스라도 등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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