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사랑, 그 이파리들(세번째 이파리)

2010.12.05 03:19

노기제 조회 수:941 추천:207

        사랑, 그 세 번째 이파리, 누님의 간호

        간기능이 약하다, 염증도 있으니 각별히 조심하라는 의사의 진단에 육개월 마다 정기 검진을 받으며 살아 온 성수. 공기 좋고, 경치 수려하고, 조용한 뉴저지 시골 동네에서 규모가 큰 모텥을 운영한다. 딱히 스트레스 받는 일은 없다. 청소나 관리를 위해 도와 주는 사람들도 마음 다칠 만큼 어려움 주는 사람 없다. 어릴적 친한 친구 하나 가까운 곳에 살아 모텔 운영에 도움을 준다. 술이래야 음식과 함께 즐기는 하루 반 병 정도의 와인이 고작이다.  3남 1녀의 막내로 고교 졸업 후 이민와서, 별다른 어려움 없이 나이 사십 된 싱글이다. 부모님, 형 둘, 누이가 함께 살다가, 형들은 가정 꾸려 분가하고, 누이는 결혼과 동시 한국으로 역이민 했다. 얼마 전 부모님 두 분 차례로 타계 하셨고 대 식구가 살던 큰 집에 성수 혼자 살고 있다.
        모텔 운영이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바쁜 일도 아닌데, 집 근처 18홀짜리 골프장이 있어도 구경만 하는 정도다. 특별히 취미 생활을 즐기는 것도 없다. 집에서 음식 만들고, 침구류들 색깔 맞춰 사 들이고, 가구에 변화 주어 꾸미며, 조용히 혼자 음악 들으며 있는 듯, 없는 듯 살던 생활에 무슨 발병 할 원인이 있었겠나.
        육개월 마다 한 번씩 받는 정기 검진 때마다 찍어 보는 엑스레이를 읽으며, 의사는 조금 이상한데 암튼 조심하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통증과 황달등 자각증세가 심해지자 큰형이 성수의 엑스레이를 들고 다른 의사를 찾아 갔다. 간암 말기에 전이가 시작 됐다는 생뚱맞은 진단을 했다. 또 다른 병원으로 다른 의사에게 받은 진단도 역시 간암 말기란다.
        아니, 육개월에 한 번씩 찍은 엑스레이는 뭐고, 각종 검사는 뭐였단 말인가. 그것도 찗은 세월이 아닌 칠년씩이나 오진을 했다? 지나간 엑스레이들 몽땅 찾아다 새 의사에게 보였다. 이미 조짐은 보이고 있었단다. 이놈의 의살 그냥 고소 해버려? 의사질 못하게 무슨 조처를 취해야 되는 거 아냐? 동네 구멍가게 의사도 아닌, 제법 이름 알려진 큰 병원의 의사가 이래도 되는거야?
        식구들 모여 의논 한 결과 조용히 새 의사의 지시에 따라 수술 받고 치료하자로 결정했다. 한국에 있는 누이는 간이식이 가능한 사람을 찾느라 사방팔방 손을 써서, 젊고 신체 건장한 청년을 찾아 냈다. 돈 관계로 복역중인 경제사범이니 돈으로 해결해서 감옥에서 꺼내 주고, 미국으로 보낸다. 순하고 착한 막내, 어떻게 해서든지 살려야 한다는 마음으로 뭐든 다 해주려는 누이의 사랑이다. 혈액형이 같다. 젊고 신체 건장하니 잘 되려니 했는데……..성수의 간조직이 심하게 거부 반응을 보인단다. 돈으로 해결 안 되는 일이다. 하늘이 노랗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애가 타는 누이는 다시 사두사방 알아 보며 성수 살릴 길을 찾는다.  한국내 여러 곳에서 운영 되는 요양원이, 생활을 바꾸게 하고, 음식을 바꾸어 주며 자연 치유로 환자들을 돌본다는 소식을 미국 식구들에게 알려온다. 그 사이 성수는 두번의 수술을 받았고 색전술 시행을 기다리고 있던 참이다.
        누이의 의견에 따라 한국으로 옮겨서, 누이와 함께 요양원 생활을 시작한 성수. 약도 안 준다. 흰 쌀밥도 없다. 육식도 없다. 무슨 수로 기운을 차리란 말인가. 새벽에 기도 시간이 있고, 낮엔 성경강의가 있다. 운동 시간도 있지만 여럿이 함께 숲길을 걷는다. 간식도 없다. 하루 세끼 정해진 시간에 이름하여 건강식을 준다. 현미밥, 통밀빵, 감자, 고구마, 옥수수, 각종 과일, 기름 없이 만든 반찬들, 통밀가루에 견과류나 현미가루를 섞어 기름 없이 구워 낸 과자들, 각종 야채에 쓰이는 소스도 견과류를 갈아 만든 것들이다. 어느 음식에든 쓰이는 국물은 무, 양파, 다시마들로 우려 낸다. 멸치 한 마리 안 쓴다. 간장도 안 쓴다. 소금 약간, 고춧가루도 안 쓰며 빨강 피만과 비트로 색을 얻는다.
        언제나 말이 없는 성수. 불평도 없다. 누이의 정성을 생각해서 웬만한 건 다 견딘다.  누이 가정과 성수 건강 회복에 몸이 부셔져라 애쓰는 누이에게 미안해서, 죽는 게 차라리 나을 듯한 통증이 와도, 아프단 소리 안 하려 입술을 깨무는 성수. 불면증으로 밤를 하얗게 밝혀도 입 다무는 성수. 차라리 소리라도 지르고 불끈 화라도 내면 좋으련만. 말이 없는 만큼 성경공부에서 느끼는 것도 없다. 요양원에서의 생활이 감동스럽지도 않다. 이렇게 해서 무슨 수로 간암이 나을 수 있단 말인가. 조용히 누이의 얼굴을 본다. 뭣 때문에 누인 이런곳으로 날 데려 온걸가. 어느 방법으로도 자신의 병이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하는 성수다. 달리 누이 성애씨는 직접 병에서 회복한 환자들을 만나서 얘기 하며 들은 바를 모두 성수에게 적용 시켜 보려 한다. 요양원에서 이박사 세미나 소문을 듣고, 내켜하지 않는 성수를 데리고 망상 해수욕장 그랜드호텔에 참가자가 되어 온 오누이 성애, 성수.
        환자들의 도착과 함께 봉사자 효선은 성애, 성수를 맡아 방으로 안내 한다. 309호. 옛날 효선이 묵었던 방 윗층이다. 환자의 표정들은 모두 같다. 그래서 효선은 더 밝게 인사하고, 더 수선스레 말하고, 더 친근하게 다가 간다. 환자들 명단에서 병명을 읽고 성수는 심각한 환자에 누이는 보호자라는 걸 알았으니, 말투도 그들에게 맞는 단어와, 억양도 적절하게 그들 마음으로 파고 들어가야 한다.
        효선에게 맡겨진, 기도해 줘야 할 환자들은, 예방 차원에서 참가하신 영문학 교수 부부와 신장암, 우울증, 난소암 환자등 다섯 분이다. 모든 환자들이 겉으로 봐선 그리 심각하게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여기까지 오신 분들은 대부분이 병원에서 수술하고, 항암치료 받다가 별다른 차도가 없이 절망 상태로 오신 분들이다. 그러니 얼굴에 웃음이 없다. 표정도 혈색도 어둡다. 그런 그들에게 무슨 말이 위로가 될 것이며, 어떤 재롱으로 그들을 웃게 만들 수 있겠는가.
        효선은 천성적으로 밝은 성격에 가만 있어도 웃는 얼굴로 보이는 귀염성에 난소암을 이긴 회복자라는 강한 무기가 있다. 진심으로 그들의 회복을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타고난 성품이 밝으니 가식적이지 않다. 생글거리는 눈웃음이 누구에게나 항상 귀엽단 느낌을 주는 진심이 보인다. 진실함, 그 것으로 환자들에게 다가가면 어느 누구도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네 번째 이파리, 윗글로 계속

회원:
0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0
어제:
0
전체:
96,6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