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한 방의 약발

2010.07.15 08:26

노기제 조회 수:677 추천:149

20100713                딱 한 방의 약발

        그 동안 많이 미련하게 살았답니다. 우물이 너무 깊어 그 속을 보려고 노력도 안했더랍니다. 눈에 보이는, 귀로 들리는, 그런 것 만 느끼고, 판단하고, 응수하고, 울며 불며 용을 썼더랍니다. 그게요, 제가 그렇게 삼십 칠 년여를 지지고 볶은 결혼생활 이었습니다.
        몇 개월의 연애기간, 미국 이민 관계로 먼저 마친 혼인신고, 양가의 부족했던 경제 상황으로, 울 신랑이 다섯 달을 더 벌어서 결혼식을 했습니다. 비자가 안 떨어져 팔개월 동안 신혼살림을 했던 단칸 방 전세살이.  별 불평 없이 알콩달콩 살았던 신혼이었음엔 틀림이 없습니다.

        어릴적부터 외국 다니시는 친정아버지께, 짐 가방에 나 좀 넣어서 데리고 다녀 달라고 졸라 댈 만큼, 외국에 나가 살고 싶었답니다. 마침 미국 이민을 신청 해 놓은 신랑감을 만나 바야흐로 내 소망이 이루어 질 판이니 그야말로 웬 떡이었는지…………. 그런데 울 신랑은 나 만난 후, 미국 안 가겠다는 거에요. 이런 낭패가 어디 있습니까. 이건 아니죠. 우째우째 꼬득여서 결국 미국 땅으로 옮겨 심겨졌지요. 속으로 쾌재를 부른 내겐, 천국과 같은 미국땅이, 울 신랑에겐 지옥이었던 걸 난 몰랐던거에요.

        말 설고, 낯 설은 미국 땅에서 뭘 하며 살 거냐 던 남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물 만난 고기마냥 신명나서 활개치며 살기 시작한 내게, 찾아 든 그림자. 막노동으로 이민생활을 시작한 남편의 변화였습니다.

        언성을 높이고, 막말을 하고, 손찌검까지…..첨엔 나도 언성을 높였고, 그 뿐이네요. 그렇다고 막말을 같이 할 수도 없고, 손찌검 역시 내 능력으론 안 되는 거였으니 말입니다. 가장 빠르게 반응한 방법이 입 다물고 살기로 했던겁니다. 말 대답 안 하니 조용하게 살아지더라구요. 그러니 그게 뭡니까. 일체 내 의견 따윈 내 놓을 수가 없이 그냥 듣기만 하면서 일방통행이 시작 된 거죠. 한 편으론 보따리를 싸 놓구, 여차하면 갈라 설 생각 만 했거든요. 부부란 서로의 의견이 다를지라도 양보도 하고, 우겨도 보고, 그러면서 합일점을 찾으며 살아가는 작은 공동체라 생각 했더랬는데 말입니다.

        매사에 잔소리가 심해요. 이러지 마라, 저러지 마라, 왜 그러냐, 그게 뭐냐, 멍청이라느니, 똑똑치 못하다느니, 사지 마라, 하지 마라, 속지 마라. 이건 뭐 일곱 살 짜리 딸래미 한테 하듯 사람을 볶아대니 어디 살 수가 있어야죠. 살아야겠기에 이혼 할 결심을 했던거죠. 아니면 내가 죽을 것 같으니까요.

         하나님께 악을 쓰며 불평을 했습니다. 나를 이렇게 살다 암 걸려 죽게 하실 계획이시냐구요. 난 싫다구요. 어디 괜찮은 남자 있으면 좀 바꿔 달라고 졸라댔습니다. 남편하곤 더 이상 살기 싫다구요. 그걸 기도라고 매일 했다는거 아닙니까.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대로 해 주시겠거니 기다리면서 여기까지, 오늘까지 살았다니까요 글쎄.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남편이 변하기를 기다리느니, 차라리 내가 변하는 게 빠르겠다는 생각이요. 남편이 어떻게 말을 하던, 그러는 저 남자가 이쁘다고 느끼면 간단하겠다는 생각이 드는거에요. 그렇구나. 그러면 되겠구나.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답니다. 이제 부터는 저 사람이 어떻게 행동을 하던, 어떤 말을 하던, 그 자체가 모두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도록, 나를 변화 시켜 달라고 살살 기도 했어요. 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간절하게 매달릴 필요도 없단 생각이었거든요.

        딱 한 번의 기도로 금방 변화 된 나를 보았습니다. 아니, 어쩜 저리도 다정다감하고 그저 나만을 위해서 살려고 애쓰는 남편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아니, 우리 둘 다 서로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던 다 하려고 완전 준비 된 모습이었습니다.

        살 닿는 거 싫어서 딴 방으로 나왔던 내가 슬그머니 안방으로 돌아가려 맘 먹고 있는데, 강아지에게, 엄마 데리고 오라는 부드러운 소리가 들리더라구요. 우리 세 식구 같이 자야지 라는 말이 어쩜 저리도 자연스레 나올까 감탄했답니다. 먼저 그렇게 고개 떨구고 다가서는 남편이 많이 고마웠습니다.

        속이 깊은 사람입니다. 표현 할 줄 몰라 쩔쩔매다 냅다 소리 질러 버리던 안타까운 심정을 내가 오해 했었나 봅니다. 그 동안 얼마나 답답했을까 안스럽기까지 합니다. 세상에 여잔 마누라 하나 뿐인 남자, 불면 꺼질세라, 꽉 잡으면 날아 갈세라 안절부절 나름대로 최선을 다 했건만, 전혀 알아 주지 않던 마누라가 얼마나 야속 했을까. 에구구 불쌍해라 우리 남편.

        약발 확실한 그 기도. 앞으론 날마다 잠에서 깨는 첫 시간에 하겠습니다. 어쩌면 자는 중에도 그 한 마디 기도가 계속 될 겁니다. 이렇게 잠깐 바르게 생각만 해도 평안하게, 따스하게, 살 수가 있는 걸, 정말 오랜 세월 미련하게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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