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안 보이는 욕심

2010.12.27 03:54

노기제 조회 수:830 추천:167

20101210                끝이 안 보이는 욕심

        “노기제 선생님께 축하드립니다. 선생님의 작품 [사랑, 그 이파리들]이
이번 제4회 경희 해외 동포 문학상 작품 공모에서 입상 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시상식에 꼭 참석하라는 당부와 함께 온 e-메일을 건성 읽고는 나름대로 해석을 했지 뭡니까. 자세한 내용은 시상식에서 발표를 할 모양인가 생각 했구요. 공교롭게도 내가 해석한 입상이란 단어가 내게 혼동을 가져다 준 것입니다. 후에 사전을 찾아 보았습니다. ‘상을 탈 수 있는 등수 안에 듦’ 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제 판단이 틀리 진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해석을 하고는, 가슴 두근 대며 비행기 표 예약하고, 숙소 마련하고 시상식에 참석하려 준비 했던겁니다.
        뉴욕까지 행차 하려면 이 삼일은 걸릴터라 남편에겐 뭔지 모르지만 우선 등수안엔 들었다니 가 봐야 알 것 같다 했구요. 착각을 했으니 아주 콱 믿어 버린겁니다. 추수감사절 연휴 바로 다음 주가 되어 비행기 표가 성수기 가격으로, 대단히 비싼 가격입니다. 상금이 얼마나 될 건지, 숙소까지 계산하면 천 불은 족히 깨지겠다는 계산입니다. 설마 그거야 되겠지.
        플러스 마이너스 똔똔만 돼도 다녀 올 마음이었거든요. 게다가 주최측에 상금은 한국에 있는 내 은행 계좌로 입금 해 달라고 부탁 메일까지 했구요. 완전 김치국물 부터 마신 셈이었지요. 그러면서 공상에 공상이 꼬리를 물기 시작 했습니다. 대상일까? 그렇겠지? 내 그럴 줄 알았지. 글쓰기 전 부터 감 잡았거든요. 이번엔 틀림 없이 대상 차지일거라고. 상금을 타면 어디에 쓸까? 우선 미주한국문인협회에 적어도 천 불은 내 놓아야지. 아니, 이 천불 할까? 그 담은 이화코랄에도 넉넉히 줘야지. 단원들 저녁도 한 번 거하게 쏘자. 마침 한국에 있는 오빠에게 보내는 생활비 전용 은행 구좌에 잔고가 달랑달랑 하니, 나머진 몽땅 오빠 몫으로 한국 은행에 입금 해 두면 한동안은 마음 놓고 살겠다고 미리 안심을 했답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10년 동안 수필을 써 왔으니 이젠 벌거 벗는 일이 싫어 진 겁니다. 소설을 쓴다면 적당히 버므려서 감쪽 같이 근사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겠다고 눈을 반짝거리며 기도를 했던 일을 기억 해 냈습니다. 그 땐, 맨 꼴찌라도 좋으니 소설을 쓸 수 있도록 인정 만 받으면 감사하겠다고 했습니다. 상금 같은 건 없어도 좋다고 했습니다. 내가 뭐 돈이 필요 한 사람은 아니라고 하면서요.
        난 욕심이 없으니 이번에 받을 상패도 얼마큼 보관 했다가 곧 버릴 것이라고 살며시 미소까지 지었더랬습니다. 미련 없이 다시 싹 쓸어 버릴 것이 확실 했으니까요. 그런데 이게 무슨 상상입니까? 대상이라니. 확신까지 하면서 상금 쓸 곳까지 계획을 세우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서도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뜻이 있으셔서 이번엔 내게 대상을 허락하신 것이라고 제법 당당하게 어깨를 으쓱 거렸습니다. 그나마 다행한 일은 아무에게도 내 속셈을 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엘에이에서 뉴욕까지는 비행기로 다섯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립니다. 비행기 안에서는 가슴 벅찬 공상으로 줄곧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의 오빠 부부를 초청해서 함께 시상식장에 도착했습니다. 행사 순서지를 받고 펼치는 순간 숨이 헉 막혔습니다. 대상, 최우수상, 우수상, 가작, 그리고 입상. 그런 순서대로 이름이 있는겁니다. 아니 이럴수가. 맨 꼴찌. 턱걸이, 어휴 챙피 해.
        진짜 쥐구멍으로 숨고 싶었습니다. 상금도 없습니다. 상패도 없습니다. 겨우 상장 한 장. 이걸 받으러 내가 뉴욕까지 왔다는 말입니다. 돈 쳐 들여가면서? 어떻게 그렇게까지 착각을 할 수 있습니까? 입상이란 단어를 다시 새겨 봅니다. 아직도 내겐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러나 어쩝니까? 이미 난 시상식장에 와 있고, 상장을 수여 받고 수상소감까지 한 마디 해야 했답니다.
        나 보다 앞서 상장을 받은 분의 수상 소감이 들렸습니다. “이렇게 턱걸이로 된 줄 몰랐습니다. 내년엔 기필코 대상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피식 웃었습니다. 내 맘하고 어쩜 그리 똑 같을까 해서요. 나도 그리 말하리라 생각했습니다. 단에 올라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반갑습니다. 엘에이에서 온 노기젭니다. 수필을 한 십년 쓰다 보니 벌거벗고 사는게 싫어져서 소설로 응모를 했습니다. 전 턱걸이도 감사합니다. 앞으로 좋은 글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얼래? 이건 내 맘이 아닌데요. 나도 정말 대상인 줄 알아서 여기까지 왔고, 다음엔 기필코 대상을 타겠다고 말하려 했는데 누가 대신 내 입을 빌어 다른 소감을 말 했나 봅니다. 막상 대상을 수상한 분은 참석도 못해서 대리 수상을 하고 소감도 못 들었습니다. 그 외, 대상을 못 탄 사람들 전부가 다음엔 꼭 대상을 타겠다고 말하는 듯 했습니다.
        욕심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그깟 쓰잘데 없는 상 따윈 필요 없다고 큰 소리 쳤습니다. 다만 소설을 쓸 수 있도록 인정만 받으면 족하다 했습니다. 그래 놓구서 왜 딴 청을 부렸는 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지독하게 착각을 하는 통에 시상식에 참석 할 수 있었고 지금 생각하니 바보스런 추억거리가 하나 생겼습니다. 다시 나를 돌아 볼 수 있기도 합니다. 역시 욕심 버리기가 쉽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더 많이 노력을 해야 하겠습니다. 다시 빈그릇이 되고저 다짐 해 봅니다. 날마다 깨어 있어, 마음 비우기를 연습해야 되리라 자신에게 타이르고 있습니다. 이젠 턱걸이도 감사하단 마음이 되어 있습니다. 소설을 쓸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즐겨 읽히는 글을 쓰고자 노력하겠습니다. 쓰고자 하는 갈망이 있습니다. 공부도 많이 하고 싶습니다. 모든 게 감사 할 뿐입니다.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엄청 많은 분들이 글을 쓰고 싶어 하고, 습작을 하며 응모를 한다는 사실입니다. 아직 한 번도 등단을 못 하신 분들의 심정을 헤아려 봐야겠습니다. 우선은 등단이란 절차를 받아야만 글을 써서, 세상에 발표하고 하는 과정이 있으니 가슴 답답한 분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겁니다. 그분들에게 한 자리라도 더 기회를 드리려는 배려가 있어야겠습니다. 이미 등단한 분들은 자제를 하면서 좋은 글로 독자에게 말 해야겠습니다.
        상금에 욕심을 내어, 인정 받고 글을 쓴지 오래 되었어도 응모하고 또 응모하고,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응모하면서 입상 되지 못하면 소문도 없이 아닌 척 지나쳐 버리고, 제 경우 처럼 턱걸이라도 하는 날엔, 망신살에 쪽 팔려 한 동안 잠도 못 이루게 되기도 합니다.  운 좋게 대상이라도 거머 쥔다면 으쓱거릴 순 있겠지만 뭔가 찜찜한 것 또한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에그, 그놈의 욕심이 문제랍니다. 왜 꼭 내가 으뜸이 되어야만 한다고 착각을 할까요. 나 만이 저 상금을 타야 한다고 믿는 것일까요. 사실 말이지 심사위원들의 느낌도 다 제각각이라 누구 입맛에 맞아 떨어져 뽑힘을 당할 지, 모르는 일이 아닙니까. 작가는 글로 말합니다. 독자가 읽고 동감하고, 감동을 받아 그들 생의 어느 한 점에 도움이 된다면, 그 희망을 이루고자 글을 쓰면 될 것 같습니다. 독자들의 인정을 받아서 받게 되는, 그 상을 받도록 좋은 글을 쓰려 노력해야겠습니다.
        문학은 인간학이라 했습니다. 작가의 평상시의 삶이 작품으로 승화되고, 그 작품에서 작가를 볼 수 있는 독자들에게 인정 받는 글 쓰기를 소망하면서 상금, 상패, 상장…..이런 것들에서 미련을 거두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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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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