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의 매력

2010.12.31 07:37

노기제 조회 수:879 추천:169

20101124             삭발의 매력

        눈에 띄게 예쁜 얼굴.
         싱싱한 젊음.
         쭉쭉빵빵.

        꿈도 야무지게, 아직도 꿈꾸는 나의 희망사항들입니다. 차라리 일찌거니 품었던 꿈이었다면 이루어 질 수도 있었을턴데 말입니다. 싱싱한 젊음이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조건이었으니 바로 그 때, 성형이란 첨단 의학을 빌어 간절하게 원하는 바를 손을 뻗어 잡아 보았더라면 이렇게까지 안타깝게 원하는 일은 없었을것 아닐까 생각도 듭니다.

        거울을 안 보고 사진을 안 찍으며 일상을 보낸다면 결코 깨닫지 못할 뻔 했습니다. 마음이야 살아 온 햇수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기능이 없으니까요. 싫다는데 기어코 사진을 찍어서 보내 주는 사람들이 나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봐, 보라구, 네 얼굴을 보고 꿈을 가지라구. 그런대로 몇 년쯤 감해줄 수도 있겠지만 늘어진 턱살과 목의 주름은 아무리 한 쪽 눈을 질끈 감고 봐도 안되겠네요. 머리가 많이 빠지니 머릿속이 허옇게 보입니다. 깜장에 붉은 색을 약간 섞어 염색을 해도 전혀 내 나이 숫자를 줄여 볼 수가 없는 거에요..

        그래? 그렇담 모자를 쓰면 되겠지. 흥, 가발도 있는걸.
        몸부림 이랄 것도 없이 살살 요렇게 조렇게 위장을 해 보았습니다. 평상시 가꾸던 머리 모양의 가발을 쓰면 그런대로 봐 줄 만 합니다. 그러다 욕심이 과해져서 20대 처녀적 모습을 재현하려고 어깨까지 찰랑이는 긴머리 가발을 거금 주고 샀습니다. 파는 사람의 입장에선 잘 어울린다고 하는 게 당연합니다. 문제는 그 가게에 있는 거울이 아주 거짓말장이였던 거에요. 내가 그만 깜빡 속았으니까요. 20대 모습까지야 기대 할 순 없지만, 40대 정도로는 봐 줄만 하게 전혀 흉하지 않더라구요.

        그러나 이게 웬일 입니까? 여고 동문들이 모이는 장소에 겁도 없이 긴머리를 찰랑대며 모습을 보였지 뭐에요. 한 참 아래 후배가 무르춤하며 속삭이더라구요. “언니, 지난 번 썼던 짧은 가발 어쨌수? 그게 훨씬 잘 어울리는 데. 이리와요. 내가 손 좀 봐 줄께.” 슬며시 화장실로 데려 가선 가발을 벗기고 납짝하니 숨죽인 내 머릴 손가락 빗으로 살려 냈습니다. 짧고 숫 없지만 나이에 맞게 상큼하기까지 한 자연스런 모습이 나왔습니다. 괜시리 돈만 버렸나 봅니다. 환불은 절대 안 해 줄터, 교환도 안 된다고 했거든요.

        흰머리가 있으니 검게 염색을 하며 살았지만, 이젠 그 염색도 쓰잘데 없는 욕심이라 생각듭니다. 나이 보다 젊게 보여서 뭣에 쓰겠다는 건지, 그것도 욕심인거죠. 염색을 한다해도 뭐 내 나이가 어디로 갑니까? 모두들 모른 척 속아주는겁니다. 가만히 눈치를 보다가 결심을 했습니다. 이왕 살아 온 세월, 그만큼 안 살은 척 속이려 말고, 그대로 다 벗어 보이면 어떨까?

        사실 말이지 내게 관심들도 없잖아요. 내가 이뻐도 그만, 늙어도 그만, 머리가 까메도 그만, 하예도 그만, 뭐 그런 사람들 앞에 왜 나만 마음 졸이며 요렇게 조렇게 꾸미려 애를 쓰는지 퍼뜩 정신이 들었답니다. 그래서 용기를 냈습니다. 염색한 색깔을 전부 없애고 새로 나는 머리색으로 길러야 합니다. 그러러면, 완전히 삭발을 해야겠다 생각 했습니다. 결심을 하고 나니 두려움도 없더라구요. 고슴도치를 닮은 모양이 되었습니다. 깔끔한 느낌이 기분 좋았습니다. 스님처럼 완전히 밀어 보려 했지만, 미용사가 고개를 쩔래쩔래 흔들었습니다. 찌든 때를 다 벗긴 듯, 상큼합니다.

        내가 나 자신에게 당당하고 싶었습니다. 보는 이들을 의식하며 산다는 건 나를 부끄러워 하는 행위라 생각들었습니다. 홀가분 했습니다. 거짓을 한 켜 걷어 낸 듯 했으니까요.

        그러나 예측 못 한 상황이 펼쳐 집니다. 첫 눈에 그만 암 환자로 보여 진 것입니다. 측은한 눈길로 뭐라 위로를 해야 할까 고만하는 표정들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변한 내 모습에, 동네 이웃들이 차마 물어 보진 못하면서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조심조심 애쓰는 모습들입니다. 식당에 가서 편하게 먹다가도 주위의 눈길을 의식하게 됩니다. 본래의 나대로 쾌활하게 담소하며 식사를 즐기지만 왠지 불편한 저들의 표정에 피식 웃음이 납니다.

        함께 하는 친구가 결론을 내립니다. 안되겠다. 머리가 자랄 때 까지 가발을 쓰라 합니다. 나이 들어 은발이 된 것까지는 좋지만, 삭발 상태는 아니라는 거죠. 죄 없는 사람들에게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도 무례함 이라고 욱박지릅니다. 그렇다면 내가 젊게 꾸미고, 염색으로 속임수를 쓰고 하는 것들이 나만 좋자고 하는 건 아니란 걸 알았습니다.  스쳐 지나는, 나와 특별한 관계가  없는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아야 되는 최소한의 예의라 생각들었습니다.

        삭발 하고 보니, 시간 세이브, 돈 세이브, 샴푸 세이브 등 좋은 점도 많습니다. 머리칼 빠지는 것 안 보이니, 곧 머리 숫이 많아 질꺼라는 즐거운 착각도 합니다. 나는 이렇게 기분이 좋은 데, 역시 남을 위해서 맘대로 못하고 살아야 한다네요. 함께 어우러져 사는 우리네 삶이니 작은 배려라도 소홀히 말아야겠습니다. 내 변한 모습에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던 따뜻한 이웃에게 심히 죄송한 마음입니다. 아직 해명도 못 하고 있습니다. 묻지 않으니 뭐라 할 말도 없구요. 담담하게 머리가 자라기만 기다립니다.

        소용 없다 여긴 가발을 다시 손질합니다. 손 쉽게 외출 준비가 끝납니다. 결코 속이고, 아닌 척 위장하는 차원이 아닌, 아름다움을 보여 저들에게 걱정을 안기지 않는 작은 사랑이라 고쳐 생각합니다.
  
        투병으로 어쩔 수 없이 삭발을 하시는 분들을 뵈었을 때,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고, 안쓰러워 가슴이 죄었던 순간을 돌이켜 봅니다.  투병이라는, 성스럽기까지 한 시간들이 한 편으론 회복으로 승화 될 수 있는 아름다움으로 이해 되면서, 간접경험이라도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제가.

        삭발한 모습, 아름다울 수도, 매력적 일 수도 있다는 걸 확인 했습니다. 여전히 예뻐지고 싶은 나의 철 없는 꿈은 계속 됩니다.

                       2010년을 보내는 12월 끝날, 오후 3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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