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 C

2009.08.03 23:58

노기제 조회 수:747 추천:139

20090717                비타민 C

        화씨 90도를 향해 치솟는 기온. 덥다. 기운이 빠진다. 입맛도 떨어진다. 비타민 C 한 알 입에 넣는다. 시큼하다. 정신이 버쩍 든다. 기분도 조금은 상승한다. 왠지 기운이 난다. 잠깐, 땅속으로 기어 들더니 슬며시 고개를  들어 올린다. 다시 이어지는 일상. 그렇게 죽을 맛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경기침체가 생활에 미치는 영향, 건강에 이상 신호가 감지 되고 따가운 땡 볓 피할 그늘 하나 없을 때. 비타민 C 한 알 입에 넣어 줄 사람 어디 없을까. 주위를 둘러 봐도 손 내밀어 도움 청할 곳 안 보이는 캄캄한 지경에 답답한 가슴. 그냥 나락으로 떨어져 잠들고 싶어라.

        비타민 C 같은 새콤한 맛에 힘이 솟고, 끊어진 꿈을 이어보고픈 희망을 주는 그런 사람이 되리라. 내가 원할 때 그리 해 주는 사람, 얼마나 고마웠던가.  원했던 만큼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 해 주면 된다.

        이 세상에 발 붙이고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비타민 C 같은 말 한마디 필요로 한다. 받고 싶고, 듣고 싶어는 하지만 자신이 그것을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은 알지 못한다. 설마 내 주제에 뭘. 만에 하나 알고 있어도 겸연쩍어서, 별 효능도 없을 것 같아서, 부끄럽기도 해서. 여러가지 이유를 찾아 내며 자신이 바로 그 사람이 되기를 꺼린다.

        어떤 관계의 사람이냐를 따지지 말자. 그래도 그게 그렇다. 선듯 내키지 않는 건 사실이다. 그렇담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자. 우선 가족이 있고, 동창이 있고, 친구가 있고, 각종 모임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중 갑작스레 발병해서 투병중인 사람, 뜻하지 않은 사고로 가족을 잃은 사람, 사업상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 잠깐만 고개를 돌려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내 따뜻한 한 마디 위로의 말을 기다리고 있다.

        용기를 내자. 상대가 나의 출현에 놀랄 만큼 소원한 관계라 해도 먼저 다가가자. 따뜻한 인사 한마디 건네고 관심을 보여 주고, 사이버세상에선 열심히 좋은 댓글을 달아주면 된다. 기대하지 않았던 만큼 기쁨은 크다. 한 번으로 그치지 말고 계속 이어줌이 필요하다.

        요즘 갑자기 병원 출입을 하게 된 소원한 동창을 사이버세상에서 만난다. 자신의 병상일지를 누군가를 위해서 기록하며 올린다. 후에 자신이 가고 없더라도 같은 병을 앓는 사람이나, 다른 병을 앓는 환자들에게도 혹, 희망을 줄 수 있고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미미하나마 한 힘 쓰고 싶다는 이쁜 맘이다. 우연히 발병을 알게 되고, 극한 상황이 되어가면서도 꾸준히 친절하게 설명을 곁들여서 병상일지를 쓴다. 되도록 많은 사람이 읽어 주기를 원한다. 그러면서도 동창 사이트엔 알리지 못한다. 기대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동기동창 사이트지만 드나들며 읽는 사람이 100여명은 될 터,  만약 댓글이 달리지도, 위로 한 마디도 없다면, 아마 그 실망감은 심각한 병을 앓는 환자란 소식보다 더 심하게 마음을 다칠것이다.

                내 딴엔 귀한 시간 할애해서 아픈 동창 위하는 맘으로 열심히 올린 글 읽어 주고, 댓글도 달아주고, 동창 사이트에도 알리고 했더니, 개중엔 왜 설쳐대느냐. 내가 아파도 그렇게 해 줄거냐 란 시비가 들린다. 물론 당사자인 동창은 무지무지 고마워 하고, 들어주는 사람 있으니 신이나서 얘기 하고, 제법 깊은 속내까지도 들어내며 가까운 친구가 된다.

                아차차, 그런 경우, 내가 어떻게 반응 할건가 잠시 숨을 고른다. 물론이지 네가 아퍼도 난 열심히 네게 다가가고, 위로 해 주고, 시간 할애해서 너를 위한 무언가를 할거야. 라고 생각하는 순간, 아니다. 너? 니가 나한테 어떻게 했는데? 서울 방문 때 산악회따라 산행 한 날, 뒤풀이에 참석도 않고 온다간다 말없이 사라졌던 너. 내가 그 때 느낀 모멸감. 또 있지. 사진 몇 컷 찍었더니 사이트에 자기 얼굴 올리지 말라던 말. 기가 차서 아무 대꾸도 못하고 그냥 보관 중인데. 네가 뭐 나를 위해 특별히 해 준것 있냐?

                어림도 없지. 네가 아프면 아펐지 내가 왜 너한테 위로의 말 한마딘들 하겠냐. 그래에. 난 천사가 아니거든. 내게 잘 해 줬던 친구. 곰살맞게 따스한 말 한번 걸어 준 사람. 밥 한끼라도 대접 해 준 동창에게라야 내 금쪽 같은 시간 쓰며, 마음 나누고, 정 주는 거지. 그렇지. 난 역시 그 정도일 뿐야. 한라산 산행 때 발목 삐끗하고 쩔쩔매는 내 배낭 대신 메고 힘들어 하던 친구, 수영장에 사우나에 점심까지 사며 시간을 함께 해 줬던 친구, 내 문학서재 손님 창작방에 일착으로 방문 해서 흔적 남겨 준 친구, 이런 친구들에게만 내 특별한 마음을 주고 있는거다.

                순수한 비타민 C 한 알이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됐다. 비록 내가 먼저 힘을 받았던 그 비타민 C를 돌려 주고 있음이라도 난 계속 은혜 갚는 일을 할 것이다. 시간이 흐른다. 먼저 내게 등 돌린 사람들 생각을 한다. 그들이 불행한 처지란 가상을 해 본다. 어찌 잠잠할 수 있겠는가. 그들에게 다가간다. 무얼 아끼고, 자존심을 세우고, 그럴 시간이 없다는 생각. 다른 뜻은 없다. 인간은 누구나 외로운 존재. 많은 사람이 위로하고 사랑한다 해도 내 몫 한 조각 더해 줘서 나쁠 것 없다.

                억지로 하는 말 아니다. 동정으로 던지는 사랑 아니다. 마음 밑바닥에서 나를 간지르며 빠져 나오는 몇 마디 단어들이다.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시니 용기 내서 속히 회복하라는 진정어린 위로다. 꼭 승리하기를 기원할 것이다. 효력있는 비타민 C 역할 담당할 것이다. 그렇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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