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 쓰는 편지

2009.10.11 13:32

노기제 조회 수:664 추천:157

20091010                허공에 쓰는 편지

        당신, 그러는 거 아니지. 새로 받은, 편집인이란 직책이 뭐 벼슬인가? 원고 마감시간 반 나절 늦었다고 땅에 코를 박고 두손 싹싹 비비며 사정을 할 땐, 웬만하면 좀 받아 주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겄소. 늦은 이유도 윗 사람께서 보내신 이멜이 깨져 들어오는 바람에, 다른 이멜 주소 주며 한 번 더 보내 달라고 사정하고 일주일을 넘게 기다리다, 다시 받은 멜 내용이 원고 마감일이었다고 내 다 설명을 드리지 않았겄소. 그럼에도 내 맘대로 못 한다면서, 윗 사람 지시가 그러니 할 수 없다며 문전박대 한 후, 의기양양 그 높은 사람 입맛에 맞춰서 어느 누구에겐 늦어도 원고를 받아 주며 살아보니 어떻습디까?
            
        높은 사람, 당신도 그러는 거 아니지. 아무리 문인의 숫자가 많아 졌다 해도 작품의 양이 아직은 철철 넘쳐나는 상황은 아닐진대. 일년에 네 번 발행되는 계간지에, 모든 작가는 세 번만 작품을 제출하라는 명령. 그리 해 놓곤, 누구와 의논 한 마디 없이 문인 아닌 사회적 명성 쯤 있는 사람들 글 빌어다 섞는 폭력을 자행하는 일. 순수 문학지의 색깔을 바꾸고, 작가들에게 지면 할애를 줄이며 용기를 꺽어서야 어디 글쓰는 사람들 리더로서의 가슴이 있다 하겄소?

        사람 마음 있는대로 할퀸 후, 잘난 체 묶어 나온 계간지 받아 보니, 수필 작품의 숫자가 전호보다 적고, 전체 페이지 수도 훨 적더구먼. 작품 제출 세 번이란, 웬 쓸데 없는 법 개정을 혼자 해 놓구선 그 난리를 친거요?

        그 후론 당신들과 말 섞기 싫어, 이를 악물고 좋은 작품 써서 절대 원고 주지 않으려 했다면 비웃고 마시겠소? 그 기간이 당신들 집권하던 지난 2년 동안이었소. 내겐 당신들 세상과 담을 쌓고 살던 기간이기도 하다오.

        우리네 처럼 작품 발표할 지면이 넉넉지 않은 이민 작가들. 자비들여 자신의 책을 출간 하는 작가들 말고는 그나마 우리 계간지가 유일한 발표 지면인 경우엔 당신 두 사람의 횡포로 어떤 작가에겐 붓을 꺽고 싶기까지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얼핏이라도 생각 해 보셨는가?

        당신네들 잘못했다 소리치는 거 아니오. 그런 이유로 내가 상처 받았다고 알리고 싶은거요. 혹여 알겄소? 누군가 내 편이 되어 한 마디 위로라도 해 준다면 그걸로 지난 기억 잊고자 하는 내 욕심이라오.

        살아보니 2년이란 세월이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닙디다. 그 동안에 당신 두 사람 한 번도 내게 관심을 보이지 않더구먼. 글쓰는 사람의 머리가 되었으면 자기 품안의 사람들이 최소한의 활동을 하도록 이끌어 주고, 격려하고, 함께 가도록 용기 주는 일 쯤 해야 하는 거 아니겄소? 5년여 동안, 계간지에 꼬박꼬박 작품이 실리던 작가의 글이 잠수를 탓는데도, 임기가 끝날 때 까지 모르쇠로 일관 했던 건, 당연히 윗 사람의 횡포로 이해 되더이다.

        기록은 영원히 남는 것. 우리의 계간지도 2년 동안 꾸준히 발행 되어 과거로 들어 갔지만, 그 중, 내가 마음을 닫은 후 발행 된 6권의 책엔, 내 작품이 하나도 없이 후세들에게 전해진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분통이 터지는 걸 어쩔 수가 없수다.

        못나게스리 너 때문이다를 반복하는 실정이지만,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당신들에게 내 부족한 모습만 벗겨 내 보이는 이 순간을 난,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거요.

        내 못난 면 공개하고 나면, 나 처럼 못난 생각으로 후회할 작가들 없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요. 다행히 당신 두 사람도 과거로 물러 갔으니 다시 또 그런 사람들 등극하지 않으리라 소망하는 바요...

        이제 우리 미주문학 작가들의 숫자도 자꾸 불어나고 있으니, 앞으론 정말 원고 제출을 제한 할 시기가 올것이요. 원고마감 시간도 칼 같이 지켜야 할 시기도 올것이요. 나 처럼 뒤에서 궁시렁궁시렁 불만이나 토하지 않게 되려면, 지금부터 세련 된 작가로 거듭나도록 훈련을 시작 해야 될것임을 자각하는 중이요.

        미주문학에 원고 제출을 시작한 이래, 막차를 타면 탔지, 한 번도 마감일을 넘겨 본 일은 없는 사람이라오. 예전엔 마감일 이후 은혜의 기간이 있었던 아름다운 기억도 있단 말이오.

        몇 년 묵은 체증이 사라져야 나도 살것 같아 토해 낸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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