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찰 좀 넣고 다니지

2009.12.07 04:23

노기제 조회 수:853 추천:193

20091118                현찰 좀 넣고 다니지

        왠지 아쉽지? 현찰이 좀 넉넉했더라면 싶지? 불경기라는 단어가 피부로 느껴지는 순간이었지? 50을 족히 넘어 보이는 부부가 후리웨이에서 마악 빠져 나가는 내 차로 쭈볏쭈볏 다가 오는 모습이 가슴을 쳤지? 그것도 아주 쎄게. 남편이 들고 있는 누런 상자 쪼가리에 쓰인 글을 읽으려 조심스레 다가 가던 나, “need gas for back home” 언듯 어설픈 이유라는 생각을 했지? 그러나 따질 거 뭐 있나? 아내는 대 여섯 발 떨어져서 남편 곁으로 올까 말까 망설이는 모습이었지?
        
        대부분 길목에 서서, 교통 신호에 멈춘 차량에게 구걸 하는 사람들은 후즐근한 옷차림에 노숙자 인상으로 혼자 서 있었지?  부부가 함께 나온 경우는 처음이지? 짠한 마음이 더블로 밀려 왔지? 얼른 여기저기 빠르게 뒤져 보았지? 달랑 20불 짜리 한 장 찾았지? 잠깐 망서렸지? 그냥 창문을 내리고 내 밀었지? 빠르게 뛰어 와, 내가 내민 지폐 받던 남편, 움칠 놀라던 표정 읽었지? 말이 필요 없었지? 고개만 끄덕이며 살짝 미소 보내고 바뀐 신호 따라 그들을 뒤로 했지? 남편 곁에 다가 간 아내, 살며시 내게 고개 숙이고, 남편은 울먹이던 순간을 놓치지 않았지?  
        
        깔끔한 차림새, 핸섬한 30대 청년, 역시 후리웨이에서 빠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편안한 모습으로 앉아있네. “need a job” 얇은 종이에 겨우 보일 만한 크기네. 적극적으로 일어나 이차 저차 돌아 다니며 구걸하지도 않네. 앉아서 눈만 맞추네. 여긴 신호가 빨리 바뀌는 곳이네. 후다닥 핸드백을 뒤져 보니 빳빳한 일불짜리 넉장. 이걸 어찌 주나 망설였네. 많이 미안하다 했네. 어쩌다 보니 이게 전부라 했네. 정말 미안 했네. 돌아오는 메아리가 황홀 하네. “당신 같이 좋은 사람 보니 많이 기쁘다”네. 짐작이 가네. 알맞게 사람 대접하며 요직에서 일하던 사람이란 느낌이 전해지네. 달리 도울 수 없음에 마음이 무거워 지네.

        크레딛 카드 한 장이면 불편 없이 살 수 있잖아요. 달리 계획 된 일없으면 아무 생각 없이 마켓 가고, 쇼핑 가도 낭패 나는 일 없잖아요. 차에 개스 넣으려 주유소에 들어서니 말끔한 40대 남자, 색안경에 멋진 자태로 내게 다가 오며 “내가 개스 넣어 줄까? 유리창도 닦아 줄께.” 아차차차, 방금 일불짜리 넉장 모두 주고 나서 진짜루 한 푼도 없는데, 정말루 정말루 미안 하다고 몇 번이나 고개를 조아렸는지….동전 몇 푼이면 된다고 하길래 얼른 동전 지갑을 열어 보니…, 세상에 세상에 페니(일전짜리) 2개에 닉클(오전짜리) 하나. 이걸 어떻게 줄 수 있겠어요. 그럴 순 없잖아요.

        현찰 없다고 핑계하고 맘 편하게 지나칠 수 없는 상황들입니다. 가슴이 아픕니다. 옛말에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 할 수 없다.” 라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나 몰라라 하며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되는 건 아니란 생각입니다. 주위 상황이 점점 심각해 집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도에서 열심히 내 몫을 해야겠습니다. 우선은 현찰 좀 챙겨 갖고 다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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