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의 불편함

2010.04.13 14:33

노기제 조회 수:834 추천:178

20100330                        무소유의 불편함

        법정스님의 무소유관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사실을 곰곰 생각해 본다. 우리집에서도 이 문제로 가끔 옥신각신 시끄럽다. 뭐가 그리 많이 필요 한가. 우리집에 있는 건 다 쓰레기 뿐이란다. 다 갖다 버리라고 신경질적으로 언성을 높인다. 딱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각자 자기 물건이 아닌 것들로 방안이 그득하면 신경이 곤두선다. 쓰레기로 보인다.
        
        집 뒷산에 불이 났던 몇 년 전, 주민들은 모두 대피하라고 확성기로 외쳐 대고, 남편은 중요한 것들만 대강 챙겨 나가잔다. 집안을 채운 매콤한 연기가 금방이라도 화마에 휩쓸릴 것 같던 순간, 난 아무것도 챙기지 못했다. 내가 가진 그 어느것도 꼭 필요한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던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살아야 하는 이 공간에 있는 것들을 하나 하나 돌아 보면 모두가 필요한 것들이다.
        
       가끔 죄스럽단 생각을 한다. 못 가진자들에게.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우아한 백조로 수입 없이 사는지 십 년째, 이젠 내 맘대로 써 댈 것이 없다. 남편 눈치 보며 씀씀이 고친 생활이지만, 없어서 마음이 무지 편하다.    
        
       남편 말대로 전부 쓰레기 취급해도 좋을 그런 것들이 제법 있다. 철철이 갈아 입어야 하는 옷들. 취미 삼아 하는 운동의 종류대로 필요한 장비, 운동복도 제법 쌓여 있다. 한 번 사면 평생을 쓰고 입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해마다 스타일도 바뀌고, 장비도 기능이 변하니 자꾸 사면서 옛 것 안 버리면 다 쓰레기인 셈이다.
        
       무소유의 삶을 살자고 집 버리고, 가족 버리고, 몽땅 버리고 혼자 오두막 짓고 살아 볼까 생각을 해 보니, 그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다. 내가 지닌 이 쓰레기 같은 것들이 나를 편안하게 해 준다. 정리 좀 해 보려 추려가며 구세군에 보내버린 옷들을 자꾸 찾는다. 어디다 뒀을까. 정말 요럴 땐 그 옷이 딱인데. 버렸나? 구세군에 보냈나? 확실히 생각이 안 나니, 찾고 또 찾고, 시간만 버린다. 그러게 내 맘대로 지니고 살면 좋을걸. 그깟것들 구세군에 보내봤자 누구하나 귀하게 사용할 것도 아니지 않는가. 지금 내가 이렇게 필요로 하듯이.
        
       그렇다. 내가 버거워 하는 것들이 있다. 정말 중요한 것들이다. 돈이 싫다. 없어서 불편하지 않을 만큼만 있으면 족하다. 돈 주고, 사람 잃고, 왜 그 때 내게 그 돈을 주었느냐며 원망도 듣는다. 없어서 안 줬으면 좋은 관계 아직도 유지 할 수 있었을 걸.
        
       무엇이던 값 비싼 것들이 싫다. 가졌다가 언제고 버릴 수 있는 싸구려가 좋다. 그래서 보석류가 전혀 없다. 무거워서 싫고, 불편해서 싫고, 잃어 버릴까봐 신경써서 싫기 때문이다.
        
       나이 들면 옷이라도 비싼 걸 입어야지, 늙어 추한데 옷까지 궁상스레 입고 다니면 사람들이 무시한다나. 안타까운 눈빛으로 주위에서 주는 충고를 들을 때마다 그런가 싶어 옷가게에 들러 본다. 파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잘 어울리고, 능력 된다 싶으면 팔고자 노력한다.

      “지난 일주일 동안, 옷 한 벌 밖에 못 팔았어요. 오늘 손님이 오신 건 제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거에요. 이것도 어울리고 요것도 너무 잘 받으시네요.” 그래서 내게 맞는 건 싹쓸이 해 온다. 그래도 외출 때 입는 옷은 언제나 편하게 걸치기 쉬운 싸구려 옷만 입게 된다.  결국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들이 내게 부담을 준다. 믿음 좋은 그 옷가게 주인, 안부 전화 잊지 않고 주지만, 난 일부러 응답하지 않는다. 가면 또 사게 되니까.

       누군가 꼭 필요한 사람 있으면 주고 싶은 것들도 있다. 그냥 버리긴 아까운 것들. 그래서 지니고 산다. 다 버리라는 남편에게 말했다. 어차피 나 죽으면 다 버리게 될텐데 왜 미리 야단 법석을 떨고 버려야 하느냐고. 나 죽은 후 그것들 버리는 사람이 욕할거라나. 까짓거 죽으면 뭘 알아? 욕 하라지. 우선은 10년에 한 번을 찾아도 필요한 것이니 그냥 갖고 있으련다. 물론 공간이 부족하다면, 그건 싫으니 정리를 하겠지만 아직은 넉넉하다.

       법정스님의 무소유관은 항상 부족한 중에 사는 평범한 시민에게 적용 할 것이 아닌 것 같다. 넘치게 가졌음에도 남에게 피해를 주며 뺏으려는 욕심쟁이들, 친구나 친척이나 가족을 막론하고 사기쳐서 제 것으로 하려는 사기꾼 근성을 가진 사람들, 자신이 제일 잘났다고 윗 자리 차지하려 설쳐대는 잘나지도 못한 사람들, 은혜를 입고도 자존심 때문에 은인을 원수로 여기는 못난 사람들, 천년 만년 살 듯, 필요 이상으로 부를 쌓아 놓고도 항상 부족 해 하는 한심한 사람들, 감추어 놓은 부, 아무짱에도 소용 없는 것들임을 깨닫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적용함이 바람직 하다.

       그래서 나 개인이 바뀌고, 사회가 바뀌고, 나라가 바뀌고 세상이 바뀌면 된다, 그러길 희망하여 손수 모본을 보이신 법정스님의 무소유관이 치료법 없는 전염병이 되었으면 좋겠다.  

       평범하게 사는 생활에 좀 넉넉하게 가진 것들로 서로에게 이렇다 저렇다 논할 문제는 아닌성 싶다. 어차피 인간사가, 때 되면 짝짓고 가정을 이루어 사는 것인데, 모두가 완전 무소유로 산다면 가정도, 사회도, 나라도 형성할 수 없지 않겠는가.

       법정스님이 말씀하신 무소유관은 안 가지는 것이 아닌, 불필요한 것을갖지 말자는 것이니, 필요한 것 쬐끔 넉넉히 가진 건 봐 주실 것 같다. 쓰레기 같은 것들로 가득한 주위를 볼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내 안에 또아리 튼 욕심을 보고 그것을 무소유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곤 실천에 옮기기를 날마다 애쓰면, 조금씩 변하게 될 것이고 끝내는 무소유를 이루지 않을가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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