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줄 수 있는 방법

2009.07.04 00:08

노기제 조회 수:737 추천:160

20090624                용기 줄 수 있는 방법

        갑자기 땅이 꺼질 것 같은 허망함. 내가 그 패인 구덩이로 떨어질 것 같은 두려움. 차라리 호흡을 막고 싶은 상실감. 어딘가로 사라지고 싶은 충동. 누군가를 믿고 의논 할 수 없는 실망감. 더러는 찾아 오는 불청객들이다.

        과연 누가 내 고민을 함께 나누며 위로를 줄 수 있겠나 말이다. 사람이 없다. 친구가 없다. 능력있는 자가 없는 것이다. 잘 못 살아서 이런 낭패를 본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애초 인간이란 누구의 비밀을 지켜주고, 위로를 주기엔, 턱 없이 부족하게 생겨 났기 때문이다. 누구 누구 떠 올려 봐야 다 거기서 거기다. 자신도 잘 간수하지 못하는 주제들인 것을. 뭘 믿어 보고, 의논하고, 위로를 받겠다는 걸가.

        부모님, 선생님들, 목사님들, 친구들, 형제들, 자매들, 주위를 둘러 보면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있건만 내 마음처럼 나를 생각하고 사랑해 줄 이는 없다는 것이 결론이다. 그래서 난 하늘을 택했다. 믿을 수 있고, 능력 있고, 비밀이 보장 되는 하늘. 무어든 다 털어 놓고, 위로 받고, 무한정 사랑 받을 수 있는 하늘. 더할나위 없이 편하고 항상 내 곁을 지켜주는 하늘.

        느닷없이 아프다는 소식. 그것도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씩이나. 동창 싸이트에서 읽은 사연에 심각한 느낌을 받고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 보니 한 친군 다발성 골수종, 다른 친군 뇌종양으로 둘 다 항암 치료중이란다.

        잠시 생각했다. 내가 지금 저들의 입장이라면 무얼 원할까? 조용히 칩거하고 싶을까? 이제 발견한 시기라면 아직은 환자 같지 않은 모습들일게다. 미국에 사는 내가 한국에 사는 그들을 찾아 가 병 문안을 할 수는 없지만, 딱히 할 말을 찾지 못하겠다는 핑계로 그냥 침묵하며 바라만 보기엔 시간이 없을 것 같다. 내일 일 모르고 사는 건, 환자인 친구나 건강한 우리들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지금 그 들을 위로하지 않으면 영원히 그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남자 동창, 여자 동창, 뭘 가릴 것 있나. 그냥 친구의 입장에서 적극 나서고 싶다. 이멜을 하는 동창은 이멜로 시작하고, 콤과 친하지 않은 동창은 쉽게 전화를 하면 된다. 이멜은, 쓰면 서로 연결이 되지만, 전화는 환자의 상황에 따라 통화가 불가능 할 때도 있다. 물론 시간의 제약이 따르기도 한다.

        다행하게도 한 친군 이멜로도 연락이 되면서, 자신의 블로그를 오픈해서 투병 일지를 쓰고 있다. 한국도 아닌 미국에서 이멜을 준 것이 고맙다고 블로그 주소를 알려 왔다. 들어가 보니 이미 많은 글이 올라 있다. 발병을 인지하고 치료가 시작 된지 사개월이 지났다. 그 사개월의 공간을 한꺼번에 함께 하려니 시간이 걸린다. 하루 일과를 미루고 샅샅이 그 공간을 찾아 다닌다. 병명에서 상태나 치료과정, 회복 가능성과 환자의 심경 묘사까지 글쓰는 재주가 있는 사람의 필치로 쓰여진 글들을 대하며 나도 환자가 된다. 그 마음을 이해하려 읽고 또 읽는다. 가장 필요한 한 마디 위로를 하기 위해서다.

        겉으로 건성 건네는 위로는 아무 소용이 없다. 팔팔하게 사회생활을 하던 사람이 갑작스레 암환자가 되어 모든 생활을 접은 상태니, 인간의 어떤 말이 그에게 위로가 되겠는가. 그래서 나도 암환자의 위치까지 가보려 애 쓰고 그 입장이 되어 보려 상상을 한다. 그 상태에서 난 어떤 위로를 원할까?  그래도 인간의 영역은 한계가 확실해서 도저히 감이 안 잡힌다.

        결국은 오늘 하루가 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날마다 순간마다 하나님께 내어 맡긴 내 삶의 방법을 소개하는 것으로 위로를 대신한다. 그렇게 사는 내겐, 죽음의 모양이 삶의 모양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두려움도 없는 편이다. 언제 일런지 모르는 끝을, 항상 다음 발자국을 뗄 때라고 준비하고 살다보니 암인들 대수냐, 죽음인들 뭐가 다르랴. 이 순간에 혼신을 다 해 살자, 준비하자, 비우자, 뭐 그런 말 들을 위로라고 한다.
        
        아주 힘들게, 느릿느릿 따라와 준다. 내가 쓰는 어휘들을 이해하려 조금씩 조금씩 반응 한다. 믿음. 맡김. 비움. 이런 것들을 생전 처음 듣는 단어인양 배우고 있다. 그렇게 마음을 다스리다보면 실제로 당하는 치료과정의 고통들도 많이 감해 질 것이다. 그러다 회복할 수도 있다. 다시 살게 될 것이다.

        간신히 전화 통화를 한 다른 친군, 긴 말을 할 수 없게 힘들어 한다. 그저 고맙다는 말뿐, 오래 대화 할 기운이 없단다. 그래. 내가 너 많이 사랑해서 기도하고 있는 것 알구 있어. 힘든 시기 이겨 내자. 내가 보내는 사랑이 네게 힘이 되길 바래. 사랑한다 친구야. 하늘에 맡기고 기도하자.

        어디 이 친구 둘 뿐이겠는가. 세상에 아픈사람, 배고픈 사람, 사랑 받고 싶어 하는 사람, 부지기수 일터, 내 작은 기도가 저들 모두에게 골고루 전해지길 정말 간절히 원하면서 내 마음 하늘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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