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까지 안 가려면

2007.12.14 06:13

노기제 조회 수:796 추천:143


                         이혼까지 안 가려면
                                                                        
         결혼생활. 서로에게 눈 맞추고 폭풍우 한 번 지나지 않는 안전지대이길 꿈 꿨다. 부자로 살고 싶은 욕심,  한 자리 차지하고픈 욕망, 어느것 하나 뜻대로 이루지 못했다. 그저 주어진 만큼의 축복으로 고개 숙이고 살면서 스스로 만족하고 행복하다 인정하며 불평 없이 사는 나날들. 그런데 할 말이 있다.
        정기 산행에 참석한 C씨 부인의 음성이 제법 날카롭다. 앞서 걷던 내가 뒤 돌아 서며 참견을 했다. 남편이 우편 주문으로 사준 새 등산화가 맘에 들게 편하다고 신기해 한다. 새 신발이 도착 했음에도 오늘 비가 올 지 모르니 그냥 신던 등산화를 신으라는 남편의 말을 안 듣고, 새 신발 신고 오길 잘했다며, 아끼긴 뭘 아끼냐고 궁시렁 댄다. 이렇게 발이 편한 신발을 신지 말라는 게 말이 되냐며 내게 응원을 청한다.
        쫑알대는 아내를 넉넉한 미소로 받아주며 C씨 하는말이 아내의 발이 평발이라 맞는 신발 찾기가  어렵다는 변명이다. 그때 그 아내가 날카롭게 반응한다. “신발을 작은 걸 사다 주곤, 무슨 딴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네.  내 발이 뭐가 평발이라는 거야? 내 평생에 그런 소린 한 번도 못 들었다 뭐.”
        그러게. 발이 이쁘기만 한데, 뭔 평발타령?  이보시게 남편님들. 사실을 사실대로 꼬집어 말 할 필요는 없다구요. 설령 아내의 발이 평발이라도 구태여 그 사실을 끄집어 만인 앞에 공개 하지 마시라구요. 아내의 입장에선 숨기고 싶은 자신의 비밀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저 듣기 좋은 말, 칭찬하고 싶은 일들만 입밖에 내세요. 아이들 제짝 찾아 나가고, 손주들 하나 둘 늘어가는 나이에, 조금은 사실을 외면하며 살자구요.
        C씨에게 권하는 내 말의 뜻은, 내가 남편에게 간절히 듣고 싶어하는 사항 이기도 하다. 뭐가 그리 사실이 중요한가. 슬며시 덮고 지나쳐 주면 정말 고맙겠는데. 이제와서 맘에 안 드니 고치라는 의미가 내포 돼 있기도 한 사실들. 흉 될것도 없고,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하고 입밖에 내는 기정 사실들이 당사자의 입장에선 열 받아 기절할 만큼 중요한 치부일 수도 있다.
        나이들며 자신도 모르게 코를 골게 되는 부인. 남편은 물론 오래전부터 코를 곤다. 그래도 아내는 참고 잠을 설친다. 말 해줘야 어쩌라는 건가. 고칠 수도 주의할 수도 없는 사실이다. 더구나 남편들의 밤 생활 실력이 저하되는 걸 꼬집어 내어 불평을 한 들. 무슨 뾰족한 수가 생긴다고 사실이니까라는 명목을 세우나. 아무리 틀림없는 사실이라도 수정 될 수 없는 사실이면 당사자에겐 상처만 된다.
말 안하는 아내들의 깊은 뜻은 헤아리지 못하고, 아무 생각 없이 똥배가 나왔다느니, 코를 곤다느니, 평발이라느니, 그런것도 모르냐느니, 잘 할 줄 아는 게 뭐냐느니, 그 옷 색갈이 맞는다고 입었냐느니, 교통 딱지는 왜 받았느냐, 차는 왜 또 긁어 왔느냐, 멍청하다느니, 이루 다 열거 할 수가 없는 엄연한 사실들이다.
그러나 개선의 여지가 없는 말은 할 필요가 없다. 설령 개선의 여지가 있는 사실이라도 무조건 핀잔부터 줄 것이 아니라  따뜻한 분위기 먼저 만들고 지나가는 말처럼 넌지시 한 마디 하면 대부분 아내들은 알아 듣는다. 물론 사랑으로 감싸주는 남편의 충고가 고마워서 능력이 되면 고치려 노력한다.
    세상 남자, 여자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 바꿔 본들 완전히 맘에 충족한 사람 있을까? 내가 먼저 상대의 맘에 드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려 마음만 먹어도 결혼 생활은 훨씬 따뜻해진다. 상대방의 어떠함이 진정한 사실이라도 들어서 기분 언짢을 사실이라면 그 자체를 입밖으로 꺼내지 말았으면 좋겠다. 조금 더 바라는 것은 살작 거짓말이 섞이더라도 칭찬으로, 듣기 좋게 바꿔 표현을 해 주면 더할나위 없이 고맙겠다.
아주 커다란 문제가 없는 부부라면 얼마든지 가능한 소망이다. 마약이나, 도박이나,  신체적 학대나, 알코홀 중독 같은,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항만 없다면 말이다. 잠간 생각 한 번 하고 배우자를 대하는 습관을 가지면 쉬울 것 같다. 말 한마디 하기 전, 언성을 높이기 전, 얼굴을 찡그리기 전, 아주 잠간 숨을 고른다면 서로가 좀 더 행복한 순간들을 맛 볼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건, 내가 먼저 그렇게 해 보는 거다. 이왕이면 부드럽게 시작한다. 배우자의 어떤 모양이 못 마땅할 때, 우선 자신을 살펴 보기 시작한다. 나는 과연 내가 받고 싶은 모양새로 그를 대하고 있는지? 좋아서 결혼 했던 그 당시를 기억해내며, 작은 것에 신경쓰면서, 내 사람이 소중한 줄 알아야겠다. 그렇게 살다보면 최소한 그만 살자는 소린 누구의 입에서도 안 나올 것 같다.

2007,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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