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마음, 다른 표현

2011.03.03 04:21

노기제 조회 수:712 추천:156

20110218                같은 마음, 다른 표현
        
        “비도 온다는 데, 뜨뜻하게 하구 있어라.”
        출근하는 남편이 툭 던진 말입니다. 강아지에게 하는 말이려니 생각하곤 힐끗 윈디를 보았습니다. 별로 추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빠가 윈디 따뜻하게 해 주라고 엄마한테 또 잔소리 했단다. 윈디야 너 춥냐? 아니지이? 암튼 아빠 잔소린 알아 줘야 한다니까. 그치? 그치? 그치이? 그래두 옷 입자. 우리 이쁜 딸, 엄마랑 나가서 걸어야지?.”

          밖으로 나오니 바람이 제법 찹니다. 쟈켓 옷깃을 세우며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습니다. 비 오기 전에 운동 시키고, 볼일 다 보게 하면 하루종일 잠에 골아 떨어질 터, 비바람이 몰려 와도 걱정 없습니다. 윈디는 열 세살 생일이 일월에 지났습니다. 코요테에게 물려 가서 죽었다 살아난 지 벌써 이 년이 지났습니다. 아빠를 따라 산에 다니던 윈디는 이젠, 산이라면 머리를 흔듭니다. 절대 안 가겠다고 버티기 일숩니다. 그냥 동네 몇 블럭 돌면 그게 하루치 운동량이 됩니다. 그러니 직장 없는 내가 윈디 운동을 맡아야 합니다.

          그런데, 자꾸 남편의 음성이 들립니다. 비도 온다는 데, 따뜻하게 하구 있으란 말이 윈디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남편 출근 하고 나면 어김 없이 난방 온도를 끝까지 내리는 나에게 한 말이었습니다. 춥다고 마음 놓고 히터를 키고 있으면, 매달 나오는 개스 값이 천정부집니다. 강아지와 둘이 있으면서 집안 전체를 따뜻하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절약 할 수 있으면 절약하며 살아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넉넉해서 개스 값 정도는 어렵지 않게 지불 할 수 있다손 쳐도 말입니다.

          무슨일이든 잘 못 한다고 잔소리만 해 대던 남편인데, 이건 좀 생소한 상황입니다. 내가 새삼스레 귀를 열고 남편의 세심한 말을 듣고 있는가 봅니다. 첨에는 언제나 처럼 잔소리로 들었다가 다음 순간엔 정말 따사한 보살핌의 음성으로 들린 것입니다. 건공대매로 아낀다, 절약한다, 궁상스레 검약하는 내게, 넌즈시 타이르는 말로 해석이 됩니다. 기분 나쁘지 않게 그러나 제발 춥게 지내지 말라고 하는 잔소리 같지만, 가슴이 훈훈해지는 배렵니다. 슬며시 미소가 번집니다. 약간 미안한 마음도 생깁니다. 내 남편이란 사람이 그런 사람이구나.

          돌이켜보니, 정말로 가슴을 닫고 살았던 모양입니다. 입만 열었다 하면 잔소리, 잔소리, 야단만 치러 든다고 눈꼬리를 치켜 올리며 불평을 했으니까요. 잔소리 꾼, 내 남편을 바꿀 수 없다면 그 잔소리 듣고도 마음 상하지 않게 나를 변화시켜 주십사고 기도 한 후, 거짓말 처럼 남편이 변하고 있습니다. 전혀 내 맘이 상처를 입지 않고 있답니다.

         내가 변하겠다고 어렵게 마음 먹었더니, 몇 십년을 기다려온 남편의 변화가 시작 된 것입니다. 예전 처럼 버럭 버럭 질러 대던 소리도 못 들은 지 꽤 됐거든요. 소리 지르기는 커녕 오히려 차분하게 걱정하는 말투가 되었습니다. 남편에 비해서 뭐든 잘 모르는 난, 실수 투성이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집니다. 그런데 요즘은 남편이 내가 알아 듣도록 설명을 합니다. 그럼 난 곧 수긍을 하거든요. 바보는 아니니까 알아듣기는 잘 하거든요. 못 알아들어서 속이 답답할 지경은 아닐거구요.

          오늘 아침처럼 한 발짝 늦게 알아 차리긴 했어도 남편의 속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남편이 보기엔 내가 아주 많이 부족한 가 봐요. 하나 하나 일일이 참견을 하고 잔소리를 해야만 될 것 같은 모양이에요. 그러라구 해 줘야겠습니다. 아끼는 마음, 돌봐줘야 한다는 마음이 다른 모양새로 표현 되었던 것입니다. 난 그저 계속 좀 모자란 듯, 남편이 하는 말에 귀 기우려 듣고, 고개 끄덕이고, 알았다고 말 해주면 시끄러워 질 일 전혀 없게 됩니다.

          참 오래 걸려서 터득 했습니다. 결혼 한 지 38년 하고도 몇 개월이 지났습니다. 무에 그리 악을 쓰고, 내 의견을 고집하고, 토라져 돌아 서고 했는 지 지금 생각하니 알 수가 없습니다. 남편의 근본은 나를 위해서, 내게 좋으라고, 전부가 다 그러했습니다. 아직 은퇴 안 하고 일하고 있는 이유도 결국은 나를 위해서 입니다. 부담스러워서, 나 때문이라면 차라리 일 때려 치우라고 큰 소리 쳤지만, 지금은 그저 고맙기만 합니다.

          세상에 어느 누가 나를 위해서 물 한 잔 기꺼이 사 주겠습니까. 더구나 나는, 아직도 하고 싶은 것이 많아서 돈 들어 갈 일 천지거든요. 남편 눈치가 보여서 자제를 하느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하고 싶은 취미생활을 자제 할 맘은 없답니다. 우리가 쓸 만큼은 있지 않느냐고 필요하면 쓰라고 말해 주던걸요. 난 남편이 아까워하는 줄 알았어요. 치사해서 남편돈 안 쓰려 목에 힘을 주며 살았더니 마음도 닫히고, 많이 춥고, 외롭게 되던걸요.

          고개 약간 숙이고 힘들게 벌어다 주는 돈 감사하게 쓰겠다고 말하고 나니 마음이 많이 편해졌습니다. 그것도 역시 내 못된 판단이었습니다. 네돈, 내돈 하며 따지는 마누라가 남편을 화나게 했었나 봅니다. 그렇다고 나만 잘 못한 건 아닐겁니다. 남편의 어느 구석이 나로 하여금 그렇게 느끼게 했었을겁니다. 마음은 안 그런데 표현을 그리 했으니 상대방이 그리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오해가 생기고, 풀지 않고 또 오해 하며 쌓이다 보니, 사랑은 식어서 서로 “소 닭 보듯” 건조하게 살게 되었던 겁니다.

          다행입니다. 이제라도 그 잘못 된 표현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되고, 따스한 마음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서로 조심하고, 약간 긴장하면서 표현에 신경을 쓰게 되었습니다. 한 발 물러서서 거리를 두었습니다. 소중한 사람임을 깨닫게 됩니다. 철 없이 너무 가까이 있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런 사람이 내 남편인 것에 감사함이 넘칩니다.

          나만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인지 의아합니다. 누군가 먼저 깨달은 사람이 진즉에 알려 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랬더라도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겁니다. 잘났으니까요. 도무지 누구 말을 들으려 안 했으니까요. 마음이 뜨거워 지며 감사하다 생각하고 이 글을 쓰지만, 언제 어떻게 또 획 돌아서서 남편 불평을 쏟아 놓게 될런지 자신이 없어 아슬아슬 합니다. 잘 견디고 싶거든요. 변화란 것이 그리 만만한 건 아니니 말입니다. 또 기도하며 하늘에 부탁 드려야 평화가 지속 될 것입니다. 그리 하겠습니다. 속 마음과 겉으로 나오는 표현이 똑 같기를 쉼 없이 기도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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