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칫국물 부터 마신 사연

2011.12.13 03:52

노기제 조회 수:707 추천:168

20111025                김칫국물 부터 마신 사연
                                        노기제

        내겐 꿈이 있어요. 꿈의 근원은 가당찮은 욕심이구요. 힘 안들이고 내가 좋아 하는 것 하면서 돈 좀 벌고 싶다는 그럴사한 이유거든요. 첨 부터 계획하고 살아 온 건 아닌데 어찌어찌 살다보니 그런 꿈을 가질 만큼 조건이 주어져 있던걸요.

        부모님이 도와주지 않아서 하고픈 취미 생활 못 하며 성장 했어요. 결혼하고 미국와서 열심히 살았죠. 그러다 면허증 있는 통관사가 되고 내 이름 건 회사를 차렸어요. 내가 원하는 만큼만 일을 하며 여유가 생겼죠. 그래서 남편에게 허락 받지 않고, 알리지도 않고 살금살금 취미 생활을 시작 했던걸요.

       쉬운 합창부터 시작해서 독창자로 지목 받고 싶은 욕망에 개인교수를 받기도 했구요. 그럴만한 재목이 아니란 걸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 뭐에요. 기타나 피아노, 드럼, 가야금, 장고등에 시간을 써 봤지만 음악엔 진짜 달란트를 받지 못한 걸 알았구요. 그래서 각종 스포츠를 시작 했더니 세상에 이렇게 잘 할 수가. 나이 사십에 시작 한, 수영이나 스키를 비롯해 한 가지씩 고난도의 운동에 입문하기 시작 했지요. 승마, 스쿠버 다이빙, 수상스키, 윈드서핑, 바위타기, 장기등반, 스쿠터 타기, 인라인 스케이트 타기, 물론 아이스 스케이트 타기등. 아참 경비행기 조정까지. 거 보세요. 벌써 놀라시는 분들 있네요.

     내가 이런 운동을 하면서 생각한 건 나이였어요. 젊은 사람들이야 그깟 운동들이 뭐 대순가요? 그러나 나이든 여자가 한다면 좀 특이하게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 특이성을 살려 뭔가 대중들에게 다가 갈 일을 만든다면 아주 잘 먹혀 들텐데…….하며 생각 한 것이 나를 모델로 쓴다면 뭐든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비지네스적 마인드가 생긴거에요.

     그 후론 늘 쉬지 않고 꿈을 갖고 살았어요. 언젠가는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할 것이라는 확신도 함께 품었거든요. 25년 여를 그렇게 내 꿈이 이루어지길 기다렸어요. 무지 운 좋은 사람이 나를 알아 보고 길거리 캐스팅을 할 것임을 의심치 않고 살았다면 웃으실래요? 나 같은 사람 모델로 뭔가를 한다면 분명 대박 날꺼니까요.

     며칠 전 아침이었어요. 강아지 산책 시키려 집을 나서서 한 다리씩 뒤로 꺾으며 외발로 서는 스트레칭을 하는데 아주 근사한 리무진이 지나더라구요. 운전기사가 고개를 내밀고 함박 미소로 정중히 인사를 건네기에 나도 환하게 웃어 주며 아침 인사를 주고 받았어요. 근데 왜 보이지도 않는 리무진 안에는 꼭 어떤 유명한 감독이 타고 있다는 상상이 들지 뭐에요. 그러면서 차는 우리집 앞을 지나 골목을 돌아 사라졌습니다.

     나도 그 방향으로 강아지를 걷게 했구요. 한 오분 쯤 지났나. 그 리무진이 가던 방향을 바꿔 내게로 오고 있었어요. 차를 세우고 운전기사가 내렸어요. 나를 향해 걸어 오네요. 아하, 바로 길거리 캐스팅이 이루어지는구나 생각 했죠. 180 센티가 훨 넘을 것 같은 키에 긴 코트 정장 차림의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흑인 기사가 던진 첫마디. “You are so beautiful.”

     우리말로 누가 내게 이쁘다 했다면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단박에 느끼지만, 영어로 하는 감미로운 단어가 어쩐일로 거부감 없이 들리더라구요. 아주 커다란 미소로 고맙다고 했어요. 이어서 머뭇머뭇 거리며 “Can I see you sometime?” 에궁 미안해라. 나 결혼 한 여자거든. 글구 내 나이를 안다면 너 곧 기절할텐데. 무척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 떨구고 돌아서는 모습에 난 다그쳐 묻고 싶었어요. 차 안에 감독님이 나를 찾는 거 아니었니?

     어쩜 좋아요. 오늘도 내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그러나 무척 행복한 기분이에요. 장난으로 빈정댔다거나, 놀렸다거나, 비웃었다거나 뭐 그런 부정적 생각은 하나도 안 들구요, 그냥 즐거웠어요. 비록 응할 수 없는 데이트 신청이었지만 나도 꽤 괜찮은가보다란 우쭐함마저 들었거든요.

     거 보세요. 뒤로 한 다리 꺾고 외발로 서서 스트레칭하는 나이 든 여인의 뒷모습이 얼마나 쓸만 했으면 젊은 사람이 데이트 신청까지 하겠어요.   이런 나를, 어떻게 비지네스와 연결 시킨다면 돈벌이도 삼삼하게 될 듯 싶은데…이런 생각이 건전하지 못해서 하늘이 허락을 안 하시는 건가?

     꿈은 그대로 가지되, 순수하게, 돈벌이 생각 개입하지 말고, 가져 볼까요? 그건 괜찮은가 모르겠네요. 그러면서 갑자기 승마장에 가고프네요. 옛날과 달라서 이젠 좀 두려운 생각이 살짝 들어요. 떨어지면 어쩌나.

     아마 야무진 꿈에서 깨야 할 시간인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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