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종경기

2003.02.02 08:41

노기제 조회 수:801 추천:101



2002/10/02                         삼종경기

                                                            운동경기 중계방송을 테레비로 보면서 나는 곧잘 선수들이 경합을 벌리는 속으로 빨려 들어가곤 한다. 나도 경기에 참가한 선수로 착각을 하는 거다. 화면을 통해서 참가를 하고 있으니 숨도 가쁘지 않고 땀도 흘리지 않으면서 줄곧 선두를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곤 쉽게 저 정도라면 나도 할 수 있다라고 자신 만만해서 미소를 짓는다.
        
   그중 가장 많이 참가를 하는 경기가 삼종경기다. 수영과 자전거 타기와 달리기 삼종을 이어서 하는 이 경기에 바로 내가 곧잘 착각하며 안방에 앉아서 선수가 된다. 물론 언제나 내가 선두이고 끝까지 내가 일등으로 골인한다. 누워서 떡 먹기 보다 쉬운 선수생활을 내 평생 했을 정도다. 그 만큼 그 경기에 실지로 참여하고픈 꿈이 내겐 있었나 보다.

        그러한 막연한 꿈이 실제로 내 앞에 펼쳐질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워낙 운동하기를 좋아하는 나는 사정이 허락하면 휴가를 가는 곳이 클럽 멛(CLUB MED)이다. 세계각국에 휴양지를 선택해서 스포츠 마을을 형성하고 사람을 불러모은다. 각종 운동 시설을 다 해 놓고 원하는 대로 골라서 할 수 있어서 내게는 안성맞춤 인 휴가 장소다.

        지난 휴가는 멕시코에 있는 칸쿤으로 갔다. 수상스키며, 윈드 써핑이며, 카약킹이며, 테니스며, 무엇이든 마음 내키는 대로 즐길 수 있다. 따로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먹고 자고 왕복 비행기 요금까지 합해서 한 번에 내고 일정 기간 머물면서 휴가를 보낸다. 각종 운동을 마음껏 하면서 보내지만 자신이 원한다면 경기에도 참가할 수가 있다.

        보통 나는 운동을 경쟁으로 하지는 않는다. 어디까지나 내가 즐겁게 할 수 있어야 운동이 되고 건강에도 좋은 것이다. 하물며 테니스를 쳐도 절대 경쟁심이 없는 상태에서 땀 흘리고 편안하게 운동으로 하는 수준이다. 시합하자면 정중히 거절이다.

        그 정도의 생각을 가진 내가 어느 날 선 듯 카약킹 경주에 응했다. 생전 처음 해보는 카약킹을 그것도 시합을 한다고 모인 곳에 합류했던 것이다. 보트에 올라타고 노를 젓는 것이 아주 쉽게 생각이 들었다. 까짓 것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이었는데 결과는 까짓 것이 아니었다. 목적한 방향으로 노를 젓는 일이 내 맘대로 안 된다. 여자 다섯 명이 경합을 벌렸는데 내가 맨 꼴찌다. 그것도 네 명은 한데 몰려가고 나는 한참을 뒤떨어져 따라갔다.

        불현듯 카약킹이란 것이 어떻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자신 있게 경주에 뛰어든 나의 경솔함에 놀랬다. 물론 휴가를 지내는 사람들에게 재미있으라고 제공하는 가벼운 시합이지만 그래도 꼴지 이면 기분이 좋은 상태는 아니다. 그러나 나는 카약킹을 실제로 경험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다음 기회엔 분명 오늘보다는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 확실하다.

        며칠 후 같은 장소에서 삼종경기가 벌어졌다. 경기 시작 2시간 전에 전해 들었다. 참가를 원하면 5시에 모이라고. 한 번 해볼까. 삼종경기라면 어떤걸 말하는데? 200미터 수영에 600미터 카약킹에 600미터 패들링이란다. 패들링이란 윈드써핑 보드에 엎디어 양손으로 저어 가는 것이라나. 차라리 윈드써핑 이라면 내가 자신 있는데...수영도 바다수영은 평생 한 번도 안 해봤다. 방에 가서 낮잠이나 한 숨 자고 그 때 가봐서 하게되면 하지 뭐.
        신경쓸 것 없다. 난 휴가 온 것이니 나 하고싶은 대로한다.  일등 하려고 애 쓸것도 없고 힘들면 안 하면 된다. 역시 아주 가볍게 생각하고 경기장에 갔다. 캐나다에서 온 윈 이란 25살 짜리 아가씨와 뉴욕에서 온 24세의 알렉스다. 나까지 세 명뿐이니 꼴찌를 해도 동메달이다. 한 번 도전해보자. 실제로 삼종 경기 선수가 되는 순간이다.


        물이 가슴까지 오는 지점에서 츌발 해서 바다 쪽으로 100미터 헤엄쳐 갔다가 돌아오는 수영이 첫 번 종목이다. 출발 준비를 하면서 보니 두 아가씨는 물안경을 쓰고 있다. 그런걸 다 갖고 왔니? 난 없는데. 준비. 출발. 키가 나보다 한참이나 커단 가시나들 물속으로 냅다 뛰어드니 벌써 십 여 미터는 나간다. 이크. 이게 아니구나. 난 그냥 슬슬 운동하려고 헤엄치는 사람인데 저렇게 죽자살자 헤엄 쳐가면 난 영락없이 꼴찌겠다.

        바닷물이 그렇게 짠지는 처음 알았다. 파도는 자꾸 나를 출발점으로 밀어 버린다. 그래도 가야한다. 가자. 반쯤 갔는데 두 계집아이들 벌써 돌아온다. 이게 뭐야? 정말 웃기는 경기가 되는구나. 그렇다고 바다 한 가운데서 어쩌겠냐. 혹시나 하고 감독관이 카약을 저으며 나를 따라온다. 기권하면 싣고 갈 모양이다. 그럴 순 없지. 시간이 걸리더라도 내 힘으로 갈 거다. 물안경이 없으니 머리는 물 밖으로 내 놓고 푸푸대며 소금물을 피해 갔다.

        이어지는 카약킹. 설마 이번엔 내가 따라 잡을 수 있겠지. 그런데 이것도 아니다. 역시 반 좀 넘어 가니 두 애들 벌써 돌아오면서 소리소리 지른다. "기제, 고우" 라며 나를 격려한다. 그래 알았어. 나 기권 안 해. 그 다음 패들링은 수영보다는 속력을 낼 수 있었던 카약 때문에 두 애들을 많이 따라가고 있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도중하차는 말도 안되지. 마침 남자들 경기가 시작  되어서 심심찮게 경기를 함께 끝낼 수 있었다. 어깨 죽지가 떨어져 나갈 듯이 아프다. 숨도 가쁘다. 땀도 났을 거다. 바닷물인지 땀인지 모르긴 해도 젖어 있으니 말이다.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 환호가 대단하다. 40여분 걸린 꼴지라도 기권하지 않고 끝낸 스포츠 정신을 칭찬하는 걸까? 야아, 기분은 좋다. 믿거나 말거나 막내 딸 또래 애들과 삼종 경기라니. 내가 나를 봐도 진짜 자랑스럽다. 꼴지라도 상관없다. 메달 권이니까.

        이렇게 해서 안방 테레비 앞에서만 출전하던 내가 진짜 삼종경기에 참가 한 것이다. 문제는 언제나 해 보고 싶다는 의욕을 버리지 않았던 나의 꿈이다. 무슨 대단한 일을 해낸 사람처럼 공연히 어깨가 으쓱해진다.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 하면 된다. 그래서 내 마음이 기뻐 하늘을 날고 어떤 성취감 마저 생겼다. 내년에 다시 한번 도전하리라. "기제 고우."

주: 우리가 흔히 응원할 때 쓰던 파이팅에 해당되는 단어가 영어로는 "GO"로 표현함.

2002/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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