쌈 다시마

2003.02.02 08:58

노기제 조회 수:658 추천:93

111001 쌈 다시마

노 기제
있는 반찬들을 꺼내 놓고 저녁상을 차린 토요일이다. 밥하기 싫으면 나가서 먹자는 남편의 배려가 고맙다. 하루종일 보일 듯 말 듯 화끈하게 얼굴을 나타내지 않은 해가 그립다. 겨울로 진입하는 날씨가 을씨년스럽다. 왠지 외출이 귀찮다. 막상 식탁에 앉고 보니 입맛 당기는 반찬이 없다. 아 그거. 생각해내고 쌈 다시마를 꺼냈더니 남편의 젓가락이 먼저 간다. "이건 좀 짜야 맛있는데" 라며 불평 비슷한 남편의 말이다. 건강식품이라 생각하고 짠맛을 충분히 뺀 후에 상에 올려놨다, 그 나름대로 괜찮은 반찬이라고 간주했었는데 짠맛이 없는 쌈 다시마는 우리 집에선 환영받는 반찬은 아니다.
내가 처음 쌈 다시마를 먹었을 때 그야말로 쨩 이었다. 짭짜름하면서도 씹히는 맛이 있고 깔끔한 뒷맛이 식욕을 돋운다. 건강 세미나에서 처음 먹어본 반찬이다. 건강식이라서 좋고, 내 입맛에 맞으니 좋고, 아울러 쌈 다시마를 상에 올릴 때마다 나는 옥실이를 생각하곤 한다.
건강 세미나에 참석하는 환자들을 돌보기 위해 봉사자로 자원했던 어느 해 오월 중순이었다. 3주 동안 함께 생활하면서 세미나를 통해 회복되는 환자들을 만나는 일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그러나 환자가 마음을 열고 자신이 병에 걸리게 된 지난 생활들을 털어놔야 회복의 기회가 크다. 물론 환자 자신은 무엇이 원인이 되어 자기가 병이 났는지 모른다. 바로 그 원인을 찾아 주는 것이 우리 봉사자들의 할 일이다.
화사한 계절, 오월을 등에 업고 십 여명 환자들 틈에서 얼굴을 보인 옥실이는 푸른 잎 거느리길 마다한 우아한 자목련 한 송이였다. 환자를 마중 나간 나를 어느 영화배우 마중 정도로 착각하게 했던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다른 봉사자가 다가가기 전 잽싸게 그의 곁으로 달려가 가방을 받아 들곤 환영 인사를 했다. 약간 의아하게 인사를 받으며 가볍게 웃어주던 그 모습이 10년이 지난 오늘에도 내가 옥실이를 기억하는 모습이다.
마침 옥실이와 나는 동년배였다. 내가 한 살 위지만 우린 자연스레 말을 편하게 놓는 친구가 되었다. 내가 먼저 늘어 논 남편 험담이 옥실이의 마음을 활짝 열게 했다. 대학 입학해서 첫 번 만난 남자에게 꽁꽁 묶여 버린 얘기부터 결혼생활 지금까지를 들었다. 명문여대 성악과 출신 미모의 옥실이가 짠 맛 우려낸 쌈 다시마처럼 살아온 것이다.
옥실이 남편은 결혼과 동시에 옥실이를 안방 꽃방석에 곱게 앉혀 놓곤 화분 기르듯 했다. 주인이 물을 주면 그 물 마시고, 햇볕 잠깐 쪼이게 하면 감사히 해 아래 서고, 자기의 의지는 어디로든 보내 버려야 했던 지난 17년간의 결혼생활은 옥실이를 암 환자로 만들었다. 밖에서 보면 세상에 그런 좋은 팔자가 어디 있을까.
돈이라고는 빨래할 때 사용하는 동전만 구경하고 살았다. 무엇이든 필요하면 말하라며
생리대까지도 손수 사다 바치는 남편. 시장도 남편이 본다. 옥실인 그저 집에 얌전히 있으면 된다. 갑갑하니까 대들기도 했겠지. 그러면 두들겨 맞는 거다. 때리는 남편인 줄 알았으면 대들지 말고 다른 방법으로 대처해야지 미련하게 대들긴 왜 대들어. 같이 소리 지르고 같이 폭력 행사하며 살았더라면 암 환자는 면할 수 있었을까. 폭력이야 힘이 부족해서 일방적으로 당했지만 소리만은 같이 질렀단다. 아이 셋 낳고 기르는 동안 가끔 친정에서 보내주시던 용돈으로 건강 세미나에도 올 수 있었단다. 3주 체재비용이 만만치 않으니까 남편에겐 입도 벙긋 못 했단다.



그런데 이런 사정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가까운 친지나 친구들에겐 세상에서 제일 팔자 좇은 여자로 보이며 살아 왔단다. 바보야, 차라리 나처럼 남편 험담이나 하며
살았음 이 지경 까진 안 됐을 텐데. 이제라도 가슴에 쌓인 것들 다 털어놓고 암에서 해방되어 살아보자 했다. 그러나 이튿날 만나보면 밤새 분해서 울고, 한심해서 울고, 아파서 울고,
잠 못 자고 까칠한 얼굴뿐이다.
3주간의 세미나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간 옥실이는 한동안 편안한 듯 보였다. 이제라도 이혼을 하고 편히 살아볼까 생각도 했지만 세미나에서 배운 대로 남편을 용서하고 사랑으로 감싸기로 결정했다. 우린 가끔 만나서 그 용서라는 것을 실천하기 위해 많이 얘기했다. 우리 힘으로 안 되니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옥실이의 상태는 악화되고 한국의 어느 기도원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곤 얼마 후 옥실이의 부고를 신문에서 보아야 했다.
생 오이를 쌈 다시마에 싸서 밥을 먹던 옥실이를 생각하며 나도 그렇게 먹어 본다. 역시 쌈 다시마는 소금기가 있을 때 제 맛이 난다. 명문여대 성악과를 졸업한 미모의 옥실이가 그 옥실이로서 살았더라면 그렇게 빨리 생을 마감하진 않았을터인데.
바람이 스쳐가듯 잠간 만나 아름다운 얼굴 익힌 옥실이 떠난지도 10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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