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보이고 싶어 알리는 사실

2012.12.31 02:43

노기제 조회 수:669 추천: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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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30                          내 마음 보이고 싶어 알리는 사실
                                                                                                                    박기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냥 지나치는 사실이, 사람마다 얼마나 많겠는가. 한 편, 똑같은 사실에 두 사람 이상이 연관 되었을 경우 느끼고 판단해서 내어 놓는 결과는 같지 않다. 그래서 오해가 생기고 서로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서로 자신의 느낌을 얘기 한다면 대화를 통해 이해하게 되고 좋은 감정으로 지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래 묵은 사실 하나를 끄집어내야 한다. 자칫 잘난 척이라고 지탄을 받게  될 수도 있겠지만 감수해야 한다.
        
       여고 때 육상부에서 함께 운동하던 친구를 만났다. 특출하게 단거리를 잘했던 친구라 성균관대 약대를 육상 특기로 들어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여고 졸업 40주년 재상봉 때 만나서 나눈 얘기다. 약대 동창 중에 이금주란 동기생이 너랑 중학교 동창이라는데 아느냐고 묻는다. 물론 알지. 아아, 금주가 약대를 갔었구나. 그런데 그 애가 사대부중 일등으로 들어갔다며? 너랑 동점으로 둘이 일등으로 입학했는데 네가 언제나 혼자 일등으로 들어간 척 웃긴다고 그러드라.  
        
       1959년도다. 난 어릴 적부터 공부를 하는 애가 아니다. 성적이 월등해서 일 이등을 다투는 처지도 아니었다. 동네 남학생이 서울에서 제일 좋은 중학교에 다닌다는 소문에 그렇다면 나도 가야지 하고 원서를 냈다. 입학시험을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날 이웃에 같은 학교를 지원한 애가 있다는 걸 알고(어떻게 알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집에 놀러 갔다가 합격 소식을 들었다. 그 애(김정애)는 합격 했고 여학생은 청계초등학교 졸업생이 일등이란다.

        그제야 난 전차를 타고 사대부중으로 갔다. 지금과는 달리 운동장에 붙은 벽보를 보아야만 합격여부를 알 수 있던 시절이다. 청계초등이라면 여자는 나 혼자 지원했던 상태다. 그럼 내가 일등으로 합격했다는 건가? 비에 약간 번진 합격자명단이 있고 일등합격자들은 다른 조각에 따로 써서 붙였던 걸로 기억되는 데,  내 이름이 있었다.

        어린것이 그런 일에 기뻐할 줄을 몰랐던 모양새였다. 가족들도 호들갑을 떠는 흐름은 아니었다. 단지 큰 오빠가 희자(고모 딸)는 이화여중 합격하고도 입학금이 없어 못 다녔는데 네가 떨어지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귓속말만 찬물처럼 가슴으로 스며들었었다.

        일등이라면서 입학금 면제도 아니고, 무슨 장학금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달랑 탁상시계 하나에 커다란 표창장만 주어졌다. 그게 뭐 대단한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입학식을 하고 학교가 시작되고 반장이 되었지만 여전히 난, 또래 애들과 똑같은, 특별히 잘난척을 할 어떤 요인이 있다는 마음은 없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 당시 교내 신문이 있었다. 일등합격 소감을 글로 써 내란 지시에 얼토당토 않게 내가 쓴 제목은 3등 합격의 기쁨 뭐 그런거였다. 모두들 내게 일등이라 하지만 내 계산은 3등이다. 남자 일등이던 강송삼의 점수와 여자 일등과의 점수 차가 무려 30점 쯤 났던 걸로 기억 된다. 여자 둘이 동점이었으니 그 애에게 2등을 주고, 난 스스로 3등으로 여겼던 거다. 누가 시킨 것도 운을 뗀 적도 없는 걸, 내가 그렇게 써서 냈기 때문에 내 글이 맨 아래에 실렸었다. 그렇다고 누구하나 아니라고 고쳐 주지도 않았다. 그만큼 내겐 별 것 아닌 사실이었던 것이다. 그 신문, 사대부중에 가서 찾아보면 볼 수 있지 않을가 싶다.

        한 가지 더. 입학하고 농구부에 들어 방과 후 공놀이 좀 하던 때, 2학년 황병선 오빠가 내게 해 준 말이다. 일등 운운 하길래 동점으로 둘이 일등이라고 했더니 네가 4반 반장이니까 네가 일등인거야. 지금 생각하면 가나다 순으로 그런 것을 그 오빤 나를 대우해주고 싶어서 그렇게 말했던 거다. 그 자리에 동점 일등 한 이금주가 없으니까.

        그 후, 동점이니 일등이니 하는 단어 자체가 부질없단 생각을 했다. 그럭저럭 세월 흘러 고교졸업 30주년부터 만나기 시작한 동창들 틈에 양념으로 끼어들면서(중학교만 동창이고 고등학교는 다른 여고 졸업) 다시 회자 된 그 일등이란 소리에 해명이 필요한 걸 알았다. 한두 번 동점이니 둘이니 단어를 꺼내 봤지만 그 동점인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선, 어느 누구에게도 중요한 단어가 아님을 깨달았다.

        단지 무엇 하나 내 세울 것 없이 나이만 들어 옛 친구들 무리에 끼어 든 박기순이란 아이를, 소개하기에 편한 사실 하나를 수식어로 채택한 것뿐이다. 그러나 이금주. 넌 꾸준히 공부를 잘 했고 약사가 되어 있으니 이제라도 네가 얼굴을 보여주고 그 일등이란 단어가 네게 수식어가 되어 그 동안의 서운함을 풀어 주면 좋겠구나.

         살다보니 하늘아래 내가 내 세울 것 무엇 하나 있던가? 오늘까지 나를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나 잘났다고 드릴 것이 없음을 안다. 세상에서 얻었던 상장이니 표창장이니 헛된 흔적들 이미 재가 되어 사라진지 삼십 오륙년. 그 후 얻은 상장, 등단패들 또 다시 재로 만들어 버리고(1977년경, 모두 태우고 씨를 말렸다.) 그저 오늘이 감사해서 산다. 함께 삶을 얘기할 수 있고, 어릴 적 친구들 만날 수 있는 여기, 서울 사대 부중고 사랑방에 자주 얼굴 내밀고, 요즘처럼 열심히 모임에 참석하며 부중 일등 합격자로서의 당당한 모습 보여주기를 이금주에게 기대한다. 우리 언제, 함께 뭉쳐 볼 기회가 오길 기다리면서 사랑방 친구들의 따스한 이해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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