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사랑, 그 이파리들 (첫번째 이파리)

2010.12.05 03:07

노기제 조회 수:1069 추천:213

20101105-14


                        사랑, 그 이파리들

        “효선씨, 효선씨가 성수한테 놀러 가세요. 집도 크고, 방도 여유가 있으니 가면 편하게 묵을 수 있어요.”
        간암 말기 환자인 동생을 데리고 보호자로 참석한, 성애씨의 제안이다. 무슨 관계로 이름을 짓고 집으로 놀러 가서 묵을 것인지 선듯 대답을 못하는 효선이,  자연 치유를 위해 한국의 이곳 저곳 요양원을 찾아 다니며 두 달 남짓 객지 생활을 하고 있는 성수씨는 미국 뉴저지에서 온 참가자다.
        효선은 이 뉴스타트 세미나로 인해 새 생명을 얻고, 미국 엘에이에서 뿌리 내리고 사는 이민 18년차로 난소암 생존자다.  뉴스타트 생활을 받아 들이고 사십일 만에 난소암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된 처녀.
새로 시작한 삶 틈틈이 구 년째 뉴스타트 세미나에 봉사자로 참여하고 있는 효선이 마음이야 백 번이라도 성수를 만나러 가고 싶다. 세미나가 끝나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면, 또 다시 만난다는 기약은 없다. 효선의 마음에, 계속 만나고 싶은 남자가 된 성순데, 이대로 끝이라니. 간병인으로라도 성수의 회복을 위해, 세미나에서 배운 것들을 실생활에 적용하도록 도우며 함께 하고 싶다, 완전히 회복할 수 있다는 확실한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복합적인 표정을 보이며 성수 얼굴을 본다. 다시 성수 누님의 편한 음성이 초청을 이어간다. 한 동안 성수와 뉴욕에서 살다 한국으로 삶터를 옮긴 분이다. 그러니 같은 미국 안에서의 왕래가 한국에서 미국가는 것 보다는 마치 삼동네 처럼 쉽지 않겠느냐는 의견이다.
        “엘에이에서 뉴욕이 뭐 그리 멀다구 못 갈거 없잖아요. 날씨 선선해 지면, 뉴욕 단풍이 정말 아름다운데 꼭 한 번 놀러 가라구요. 성수 넌 뭐하니? 네가 직접 초청을 하지. 쟤가 저렇다니까요. 무슨 말을 그렇게 아끼는지 몰라요 글쎄.  어려서나 지금이나 도무지 말이 없어서 쟤 속에 뭐가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우.”
        봉실거리며 성수에게 눈맞춤하고 있는 효선이, 들은 척도 안하고 있던 성수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음성을 높인다.
        “알았다 그래. 내가 간다. 내가 가. 내가 엘에이로 간다구.”
        “와아, 신난다. 그럼 내가 얼마든지 엘에이 지역 안내 할 수 있어요. 꼭 오세요. 약속 한거에요. 네? ”

        한국 동해 망상 해수욕장에서 열린 뉴스타트 세미나가 끝나는 마지막 날 점심 식탁에서, 환자 성수와 보호자로 함께 참석한 누님 성애씨가 자원 봉사자 효선에게 하는 부탁이다. 두 달 남짓, 병든 동생 뒷바라지 하며, 여러 요양원을 다녀 보았지만, 강의에서 듣는 건 성수 두뇌에서 대강 처리 해서 버린다. 어떤 이론에도 성수의 마음은 열리지 않았다. 병색 짙은 얼굴에 웃음이라곤 찾을 수 없는 굳은 표정으로 웬만해선 입도 열지 않는다. 묻는 말에 물론 대답도 없다. 귀찮으니 가까이 오지 말라는 무언의 태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레 질려 피하는 실정이다. 그래도 성수 곁에서 사부랑대며, 예의 없이 장난스레 구는 효선에겐 자주 웃기도 하고, 툭툭 딱딱한 말투로 반응을 보이는 동생의 변화에 누님 성애씨는 한 가닥 희망의 끈을 잡고 싶은 거다. ,


        사랑, 그 첫번째 이파리, 효선의 발병

        엘에이에서 제과점을 경영하던 효선이. 나이 스물 아홉에 난소암 판정을 받는다. 새벽 6시 부터 밤 11시까지 신명나게 일하면서, 돈 벌리는 재미에 푹 빠져 살았다. 제과점에서 30분만 운전해 가면 끝간데 없는 넓은 바다가 있다. 붐비지 않는 모래사장, 가까이서 봐도 탁구공 크기 만한, 앙증맞은 샌드파이퍼드(새의 일종)들이 떼를 지어 종종걸음이다. 밀려 왔다 밀려 가는 파도를 따라 쉴 틈새를 잃고 바쁘다. 그 빠르기를 무엇이 따라잡을까. 가만히 서서 보고만 있어도 숨이 찬다. 효선의 생활이 그랬다. 시간이 없어 남자 친구 하나 만들지 않고 살아온 처녀가 난소암이라니.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발병의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몸을 가눌 수 없도록 피곤해서 자주 널브러지고, 미열이 나면서 자꾸 토하고, 살은 빠지고, 밤이 되면서는 눈물이 쏟아지는데 감정과는 상관 없이 이유 없는 눈물 흘림으로 단순한 신체적인 변화다. 급기야는 쓰러져 동네 병원으로 실려간 후 급성 위염 이라고, 처방 된 약을 몇 달 복용하다 결국 산부인과 검사를 받아 보라 했다. 새끼 손가락만한 물혹이란다. 아직 처녀니까 일 센티 정도의 복강경으로 간단하게 수술을 하면 된다는 말에 믿을 수가 없어서 큰 병원으로 갔다. 이런 저런 검사를 거치고 받은 판정이 난소암 말기란다. 앞으로 일 년 정도 버틸 수 있다는 표정 없는 의사의 선고다. 수술을 해도 완치 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선은 생긴 암 덩어리 제거하는 수술을 하자고 제안이다. 이건 아니다. 자신의 깨끗한 몸에 칼자욱이라니. 암으로 죽을거란 생각은 안 든다. 오직 자신의 몸을 예쁘게 간수하고 싶은 간절함에 수술엔 동의 하지 못하는 효선이.
항암 치료를 하면서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 보는 수준으로 아무것도 확실하게 약속 할 수 없다는 것이 현대 의학이 제시하는 치료법이다. 항암치료를 한다면,  매력적인 자신의 긴머리도 홀랑 다 빠질텐데. 병실에 누워 있는 허다한 암 환자들의 머리를 본다. 얼굴이 예쁜 환자도, 나이 든 환자도, 별 다른 구별 없이 머리칼 없는 여인들만 보인다. 자신도 저런 모습으로 곧 바뀔거란 생각이 들자 효선은 비명처럼 내 밷는다. 저런 모습이 되는 건 죽어도 싫다.
        치료라고 하면서, 결정 된 죽음의 시간을 기다려 보는, 그러다 운 좋게 죽음을 연장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완전히 회복 된다는 보장은 없다. 이런 방법, 저런 방법 두 귀 크게 열고 허겁하여 보대끼다 끝내는 의사가 예정해 준 그 시점이 되면 모든 것이 정지 되겠지. 여성으로서의 아름다움은 모두 빼앗기고 오로지 암 환자라는 팻말 아래 눕혀진 초췌한 여인의 모습. 그런 어둠의 턴넬을 뻔히 알면서 스스로가 뛰어 들어 갈 순 없다. 뒤 돌아서자. 다른길을 찾자.

        언젠가 신문에 났던 광고가 섬광처럼 스친다. 불치의 병은 없다. 불치의 생활이 있을 뿐이다. 뭐 그런 문구였다.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확실한 사항들을 알아봤다. 아하, 여기 엘에이에서는 가끔 초청 되어 열리는 세미나이고 한국에서는 정기적으로 한 달에 한 번씩 일정이 있다는 뉴스타트 사무실 전화번호와 웹사이트 주소를 받았다.
        이 상태론 효선이 가게를 계속 운영할 수 없다. 처방약 받고 잘 치료하면 곧 돌아와 일하리라 생각하고, 잠깐 남에게 맡겼으나 이젠 정리 해야 한다. 잘 되는 가게이니 손 쉽게 팔 수 있다. 완치만 된다면 그 동안 벌어 둔 돈, 다 써도 좋다. 건강 회복하면 돈은 또 벌면 된다. 그러나 돈이 없으면, 어디에서 어떤 좋은 방법으로 치료 할 수 있다해도 소용 없으니 가게 판 돈은 생명을 지키는 데 꼭 필요하다. 병원에서 어떤 의사도 확실하게 완치 될 수 있다고 말해 주지 않았다. 치료 과정을 설명 하는데 도무지 마음에 와 닿지를 않는다. 그런 사람들에게 소중한 자신의 생명을 맡길 수 없다. 더 확실한 무엇이 있지 않을까. 환자가 이해 할 수 있고, 환자가 확신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가진 것 전부를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효선이 찾아 간 한국. 동해시 망상 해수욕장 그랜드호텔에서 열리는 8박 9일의 뉴스타트 세미나다.
        서울 강남 신사역에서 모여, 뉴스타트에서 보낸 버스로 함께 세미나 장소로 이동한다.  도무지 어떤 사람들이 이 버스에 타고 있는 것일까. 무엇을 하는 세미나일까. 차멀미가 심한 효선은 앞자리에 앉아야 한다. 그러나 누구에게 앞자리를 달라고, 또는 이미 앞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해 달라는 말을 할 수가 없다. 그저 차례가 되어 앉을 수 있는 자리에 앉아서 가야 한다.
        세번째 줄 창가에 앉게 되었으니 크게 염려할 건 없겠지만 멀미 정도라면 자신이 받은 선고에 비해 병도 아닌 것 아닌가. 그래도 이 순간엔, 난소암 말기 보다는 멀미가 더 걱정스런 이 아이러니. 눈 감고 편히 기댄다. 기운도 딸리고 차창 밖 낯선 한국 땅 풍경도 감상할 여유가 없다.  자신의 모습을 예쁘게 간직할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상태에서 항암 치료를 거부하고, 덜컥 세미나에 등록을 하고 힌국행을 결심한 효선이. 누군가  자신을 이끌어 미국에서 한국으로 오게 하고, 지금은 버스에 몸을 맡기고 있지만, 효선은 자신이 가고 있는 곳이 무엇을 효선에게 제시 할 것인지는 자세하게 아는 것이 없다.
        어느 휴계소에선가 화장실 이용하라고 20분 정도 정차 시간 외에 총 다섯 시간의 이동 끝에 도착했다. 동해그랜드호텔이란 큼직한 이름판이 보인다. 한 사람, 한 사람 앞자리에서 부터 느릿하게 조심스레 내려서는 사람들 중엔 머리에 모자를 쓴 여성이 몇, 눈에 띈다. 아예 스님 처럼 깔끔한 머리로 당당하게 버스에서 내리는 여성도 있다. 표정들은 하나같이 시무룩하고. 미소를 잃은, 피곤함 만이 역력하다. 항암 치료를 받은 환자들이다.
        호텔 정문 앞에 한 줄로 늘어 선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리는 분들을 반갑게 맞아 준다. 대체로 그들의 동작을 맞춰 주며 곁부축 하는 사람에, 손가방을 들어 주는 사람에, 모두들 뭔가를 도우려 분주한 모습들이다.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의 무표정과 지친 모습들과는 다른, 밝고 가볍고 리드미칼한, 약간은 흥분된 분위기의 사람들이다.
        운전기사가 짐칸에서 꺼내 놓은 가방들을 받아, 호텔 안 현관에 늘어 놓고, 이름과 방 번호를 가르쳐 주며 방으로 옮겨 드리겠다고 활짝들 웃는다. 병원이 아니고 호텔이기 때문일까? 자신이 죽음을 선고 받은 암 환자란 사실을 잊고, 마치 휴가라도 온 건강한 사람이 호텔 종업원들의 봉사를 받고 있는 듯한 착각을 하며 효선은 가벼운 기분으로 그들을 따라 엘리베이터에 들어섰다. 효선의 가방을 굴리며 앞서 걷는 봉사자의 모습에서 효선은 훗날 자신의 모습을 보며 움칠 놀란다. “내가 여기 봉사자로 온다? 그래서 어떤 환자분의 가방을 내가 끌며 방으로 안내를 한다?” 얼굴에 번지는 미소를 느끼며 효선은 상상으로 봉사자가 되어 본다.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에 건강한 신체와 예쁜 마음의 봉사자. “나는 환자들을 도와 주며 그들에게 용기를 주는 봉사자다.”
        “저녁 식사는 5시 반입니다. 잠깐 쉬세요. 이따 식당에서 뵙겠습니다.”
        얼굴 가득 웃음을 띠고 밝게 인사 한 후 돌아서는 봉사자가, 효선에겐 여전히 자신의 모습으로 보이고 있다. 에너지가 넘쳐 보인다. 기쁨이 전해져 온다. 효선 자신도 슬그머니 기뻐진다. 왠지 모르겠지만 피곤하지도 않고 지금 당장이라도 다른 환자에게 가서 뭔가 그들이 필요한 도움을 주고 싶어진다. 세상 풍파 한 번도 겪어 보지 않은 듯한 밝음으로 눈이 부신, 만나서 기분 좋은 사람이 되어 그렇게 살지 못하다 병들어 죽음을 선고 받고 오는 환자들에게, 밝음과 기쁨을 나눠 주는 봉사자가 된 자신을 그려보는 효선이.
        
        도착 후, 첫 강의 시간이다. 저녁 식사가 비교적 간단하게 끝나서 허기만 살짝 가신듯하니 가볍다. 하루종일 앉아 보지도 못하며, 종종걸음으로 일할 땐, 밥 때 놓친 아무 시간이라도 급하게 먹고 또 먹고 하던 먹성은 이미 어딘가로 유배되어 갔다. 예전의 입맛이라면 오늘 이곳에 차려진 식탁은 도무지 배를 채울 수도 없는 볼품 없는 음식들이다.  식욕 생길 아무것도 없다. 모두들 같은 생각이라도 하는 듯, 토끼반찬이니, 풀만 있다느니 궁시렁대는 분도 있다. 그저 한끼 대강 때웠다는 의미는 모두에게 통한 듯 하다.
        일층 식당에서 오층 강의실로 올라간다. 노트와 펜, 그리고 초록색 명찰이 목에 걸린다. 언제든지 명찰은 걸고 다니라는 노란색 명찰을 길게 늘어뜨린 봉사자들의 당부다. 명찰을 금방 걸어 주고도 이름이 외워지지 않는지 다시 유심히 명찰을 보며 확인하는 눈치다. 어른 아이 모두에게 똑같이 일어나는 기억력 쇠퇴 현상이다.
        호텔 강의실 답게 의자가 고급스럽다. 편하다. 그리고 깨끗하다. 눈에 뜨이는 맨 앞자리 중간 부분을 차지한 효선은 받은 노트와, 물병을 탁자위에 놓았다. 강의를 잘 들으려면 앞사람 때문에 잘 안 보일 수도 있고, 소리가 잘 안들릴 수도 있는 자리는 피해야 한다. 식사 후라 졸릴 수도 있고, 피곤해서 주위가 산만해 질 수도 있기 때문에 강의실 자리는 앞자리가 제일 좋다고 효선은 생각한다. 그랜드 피아노가 있고 꽃꽂이가 두 개 좌우로 보인다. 안정된 분위기다. 앞에는 흰 바탕에 푸른 글씨로 이박사의 뉴스타트 센타 라고 가로로 크게 써 있고, 세로로 두 줄은 진, 선, 미의 뜻, 생명의 새 삶 이라고 써 있다. 꺼져가는 삶에 참되고, 선하고, 아름다움을 부어서 새롭게 생명을 받아 새 삶이 열릴것이란 말로 효선에게 속삭이는 듯 가슴이 따뜻해 져 온다.

두번째 이파리, 윗글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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