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그건 불륜

2009.11.15 03:49

노기제 조회 수:747 추천:161

20091002                        로맨스? 그건 불륜

        전문 상담인들의 강의나 조언을 듣고 부부관계를 개선하려 애쓰는 가정들이 있다. 우리 부부도 교회가 주최한 모임에 한 번 다녀 온 경험이 있다. 전문인들을 초청해서 2박 3일간 산속에 위치한 기도원에서 강의도 듣고, 실제로 서로에게 칭찬도 해 주고, 연애 편지도 써서 건네 주는 실습도 해 봤다.

        결과는 속성으로 이뤄진다. 아내의 포용이다. 별 큰 이유 없이 아주 자잘한 이유들로 마음 상하고 사는 아내들은 까짓것. 내가 참고 살지. 생활 전선에서 애쓰는 남편들을 큰 아들 감싸듯 묵인하고 지나치고 만다.

        아주 쉬운 것 하나 예를 들면, 강사의 부탁이다. 남편들은 세상 평화에 지장을 주는 일이 아니면 아내들에게 잔소리 하지 말라고 했다. 얼마나 쉬운 문장인가? 길지도 않은 이 한 마디를 그냥 믿고 남편이 당장 실천에 옮길 거라 생각했다. 기대를 했기에 지난 일들 모두 잊고 다시 연애편지를 쓰며 새롭게 살 수 있으리라 희망 했는데…….그건 그냥 꿈으로 끝났다.

        이어지는 오만가지 잔소리에 목을 죄는 스트레스로 결국 살 맛을 잃고 죽지 못해 사는 상황. 물론 각방을 쓰고, 급기야는 방 하나 달랑 얻어 갈라서는 부부도 허다할 터. 결국 황혼 이혼으로 치닫는 급박한 상황까지 이어진다.

        경제적으로 홀로 설 수 없는 아내들은 별거도 이혼도 맘대로 못하고 하루하루 자기만의 삶을 적당히 꾸려 나간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확 끌어 당김을 받고 불꽃이 튀는 경험을 한다. 바로 이 남자다. 나의 가치를 알아 본다. 나를 나 그대로 인정 한다. 조용히 이어지는 찬사에 넋을 뺀다. 차 한 잔 나눈다. 밥 한끼 함께 먹는다. 정중하게 모시는 댄스로의 초대. 살이 닿으니 뜨거워 진다. 아, 이 밤을 그대와 새우련다. 지구 끝까지라도 함께 가자.

        다른 생각일랑 하지 말자. 오직 이 순간이 있을 뿐이다. 첫 눈에 나를 알아 보는 사람이라면 무엇이 두려울까. 곁에서 지켜 보는 친구들도 상관할 바 아니다. 이건 평생에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진정한 사랑이다. 지금 당장 지구가 멸망을 한다 해도 우리 둘은 못 헤어 진다. 남편 생각하면 지긋지긋하다. 아이들 생각하면, 이제 다 컸는 데. 뭐.

        온갖 이유를 다 끌어다 대면서 정당화 하기에 급급하다. 살아 온 세월 보단 살아 갈 세월이 훨 짧은 나이다. 그동안 한 번도 이런 뜨거운 감정 없이 살아 온 듯 착각까지 한다. 남편을 만나 연애 하고 꿈처럼 살았던 지난 날의 기억은, 뭔가를 잘못 클릭해서 다 날아 간 모양이다. 마치 신종풀루에 걸려 끓어 오르는 열을 감당치 못하는 뜨거운 마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잠깐,  들려오는 미세한 음성이 있다. 뜨겁게 달아 오르는 자신의 의지와는 사뭇 다르다.  선선한 가을 바람 처럼 열을 식혀 주기에 알맞는 천사의 음성이다.. “달콤한 로맨스라 우기지 마라. 차분한 톤의 음성으로 깍뜻이 대우하며 왕비마마 모시듯 손 내미는 제비의 정중함에 너를 던지지 마라. 분명 불륜이니라. 죄 짓기를 자처하지 마라. 꽃뱀이라 자칭하며 제비와 손 잡고 멸망하지 마라. 나오라. 빠져 나오라. 내 옷자락을 잡으라……”

        이렇듯 우리에겐 마지막 순간에 선택의 기회가 주어 진다. 내 뜻대로 죄 가운데로 걸어 들어 가느냐, 아니면 미세한 음성을 듣고 따르느냐. 어렵다고 자멸하기가 쉬울 듯 해도, 막상 미세한 음성 듣고, 따르고 나면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평화와 기쁨이 내 것이 된다. 혹독한 어려움 견딘 승리자가 되어 깊고 편안한 잠 잘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나면 새삼 아주 자잘한 여러가지가, 남편에게 고맙단 생각을 느끼게 깨우쳐 준다. 다시 함께 손 잡고 어디선가 들려 오는 미세한 음성을 따르게 된다. 평온한 미소가 얼굴에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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