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으로 걸어 간 친구

2010.02.06 01:37

노기제 조회 수:866 추천:202

20100205                        추억 속으로 걸어 간 친구

        예고 없이 추억 속으로 걸어 간 친구를, 한동안 내가 있는 여기서 찾는다. 나이 들어 친구가 된 동기동창. 서울사대부중. 360명의 남녀 동기동창이 있지만, 남학생, 여학생이 연애 감정 쏘옥 빼고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었던 우리들의 젊은 날들. 나이 드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친구가 되며 부르던 우리의 이중창이 끊겼다. 그 이중창을 아직 많은 날 동안 부를 수 있다고 기뻐하던 내 가슴은 부르지 못하는 답답함으로 멈춰 있다.

        좋아하는 합창 활동을 못한다는 현창의 투병 소식을 17동기 싸이트에서 읽었다. 사이버상 기쁨조를 자처 했다.  여학생의 선제 공격에 조심스레 예의 갖춰 응했던 동창. 쌓이는 편지의 양 만큼 친구로 바뀌고 그만큼 투병 중의 두려움도 감소되며 우린 서로 사부랑거렸다.

     기쁨조란 뭔가. 죽음의 공포가 엄습해서 두려운 상태. 통증과 싸워야 하고, 병원에 입,퇴원을 반복해야 하는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환자에게 어떤 방법으로든 안심하게 하고, 즐겁게 해 주고, 급기야는 완전히 회복해서 건강한 삶으로 돌아 올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일이다. 난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내가 믿는 예수님을 소개하고, 그 믿음 안에서 분명 건강을 되 찾도록 돕기로 했다. 말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자주 만나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하늘이 허락하신 글쓰는 재주 하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으니, 마치 내 힘으로 할 수 있다고 착각 했던거다.

     의학 상식이 많았던 친구였다. 자신의 병을 자세히 설명하며 치료 과정 또한 상세하게 자신의 블로그에 올려 놓았음에도 동창들에게 알리지도 못하던 수줍은 친구. 밀폐된 공간에서 한 달 이상을 투병해야 하는 고통을 누구에게도 알리기 싫어 하던 친구. 병 문안도 허락 안 되고 오직 전화만 가능하다며 미주알 고주알 내겐 다 써 보내던 친구. 그 엄청난 고립의 고통을 어찌 혼자 감수하랴 싶어 동기 웹에 올려 전화들 하게 했더니 깜짝 놀라면서도 고마와 하던 친구. 극성스런 여동창 덕에 훨 쉬운 투병 시간들이었노라고 회복을 알려 오던 친구. 혈액 암? 자신의 조혈모 세포를 키워 이식하곤 조심조심 회복의 길로 들어서며 미국에서 나가신 누님과 제주도 여행까지 다녀 왔다고 자랑을 하던 친구.

     그랬기에 난 잠깐 글줄 놓겠노라 했었다. 상황이 정상 생활로 돌아 간 듯 보이기에 내가 특별히 신경 안 써도 서울엔 많은 친구들이 있으니 계속 회복하며 정상인으로 돌아 올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글줄 놓은 지 한 달여. “궂은 소식” 이란 제목의 이멜엔 너무 힘이 없어 앉아 있을 수도 없는데 간신히 두 손가락 독수리 타법으로 쓴다며 다시 입원해서 원인을 찾고 있으니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미국에 계신 누님께도 알리지 말라고 신신당부 하며, 퇴원 하고 만나자란 짧은 메일이었다.

     후다닥 정신 차리고 그날 부터 계속 힘내라는 편지를 보냈다. 다섯 통 보낸 편지 아직도 ‘읽지않음’으로 수신 확인란에 남겨져 있다.
2009년 12월 19일 오후 5시. 산타모니카 비치에서 인라인 스케이트 를 타다가, 해가 설핏한 수평선에 시선이 멈추더니 문득 저 태평양 너머 하늘은 아침해로 희번하겠구나란 짧은 생각에 젖으며 내가 왜 이러지?
이튿날, 아침 일찍부터 콤퓨터 열고 17동기 사이트에서 ‘신현창동문조문안내’ 란 제목을 보게 되었고, 그가 떠난 시간이 2009년 12월 20일 아침 9시 51분으로 되어 있다. 바로 산타모니카 비치에서 잠시 나를 멈추게 했던 바로 그 시각이다.

     글줄께나 쓴다고 힘 안들이고 마구 보내 준 내 편지가 힘이 되어 분명 건강한 모습으로 만날 줄 알았는데……왜 건방지게 글줄을 놓았었나. 혹여 위로의 글 끊겨서 생명줄 놓게 된 건 아닐까. 자책감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며 그 친구의 편지를 기다리고 있다. 내겐 현창이가 정말 떠났는지 아니면 아직도 병원에 입원해 있는 상태인지 어리숭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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