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해 줄께

2010.05.03 03:07

노기제 조회 수:871 추천:149

20100329                        

        목이 따끔거리며 아퍼서 교회 성가대에 참석 하지 못한지 얼마나 됐을까. 힘든 직장 생활중에도 월요병이 심한 날을 합창단 연습일로 하고, 월요일은 행복한 기다림으로 설레곤 했다. 기쁘게 노래하며 살던 삶에 종지부를 찍게 한 내 목의 증상은 여전하다, 보험이 어찌 되는 지 몰라 그냥 저냥 그러려니 하면서 노래만 중단을 했는데. 후두암이 아닐까? 혼자 골 아프게 생각하면서 6년을 지냈다.
        
         남편 직장 의료 보험이 해당 되면서 돈 걱정 안 하고 병원에 갈 수 있게 됐다. 내과에도 갔고, 이비인후과에도 갔다. 아무 이상 없단다. 증상을 얘기 하면 뭔가 약을 처방 해 준다. 그냥 받아다 어딘가에 놓곤 잊어 버린다. 내가 그 약을 왜 먹어야 하는지 설명이 없으니 무시했던 거다.

        내과에서 처방 받았던 약을 이비인후과에서 또 받아 온다. 물론 난 무슨 약인지 모른다. 왜 약을 먹어야 하는지 투덜 대면서 받아 온 약을 탁자 위에 놓는다.
        “자긴 왜 이 약을 또 받아 왔어? 지난 번 것도 그대로 있는데.”
        “무슨 약 인데?”
언성이 높아진 남편이 못 마땅해서 설명을 한다.
        “제산제지 뭐야. 것두 모르면서 처방을 받아 온거야?”
그러게. 내가 알 수 있나? 똑 같은 불평을 계속 하니까 의사들이 처방을 해 주는 건데, 약을 먹든지, 불평을 말든지 하라는 불호령이다.

        그런데 내가 왜 제산제를 먹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아차, 또 한가지 증상이 있다. 치과에 갈 적 마다 이를 가느냐, 뭐 딱딱한 것 많이 먹느냐, 콜라따위 많이 마시느냐. 내 치아들이 많이 마모 되어 있으니 칫솔질은 약하게 하고, 음료수 마신후엔 물로 입가심 하고 등등 주문이 많다.

         잘 때 이 가는 일 없다. 음료수는 전혀 안 마신다. 물만 마신다. 딱딱한 음식? 해당 사항 전혀 없다. 그러나 내 입안은 항상 신맛이다.

        결국 다른 의사에게 똑 같은 불평을 하고, 심한 위산과다가로 위산 역류 현상인 듯 하다고 차근히 설명 해 준 덕에 약을 복용하기 시작 했다. 두어달 지나니 목이 많이 부드럽고 따끔거리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냥 중단 했다. 복용 중단 한지 한 달여 지났나. 또 다시 목이 아프다. 급히 내과 의사 찾았더니, 이번엔 위 내시경을 해 보잔다. 목 안이 벌게져 있으니 항생제 복용하면서 날짜 잡아 주겠단다. 그 정도라면 위궤양이 시작 됐을지도 모르니 찍어 보잔다. 역시 돈 걱정 없으니 흔쾌히 고개 끄덕이고 나왔다.

        그러나 막상 병원에서 어느 날짜가 좋겠느냐 묻는 전화가 온 후엔 은근히 겁이 나기 시작 했다. 처음 잡힌 날짜를 남편에게 알리고 근무 시간 조정하게 했는데(운전 해 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도무지 가고 싶지가 않은거다. 며칠 후 병원에 전화해서 딴 날로 미루자 했다. 한 달 쯤 후로 다시 날짜가 잡혔다. 남편에게는 학교 클래스 때문이라고 핑계를 댔다. 그런데 정말 가기가 싫다. 만약 위암이라면 어쩌나? 차라리 모르고 살면 좋을 것 같다.

        다시 병원에 전화 하곤, 아예 취소 하라고 했다. 나중에 필요하면 내가 연락하겠노라 하고.  남편 눈치 보며 바빠서 다 취소 했다고 했더니, 집에서 노는 사람이 뭐가 바빠서 병원에 갈 시간이 없느냐고 호통이다. 가기 싫다고 했다. 그냥 가서 확인하고 아무일 없는 거 알면 더 편하지 않느냐고. 위암이라해도 빨리 치료 하면 완치 될 걸 뭔 걱정을 하느냐며 못 마땅해 한다. 그래도 하기 싫다. 너무 무섭다. 모르고 살면 그런대로 살 수 있을텐데, 위암이란 결과라면?  알고는 지례 죽을 것 같다.

         이래서 남의 얘기와 내 얘기는 다른가 보다. 주위에 누구 암 걸렸다 하면 병 문안 가서, 요즘은 일찍 발견하면 완치도 가능하고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면 까짓 암이 뭐 대순가요. 함께 기도 해 주곤 평안히 돌아 오던 내가 아니던가. 내가 겁을 내는 이유를 나도 모르겠다. 죽는 것이 두려운가? 투병을 한다는 자체가 자신이 없다. 하나님께 맡긴다? 뭘 어떻게?

        밤마다 어수선한 꿈만 꾼다. 딱히 무슨 꿈인지도 모르지만 불안한 상태다. 자는 동안에도 몸이 자르르하다. 유난히 입이 쓰다. 남에게 그리도 쉽게 말하던 하늘의 평안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제산제를 착실하게 복용하기로 했다. 맵고, 짜고, 음식 조심도 시작했다. 도무지 먹고 싶다고 생각나는 음식이 전혀 없다. 곡끼를 끊으면 죽는다는데. 배 고프단 느낌도 전혀 안 생긴다. 기운차리려 뭣 좀 먹었다 하면 뱃속이 징건하다.

        그러면서 두어달 버텨 봤다. 남편이 온화하게 달랜다. 보험 있을 때 해야지 일 그만두면 보험도 없어질거라며 이것 저것 다 검사 해 보잔다. 그건 그렇다. 위암이라면 이상구박사 세미나에 가서 제대로 하나님 만나서 치료 받으면 되지. 나 혼자 걱정하고 겁내고 이럴 일이 아니라고 맘을 바꿨다.

        좋으신 하나님 다시 만나 하나님께 맡기고 이걱정 저걱정 모두 벗어 버리면 될 일을 왜 내가 이리 못난 생각을 하면서 피를 말렸을까. 이건 바로 사단이 우리에게 주는 나쁜 생각이다. 하나도 이롭지 않은 생각을 그리도 끈질기게 했다는 건 악령에게 괴롭힘을 당한 것이다.

        새벽 첫 시간으로 약속을 잡고 남편과 함께 병원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지독히 걱정해서 내가 내 키 한치 크게 할 수 있는가? 아무것도 내 스스로 하지 못하면서 걱정은 무슨 걱정을 하나?  하늘에 맡기는 일이 이리도 쉬운데,

         접수하고, 준비하고, 5분 동안 입안에서 위 맨 아랫부분까지 촬영 하고, 마취 깨기 기다리고, 깨끗하고 정상이란 의사 말도 비몽사몽간에 듣고, 남편에게 의지해서 집에 돌아와 다시 잠에 빠진다. 마취 깨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두어 시간 단잠 후에 맑은 정신으로 검사 결과를 읽는다. 사진까지 다섯 장 있다. 설명과 함께 보이는 내 위 사진이 어쩜 이렇게 예쁠까. 색깔도 고운 다홍빛, 모양새도 반듯하고, 어느 한 부분 다친 곳도 없고, 갓 태어나, 한 번도 일을 안 해본 위 처럼 보인다.

         오늘 이 시간 까지 혼신을 다해 일해온 나의 밥통. 그 동안 사랑 해 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 이제 부턴 특별하게 사랑 해 줄께.  과식하면서 너를 과로 하게 아니 할거구,  치아가 하나도 없는 네게 무조건 꿀꺽 꿀꺽 넘겨 주던 음식들은, 입안에서 어금니들이 아주 잘게 쪼개고 쪼개어 침으로 소화를 시킨 후에 네게 보내도곡 하구, 짜지 않고, 맵지 않고, 순한 음식들만 신경써서 먹도록 할게, 그렇게 하면 사랑 해 주는 거 맞지? 내 밥통에게 고마운 마음 어찌 다 말할 수 있을까. 살며시 두 손으로 쓸어 주며 사랑한다 말해 주니 따스하니 응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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