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담 빠담"

2013.10.12 01:21

sonyongsang 조회 수:326 추천:46

“빠담 빠담”


공원 산책길에서 코끝에 스치는 바람 냄새를 맡으니 이제 완연한 가을입니다. 엊그제만 해도 이 더위가 언제 물러갈까 싶었는데 어느덧 귀뚜라미 울어대는 가을이 왔습니다. 바람 끝은 서늘하고 뭉게구름이 하얗게 피어난 하늘은 높기만 합니다.

하지만 가을이 되면 왠지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두근두근’은 프랑스어로는 ‘빠담빠담’이라 합니다. 이 말은 1950년대 프랑스 샹송가수 에디트 피아프인지가  부른 노래 ‘빠담 빠담’으로  유명해진 단어입니다만, 그래서인지 노래의 가사처럼 가을이 되면, 가을이 되면 가슴이 두근두근… 해지며 저는 마음이 조금 숙연해 집니다. 그리고 내 자신에 대해서, 또 내 살아온 삶에 대해서 생각하곤 합니다. 세상의 온갖 허세는 다 부리고 다녔으면서도 때 늦게도 바람 끝에 나뭇잎 하나 노랗게 물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허전해지고 뭔가 회한(悔恨)이 남는 것은 이제 조금쯤 ‘겸손’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수필가 박완규씨의 글에 ‘모죽’이라는 대나무 얘기가 있습니다. 이 모죽은 씨를 뿌리고 5년 동안 땅 위로는 하나의 싹도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5년 동안 모든 성장은 땅속에서만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만약에 나오더라도 1cm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순이 땅 위로 조금 나올 뿐이라는데, 그러다가 다섯 번째 해가 끝나갈 무렵의 어느 순간부터는 하루에 80cm씩 무서운 속도로 자라난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거의 25미터에 이르는 엄청난 크기로 자란답니다. 그렇게 한 순간에 커서 비바람 속에서도 눈보라 속에서도 100년을 견디며 살아간다고 합니다. 5년 동안 땅 위에 보이지 않던 나무가 하루아침에 이렇게 클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렇다면 모죽에게 5년 동안의 시간은 과연 어떤 시간이었겠습니까? 모죽은 5년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던 것이 아닐 것입니다. 땅 속에서 뿌리를 견고히 내리면서 모진 세월을 견디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장을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했을 것입니다. 그러한 준비 때문에 때가 되어 땅 위에 올랐을 때, 다른 어떤 식물보다도 빨리 그리고 높이 자라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더디 크는 것 같고, 언제 클까 싶은 사람도 어느 순간에 모죽 크듯이 쑥쑥 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남들 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인내하며 때를 기다린 사람들입니다.

살다보면 사람들은 가끔은 자존심이 몹시 상할 때도 있습니다. 누구라고 다르겠습니까만, 언젠가 어느 큰 회사의 임원으로 있는 친구가 뭔가에 심히 속이 상해서 회사를 그만 두고 싶다는 말을 했습니다. 남부러울 것 없는 친구도 그럴 때가 있었나 봅니다. 하지만 그때 그가 그런 마음을 누르고 참을 수 있었던 까닭은 나중엔 ‘잘될 것’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고 했습니다. 언젠가는 이러한 것을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란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지요.

‘내가 회사를 나와서 작은 회사의 사장이 된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니 그냥 참고 견뎌야 한다, 세상사는 일 모두가 마음먹기 따르는 것 아니겠나…’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고 합니다. 이렇듯 참아야 할 때 참을 줄 아는 것도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묵묵히 속으로 삭힐 줄 아는 것도 큰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모든 일에는 때가 있나 봅니다. 무언가를 심을 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습니다. 호미를 들 때가 있고 낫을 들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때의 선택이 인생사 모든 결정의 핵심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때를 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때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스스로가 충동적이고 즉흥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지요.

기분 나쁘다고, 밉다고, 자존심이 상하다고 감정에 치우쳐 결정한 일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 가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의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포기하는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현재를 낭비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사람은 그 준비의 시간이 지나면 그 안에서 엄청난 성장이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 모두가 ‘모죽’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이 시대 이 가을,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 모든 분들에게, 그리고 저 자신에게도 함께 권하고 싶은 말입니다. 언제까지 우리가 서로간의 질시와 마음속의 방황, 그리고 그로 인한 아픔만을 가슴에 품고 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우리가 무엇을 인내하고 무엇을 노력해야 할지... 그 답은 각자가 겸손하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스스로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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