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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선의 아름다움/롬바드 꼬부랑 길(Lombard Crooked Street in San Francisco)                                                               

   샌프란시스코에는 관광명소로 소문난 세계 제일의 꼬부랑 길이 있다. 이름은 롬바드 꼬부랑 길이다. 일 년 열두 달 두루피는 꽃 화단이 곱게 단장되어 있고 양쪽 길옆에는 러시아풍의 아름다운 콘도와 아파트 등 고층 건물이 즐비시 널려 있고 제일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바다 경관이 무척이나 아릅답다. 오른쪽으로는 유명한 베이 다리(Bridge of the Bay)가 보이고 앞으로는 그 유명한 앨커트래즈 섬(Alcatraz Island)이 보이고 부둣가(Fishermen's Wharf))가 보이는 전망이 시야를 사로잡는다.     

   샌프란시스코에 오면 꼭 이 길을 차를 몰고 구경을 해야 한다며 새크라멘토에 사는 딸이 이곳 관광을 적극 권유를 해서 집에 오는 길에 이곳을 마지막으로 들렀는데 가는 길이 너무 가파르게 높은 언덕길이라 겁이 들 컹 났다. 평평한 평지에만 살다가 급경사를 이룬 언덕을 차를 타고 올라가는 데 나는 공포에 새파랗게 질려 구경 안 해도 좋으니 제발 집에 돌아가자고 졸랐다. 딸은 막무가내로 꼭 보셔야 할 명물인데 무슨 말씀이냐며 고집을 부리며 운전을 계속했다.     

   거북이 떼가 달라붙은 것처럼 꼬리를 물고 일렬로 줄지어 급경사 언덕을 오르는 차들의 모습이 한 마디로 장관이었다. 이 위험을 무릅쓰고 꼬부랑 길을 관광하러 오다니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꼬부랑 길 제일 꼭짓점에 도달할 때까지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겁에 질려 딸의 눈치만 살폈다. 운전은 자기가 하는데 어머니가 무서워 할 이유가 없는데 오히려 내가 이상하다는 듯이 흘깃 쳐다보았다. 겁쟁이 노인네의 심정을 딸도 몰라주니 그 누가 알겠는가.    

   같이 따라온 두 손녀딸들이 가만있는데 할머니가 자꾸 무섭다고 하면 체면이 서지 않을 것 같아 입을 다물고 있지만, 속은 타들어 가고 입은 바싹 말랐다. 어릴 때부터 겁이 많았던 나로서는 알프레드 히치코의 스릴과 서스펜스 영화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아 공포에 질려 있었다. 정말 전율과 긴장감으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운전이었다. 워낙 급경사라 차를 잘못 운전하면 차가 자기 무개 때문에  뒷걸음 질을 한다. 그러니 어찌 무섭지가 않겠는가. 드디어 꼬부랑 길 꼭대기에 다다랐을 때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맨 꼭대기에서 아래로 펼쳐지는 꼬부랑길을 보니 어찌나 아름다운지 그동안 마음고생한 것 다 잊어버릴 수 있었다. 마치 산모가 애기 분만할 때 극도의 진통을 겪지만 태어난 아기를 보는 순간 모든 고통은 사라지고 평안이 찾아오듯이 내 마음에 기쁨과 평안함이 찾아 왔다.

   아래로 내려다보는 꼬부랑 길은 하나의 예술 작품을 감상하듯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막상 꼬부랑길은 덜 위험해 보이고 지그재그로 시계 추가 좌우로 왔다 갔다 하는것 처럼 꼬부랑 길로 되어 있었다  급경사 언덕을 아래로 직행하는 것보다 운전이 안전하고 훨씬 쉬워 보였다. 좌우 꼬부랑길로 왔다갔다 하면서 딸이 운전하고 내려오는데 얼마나 즐겁고 재미있었는지 모른다. 

   마음 놓고 주위를  살피며 내리막길을 즐기면서 내려 올 수 있어서 여간 기쁘지가 않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보지 않고 돌아갔으면 후회가 막급 했을 뻔했다. 고진감래란 말이 생각났다. 고통 뒤에 오는 희열은 참으로 값진 것이다. 나는 차를 타고 오면서 차 속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꼬부랑 길이 어떻게 이렇게 멋있게 보일 수가 있단 말인가. 한국 사람들은 “빨리빨리" 문화 속에 살다 보니 늘 지름길을 찾고 곧은 길을 찾고 돌아가기를 싫어하고 직선의 미를 사랑하면서 살아온 것 같은데 이 복잡하고 바쁜 항구도시 샌프란시스코에 이런 꼬부랑 길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인생이란 길을 걸어가고 있다. 험난한 길일 수도 있고 평탄한 길일 수도 있다. 길은 곧은 길이 정도라 할 수있겠지만 성공의 가도를 줄곧 달리다가 내리막길을 갈 때는 걷잡을 수 없이 내려간다. 이런 삶은 순풍의 돛단배처럼 잘 나가다가 풍랑을 만나면 배가 파선 되듯이 풍랑을 피해 갈 방도가 없다. 꼬부랑길처럼 주위를 살피며 좌우로 왕래하며 길을 오르든지 내려 가든지 꼬부랑 길을 간다는 것은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삶을 반추해 보는 멋을 지니게 한다. 

   실패도 해보고 성공도 해보고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맛보고 성공한 사람들의 살아 온 길은 뒤돌아보면 꼬부랑 길처럼 참 멋있게 보인다. 인생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하나의 예술작품을 빚기 위해 고진감래의 덕을 쌓아 올렸기 때문이다. 직선의 길은 무미건조하고 맛과 멋이 훨씬 작을 것 같다.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직행 길을 택해 이 땅에 오셨지만 가실 때는 꼬부랑 길을 돌고 돌아 십자가의 길을 택하시고 멋있는 삶을 사시다가 가셨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성공의 직행 길을 계속 달렸지만, 섹스 스캔달로 명성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직행 길을 걷고 있다.  어렵게 성공과 실패를 거듭한 꼬부랑 길을 걸어 명성을 얻었다면 그가 쉽사리 섹스 스켄달로 그의 명성이 무너지지 않았을 텐데 아쉽기 그지없다.     

   나는 알베르 까뮈의 소설 ‘시지프스의 신화’를 생각해 보았다. 시지프스가 돌을 굴려 산꼭대기까지 올라갔을 때 꼬부랑 길로 올라갔을 까 아니면 직행으로 올라갔을 까하고 생각해 보았다. 내 생각에는 직행으로 올라 간 것 같다. 그가 만약 꼬부랑 길로 돌을 굴려 올라갔다면 돌이 쉽사리 아래로 굴러떨어지지 않았겠는가 하고 말이다. 그의 고통이 훨씬 덜했을 텐데 하고 혼자 생각해 보았다.      

   롬바드 꼬부랑 길이 왜 유명한 관광명소가 되어 사람들이 그 꼬부랑 길을 차를 몰고 한번 가보고 싶어 할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외관상으로 보기만 좋다고 관광명소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꼬부랑 길이 무엇이 대단하다고 유명해지겠는가. 급경사 언덕을 힘들여 직행으로 올라간 후 그 꼬부랑 길을 차를 타고 내려가는 기분은 그 길을 가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가 되지 못하리라. 얼마나 통쾌하고 상쾌한지 경험을 해본 사람만이 그 묘미를 알 것이다. 그래서 그 롬바드 꼬부랑길은 곡선미가 아름다운 여체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리라.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꼬부랑 길이 되지 않았을까. 샌프란시스코에서 부동산 가격도 제일 비싼 곳이 되었다고 하니 그 값어치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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