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4 월의 학우들을 생각하며

2015.04.06 13:33

김수영 조회 수:205 추천:1

그때 그 시절 사월을 생각하면

   사월이 오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많은 추억이 안개꽃처럼 곱게 피어오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아득한 옛날이 되고만 대학 학창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교에 입학하여 2학년에 막 접어들 무렵 나에게 잊히지 않는 큰 사건이 벌어졌다. 이승만 대통령의 3.15부정선거에 항거하여 4.19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그 이후 나는 로맨틱하고 감상적인 문학 소녀적인 환상의 세계에서 벗어나 꿈같은 현실과 달라질 조국의 새 아침에 자꾸만 흥분되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정의를 외치다 쓰러져 간 무수한 학생의 영령에 추모의 물결이 일렁이고 있을 때, 부패의 정권에 아부하던 지성인들이 하루아침에 급조된 애국자가 되어 자기만이 구정권에 반항하여 싸워온 투사인양 나팔을 불어 대고 있는 것을 보며 환멸을 느끼기도 했다.

    ‘알베르 까뮈’는 ‘행동하는 지성’을 강조한 사람이다. 나치스의 포악한 군대들이 프랑스를 짓밟았을 때 프랑스의 지성은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사수하고 조국의 해방을 얻기 위하여 ‘레지스탕스’의 횃불을 높이 치켜들었다. 행동하는 지성 반항하는 지성이었다. 그때 우리는 왜 그런 지성을 갖지 못했을까. 권력 앞에 꼼짝도 못 한 지성들 때문에 조국은 얼마나 멍들고 병들었던가. 자유를 고문하고 양심을 학대하며 정의를 짓밟고 진리를 무시하는, 모든 불의와 부정을 고발하는 의로운 정신이 지성의 밑바닥에 도도히 흐르고 있어야 했다. 모든 부정과 불의에 과감하게 반항하는 앙시앵 레짐(ancien regime) 래지스탕스의 뜨거운 피가 지성을 이끌어 가야 했다.

     앙드레 지드는 말했다. 참된 지성인은 영원한 비판자, 영원한 창조자, 영원한 이상주의자라고. 참되고 올바른 지성이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세력이 되어야 할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T.S. Eliot은 시 ‘황무지’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 피천득 교수님이 이 시를 강의하실 때 나에겐 매우 난해한 시였다. 그러나 그 당시 세계제 일차대전이 끝난 다음 황폐해진 인간의 마음과 꽃이 피는 4월인데도 사망자들을 땅속에 묻어야 하는 비참함을 노래한 이 시는 그래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에게도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었다. 하지만 또한 소망의 달이기도 하다. 그때의 학우들은 불의에 항거하다가 꽃잎처럼 스러져갔지만 그들의 죽음이 정의의 민주주의 실현에 산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레지스탕스’의 기치를 높이 쳐들고 불의에 반항하다 죽어간 그날의 학우들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붉은 태양을 등지고 목숨의 마지막 절벽을 숨 가쁘게 넘어가던 그날의 학우들의 다 하지 못한 말 한마디에 맺혀있는 여운을 우리는 잊지 말자. 피를 토하며 쓰러져 간 그날의 어린 비둘기, 비들기들의 고운 마음을 영원히 우리의 것으로 하자. 

     55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2세들은 학업을 중단하고 거리로 뛰쳐나와 자유와 정의를 위해 맨주먹으로 싸우다가 죽어간 선배들의 넋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중앙일보 오피니언 이 아침에/4월 1일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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