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고통

2011.12.29 01:33

김수영 조회 수:817 추천: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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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고통                                        

     

   우리가 애지중지 아끼던 소장품이나 소지품을 잃어버리게 되면 허탈감에 사로잡히게 되고  마음이 아려온다. 더구나 자녀나 배우자나 부모님을 잃게 되면 그 아픔은 극에 달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런 변수가 생기지 않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오즉하면 호사다마란 말이 생겨났겠는가.       

   나는 평생 처음으로 십 여일 전에 아끼던 자동차를 도적 맞았다.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끝내고 수영장으로 들어가려고 탈의실(Locker room)에 들어가 옷장 문을 열어보니 차 열쇠가 없어졌다. 깜짝 놀라 주차장으로 나가 보니 아끼던 차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정신이 아찔했다. 오후 4시경이라 아직 환한 대낮인데 차 도적을 맞다니 어안이 벙벙하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눈 있어도 코 비어가는 세상이라더니 잠깐 방심한 사이 이런 이변이 일어나고 말았다. 남을 탓 할 일이 아니었다. 자동차 열쇠를 항상 운동복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데 이날은 딴 곳에 정신을 쓰느라 깜박하고 옷장에 넣고 말았다. 한 다발 열쇠 꾸러미를 통째로 잊어버리게 되어 더욱 속이 상했다. 집에 속한 모든 열쇠를 아들 집 열쇠와 함께 달아 두었다. 자동차 열쇠만 달랑 들고 가야 하는데 따로 분리한다면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기어코 변을 당한 후에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다.       

   운동 기기에 앉아 운동울 하다 보면 시간 보내는 것이 아까운 생각이 들어 운동하면서 책을 읽는다. 몇 장 안 남은 책을 오늘은 모두 완독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책 읽는 데만 신경 쓰느라 들고 다니기 무겁다는 생각에 열쇠를 소흘히 간수한 것이 나의 불찰이었다. 경찰과 보험회사에 자동차 도난 신고를 한 후 여흘이 지났지만, 자동차를 찾았다는 연락이 아직 감감소식이다. 찾는 확률이 반 반이라고 하니 찾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물건들이 차 안에 있었고 서류도 있었는데 정말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속이 상해 이틀 동안 잠을 설쳤다. 딸이 한 달 전에 예약해 둔 비행기 표 때문에 할 수 없이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새크라멘토를 향해 옮겼다. 나는 비행기를 타고 지상에 있는 자연경관을 내려다보면서 도적질한 그녀를 축복해 주어야지 결심하고 나니 어찌나 마음이 편한지 근심걱정이 싹 가시었다. 도적질 한 여자가 얼마나 차를 갖고 싶었으면, 아니면 돈이 필요해 차를 팔아서 돈을 쓸 생각으로 차를 훔쳐 갔겠나 생각하니 그녀가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새 차를 사서 오늘날 까지 즐기면서 운전을 해 왔는데 다른 사람에게 즐거움을 나누어 주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닌가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자동차 보험회사에서 보상이 나올 것이고, 좀더 좋은 차를 살 기회가 나에게 주어질지 모른다고 생각해 본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결정했다. 마음을 고쳐 먹으니 평온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한 사건을 놓고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즉 긍정적으로 보느냐 아니면 부정적으로 보느냐에 따라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질 수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성계와 무학대사 생각이 났다. 조선의 시조 이태조가 왕이 되기전에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아흔 아흡 칸 기와집에서 잠을 자는데 갑자이 천정이 무너져 내려앉았다. 다행히 죽지 않고 살아남았는데 떨어진 서까래  등에 걸머지고 걸어 나오는 그런 꿈이었다.      

   하도 꿈이 이상해 해몽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사방으로 수소문한 결과 강원도 금강산 어느 절에 유명한 스님 한 분이 역학으로 해몽을 아주 잘한다고 해 그분을 찾아갔다. 이성계로부터 꿈 얘기를 다 듣고 난 이 스님은 눈을 지그시 감고 혼자서 한참 중얼거리다가 마침내 무릎을 탁 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꾼 꿈은 길몽이요. 당신이 머지않아 임금이 될 꿈이오. 일어나서 서까래 세 개를 등에 걸머매고  바로 임금 왕(王)자이기 때문이오” 톡톡히 사례하고 송도로 돌아온 이성계는 그 뒤 위화도(威化島) 회군(回軍)으로 조선을 건국하여 초대 왕이 되었다. ” 이 대답에 기분이 좋아진 이태조는 또다시 “다 같은 사람의 눈인데 어찌하여 내 눈에는 당신이 돼지로 보이는데 당신 눈에는 내가 부처님으로 보이는가.”하고 반문했다.       

   그제야 긴장을 풀고 웃음 띤 얼굴로 무학대사는 입을 열었다. "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왜냐하면, 돼지의 눈에는 돼지밖에 안 보이고 부처님의 눈에는 부처님밖에 안 보이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하면 무학대사 자기는 부처님이고 이태조는 돼지에 불과하다는 대답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이 대답에 이태조는 꿇어앉아 자기의 잘못을 크게 사과했다는 일화가 지금까지 조선 야사 속에 전해 내려오고 있다.      

   위의 얘기에서 알 수 있듯이 다 같은 사람의 얼굴인데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돼지로 보이기도 하고 부처님으로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비행기에서 내려서 보고 싶었던 딸네 가족과 기쁜 상봉을 했다. 마음을 단단히 먹었는데도 막상 딸네 집에 도착하니 나를 웃음으로 반겨 주시던 살아 있을 때의 사부인 생각이 자꾸 나서 손녀들에게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천국 가면 만난다며 손녀딸들의 위로에 감동한 나는 믿음을 물려 준 할머니가 얼마나 감사했는지 감사의 눈물이 계속 나왔다.      

   내가 사는 곳에서 자동차를 도적맞아 처음에 충격으로 울적했던 마음이 남아 있었는데다 사부인마저 눈에 보이지 않으니 두 가지 일이 겹쳐 눈물을 더욱 흘린 것 같다. 손녀들은 나를 위로하느라 풀룻을 불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갖은 아양과 애교를 부렸다. 작년까지만 해도 크리스마스 선물을 손녀들에게 받아 보지 못했는데 나를 위로 하느라 할머니에게 유산으로 받은 보석들을 많이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손녀들이 커지는 모습에서 어릴 적 딸 모습이 생각나서 눈시울을 적셨다.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사도 바울처럼 범사에 감사하며 항상 기뻐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니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은 이 세상 그 누구도 빼앗지 못하리라. 상실했을 때의 고통을 통하여 더 좋은 것으로 더 많은 것으로 채워진다는 하나님의 진리 말씀을 통해 한 걸음 더 성숙한 나의 믿음을 보게 되었다./추억의 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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