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찬가

2011.08.12 15:25

김수영 조회 수:788 추천: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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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찬가(讚歌)                                                         金秀映       


   어린 소녀 시절 여름방학이 되면 시골 고향으로 내려가서 그곳에서 친구들과 한여름을 보내고 집에 돌아오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내 마음을 항상 설레게 했다. 고향에 들어가는 초입에 아름드리 큰 소나무가 버티고 서 있어서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 같이 느껴져 어머님 품 안처럼 마냥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지나가는 나그네들에게 우산처럼 두 팔을 벌리고 환영하는 것 같아 아주 좋은 쉼터가 되었다. 특히 여름철이면 매미가 울어대어 시골 정취가 물씬 풍겼다. 겨울철에 온 누리가 눈으로 하얗게 뒤덮였을 때도 이 크나큰 소나무는 홀로 눈옷을 하얗게 입고 초록 살갗을 드러내며 바늘 같은 뾰족한 잎들이 서로를 찌르지 않고 나란히 눈보라에 나부끼는 모습들이 정겹기까지 했다.       

   까치들이 둥우리를 만들 때는 마을에서는 경사 났다고 좋아들 했다. 새벽부터 ‘까 까 까’ 하고 울 때는 길조가 보인다고 노인들이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해에 6.25 전쟁 시 전사했다고 보고 처리된 청년이 포로수용소에 있다가 석방되어 살아서 돌아온 예기는 이 청년을 영웅으로 만들었고 그 덕택에 이 소나무는 더욱 이 마을 주민에게 사랑을 받아 왔다.        

   이런 아름다운 추억 때문에 나는 소나무를 무척 좋아하게 되었다. 성장하면서 소나무를 더 좋아하게 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나는 겨울을 무척 싫어하는데, 첫째 추워서 싫고  두 번째는 식물들이 대부분이 다 죽기 때문에 주위가 너무 황량하고 쓸쓸해서 싫다. 그런데 유독 소나무만은 얼어 죽지않고 그 푸르름을 혼자 뽐내며 추위에 몸과 마음이 떨고 있는 인간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한다. 높은 기개(氣槪)를 자랑하며 말없이 높이 서 있는 자세는 학처럼 고고(孤高)한 선비를 보는 것 같아 나 자신이 숙연해 지면서 옷깃을 여미곤 했다. 내 마음 속 한구석에 이렇게 자리 잡은 소나무가 점점 더 자라고 있는 것은 중학교 다닐 때 조선 시대 사육신이었던 성삼문의 단심가 시조 때문이었다.                  

   ‘이몸이 주거가서 무어시 될고하니/봉래산(逢萊山) 제일 봉(第一 峯)에/낙락장송(落落長松) 되야 이셔/백설(白雪)이 만건곤(萬乾坤)할제/독야청청(獨也靑靑)하리라’                 


   조선의 4대 임금 세종대왕의 대를 이은 문종이 재위 2년 만에 병사하자 그 아들 단종이 열두 살의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단종의 숙부인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단종 재위 3년 만에 수양대군이 임금이 된다. 집현전학사 성삼문과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등이 단종 복위와 반역파 숙청을 도모하다 발각돼 성삼문은 39세를 마지막으로 처형됐다. 성삼문이 거사 실패로 잡혀 고문을 받을 때 세조가 묻는다. 거취를 분명히 하라고 했을 때 성삼문은 위의 시조를 읊어 단종을 위한 절개가 변함이 없음을 보여주자 결국 죽임을 당하게 된다.       

   6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 시조를 종종 읊을 때마다 감회가 새롭고 가슴이 벅차오른다. 왜냐하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나무가 이 시조에서 성삼문의 변절되지 않는 단종에 대한 충절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좋아하는 소나무를 한국에서는 아파트에 살아서 심어 보지 못했고 미국 와서는 정원에다 심으려고 했어도 값이 너무 비싸서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벼르기만 하다가 작년에 두 그루의 소나무를 앞 정원과 뒤 정원에 각각 심게 되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내가 사는 시에서 무상으로 여섯 그루의 나무를 주었는데 그중 두 그루의 소나무를 골라서 심은 지 일 년이 지났는데 벌써 30인치가 더 자랐다. 자주 물을 주면서 소나무를 바라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빨리빨리 자라서 큰 그늘을 드리우고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고 내 삶의 활력소가 되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소나무 뒤에는 인조바위로 인공 분수대를 만들었는데 소나무가 자라서 그늘을 드리우면 항상 물이 흘러넘치게 하여 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살고 싶다. 지금은 햇빛이 내려 쬐기 때문에 물 아끼느라 항상 틀어 놓지 못한다. 내가 사는 시 당국에 감사한  마음 간절하다. 값비싼 나무들을 여섯 그루나 주었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겠는가. 부유한 시에서 사는 혜택이라 생각한다.       

   소나무는 외관상으로도 이렇게 향수처럼 동경의 대상이 되지만 실제로 인간이 살아가는데 많은 유익을 주는 나무다. 나무중에 가장 오래 사는 나무이고 목재로 건축재, 가구재, 기구재, 펄프재로 다양하게 쓰인다. 소나무에서 얻는 송홧가루, 송이버섯도 들 수 있다. 종류도 150여 종이 된다고 한다. 특히 그중 잣나무는 잣으로 인해 인간에게 더욱 사랑을 받는 소나뭇과의 일종이다. 잣은 예로부터 건강식품으로 널리 애용되고 있고 동맥경화 예방작용 등 신효한 효험이 있다고 한다.        

   요즈음은 사람이 죽으면 수목장으로 장례를 많이 치른다고 한다. 시인이기도 한 초개 김영태 화백은 작년에 타계했는데 강화도에서 수목장으로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우리 가족과는 각별한 인연을 갖고 있던 분이었지만 수목장에는 참석을 못 했다.       

   내가 죽으면 화장하지 말고 묘소에다 묻어 달라고 유언장을 써 놓았지만 만일 내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 수목장을 원하게 된다면 나는 분명 소나무 수목장을 원할 것 이고 소나무 사랑이 죽어서도 이어지기를 갈망한다. (2009년도 미주 문학 수필 신인상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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