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엿과 함흥냉면

2011.09.02 05:43

김수영 조회 수:1027 추천: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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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엿과 함흥냉면                                                         金秀映   

   조국을 떠나 이곳 미국에 온 지도 어언 30여 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다. 어머니 품처럼 늘 그립고 가 보고 싶은 조국이 있기에 이곳 이민 생활이 고달프고 힘들어도 잘 견뎌내며 참아왔다. 내 사랑하는 조국에는 두 오라버니가 아직 살아계시고 일가친척들과 부모님 선영이 고향에 있기에 고국 방문이란 말만 들어도 가슴을 설레게 한다.     

   고국에는 친구들이 또한 살고 있고 내가 먹고 싶은 한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어서 매우 좋다. 특별히 서울에 오면 꼭 찾아가는 식당이 있는데 오장동에 있는 오장동 함흥냉면 집이다. 서울에 갈 때마다 큰 오라버니께서 내가 함흥 회냉면을 좋아하는 줄 알고 꼭 이곳으로 나를 초대한다. 직접 냉면 면을 고구마 가루와 메밀가루를 섞어서 즉석에서 만들어 낸 냉면이라 면 맛이 아주 부드럽고 쫄깃쫄깃하여 생선회와 섞어서 비벼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또한, 육수 맛이 별미라 나는 따끈한 육수를 몇 잔이고 들이마신다. 식초를 약간 치고 설탕을 조금 넣고 참기름도 첨가해서 비벼 먹으면 땀이 나면서 온몸이 화끈해진다. 양념장을 더 쳐서 먹으면 더 맛이 나는데 매운맛에 콧잔등에 땀방울이 송이송이 돋아난다. 

   쌀쌀한 추위에 오그라든 몸이 화끈한 열기로 달아오르면 혈액순환이 잘되어 실핏줄이 늘어나 나는 술 취한 사람처럼 얼굴이 빨갛게 홍당무가 된다. 큰 오라버님과 올케언니와 함께 냉면을 맛있게 먹고 자리를 일어서는데 어찌나 맵게 먹었던지 귀가 얼얼하고 눈물이 질끈 나오고 목구멍이 칼칼하여 식당을 나오면서 연거푸 따끈한 육수를 들이마셨다.      

   서울에 올 때마다 오라버니 가족들이 이곳으로 나를 데려오지만 유독 요번만은 유별나게 맵게 먹은 것 같아 호호 입을 불었다. 차를 타려고 밖으로 나오는데 식당 앞에 호박엿을 파는 손수레에서 호박엿 두 봉지를 사서 올케언니가 내 가슴에 갖다 안겼다. "고모, 울릉도에서 만든 울릉도 호박엿인데 이것을 먹으면 입속에 매운맛이 삭 가시고 기분이 아주 좋아지니 마음껏 먹어요." 나는 언니가 나를 배려하는 마음이 고마워 콧등이 시큰했지만, 그것도 잠시 얼른 봉지를 열어 호박엿을 입에다 갖다 넣기 바빴다. 내가 먼저 먹고 모두에게 나누어 주었다. 호박엿을 입에 넣자마자 매운맛이 삭 가시고 입이 아주 개운했다. 

   오랜만에 먹는 엿이라 얼마나 맛이 좋은지 그만 맛에 취하여 현실은 잊어버리고 어린 시절 호박엿을 좋아했던 추억이 삼삼히 떠올랐다. 이 얼마 만인가. 호박엿을 먹어 본 지가 반세기 훨씬 전이었다. 우리나라가 일본으로 부터 해방되고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어린 소년 소녀들에겐 군것질할 다과류가 별로 없었다. 고작 눈깔사탕과 엿과 캐러멜 설탕가루 등등 ....,한창 자라는 어린이들에게는 엿이 큰 인기 품목이었다. 또한, 강냉이 뻥 튀김과 쌀 뻥 튀김도 인기 품목이었다. 

   해방의 기쁨을 맛본 지 얼마 안 되어 6.25 전쟁을 겪은 후 폐허 위에서 전쟁의 상흔을 딛고 재기의 꿈을 다지면서 온 국민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분연히 일어설 때 나는 그때 초등학교 졸업반이었다. 엿장수들이 손수레에 엿을 싣고 다니면서 "엿 사세요, 엿 엿입니다. 맛있는 엿입니다."하고 큰 쇠로 된 검은 가위를 딱딱 치면서 동네를 누비고 다녔다. 코 흘리기 어린이들이 하나둘 모이면서 엿장수 주위를 둘러선다. 돈이 없는 아이들이라 헌 고무신 찌그러진 알루미늄 냄비나 깡통 등 알루미늄 제품은 다 갖고 나와 엿과 교환하면서 엿을 사 먹는다. 영락없이 그중에 나도 끼어 있었다. 이 아이들 가운데 종 철이란 어린이가 있었는데 우리 동네에 살고 있었다. 육이오 전쟁 중 부모님께서 폭격에 맞아 돌아가시고 할머니와 여동생과 셋이서 살고 있었다.      

   고아가 된 종철이가 불쌍해서 엿장수한테 산 엿을 항상 나누어 먹었는데 하루는 종철이가 보이지 않아서 엿을 사 들고 집으러 찾아 가 보았더니 엉엉 울고 있었다. 영문도 모른 채 방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하면서 할머니가 살아생전 엿을 잡수고 싶어 하셨는데 자기 혼자만 먹고 할머니를 한 번도 드리지 못했다며 통곡을 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후회가 막급했다. 내가 못 먹더라도 엿을 할머니 드리라고 주었어야 했는데…그 후 종철이와 여동생은 보육원으로 보내졌고 그 후 통 소식을 알 수가 없어서 서로의 연락이 두절되고 말았다. 그 후 수소문을 해서 알아보았더니 어느 선교사의 도움으로 미국가정에 입양되어 미국에 갔다는 소식을 듣게 되어 그나마 안심을 하게 되었다.      

   지금쯤은 종철이가 할아버지가 되어 미국 어디엔가 살고 있을 텐데… 한국 와서 정말 오랜만에 호박엿을 먹게 되니 그 종철이가 생각이 나면서 소식이 몹시 궁금하다. 그 당시에는 어린이 놀이터도 없고 장난감도 없고 방과 후 어린이들이 갈 곳이 없었다. 나는 친구들과 이 엿을 먹으면서 구슬치기 제기차기 땅따먹기 등등 놀이를 한참 하고 나면 지칠 것 같은데 지치지 않고 계속 아이들과 어울려 놀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엿이 에너지의 근원이 된 셈이다. 이 엿은 향토 맛이 물씬 풍기는 우리나라 옛 정서가 담겨 있고 어머님 품처럼 향수에 젖을 떼면 이 엿이 항상 머리에 떠오르곤 한다. 

   요즈음처럼 친환경 식품을 찾는 이때 자연의 최상급의 식품으로 간주한다고 한다. 통 겨 보리로 싹을 틔워 엿기름가루를 만들어서 끓여 꼬아 만든 것이 조청이 되고 나중에 하얀 엿이 되는데 설탕이 전혀 안 들어가서 건강식품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이 울릉도 호박엿은 엿기름과 단호박으로만 끓여 꼬아 만든 것이라고 한다.단호박에는 비타민 A가 풍부하고 그 외 영양분이 담뿍 들어 있다. 이 호박 엿을 먹으면서 어찌 감회가 깊지 않겠는가. 이젠 눈을 비비고 보아도 찾을 수 없는 엿장수이고 엿이다.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 아낙네들이 관광지에서 호박엿을 팔고 있어서 얼마나 반갑고 기뻤던지 많이 사서 먹은 기억이 떠올랐다.      

   시골 길거리에서 엿을 팔던 엿장수가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조국 근대화에 밀려 그 자취를 아예 감추어 버리고 기억에서 사라진 지가 까마득하다. 요즈음 막걸리 술도 부활했는데 옛날에 먹던 엿도 다시 살아나 엿 장수는 못 본다 해도 언제든지 사 먹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요즈음 태어난 아이들은 그 당시 가난과 배고픔을 어찌 상상이라도 하겠는가. 문명의 모든 이기를 다 누리고 사는 아이들은 분명히 복 받은 아이들이지만 그 옛날 그 시절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엿을 사 먹던 애들의 티 없이 맑았던 동심을 찾아 볼 수 있을는지…. 엿을 사서 서로 정답게 나누어 먹던 어린 시절의 인정이 몹시 그립다. 그 가난을 딛고 일어서 조국 근대화에 일익을 담당한 조상이 있었기에 오늘날 후손들이 이만큼이라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요즈음 아이들은 알 수가 있을까.     

   엿기름 엿이나 호박엿이나 꿀맛처럼 달게 간식으로 즐겨 먹던 그 시절이 향수처럼 내 마음을 파고들어 언니가 사준 호박엿을 계속 먹으면서 차를 타고 집에 오는데 어찌 세월이 이처럼 무정히도 흘러갔는가 생각해 보았다. 무상한 세월이 아쉽기만 했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함흥 회냉면을 맛있게 먹고 세월 속에 잊혀간 호박엿을 맛보았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는 듯 기쁜 하루를 보냈다. 종철이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생각하면서…(2010년)/늘 추억의 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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