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신사의 호의

2010.02.27 10:56

김수영 조회 수:772 추천: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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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 신사의 호의          


   여행은 우리의 단조로운 일상생활의 리듬을 깨고 변화를 가져와 새로운 삶으로 비약하고 도전하도록 하는 충전기와 같아 힘찬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그래서 여행을 갔다 오면 심기 일변하여 활기찬 삶으로 인생을 재 조명하게 된다. 여행을 좋아하고 여행을 많이 한 사람일수록 견문이 넓어지고 안목이 높아져 보다 풍성한 삶을 누릴 수가 있다.    

   여행을 즐기지 못하고 한 곳에만 머물러 사는 사람을 일컬어 우리는 흔히 '우물안의 개구리’라고 한다. 보고 듣는 것이 없다 보니 속이 좁아 이해심이 부족하고 다람쥐 쳇바퀴도는 식의 인생을 살다 보니 한 자리에 계속 정체 된 삶을 살아 인생이 지루하고 고루하게 느껴진다.    

   여행은 우리 영혼에 청량음료수와 같다. 생명수 한잔으로 갈증이 해소 될때 그 시원함과 통쾌함과 같이 여행은 쌓인 스트레스를 확 풀어 주어 정신건강과 육체건강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일과 여행은 톱니바퀴가 만 물려 돌아 가듯이 둘은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다. 일만 해도 안 되고 여행만 다녀도 안 된다. 두 가지가 적당히 조화를 이루며 상부상조하면서 인생을 살아 갈 때 멋있는 삶을 누릴 수가 있다.    

    올해 시월 고국 방문길에 꼭 제주도 관광을 해야겠다고 계획을 세웠다. 제주도 가 본지도 퍽 오랜만이었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제주행 비행기를 갈아타고 한 시간 만에 제주도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밟아보는 제주도의 땅. 특유의 흙냄새가 물씬 풍겼다. 물고기 비린내와 함께 내 코를 자극하면서 삼다도의 제주도가 꿈속에서만 맴돌다가 드디어 내 눈앞에 아름답게 전개되고 있어서 감회가 깊었다. 제주도는 돌이 많고 해녀가 많고 바람이 많기로 유명해 나는 관심을 두고 관찰하기로 했다. 오후가 되어서 바닷가에 가서 바다를 구경하고 모두 잠들이 부족해 저녁 식사 후 일찍 호텔로 돌아가 휴식하기로 했다. 그다음 날 본격적인 관광을 하기로 하고 각자 호텔 방으로 돌아왔다.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려고 잠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옆방에 체류하고 있는 다른 일행이 노크를 해서 문을 열었다. 어떤 분이 과일 한 바구니를 보내 왔는데 같이 나누어 먹자고 해서 나는 쾌히 승낙을 하고 옆방으로 가 보았다. 여러 종류의 과일을 가득 담은 예쁜 바구니가 놓여 있었고 조그마한 꽃다발도 그 속에  과일과 함께 들어 있었다. 빨간 리본에는 '제주 국제 컨벤션 센타 OO 이사' 라고 이름 두자가 적혀 있었다.    

   일행 중 한 분이 비행기 옆 좌석에 앉아 동승한 승객이었다고 했다. 사회적 신분도 높은 분인데 그 토록 제주도를 방문한 여행객들을 배려해 주는 마음씨에 다들 감동을 하였다. 이분은 70 여세로 보이는 전형적 영국 신사로 보였다는 것이다.    

   우리는 과일을 골고루 맛있게 나누어 먹었다. 제주도에서 거센 바람과 따가운햇살을 받으며 친환경 농사법으로 생산되는 유기농 과일들이었다. 밀감과 바나나 사과 배 등 종류별로 다양하게 맛있게 나누어 먹고도 많이 남아 각자가 방으로 몇 개씩 들고 왔다. 과일이 싱싱하고 매우 맛이 좋았다. 그분의 아름다운 마음씨가 베여 있어서 과즙이 목을 축일 때마다 과일 맛이 더 달콤하고 향기로웠다. 여니 때 먹을 때의 과일 맛과는 전혀 다른 맛으로 그분이 살아온 삶의 맛을 맛보는 것 같아 흐뭇하고 가슴 뿌듯했다.    

   이렇게 조그마한 친절이 우리들의 마음의 파도를 타고 무늬져 흘러 갈수 있을까.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와서 그 분을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이국 땅에 온것처럼 서먹한 이곳에 온 나그네들에게 이렇게 따뜻한 온정을 베풀어 주신 그분이 한없이 고마운 생각이 들면서 잔잔한 감동이 나의 피로를 싹 씻어 주었다.    

   제주도에 머무는 동안 그분의 아름다운 인격의 향기로 심취 되어 관광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너무나 청정한 바다물이며 화산 폭발로 용암으로 이루어진 검정색 현무암 기암절벽 해변은 정말 장관이었다. 태초의 자연 그대로 보존된 공해 없는유리알 같은 바다속으로 인어처럼 자유자재로 뛰어들어 전복을 따는 해녀들. 신기하기만 하였다. 

   신라호텔에 머무는 동안 새벽에 일찍 일어나 옥외로 나와 산비탈에 설치된 돌 나무 쇠 등으로 잘 다듬어진 수많은 층계를 따라 한참 내려가다 보면 가까이서 해변이 다 내려다 보인다. 검정색 현무암으로 온통 뒤덮인 해변. 모래사장은 찾을래야 찾을수 가 없다. 심 호흡으로 신선한 공기와 바다물 내음을 잔뜩 들이키면서 두 팔을 벌리고 찬란하게 떠 오르는 태양을가슴 가득 안아 보았다. 푸르다 못해 검푸른 출렁이는 바다를 바라 보면서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 를 생각하는데 이 노신사가 마음에 떠오르는 것이다.    

   제주도에서 30여년을 살았다는 이 노 신사의 마음씨가 제주도의 아름다운 자연에 동화 되어 빚어진 인격이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생면부지의 관광객들을 환영하는 따뜻한 마음씨가 민들레 꽃처럼 제주도의 바람을 타고 멀리멀리 날아가 어딘가 온정의 씨앗을 심어 꽃피우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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