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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장왕록 교수님 회상 – 따님 장영희 교수 타계를 애도하면서      


    2009년 5월 9일 장영희 교수님이 향년 57세를 일기로 암 투병 중 타계했다는 소식은 그녀를 사랑한 모든 독자나 지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고 장영희 교수는 동생이 졸업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고등학교 후배라서 잘 아는 사이라 동생은 책 출판 기념 사인회 사회까지 맡아 축하해 주었는데 동생의 슬픔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는 그녀의 아버지인 고 장왕록 교수님한테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영문과 재학시절에 영미 단편, 장편 소설 수강을 많이 했고 특히 대학교 일 학년 때 단편소설 섬머셑트 모엄의 ‘ Rain’을 수강해 너무나 소설도 인상적 이었지만 교수님의 탁월한 가르침에 깊은 감명을 받아 반세기가 지났는데도 그 강의가 너무나 생생하게 귀에 들려 오는 것 같아서 내가 쓴 수필 ‘오리무중 폭우 속에서’에도 언급 한 바가 있다. 수강한 소설 중에 특히 나다니 엘 호 손이 쓴 ‘The Scarlet  Letter’도 참 인상적이었고 노벨문학상을 탄 펄 벅 여사의 ‘대지’가 인상적이었다. 오 헨리의 단편소설도 많이 수강했다.         

   대학 재학시절에 펄 벅 여사가 한국 나오셨는데 소설 창작자와 번역자로 ‘바늘 가는 데 실 간다’는 말 대로 두 분은 늘 같이 다니시면서 우의를 돈독히 하셨다. 장 교수님은 20여 편의 번역 문고를 내셨고 후배 양성에 진력하셨지만, 장영희 교수를 영문학자가 되도록 아버지로서 오른팔 구실을 하신 훌륭한 아버지인 동시에 한 세대를 풍미했던 영문학의 거목이기도 하다.       

   펄 벅 여사도 한 딸이 지적 장애자로 고통이 있어서 늘 헬렌 켈러와 가까이 지냈고 장왕록 교수님도 장영희 교수님이 소아마비 지체 자로 서로가 통하는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어서 두 분이 더 가까워 졌을 것으로 생각한다. 처음 대학생활을 시작한 일 학년 때라 더 강한 인상을 장왕록 교수님으로부터 받은 것 같아 피천득 교수님과 함께 잊을 수 없는 은사 중 한 분이시다. 키가 후리후리하게 크시고 미남형 얼굴에 특히 날카로운 눈매는 번뜩이는 지성을 대변해 주셨고 영문학의 거장답게 유머와 웃음으로 강의를 잘 이끌어 나가시는 솜씨는 대단하셨다. 한가지 흠이 있었다면 강의 도중 가끔 말씀을 더듬을 때가 있어서 그것이 나로 하여금 매우 안타깝게 생각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 결점만 없었다면 명강의로 더욱 빛을 발하셨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늘 남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장왕록 교수님의 딸이 한 살 때 소아마비로 두 다리를 쓰지 못한 신체 장애인이란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을 때였다. 그 장애인 딸 때문에 얼마나 아픈 마음의 상처를 부 등겨 안고 살고 계셨을까 생각해 보았다. 엄청난 충격에서 오는 일종의 심리적 현상에서 말을 약간 더듬지 않았나 나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다.       

   4학년 마지막 학기 때 졸업논문 시험에 합격해야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며 마감일을 정해 주시었다. 졸업논문을 써서 장왕록 교수님께 제출하라고 장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나는 마감일보다 하루가 늦어서야 다 논문을 끝낼 수가 있었다. 부랴부랴 서둘러 장왕록 교수님 댁으로 직접 찾아갔다. 4년 동안 한 번도 장왕록 교수님댁을 방문해 본 적이 없었다. 아픈 딸이 집에 늘 있으니 마음에 부담이 되셨는지 놀러 오라는 말씀이 없었다. 부득불 논문 제출문제로 찾아가야 했음으로 집 주소를 알아 내어 찾아갔을 때 나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고 당황했었다. 두 다리를 못 쓰는 딸을 본 것이었다. 

   그때야 장왕록 교수님에 대해 석연치 않던 의문들이 풀리기 시작하였다. 그때 아팠던 마음이 아직도 내 마음 한구석에 있었는데 그 아픔을 주었던 장영희 교수님이 혜성같이 영문학계에 나타나서 매우 기뻤었다. 불구였지만 그 역경을 딛고 일어서 훌륭한 업적을 아버지와 함께 남기고 타계했으니 나는 애도의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장영희 교수님의 수필은 고통의 채에서 걸러낸 주옥같은 필체로 읽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특히 고통을 겪은 자나 겪고 있는 자들에게 크나큰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독자층이 넓어저갔다. ‘내 생애 단 한 번’ ‘문학의 숲을 거닐다’ ‘장영희의 영미시 산책-생일’ 같은 책은 몇 번을 거듭해 읽어도 감동이 되는 책일 것이다. 장영희 교수는 최근까지 수필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샘터)을 마무리하느라 바빴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기적”이라며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그는 이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아버지 고 장왕록 교수님이 안장된 천안공원묘지 원에 5월 13일 고 장영희 교수님도 안장 되셨다.        

   한가지 웃지 못할 슬픈 일화를 소개하고 끝을 맺을까 한다. 장왕록 교수님이 살아계실 때 대학교 여학생이나 젊은 교직원들이 치마를 입고 다니면 두 다리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주위 사람들은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험담을 했다는 것이다. 교수님이 젊은 여자들 다리에 대해 도착증에 걸렸다며 수군거렸다는 것이다. 오해는 오해를 불러오고 눈덩이처럼 굴러 심각한 상태였는데…..,석좌 교수님이신 장왕록 교수님이 해변에서 수영하시다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는 기사가 나자 사람들은 상상의 날개를 달고 비약에 비약해서 왈 ‘해변에서 여자 다리를 쳐다 보면서 여자 애인한테 들켜 떠밀려 물에 익사하셨다.’라고 까지…..그러나  고장영회 교수님이 아버지에 대한 부고 소식을 알림으로 모든 오해는 풀렸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웃지 못할 난센스인가! 즉 아버지는 두 다리를 못 쓰며 가느런 두 다리를 갖고 사는 딸이 불쌍해서, 싱싱하고 튼튼한 두 다리를 가진 젊은 여성을 보면 딸의 다리가 생각나 눈물을 글썽이면서 부러워서 쳐다보았다는 것이었다. 정말로 불난 데 키질하는 격이 되었으니 고인이 이 사실을 아신다면 피를 토할 노릇이 아닌가. 존경하는 장왕록 교수님, 그렇게도 아끼고 사랑하시던 따님과 함께 편히 고이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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