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강물처럼

2010.09.11 16:03

김수영 조회 수:857 추천: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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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강물처럼                                                                                                                    


   빨간 단풍잎 낙엽 하나가 강물에 몸을 눕히고 하늘을 향해 반듯이 누워 무슨 상념에 젖었는지 유유히 떠내려가고 있다. 강보다 더 넓은 바다를 그리워하면서 바다를 향해 어쩌면 떠내려가고 있는 것일까. 망망대해에 떠도는 일엽편주 인생 그 누가 방향을 잡아 줄 것인가. 한치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우리의 인생. 불행이란 복병이 인생 항로에 숨어 있다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우리를 엄습해 올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우리 교회에 나오는 마이클 아빠의 슬픈 인생 역정이 나의 마음을 짓누르고 무겁게 한다. 지난 주일 마이클 아빠가 집 정원에서 키운 대추와 포도를 엄청 많이 따가지고 교인들 먹으라고 교회 에 가지고 왔다. 봄과 여름 내내 물주고 정성 들여 가꾼 대추 열매와 포도 열매를 맛있게 먹으면서 그분의 정성에 콧등이 시큰했다. 건강한 사람이 농사지은 것이라면 그렇게까지 마음이 뭉클하지 안았을 텐데 몸이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농사를 지어 나누어 먹으려고 교회까지 들고 온 정성이 여 간 고맙지가 않고 감동이 되었다.       

   오늘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마이클 아빠네 집 심방을 가기로 하고 운전대를 잡았다. 초가을을 맞아 온산이 단풍이 들기 시작하고 야생화들이 누렇게 옷을 갈아입고 겨울 맞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자동차 핸들을 붙잡고 운전하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아름다운 빅 베어(Big Bear) 호수가 있는 동네에 살고 있다. 운전하면서 마이클 아빠를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이 가슴을 조여왔다.               

   마이클 아빠는 한국에서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유학 와서 computer engineering 을 전공해 석, 박사학위를 받고 북가주 IT 산업이 발달한 실리콘 밸리에 기업체를 설립 CEO가 되었다. 4년 동안 1.5 밀리언달라를 벌어들인 번창 일로의 유망한 기업체의 중년 사장이었다. 아내는 한국에서 약학박사 학위까지 받고 이곳에 온 그녀는 남편과 아들 뒷바라지하느라 살림살이에만 전념하였다.        

   다복한 이 가정에 불행의 먹구름이 덮칠 줄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북가주에서만 18년을 살았으니 북가주 일대의 지리는 훤하게 알고 있었다. 어느 날 하루 캘리포니아 101 프리웨이를 차 를 타고 혼자 달리고 있었다. 프리웨이 양편에 자리 잡은 산과 들판의 수려한 경관에 도취해 한 눈을 팔다가 핸들이 홱 돌면서 차가 한 바퀴 굴러 프리웨이 밑으로 떨어졌다.불행하게도 머리를 심하게 다쳤다. 혼수상태로 14 일 병원에서 지나다가 가까스로 깨어났었다. 그러나 머리를 심하게 다쳐 모든 기억력이 상실되었다. 말도 못하고 하반신 반쪽이 마비가 와서 다리를 질질 끌면서 걷고 팔도 쓰지를 못했다.       

   1998년도에 교통사고를 당했으니 올해가 꼭 12년째가 된다고 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면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성경을 파헤쳐 읽기 시작했다. 성령님의 감동으로 하나님 말씀이 아멘으로 받아들여진다고 했다. 이젠 말도 곧잘 하고 기억력도 생기고 걷기도 하고 치료의 과정에 있지만 언젠가 주님께서 완쾌시키시리라 본인도 우리도 믿고 있다.        

   그러나 아내가 안식교를 다니기 때문에 신앙의 갈등이 생기고 부부간에 불협화음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부부간의 애정이 금이 가기 시작했다. 급기야 아내는 3개월 전 한국에 아들을 데리고 약국에 취직한다며 나가 버리고 혼자 살고 있었다. 말은 떠듬거리고 발음이 정확하지 않고 어눌하지만 경청을 하면 뜻은 알게 된다. 한쪽 다리는 절룸 거리지만 그래도 혼자 걸을 수가 있고 가정부가 출퇴근하면서 음식과 가사를 돌보고 있다.          1.2 에이커가 되는 대지 위에 과일나무를 많이는 못 심었지만 11그루의 대추나무와 포도나무를 심어 놓았다. 아침저녁으로 물을 준 덕택에 탐스럽게 대추가 열렸고 포도도 청포도와 적포도가 송이송이 탐스럽게 열려 있었다. 새들이 못 쪼아먹게 그물을 쳐 두었지만 그래도 새들이 쪼아 먹은 대추들이 여기저기 눈에 보였다.       성도들과 나누어 먹겠다고 생각하면서 봄과 여름내 물주고, 가꾸어 온 결과 결실의 계절 이 가을에 풍성하게 열매를 거두게 되어 기쁘다며 대추를 따가지고 가라고 했다.  

   탐스러운 대추를 만지면서 그 분의 땀과 눈물과 정성과 사랑이 대추의 열매와 함께 주렁주렁 열려 있는 것을 보고 따면서도 어쩐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아침저녁으로 물 주는 일이며 그물 망사를 치는 일이며 예삿일이 아니었다. 그분의 사랑의 열매를 먹는 것 처럼 한 입 베어 먹으니 단맛이 나며 맛이 어찌나 좋은지 주님께 감사하고 그분께 감사했다. 사랑하는 아내가 아들과 함께 언젠가 돌아올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지만 모든 것을 주님 뜻에 맡기겠다며 전폭적으로 주님만 의지하는 그의 믿음을 보고 감격했다.      포도도 따 가지고 가라고 했지만, 너무나 탐스럽게 열린 포도를 만지면 터질 것만 같아서 포도는 따지 않고 그냥 두었다. 청포도를 바라보니 이육사 시인께서 읊은 ‘청포도’란 시가 생각 나 한번 소리 내어 읊조려 보았다. 그분을 조금이라도 위로해 드릴까 하고…..          

   

청 포 도 -이육사-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던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빡 적셔도 좋으렴,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 마련해 두렴.          


   내가 소리 내어 읊조리니 감회에 젖어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아내를 기다리는 마음이 시인이 손님을 기다리는 마음과 일맥상통한 것처럼 뒷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내도 없이 외롭게 혼자 살아가는 그를 뒤에다 남겨두고 떠나는 무거운 발걸음은 떨어지지 않았다. 

   집에 돌아 와 대추를 말려서 차를 끓여 먹으니 맛이 매우 좋았다. 냉장고에 오래 보관해 두면서 아침저녁 한 잔씩 마실 때마다 마이클 아빠의 정성이 담겨 있어 더욱 맛이 좋았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이 속히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마이클 아빠의 얼굴이 오늘따라 유난히 찻잔 속에 아른거린다.         

   마지막 대추를 수확하고 청포도와 적포도를 쟁반에 담아 테이블에 올려놓고 혼자 쓸쓸히 먹고 있을 마이클 아빠를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부디 실낙원이 복낙원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찻 잔을 들고 빅 베어 호수가 있는 산에 내 시야가 한참을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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