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무중(五里霧中) 폭우 속에서

2010.11.07 13:08

김수영 조회 수:941 추천: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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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무중(五里霧中) 폭우 속에서                                                                                        金秀映       


   노아 홍수 때 하늘의 창들이 열리고 땅속의 샘들이 터져서 40 주야를 비가 이 지구 상에 쏟아졌다고 한다. 얼마나 엄청난 비가 쏟아졌으면 온 지구가 물속에 잠기고 노아 방주만이 아라랏산에 떠올랐을까. 며칠 동안 얼마나 많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지 나는 노아 홍수를 연상했다.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노아 홍수만큼은 오지 않겠지 나 자신을 위로해 보지만 너무 많이 쏟아질 때는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가랑비, 이슬비, 보슬비 같은 비는 가뭄에 단비같이 인간에게 친근감을 주고 향수에 젖게 하고 비를 맞으며 정처 없이 걷고 싶은 충동을 주며 우리들의 감성을 돋구고 서정을 일깨워 준다.         

   그러나 폭우는 인간에게 재산과 인명피해를 가져오는 홍수를 초래해 슬픔과 고통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아 사람들은 폭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지구 온난화로 지구촌 곳곳에서 홍수 난리와 태풍, 지진 등 자연재해로 인류는 고통 중에 있다. 가주도 예외는 아니어서 폭우로 돌변한 비가 퍼붓자 곳곳에서 피해 보고가 속출하고 있다.       

   오늘도 어저깨처럼  여전히 비가 억수같이 내리고 있다. 아침부터 하늘이 캄캄해지더니 비가 퍼붓기 시작하는데 외출하기에는 마음이 영 내키지 않는 날이다. 비가 오는 날엔 왠지 마음이 우울 해 지면서 음악을 듣던지 독서를 해야 마음이 밝아진다. 폴 영(Paul Young)이 쓴 “오두막집(The Shack)” (뉴욕 타임즈 best seller 작품) 읽기를 끝내든지 “괜찮아, 살아 있으니까” (박완서, 이해인, 정호승외 다수 지음) 수필집을  완독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조용히 책을 읽고 있는데 여자 선배 목사님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2시까지 자기 집에 꼭 와달라는 부탁이었다.      

   왕복 몇 시간이 걸리고 200마일이 넘는 거리를 프리웨이로 장거리 운전을 한다고 생각하니 내 운전 실력으로는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간청에 못 이겨 승낙은 했지만 갈 일이 태산 같았다. 목사님 동네는 비가 전혀 안 온다고 하니 이곳 비 오는 사정을 알 턱이 없었다. 빗줄기가 좀 약해지면서 처음에는 별 어려움이 없이 운전을 시작하면서 프리웨이로 진입했다. 가다가 프리웨이를 4번이나 갈아타는데 처음 가는 초행길이라 마음이 불안 해 지면서 초조해졌다. 

   얼마 안 가서 폭우로 변하면서 장대비가 퍼붓기 시작하는데 앞이 보이지 않아 자동차가 기어가고 있었다. 하나님께 무사도착을 기도하면서 침착하게 운전을 할려고  마음먹어 보지만 불안감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마지막 4번째 프리웨이를 들어서는데 빗줄기가 좀 약해져서 안도의 숨을 내쉬며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이 마지막 프리웨이는 높은 산을 끼고 달려야 하는데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경치가 참 아름다웠다. 그동안 공포에 떨었던 마음이 풀리면서 안정감을 되찾아 살아난 기분이었다.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경관이 매우 아름다워 그동안 공포에 떨었던 악몽이 말끔히 가시고 상쾌한 기분으로 운전하게 되어 하나님께 감사했다.                바다도 좋아하지만, 산도 무척 좋아하는데 몇 년 전 텍사스 휴스턴에 갔다가 달려도 달려도 허허벌판만 보일 뿐 산을 보지 못해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선배 목사님 덕택에 힘들지만 산 구경 잘한다고 생각하니 감사한 마음이 생겼다. 프리웨이를 내려서 루손 벨리를 향해 달리는데 가도 가도 끝없는 광야를 달리는 것 같아 카우보이 주연 서부영화가 생각났다. 선배 목사님은 아름다운 빅베어(Big Bear) 호수  뒷쪽에 살고 계신다.       

   오후 3시에 도착하니 그곳은 전혀 비가 오지 않았다. 같은 하늘 아래인데 어쩌면 청천에 구름 한 점 없을까.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 목사님을 만나 식당에서 점심을 나누고 교 도소에서 나온 마약 중독자를 치료하고 교화하는 뉴라이프(New Life) 선교센터를 찾아갔다. 높은 산 중턱에 있는  이곳은 비포장도로여서 자동차가 그야말로 춤을 추면서 그곳에 도착하니 거의 다섯 시가 다 되었다. 

   그곳에서 선교하시는 남자 목사님을 만나 뵙고 선교에 대한 보고를 듣고 금일봉을 전달하고 어둠이 어둑어둑 깃들고 있는 그곳을 빠져나왔다. 집으로 돌아갈 일이 태산 같았지만 뿌듯한 마음을 안고 기쁨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집 쪽으로 바라보니 시커먼 구름이 하늘을 완전히 뒤덮고 있었다. 이곳도 군데군데 구름이 떠 있는데 직감적으로 저곳에는 엄청난 비가 오고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프리웨이를 들어서는 데 아니나 다를까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밤은 점점 더 어두워져 가고 비는 더 줄기차게 쏟아지고 앞은 잘 보이지 않고 올 때의 악몽보다 더 심한 악몽에 시달렸다. 두 번째 프리웨이를 갈아타고 들어서는데 설상가상으로  짙은 안개까지 자욱하게 껴서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아 두려움에 마음이 초조해졌다. 브레이크를 계속 밟으면서 기어가니 앞차 뒤차들이 경적을 계속 울려 대고 겁에 질린 체 조심스럽게 운전을 해 보지만 진땀이 온몸을 적셨다. 내 평생 이렇게 힘든 운전을 해 보기는 생전 처음이었다. 목사님 댁을 향해 갈 때는 폭우가 쏟아져도 안개는 끼어 있지 않았고 낮이라 그래도 밝았는데 집에 돌아올 때는 깜깜한 밤인 데다가 짙은 안개까지 끼어서 사지(死地)를 헤매는 기분이었다. 

   손에 땀을 쥐게 하고 전율과 긴장감으로 가득 찬 탐정영화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어서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나의 온몸은 겁에 질려 경직되어 긴장을 풀려고 안간힘을 썼다. 머리카락이 쭈뼜 일어 설정 도로 공포에 질려 운전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써머셋 모옴이 쓴 단편소설 “비(Rain)”가 생각났다. 지금 내 앞에 내리고 있는 장대비나 그 소설 속에 서 엄청나게 내리는 비가 비슷하게 연상이 되어서 갑자기 생각이 났다. 소설 속의 비가 나에게 너무나 인상 깊게 기억에 남아 일생을 잊지 못하고 기억하고 있는 소설인데 쏟아지는 비를 보니 이 소설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다.        

   대학교  일학년때 장왕록 교수님에게 흥미진진하게 강의를 듣던 단편 소설인데 그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르기 시작했다. 써머셋 모옴은 모파상에 버금가는 유명한 극작가 겸 단편 작가로 영국에서 태어나 1965년 서거했다. 화가 폴 고갱의 일생을 그린 “달과 여섯 페니(The Moon and Sixpence)”는  그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남태평양 튜틸라 섬 북쪽 사모아 군도를 향해 항해하는 배 한 척이 있었는데 그 배 안에 승선한 두 가족이 있었다. 의사 맼페일 부부와 선교지로 떠나는 선교사 에비드손 부부였다. 목적지에 도착하지만 홍역이 창궐하여 검역차 부둣가 상인 집에 방을 세 얻어 두 가족이 세들고 있는데, 비가 두 주 동안 밤낮으로 억수같이 퍼붓는 배경이 소설 내용을 더 침울하게 만든다.       

   주인 상인 집에 세든 톰슨이란 여자가 등장함으로 선교사 데이비드손을 파멸로 이끌고 간다. 그녀는 창녀로서 교도소 삼 년을 샌프란시스코에서 복역을 해야 하는데 오스트레일리아로 도망가서 은둔생활을 하려고 하자 선교사는 그녀를 설득시키고 죄를 회개시키기 위해 그녀와 일주일을 같이 지내면서 범해서는 안 될 선을 넘는다.         

   어느 날 선교사는 면도칼로 목을 베어 자살한 시체로 바닷가에서 발견되면서 비가 뚝 그쳤다. 이 소설 속에서  비가 이 주 동안 억수같이 퍼부었다. (It has been raining for two weeks cats and dogs.) 나는 이 소설 줄거리를 생각하면서 자살한 선교사가 참 안 되었다고 동정을 하면서 운전을 하느라 모든 공포를 잊을 수 가 있었다. 언제 집에 도착했는지 모를 정도로 나의 고통을 잊게 해준 고마운 소설. 이 소설 덕분에 집에 무사히 안착하여 긴장을 풀고 편안히 쉴 수가 있었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가운데 선교사 에비드손은 죄를 짓고 말았다. 비는 분명 인간의 마음을 홀리는 마력이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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