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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아미쉬 공동체의 라이프스타일

2022.02.08 12:40

양상훈 조회 수: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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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쉬 공동체의 라이프스타일

- 양상훈

  아미쉬(Amish)는 청교도처럼 유럽에서 종교탄압을 피해 1737년 미국으로 건너온 개신교의 한 종파이다. 첫 정착지를 펜실베니아주 랑케스터로 삼아 아미쉬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다. 필라델피아와 가깝고 기후와 토양 등 자연조건도 그들의 생업인 농사짓기에 좋은 환경이라 제2의 고향으로 선정해 보수적인 개신교의 집단적 공동체의 삶을 이루게 되었다.

 뉴욕에서 랑케스터 카운티까지는 불과 네 시간정도 운전 거리에, 문명과 단절된 세계가 존재 한다는 사실에 나는 신비스러움 마저 느꼈다. 그들의 삶의 핵심인 공동체의식에 호기심이 있었다. 그들은 이곳 외에도 오하이오주, 인디애나주 등 20여개 주로 확산되었다. 이중에서 랑케스터에 33천 명으로 가장 많이 거주하고, 다음 오하이오주 가 3만 명 정도가 살고 있다. 이 두 곳을 차례로 순례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자동차로 뉴욕에서 뉴저지를 거쳐 필라델피아를 경유 펜실베니아 입구 Dutch County 랑케스터에 돌입하였다. 미국이 부강한 나라로서 이들을 포용하는 종교적 관용정책을 시행하고 있기에 오늘의 풍요를 누리고 있지 않을까싶다.

눈이 덮인 하얀 들판에 세워진 농장주택들과 따뜻한 바람결에 빨래들이 휘날리고 있었다. 지난날 우리들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잊을 수 없는 장면들이었다.

 오하이오 주는 뉴욕에서 비행기로 수도 콜럼버스에 여장을 풀고 이튿날 광활하고 끝없는 지평선의 농촌평야를 원 없이 달렸다. 아미쉬 밀집 지역인 Berin의 마을 한복판 메노나이트 안내센터(Mennonite Information Center)에 도착하였다. 주위에는 야산과 같이 능선을 이루어 들판이 그림처럼 걸려 있었다. 이곳에서 푸짐한 홈메이드 독일빵과 우유를 사들고 답사하기 시작했다. 마을 입구부터 옥수수 땅콩 들판이 전개되면서 마을 앞 도로에는 가끔 마차가 지나갈 뿐 조용하였다. 기름진 농장마다 번호판에 Pioneer# 으로 정돈되어 세워진 푯말을 보니 정착시의 땀과 눈물의 애환이 서려있는 듯 느꼈다. 1시간이면 알 수 있는 Kidron이란 아미쉬 축소판 마을이 있다. 아미쉬의 가정 방문이 약속된 곳이라 여러 방면에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안심이 되었다.

 평소 아미쉬들이 전기와 전화도 사용하지 않고 자동차를 멀리하는 등 현대문명의 이기를 거부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집단이라고 인식해왔다. 그러나 두 곳의 아미쉬 집단지역에서 그들의 삶의 현장체험을 하고 많은 정보를 얻은 후 이런 편견을 수정하기로 했다. 그들은 과학문명의 발달로 기술문화의 변천을 받아들이는데 제한하는 것이지 자동차,TV,전화사용을 금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성경원리를 바탕으로 가족공동체의 구조, 신앙공동체 의식 등 고귀하게 유지해온 생활방식이 무너지지는 않을까 우려했다. 그들은 눈물과 땀으로 일구어놓은 기름진 땅에 초원을 이루었다. 사랑과 평화 속에 소박하면서도 여유 있는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성경의 원리를 기본으로 신앙공동체로서 공동체의식을 고양高揚하면서,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순박하고 정결 된 삶의 모습이었다.

아미쉬들은 현대문명을 거부하는 것은 물론이고 종교적 이유로 외부세계와 격리하고 있다. 다양한 문화와 민족이 어우러져 사는 이민자들의 국가에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신들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엄격한 룰인 오덩 ('Amish Ordung'일상적 공동체 규법 원칙) 을 적용하여 외부인과 뚜렷하게 구분한다. 그들만의 특이한 복장규정이 있다. 전기사용 금지 조치보다 더 엄격한 규정이다. 농장 일을 할 때도 짧은 옷을 입지 않고 무더운 여름 날씨에도 긴 웃옷을 입고 농사를 짓는다. 남자들은 예수가 턱수염을 길렀다는 성경구절을 따르기 위해 결혼직후부터 턱수염을 길러 평생 자르지 않는다. 여성들은 긴 머리를 감싼 하얀 기도모자와 앞치마를 12살 때부터 착용한다. 무릎과 발목 중간까지 내려오는 원피스 드레스를 입고 바지는 절대로 입지 않는다. 복장만으로 아미쉬를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이들이 현대문명과 거리를 두고 생활하며 그들만의 독특한 옷차림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앙은 자발적인 고백으로 결단하여 성인이 되어 믿음으로 세례를 받는 경우만을 인정한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는 시기 14-16세에 성인식 렘스프링가(Rumspinga)를 치른다. 이것은 예속된 공동생활을 계속 영위할지, 거부하고 밖으로 나와 부모나 교회간섭 없이 자유롭게 세상문명을 받아들일지를 선택하게 되어있다. 이 중대한 전환점에서 실제로 공동체의 제도를 따라가는 층이 90% 되고 보니 그 신앙적 파워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회공동체 가입은 성인이 되어 자발적인 의사에 따라 결정하게 된다. 기독교인이 되는 것도 자발적인 의지와 결단에 근거해야 한다. 교회가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을 돌 볼 의무가 있음을 강조하다보면 정부의 사회보장제나 보험제도 이용은 인색하게 된다.

아미쉬가 21세기 현대문명사회에서 주목을 받는 이유는 최신 문명수단을 단절한다는 점.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제도인 미국에서 고등교육을 거부하고 독립적인 자체교육과정으로 8학년까지를 고수한다는 점, 개인주의 미국에서 그리고 사회주의가 몰락한 현대에서 공동체적으로 생태친화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점이다. 아미쉬가 강조하고 고수하려는 실용교육이 정부와 대립관계를 초래했다. 결국 의무교육위반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감옥으로 가게 되었다. 그 후 대법원과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서 아미쉬인들의 독특한 교육시스템을 긍정적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아미쉬교육은 지적인 삶보다 미덕의 삶을, 전문적인 지식보다는 지혜로움을, 개별적인 경쟁보다는 공동체의 번영을, 세속과의 융합보다는 분리된 거룩한 삶을 지향한다는 그들의 교육 신념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아미쉬들은 국가에 대해 납세의무를 다하되 당국으로부터 일절 지원을 받지 않고 사회복지시설의 수혜도 멀리한다. 국가의 사회적 보험이 아닌 공동체의 상호부조를 더 신뢰하고 집단적으로 공동체마을을 이루어 살아간다. 결혼하게 되면 공동체 전원이 협조하여 신혼부부가 살 집을 마련해주고 자립토록 하는 전통도 여기에 근거한 것이다.

그들은 정부안전망에 거의 의존하지 않지만 이들 계층에서는 노숙자와 무 보험자는 없다. 미망인과 교사, 빈곤층 및 장애시설은 그들 공동체내에서 정중히 보살핌을 받는다. 그들의 자발적이고 인간적인 사회보장 노력은 화재나 장례 질병 노쇠 및 죽음 앞에 행동으로 옮겨진다.

절대적인 평화주의자로서 나라에 전쟁이 일어나 징집될 경우 병사로서가 아닌 다른 분야에 노동을 제공해주는 대체복무를 했다 (남북전쟁.1,2차세계 및 베트남전쟁)

정치는 물론 선거개입마저 거부하되 지역 공동체시민으로서의 의무인 소방대와 자원봉사에는 열성적으로 참여한다.

자동차를 멀리하는 대신 마차를 교통수단으로 이용한다. 아미쉬들은 이혼을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으며, 재혼은 다만 부부 중 사망할 경우 허용된다. 결손가정이 타민족에 비해 아주 낮다.

 청소년의 경우 때때로 평화를 헤치거나 음주운전으로 체포되기는 하지만 폭력범죄는 사실상 없다. 노인은 가족과 친구들의 보살핌 속에서 여생을 보낸다.

우리선조들이 농자천하지대본 (農者天下之大本)의 가업家業정신처럼 이들은 농사를 가장 귀히 여기고, 손으로 일하는 수제 작업인 퀄트 수공예품 등에 매우 능숙하다. 특히 농업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유기농업이니 친환경농업을 떠들지 않으면서도 자손들이 농사를 지어야할 땅이기에 가장 유기적으로 농사를 짓는 셈이다 그들은 자체 경제생활을 하지만 사유재산은 인정되어 그들 중에는 백만장자도 부호들도 많다.

 아미쉬는 신대륙에 정착한 후에도 독일과 스위스 산간지역의 조상이 쓰던 독일지방 방언 (Pensylvania Dutch)을 사용하며 가정과 공동체 안에서는 이 언어를 쓴다. 주로 예배모임이나 종교 의식 때는 정통 독일어를 사용한다. 공동체 밖에서는 일반인들은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혼례식 때만 영어를 사용한다.

 아미쉬 인구는 미국에서 인구증가율이 가장 높다. 이들은 피임을 하지 않는데다 공동체 생활에 자녀들이 7-8명으로 대가족을 구성하고 있다. 암 발생율이 타민족보다 낮고 평균수명이 10년 정도가 더 높다고 한다. 현재 35만 명의 인구가 이런 추세라면 2050년에 100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한다.

 구시대적 삶의 방식으로 현대인의 관점에서 원시적이기까지 한 삶의 방식은, 그들의 공동체정신으로 보호되고 현대적 장점마저 능가하려한다. 이들의 공동체정신이 보여주는 장점은 현대의 우리가 잃어버린 모습이고, 또 우리가 회복해야할 모습이다. 공동체정신이 무너진 사회는 무너져 내리는 사회다. 사람은 모여진다고 해서 그것이 공동체가 되는 것이 아니다. 함께 라는 마음이 사라진 사람들의 우리는 공동체가 아니다. 그것은 남남으로 결정된 개개인의 집합에 불과하다.

상상도 할 수 없는 답답함과 모순으로 뭉쳐진 그 전근대적인 삶의 방식이 현대적인 나의 부러움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원동력은 인류모두가 살아온 과거의 전통, 우리가 잃어버린 전통이다. 아미쉬는 그런 의미에서 잃어버린 인류의 전통을 보존하고 있는 셈이다. 전통이라고 장점만 지닌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의 전통은 시대에 뒤떨어진 라이프스타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지켜주고 보존해준다는 것이다. 아미쉬의 현대적 의미는 관광거리로 전락한 그들의 구시대적 삶의 방식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는 공동체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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