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신춘문예 시조 총평

2016.05.24 06:33

동아줄 김태수 조회 수:353


2016년 신춘문예 시조 총평


                                                                    이 봉 수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많은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및 학자들은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시인 시조는 세계적인 자랑거리라고 한다. 시조가 자랑거리라는 것은 일본의 하이쿠(俳句), 중국의 한시(漢詩), 서양의 소네트(sonnet) 등과 같은 수준의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정형시이기 때문이다. 이들 세계적인 정형시는 독특하고 엄격한 시형을 생명으로 한다. 정형을 갖추지 못하면 자랑거리가 될 수 없다.

   오늘날 한국의 시조는 창사(唱詞)였던 고시조의 탈을 벗고 20C초 순수문학인 정형시(定型詩)로 다시 태어났지만, 정형을 굳히기도 전에 고시조의 많은 형을 여과 없이 답습하고 범람하는 자유시의 흉내 내기에 급급하여, 한 올의 예외도 허용하지 않는 세계적인 정형시의 반열에 오르기에는 크게 미흡하였다.

   건국초기 고시조의 가장 많은 형을 추출하여 교과서의 자수정형[3434 344(3)4 3543]으로 자리매김하였으나 시조단에서는 이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잡다한 음보정형이 범람하다가 최근 일각에서 각성이 일어 정격 시조 부흥운동이 자리를 넓혀 가고 있다[졸저 현대시조 바로세우기(2013년 문예촌 발행)참조].

   2016년 주요 언론사의 신춘문예도 수 십 년의 해를 거듭하였지만, 아직도 자유시흉내내기에 빠져있는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아 놓은 곳이 많다. 중앙일보의 대상 <11>, 신인상 <서양민들레>, 조선일보의 <파란 잉크 주식회사>, 부산일보의 <봄눈>, 대구매일신문의 <옆구리 증후군> 등이 그것이다. 이런 작품들이 신춘문예 단상에서 내려오지 않는 한 우리의 시조는 세계의 정형시단에서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런 가운데 동아일보의 <, 세우다>와 서울신문 <구름위의 구두>는 자수정형에는 못 미치지만 음보정형만이라도 제대로 지키면서 내용과 표현이 좋아 돋보인다.


   이하 10개 언론사의 당선작들을 세밀히 살펴본다.

 

(1)중앙일보

(중앙일보는 2016년 신춘문예 대신 34회 중앙시조대상·중앙시조신인상과 제26회 중앙신인문학상 시조부문 수상자를 뽑아 발표하였다.)

 

<대상>

              11

                                                          염창권

 

그림자를 앞세우는 날들이 잦아졌다

 

캄캄한 지층으로 몰려가는 가랑잎들

 

골목엔 눈자위 검은 등불 하나 켜진다

 

잎 다 지운 느티나무 그 밑둥에 기대면

 

쓸쓸히 저물어간 이번 생의 전언이듯

 

어둔 밤 몸 뒤척이는 강물소리 들린다

 

몸 아픈 것들이 짚더미에 불 지피며

 

뚜렷이 드러난 제 갈비뼈 만져볼 때

 

맨발로 걷는 하늘엔 그믐달이 돋는다

 

젖 물릴 듯 다가오는 이 무형의 느낌은

 

흰 손으로 덥석 안아 날 데려갈 그것은

 

아마도, 오기로 하면 이맘쯤일 것이다.

 

 

<신인상>

        서양민들레

                                                                김영주

 

떡전 거리 인도 위에 신문지 펼쳐놓고

 

풋고추

 

오이 호박

 

가지런히 누워 있다

 

환하게 이 드러내고 웃고 있는 베트남댁

 

산 설다

 

물도 설다

 

돌아갈 길 더 설다

 

보도블럭 틈 사이로 뿌리 둘 곳 더듬다가

 

토종이 되어간단다

 

흑을 꽉! 움켜쥔다

 

 

* 심사위원 심사평 심사위원=유성호·이지엽·홍성란(대표집필 홍성란)

 

 ‘11몸 아픈 것들드러난 제 갈비뼈를 만져보지만 캄캄한 지층으로 몰려가는 가랑잎이나 눈자위 검은 등불처럼 중년의 경험을 쓸쓸히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시인의 긍정과 화해의 사유는 젖 물릴 듯 다가오는 이 무형의 느낌이라는 추상의 구체화아마도, 오기로 하면 이맘쯤일 것이라는 적실한 언명에 닿아 형언할 수 없는 힘을 발산하며 대상 논의를 평정하였다.

 서양민들레는 고단하고 서러운 이역에서 환하게 이 드러내고 웃으며 견디는 베트남댁의 생활에 연민과 긍정의 시선을 얹고 있다. 보도블럭 틈에 견고히 뿌리내리듯 타국에서 토종이 되기 위해 흙을 꽉! 움켜쥐는 이 땅의 건강한 생명력을 확인하는 이 작품 외에도 함께 올라온 김영주 작품은 균질한 미적 성취를 보여주었다.

 

 

* 필자의 종합평

 

   (1) 대상 수상작 <11>은 시조정형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나 3434 344(3)4 3543의 자수정형에는 못 미친다. 그보다도 36구가 뚜렷해야할 시조형식을 크게 벗어나 수의 구별을 없애버리고 112행의 자유시형을 만들어 시조다운 맛을 송두리째 없애버렸고 따라서 읽기가 숨 가쁘다.

이 작품은 한 해의 끝자락을 향해 달려가는 11월을 맞아 쓸쓸함을 달래며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호소하고 있으나 젖 물릴 듯 다가오는 이 무형의 느낌흰 손으로 덥석 안아 날 데려갈 그것(느낌)’이 어떤 느낌인지 구체화되지 않아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지배적인 시상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심사위원들은 무형의 느낌젖 물릴 듯 다가온다,’고 하므로 추상이 구체화되었다고 하지만 무형의 느낌 자체는 구체화(형상화)되지 않은 것이다. 넷째 수(수의 구별도 없지만)의 초장 [느낌은]과 중장 [그것은][느낌]의 중복표현으로 1자라도 아끼고 압축해야 할 시조창작에서 시어를 낭비한 결과가 되었다. [흰 손으로 덥석 안아] 또한 어색하다. 손은 잡는 것이지 안는 것이 아니다. [흰 손으로 꽉 잡아] 또는 [두 팔로 덥석 안아]라야 독자들이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2) 신인상 수상작 <서양민들레> 또한 비좁은 3자 자리에 덩치 큰 4자가 앉아 있고 넓은 4자 자리에 3자가 헐렁하게 앉아 있다. 대상 수상작과 마찬가지로 수의 구별을 없애고 행갈이도 완전 자유시형으로 변형시켜 놓았다.

   이 작품은 제목과 본문이 어울리지 않는다. ‘베트남댁서양민들레로 비유했지만 베트남은 서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 큰 실수는(신문사 출판과정의 실수이기를 바라지만), ‘흑을 꽉!’에 있다. 심사평은 흙을 꽉!’이라고 바로 잡아 주었지만 원문은 그대로이다. [,,.인도위에 신문지 펼쳐 놓고 풋고추... 누워있다.] 풋고추가 신문지를 펼쳐 놓았는가? 있을 수 없는 표현이다.

시조의 형식과 내용 모든 면에서 결함이 많아 수상작이 되기에는 크게 부족하다.

 

<신인문학상 시조>

      茶山을 읽다

                                                              박화남

 

1. 동박새로 날아와

 

그대가 없는데도 그대 너무 그리워서

 

만덕산 햇살처럼 구강포 바다를 당겨

 

백련사 고요에 들어

 

붉은 숨을 내쉰다

 

2. ‘丁石을 새기며

 

꺾어든 그 비수를 바람 속에 던져놓고

 

초당에 내려앉아 찻물 깊이 끓였을까

 

용오름 역린을 삼켜

 

명편이 된 한 사람

 

3. 그리운 훗승

 

그대 푸른 동백나무 하늘로 날아올라

 

흐르는 구름 위에 한 편 시 적은 오후

 

여태껏 본 적도 없는,

 

길 활짝 벙근다

 

 

* 심사위원 심사평 심사위원=권갑하·박권숙·박명숙·이달균(대표집필 박권숙)

 

...언어를 능숙하게 엮고 풀고 다스리는 솜씨,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읽어내는 마음의 눈, 균형과 절제의 시조 미학에 충실한 가락 부림의 능력 등 선정 척도에서 가장 안정감을 주는 높은 완성도로 호평을 받았다.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에서의 삶과 시 세계를 작은 표제로 나누어 심미감 넘치는 선명한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있다. 대상에 대한 깊은 사유와 오랜 숙성을 거친 후에야 빛나는 감각의 표현을 빚을 수 있다는 믿음에 확신을 주었다. 다만, 각 수 종장을 의도적으로 한 연의 호흡 마디로 처리하여 보다 강렬한 여운의 효과를 노린 것은 좋지만, 이런 형태상의 실험이 자칫 신인의 패기나 실험의지로 오해될 위험성이 지적되었다.

 

 

* 필자의 종합평

   형식면에서는 대체로 껄끄러움 없이 읽히는 모양새이지만 자수정형에는 못 미친다.

   내용은 조선시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유배지 생활을 그려낸 것으로 보이지만, 문인이 아니고 역사도 깊이 알지 못하는 대다수의 일반인이 읽으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작품이다. 심사위원들에게는 뛰어난 작품으로 보이지만 일반 독자에게는 입안에 든 돌멩이다. 삼킬 수도 없고 뱉으려니 체면이 구긴다. 시는 심사위원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한 편 심사평은 이 작품의 각 수 종장이 한 연의 호흡 마디로 처리되었고 이런 실험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지적하는데,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 필자가 보기에는 종장 각 구()에 무게를 주어 초·중장과 동일한 장()급으로 승격시키기 위하여 행을 나눈 것이며, 이는 작자의 시적 표현의 자유에 속하는 것이므로 심사평이 잘 못 된 것 같다.

 

 

(2)조선일보

       파란 잉크 주식회사

                                                                   이중원

 

새초롬한 잎사귀에 햇살이 내리쬐어도

 

버스가 남기고 간 잿빛의 연기만이

 

망막에 재고가 남은 유일한 색채일까

 

발 아래 선이 있고 내 뒤로 줄이 있다

 

느려지는 발자국을 억지로 잡아끌어

 

통근의 컨베이어에 실려가는 유리병

 

모래알 흐르듯이 부서지는 빛줄기가

 

정류장 팻말 옆의 풀 허리에 한껏 고여

 

메마른 마개 틈새에 떨어지는 오전 10

 

, 하는 경적음에 뜬 눈이 부시도록

 

생생하게 흔들리는 푸릇한 잡초들만,

 

염가에 세일 중인 창공, 한없이 싱그럽다

 

 

 

* 심사위원 심사평 심사위원=정수자

 

정형 구조 넓힐 신인더 놀라운 '파란' 기대돼

...‘파란 잉크 주식회사는 언어에 촉수를 달고 탐사하듯 세밀한 감각의 깊이로 잡아 엮는 묘사와 진술이 긴밀한 조화가 압권이다. 현실의 다면을 꿰는 독법으로 발생시키는 낯선 미감의 어조 속에 유지하는 정형성도 견고하다. 제목 파란이 촉발하는 원인에 대한 다양한 상상 또한 작품 전편에 이상한 생기와 냉기를 부여한다.

 

* 필자의 종합평

   깨진 음보가 굴러다니고 수의 구별도 없이 112행으로 늘어놓은 모양이 시조정형인가? 이런 구조가 견고한 것이며 이 작품이 정형구조를 넓힐 신인을 발굴한 결과인가? 정형구조를 왜 넓히는데? 넓히면 정형이 깨져 없는 것과 같은데? 이해 못할 작품에 이해 못할 심사평을 얹어 놓았다.

내용면에서 첫째 수(수라고 할 수도 없지만)는 햇살이 내려 쬐는 파란 잎사귀, 둘째 수는 일상생활에 갇힌 통근 길, 셋째 수는 비가 오는 오전 10, 넷째 수는 하늘이 파랗고 자동차 경적에 놀라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비가 오다가 개인 통근길 자동차 경적에 놀라는 싱그러운 파란 세상, 아마 5월쯤일 것 같다. 무게를 똑 같이 한 12행의 시형을 그냥 읽으면 햇살이 내리 쬐고, 내키지 않는 출근길, 비가 오는 10, 염가의 창공, 싱그러운 잡초들이 남는 산만한 내용이다. 수의 구별을 뚜렷이 하여 셋째 수, 둘째 수, 첫째 수, 넷째 수로 순서를 정리하고 깨진 음보를 바로 잡으면 보다 낳은 작품이 되겠다.

 

 

(3)동아일보

         날, 세우다

                                                                       정지윤

 

동대문 원단상가 등이 굽은 노인 하나

햇살의 모퉁이에 쪼그리고 앉아서

숫돌에 무뎌진 가위를 정성스레 갈고 있다

 

지난밤 팔지 못한 상자들 틈새에서

쓱쓱쓱 시퍼렇게 날이 서는 쇳소리

겨냥한 날의 반사가 주름진 눈을 찌른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눈초리를 자르고

무뎌진 시간들을 자르는 가위의 날

노인의 빠진 앞니가 조금씩 닳아간다

 

늘어진 얼굴에서 힘차게 외쳐대는

어허라 가위야, 골목이 팽팽해지고

칼칼한 쇳소리들이 아침을 자른다

 

 

* 심사위원 심사평 심사위원=이근배 이우걸

 

...이 작품은 삶의 현장을 노래하되, 고된 삶의 값싼 비애나 연민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놓을 수 없는 그것을 견디고 극복하는 건강한 희망을 보여 주었다. ‘눈초리를 자르고’, ‘시간을 자르아침을 자르는 가위의 변용 이미지를 통해 자칫 상투적인 내용을 지루하게 끌고 가는 여타의 작품들과 달리 우리 시조의 지평을 확장시킬 미학적 도전 의식을 읽을 수 있었다. 건강한 삻의 자세, 날카로운 시선, 그만이 지닌 감수성과 시적 화법은 이 신인을 믿는 선자들의 희망의 근거다.

 

* 필자의 종합평

   깨진 음보가 몇 군데 있어 자수 정형에는 못 미치나 음보정형은 벗어나지 않았다. 수의 구별이 뚜렷한 4수가 균형 있게 배치되어 있어 호흡이 부드럽고 의미율 또한 고·저 강·약이 있어 형식면에서 구색을 잘 갖추었다.

   내용 또한 주위의 환경에 흐트러짐이 없이 일의 귀천을 떠나 굳건히 일하는 노인의 모습을 잘 그려낸 가작이다. 낭송을 해도 청중에게 바로 의미전달이 되면서 적당한 비유와 충격이 가해지는 시어를 잘 구사하고 있다. 현대시는 고도의 비유와 상상으로 직조되어 있어 읽고 해석하는 시로는 적합하나 낭송하고 듣는 시가 되기는 어렵지만 이 작품은 이를 잘 극복하고 있다. 더 욕심을 부리자면 셋째 수와 넷째 수에서 [자르고] [자르는] [자른다]로 자름이 중첩되어 있는데 이를 피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종합하면 이 작품은 금년도 신춘문예 무대에서 장원의 자리에 오르겠다.

 

 

(4) 서울신문

       구름 위의 구두

                                                                    유순덕 

  

밤늦도록 소슬바람 별자리가 휘고 있다

모래폭풍 부는 방이 공중으로 떠올라도

심 닳은 연필을 쥐고 청년은 잠이 든다

 

도시 계곡 빌딩 숲을 또 감는 회리바람

도마뱀 꼬리 같은 추잉검만 질겅대고

수십 번 눈물로 심은 비정규직 이력서

 

윤기 나게 닦은 구두 구름 위에 올려놓고

조간신문 행간에서 술빵 냄새 맡는 아침

환청의 발걸음 소리 꽃멀미에 가볍다

 

 

* 심사위원 심사평 심사위원=박기섭 이근배

 

소재의 참신함에 현대 시조다운 제목 돋보여

...그간 하나의 경향성을 보였던 역사나 자연시편이 줄어든 대신, 명퇴나 비정규직 같은 당대 삶의 문제에 관심이 증폭된 것도 고무할 만한 일이다.

(당선작은)소재의 참신함이 돋보이는 데다, 제목부터가 짐짓 현대시조답다. 청년실업이라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늘을 정면에서 응시한다. ‘심 닳은 연필을쥔 채 잠든 청년의 밤은 소슬바람별자리가 휘고 있다’. 정황 묘사를 넘어서는 심리 묘사가 발군이다. 생존 현장에 직핍한 정서의 힘은 셋째 수에서 정점을 이룬다. 출근을 고대하며 윤기 나게 닦은 구두’. 하지만 그 구두를 구름 위에 올려놓을수밖에 없는 암담한 현실조간신문 행간에서 술빵 냄새를 맡게 하는 것이다.

 

* 필자의 종합평

   3수의 구별이 뚜렷하고 36구가 잘 갖추어져 있으나 깨진 음보가 있어 자수정형에는 미치지 못한다.

   밤늦도록 이력서를 써서 술빵으로 아침을 때우고 조간신문을 뒤적이며 비정규직이나마 취직이 되기를 바라는 희망으로 환청이 들리고 꽃향기에 어지러운 아침이다. 시대의 아픔을 잘 그려내었다. ‘구름위에 올려놓은이라는 상승이미지는 암담한 현실이라기보다 꽃멀미와 어울려 절실한 희망사항을 노래한 것이 아닐까? 따라서 이 작품의 제목 구름위의 구두구름위에 올려놓을 수밖에 없는 암담한 현실’(심사평)이 아니라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바램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5)부산일보

 

    봄눈

                                                      김연희

 

사뭇,  
그리운 이는   
사뭇 그리운 채로  

 
뚫린 허공에 낮달이라 걸어두고 
 
홀로 핀 매화 가지에

 
 
 


눈이 오네

 

 

* 심사위원 심사평 심사위원=오정환·이우걸·김경복

 

   당선작으로 정한 '봄눈'은 달랐다. 응모한 4편이 두루 고를 뿐 아니라 넘치는 가락의 묘미와 회화성 그리고 연가류의 애틋함이 잘 어우러져 있어서 단연 눈길을 사로잡았다.

 

* 필자의 종합평

   이 작품을 시낭송회에서 행·연에 따라 읽을 때 시조라고 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시조 112음보 중 무려 8음보가 정형을 벗어났고 종장 셋째 마디는 3음보로 갈라놓아 전체 14음보가 되었다. 36구의 모습은 찾기 어렵고 59행의 자유시는 금방 눈에 뜨인다. 이런 자유시를 시조 당선작으로 뽑아 놓은 심사위원들이야말로 현대시조를 죽이는데 앞장서고 있다.

   내용 또한 제목이 너무 평범하고, 본문마저 흔한 고서화 설매화(雪梅畵)를 보는 기분이다.

 

 

(6) 국제신문

 

   물의 독서

                                                                 최정연

 

물 아래 달을 봐라

콸콸한 문장이네

몇 개의 모음들이 괄호 밖에 흘러넘쳐

지금은 은어가 오는 시간,

달빛공지 띄우라네

 

산란하는 조약돌도 물 소리 헤이는 밤

오십천 수면 아래

무슨 등불 켜두어서

뜨거운 이마 짚으며

다상량의 달을 보나

 

수심 찬 질문들이 부서지고 또 고여서

물결 책 갈피마다

각주로 박혀있네

 

내 몸도 출렁, 불려나와

행간의 밑줄 될까

 

 

* 심사위원 심사평 심사위원=전연희 서태수

 

'물의 독서'는 발랄한 위험성이 있지만, 생동감 넘치는 신선미가 돋보였다.

...찰랑이는 시어로 이미지를 다양화하고 있다. 시조의 보법을 경쾌하게 운용하는 능숙함, 행갈이와 쉼표 하나에도 많은 의미를 담고자 하는 섬세함을 함께 지녔다. 다만, 최정연 씨 작품들은 자유분방함으로 인하여 시조가 지닌 형식적 미감이 오히려 넘치는 위험성이 있다.

 

 

* 필자의 종합평

   3수 연시조가 분명하나 깨진 음보가 많아 자수정형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 [출렁, 불려나와]1음보의 자리에 2음보가 비집고 들어 앉아 있다. 수의 구별도 제멋대로이다. 셋째 수의 종장을 따로 떼어 놓은 이유를 모르겠다.

   내용면에서는 흐르는 냇물에 독서하는 분위기를 오버랩 (overlap)시켜 엮어 나가는 솜씨가 돋보인다. [콸콸한 문장] [달빛공지] [산란하는 조약돌] [물결 책 갈피] 등 참신한 시어들이 눈길을 끈다. 그러나 [오십천] [다상량] 등 고유명사(?)를 작품에 동원한 것은 일반 독자의 감상을 어렵게 하고 작품의 가치를 깎아 내리는 역할을 할 뿐, 없는 것만 못하다.

 

 

(7) 대구매일신문

 

     옆구리 증후군

                                                                조경선

 

손가락을 때렸다 매일 하는 일인데

못은 이미 달아나고 의자는 미완성인데

날아 온 생각 때문에 한눈팔고 말았다

상처 많은 나무로 사연 하나 맞추어 간다

원목의자만 고집하는 팔순의 아버지에게

때로는 딱딱한 것도 안락함이 되는 걸까

어머니 보내고 생의 척추 무너진 후

기우뚱 옆구리가 한 쪽으로 기울어져

슬픔을 지탱하기엔 두 다리가 약하다

낯익은 것 사라지면 증후군에 시달린다

최초의 의자는 흔해빠진 2인용

우리는 가까운 사람을 익숙할 때 놓친다

 

 

* 심사위원 심사평 심사위원=이정환

 

   당선작 조경선 씨의 '옆구리 증후군'은 연로한 아버지를 위해 원목의자를 만드는 과정을 노래하면서 넌지시 삶의 의미를 환기시키는 역작이다. 일상의 삶으로부터 모티브를 얻어 끈끈한 가족애를 실감실정으로 그리고 있다. 특히때로는 딱딱한 것도 안락함이 되는 걸까’, ‘슬픔을 지탱하기엔 두 다리가 약하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을 익숙할 때 놓친다라는 대목들이 주는 울림이 크다. 남다른 직조능력에서 얻은 표현들이다. 이처럼 일상을 소재로 하되 일상적이지 않다. 새로움이 있다.

 

 

* 필자의 종합평

   시조의 형식을 팽개치고 속박을 벗어나 자유를 찾은(?) 112행의 자유시이다. 자수정형 3434 344(3)4 3543에서 제자리를 못 지키고 허물어진 곳이 절반에 가깝다. 성이 무너진 곳은 폐허이다.

8순의 아버지가 허리와 다리가 약한 몸을 지탱하며 홀로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지만, [낯익은 것 사라지면 증후군에 시달린다]는 의미가 애매하고 [최초의 의자는 흔해빠진 2인용]은 결혼초기의 부모를 비하한 표현으로 들리며, [우리는 가까운 사람을 익숙할 때 놓친다]는 시적 논리가 선명하지 않은 표현으로 의문부호(?)가 머리에 남아 울림이 커야 할 종장이 안개 속으로 사라진 느낌이다.

    

 

(8) 경남신문

 

           금빛 질경이

                                                                     정성호

 

흙바람 길을 튼다, 길섶에 씨방 연다

비에 젖은 잎새 위에 숨 고르는 햇살 한 줌

날마다 무게를 불려 등짐 지는 탑이 된다

 

척박한 가풀막이 떠밀린 뉘 요새인가

내일로 가는 길은 밟히고 또 밟히는 일

뭉개고 으깨어져도 겹겹이 반짝인다

 

가진 것은 여린 솜털, 촘촘하게 추스르고

한길에 오체투지로 한 땀 한 땀 밀어 올려

또 한 번 금빛을 푼다, 거방진 계절을 편다

 

 

* 심사위원 심사평 심사위원=이달균·서일옥

 

   ‘금빛 질경이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작품들의 고른 성취로 미뤄볼 때 습작의 과정이 튼튼했음을 확인했고, 그런 만큼 안정된 보법이야기를 전개하는 힘에서 좋은 점수를 얻었다. 물론 시상의 전개와 참신함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있었지만 노력을 통해 극복할 수 있으리란 믿음은 있다.

 

 

* 필자의 종합평

   수..구가 뚜렷하고 음보정형에 가까운 시조이다. 그러나 4자의 자리에 [뉘 요새인가] [또 밟히는 일] [오체투지로] [거방진 계절을] 5자 또는 6자가 비집고 들어 앉아 있어 리듬이 깨지고 읽기가 껄끄럽다.

   첫째 수는 질경이의 좋은 환경, 둘째 수는 어려운 환경, 셋째 수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장면을 소재로 하여 적당한 메타포를 가미하면서 시적 감흥을 북돋우고 있다.

   시조의 형식은 모자람이 있으나 내용은 좋은 작품이다.

 

 

(9) 경상일보(울산)

 

   문장부호, 느루 찍다2

                                                                     백윤석

 

점 하나 못 챙긴 채 빈 공간에 갇히는 날

말없음표 끌어다가 어질머리 잠재우고

글 수렁 헤쳐 나온다,

바람 한 점 낚고 싶어

 

발길 잡는 행간마다 율격 잠시 내려놓고

어머니 말의 지문 따옴표로 모셔다가

들레는 몇 몇 구절을

초장으로 앉혀야지

 

까짓것, 급할 게 뭐람 쌍무지개 뜨는 날엔

벼룻길 서성이는 달팽이도 불러들여

중장은 느림보 걸음,

쉼표 촘촘 찍어 보다

 

그래도 잘 익혀야지, 오기 울컥 치미는 날

뙤약볕 붉은 속내 꽉 움켜쥔 감꼭지로

밑줄 쫙! 종장 그 너머

느낌표를 찍을 터

 

 

* 심사위원 심사평 심사위원=박기섭

 

느루 찍은문장부호, 행간의 변화 이끌어

...‘문장부호, 느루 찍다’... 제목부터가 현대시조의 현대성을 강하게 부각하는 이 작품은 메타시의 성격이 짙다.

시조 3장의 속성을 적절한 비유와 적확한 표현으로 풀어내고 있다. 말없음표·따옴표·쉼표·느낌표 같은 문장부호를 제목 그대로 느루 찍음으로써 행간의 변화를 이끈다. 네 수의 결구를 각기 다르게 처리한 데서 보듯, 일상에 만연한 감성의 상투화를 극복하고자 하는 창조의지가 충일하다. 이는 신춘문예에서 기대하는 분명한 미학의 개진을 보여주는 일이다.

   

 

* 필자의 종합평

   3자의 자리에 4자 음보가 차지하고 있는 것은 고사하고 4자의 자리에 [급할 게 뭐람] [잘 익혀야지] 5자 음보가 점령하고 있어 숨 가쁘다.

   그러나 이 작품은 시조창작을 문장부호로 풀어내는 재미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첫째 수에서 말없음표(.....)를 찍으면서 무엇을 그려낼까? 궁리하다가 시조율격은 좀 벗어나더라도 어머니 말을 따옴표(“ ”)에 넣어 초장으로 삼고(둘째 수), 느림보 달팽이의 걸음같이 연속적으로 쉼표( , , , ,)를 동원하여 중장을 만들고(셋째 수), 그래도 종장만은 감꼭지로 밑줄 쫙! 긋는 심정으로 강하고 힘차게 때리고 느낌표( ! )를 찍어 마감하겠다(넷째 수)고 한다. 발상이 기발하여 상투적인 서정시나 애정시를 벗어나 현대시조의 참 맛을 보게 하는 작품이다. 한 편 [느루] [들레] [벼룻길] 등 현대인이 잘 쓰지 않는 단어를 동원하여 독자를 밀어내는 것은 이 작품의 큰 흠이라 하겠다.



(10) 농민신문

              구석집

                                                                김사계

 

다녀갔나 보다 구석집 아들 내외

눈 어두신 할머니 삼십촉 등 켜시면

그 소식 궁금한 마을 길어지는 시골밤

 

남은 건 두 마지기 비탈진 감자밭뿐

말없는 노안 속에 좁아지신 마음이

남의 말 일축하시듯 어두운 등 끄신다

 

새벽잠 대신하여 켜 놓은 텔레비전

자고 나면 평당 가격 수백씩 오른다는

도회지 삶터 값들을 며칠째 쏟아 낸다

 

 

* 심사위원 심사평 심사위원=한분순, 문무학

 

빼어난 종장 처리, 현실감 생생

...구석집은 농촌 현실과 홀로 사는 노인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었으며, 특히 시조의 형식 활용에서 종장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잘 살려낸 것은 압권이었다. 그리고 압축과 생략으로 할 말을 다 하면서도 말을 줄이는 능력을 높이 사지 않을 수 없었다.

 

 

* 필자의 종합평

   시조 36구는 잘 갖추고 있으나 깨진 음보가 많고 특히 [/ 다녀갔나 보다]3.4의 자리에 1.6이 들어 앉아 있어 시조 형식과는 거리가 멀고 [눈 어두신][수백씩]은 어색한 표현이다.

   첫째 수 [아들내외가 다녀간 것], [삼십촉 등을 켠 것] 그리고 [소식이 궁금한 것]이 인과관계가 없어 시적 논리가 서지 않고 산만하다. 둘째 수 [비탈진 감자밭], [좁아지신 마음], [남의 말 일축하시듯] 그리고 [등 끄시는 것] 역시 결속력이 없다. 셋째 수는 그냥 켜 놓은 텔레비전을 부각시킨 것인지 천정부지로 오르는 도시 부동산값을 질타한 것인지 애매하다. 이 작품은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초점이 흐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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