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詩語가 들어가면 그 詩는 낙제 수준

2012.08.24 07:28

동아줄 조회 수:507 추천:46


이런 詩語가 들어가면 그 詩는 낙제 수준 ??


                                                                                                          안도현







신중하고 특별한 어떤 의도 없이

아래의 시어가 시에 들어가 박혀 있으면 그 시는 읽어 보나마나 낙제 수준이다.




갈등 갈망 갈증 감사 감정 개성 격정 결실 고독 고백 고별 고통 고해 공간 공허 관념 관망 광명 광휘 군림 굴욕 귀가 귀향 긍정 기도 기억 기원 긴장 낭만 내공 내면 도취 독백 독선 동심 명멸 모욕 문명 미명 반역 반추 배반 번뇌 본연 부재 부정 부활 분노 불면 비분 비원 삭막 산화 상실 상징 생명 소유 순정 시간 신뢰 심판 아집 아첨 암담 암흑 애련 애수 애정 애증 양식 여운 역류 연소 열애 열정 영겁 영광 영원 영혼 예감 예지 오만 오욕 오한 오해 욕망 용서 운명 원망 원시 위선 위안 위협 의식 의지 이국 이념 이별 이역 인생 인식 인연 일상 임종 잉태 자비 자유 자학 잔영 저주 전설 절망 절정 정신 정의 존재 존중 종교 증오 진실 질서 질식 질투 차별 참혹 처절 청춘 추억 축복 침묵 쾌락 탄생 태만 태초 퇴화 패망 편견 폐허 평화 품격 풍자 피폐 필연 해석 행복 향수 허락 허세 허위 현실 혼령 혼령 화려 화해 환송 황폐 회상 회억 회의 회한 후회 휴식 희망




“진부한 말이란 보통 사람들이 일상에서 쓰는 말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모든 경서와 옛사람들이 이미 언급한 말의 대부분이 이른바 진부한 말이다.”(김창협, <농암잡지> 외편)




시는 이런 진부한 시어의 무게를 감당할 수가 없다.

사유라는 것은 원래 그 속성상 관념적인 것이고 추상적인 법이다.


하지만 관념을 말하기 위해 관념어를 사용하는 것은 언어에 대한 학대행위다.

관념어는 구체적인 실재를 개념화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관념어가 시만 좀먹고 있는 게 아니다. 예식장에도 있다.


흔해빠진 주례사가 그것이다.



행복과 공경과 우애와 사랑이라는 말이 들어간 주례사가 귀에 들리면 한시 바삐 밥을 먹으러 가고 싶어진다. 진정한 사랑은 개념으로 말하는 순간 지겨워진다.


황지우의 시처럼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 보이는”(<늙어가는 아내에게)> 것, 그게 사랑의 표현방식 인 것이다.


관념어는 진부할 뿐 아니라 삶을 왜곡시키고 과장할 수도 있다.

또한 삶의 알맹이를 찾도록 하는 게 아니라 삶의 껍데기를 어루만지게 한다.


당신의 습작노트를 수색해 관념어를 색출하라. 그것을 발견하는 즉시 체포하여 처단하라. 암세포 같은 관념어를 죽이지 않으면 시가 병들어 죽는다.


상상력을 옥죄고 언어의 잔칫상이어야 할 시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관념어를 척결하지 않고 시를 쓴다네, 하고 떠벌이지 마라.



관념어를 떠나보내고 나면 그 휑하니 빈자리가 몹시 쓸쓸하게 보일 것이다.


당신은 그 빈자리를 오래 응시하라. 당신의 상상력이 가동하기 시작할 것이고, 상상력은 이미지라는 처녀를 데리고 올 것이다.


말로 그림을 그릴 줄 아는 그 처녀를 꽉 붙잡고 놓지 마라. 관념어를 떠나보낸 자리에 그 처 녀를 정실부인으로 들어앉혀라.


그래도 관념어의 옛정이 그리워져 못 견디게 쓰고 싶거든 그 말을 처음 쓴 지 30년 후쯤에나 써라. (안도현 시인의 글 중 일부)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80 순수를 꿈꾸며-윌리암 블레이크- 동아줄 김태수 2016.08.03 892
79 작가로 등단을 준비하시는 분들께 드리는 글 동아줄 2015.01.19 822
78 수필 공부 동아줄 2013.05.25 803
77 사랑의 시 써보기 동아줄 2012.11.13 729
76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가 표절? 동아줄 김태수 2015.08.05 649
75 시인들이 말하는 좋은 시 동아줄 김태수 2014.02.15 627
74 시조의 기승전결에 대하여 동아줄 2014.09.23 622
73 2014 뉴욕문학 신인상 당선 기사내용(미주한국일보, 앵커리지 한인신문) 동아줄 2014.07.09 613
72 미당 서정주 토론방 내용 동아줄 김태수 2016.10.15 588
71 역사 의식과 사회 비판 의식을 아우른 현대 시조 동아줄 2014.09.25 568
70 2014년 신춘문예 시조 총평 동아줄 2014.04.28 560
69 수필 문장 구성하기 동아줄 김태수 2012.02.20 555
68 시인이란 무엇인가? 동아줄 2012.05.19 541
» 이런 詩語가 들어가면 그 詩는 낙제 수준 동아줄 2012.08.24 507
66 좋은 글쓰기, '갈등과 반전의 묘미' 함께 살려야 동아줄 김태수 2012.02.10 499
65 김태수 씨 사이버 문학 공모전 입상(앵커리지 한인신문 기사 내용 9/26/2012) 동아줄 김태수 2012.10.02 476
64 제22회 뉴욕문학 신인상 심사평 및 당선 소감 동아줄 2014.08.01 463
63 서북미문인협회 제9회뿌리문학상 수상자 발표(시애틀 N 뉴스 기사 내용 8/22/13)/심사평 동아줄 2013.09.23 444
62 더 좋은 시를 쓰고 싶어하는 여러분에게 동아줄 2012.07.23 436
61 미당문학 신인작품상 선정 기사 모음 동아줄 김태수 2016.10.20 434

회원:
2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15
어제:
47
전체:
1,167,9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