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공부

2013.05.25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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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공부>



생각 비우기와 변죽 울리기
  

수필을 쓰고자 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스스로 쓰고자 하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일단 생각해 보아야 한다. 즉, 남이 읽어서 의미가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의미란 가치관과 윤리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용이 독자에게 얼마만큼 공감을 주겠느냐 하는 것을 말한다.

글을 쓰는 행위는 지극히 개인적인 작업이지만 일단 쓰여진 글은 '나의 글'에 그치지 않고 '우리'라는 확대된 의미의 존재 가치를 지닐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여과된 감정, 응축된 감동은 물론, 주변의 범상한 사건에서 진실의 요체를 밝혀내는 안목이 필요하다. 또한, 시대와 유리된 수필 작품은 공감대와 설득력을 갖기가 어렵기 때문에 자기고백의 차원을 넘어 현실을 진단하고 비판할 수 있는 확고한 자기 세계가 필요하다.

수필의 제재는 일상적인 신변잡기로부터 지성적이고 철학적인 사색, 비판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다. 심지어 수필의 글감이 우주의 삼라만상 모두에 걸쳐 있다는 표현조차 가능하다. 그런데 다양한 제재들을 무조건 쓸어 담는다고 수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삶에 대한 깊은 사색과 자기 성찰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바람직한 수필이 될 수 없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출판물 속에서 신변잡기에 가까운 잡문들이 수필의 문학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수필은 평범한 일상사를 참신하게 해석 - 사색, 관조, 해학, 기지, 비평 - 하는 과정에서 문학성을 획득한다.

좋은 수필은 우선 문장의 맛깔스러워야 한다. 가수는 음성이, 화가는 색채 감각이 좋아야 하듯이 수필가는 문장을 다루는 힘이 기본적으로 갖추어 있어야 한다. 불확실한 단어, 호흡이 끊어진 문장, 문단 나누기의 오류 등이 반복되는 글을 끝까지 인내하고 읽어줄 독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또한, 시인이 시어를 발굴하듯 수필을 쓰는 사람은 수필어의 채광부가 되어야 한다.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하나의 말만 존재한다.(一物一語說) 단 하나의 적절한 말을 찾기 위한 노력을, 깊은 굴속에서 금을 캐는 광부와도 같은 자세로 임해야 한다.  

수필의 소재가 대부분 신변의 기록이다 보니 문학적 형상화를 위해 억지로 교훈적으로 끌고 가는 경우가 더러 있다. 교훈적인 글은 자칫 잘못하면 어떤 사실을 단정하여 훈계하기 쉽다. 억지로 교훈을 주려고 하다 보니 남들을 가르치려고 하게 된다. 수필은 가르치는 글이 아니라 느끼게 하는 글이다. 머리를 굴려 재치 있게 쓰려고 하지 말고 가슴을 느낄 수 있게 써야 한다. 수필을 읽고 나서 마음속에 잔잔한 물결이 일고 오랫동안 가슴 울림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해보자. 문학의 정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수필을 쓸 때 생각은 많이 하고 쓰기는 쉽게 하라고 했다. 많은 생각 중에서 꼭 남아야 할 것만 남길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생각을 비우는 작업은 바로 꼭 필요한 것만 남기는 것이다. 아주 힘들게 얻은 단어 하나, 문장 하나는 너무나도 소중한 것이지만 그것이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과감하게 버릴 수 있어야만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글을 쓰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이런 불필요한 욕심과 고집을 버리는 일이다.

문학적인 글의 형상화에는 토끼몰이식 접근이 필요하다. 주제를 향해 바로 돌진하는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다. 멀리서 둥둥 북을 치고 변죽을 울리면서 그 울림으로 다가가야 한다.

수필은 자신이 주체가 되어 자기 내면 세계를 고백하는 글이다. 그러므로 수필은 '진실함'이 드러나야 좋은 글이 될 수 있다. 물론 생활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도 쓸만한, 읽을 만한 소재라야 한다. 수필을 쓸 때는 쓰는 사람이 자기 글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대개 감정을 승화시켜 자기 이야기를 남 이야기하듯 쓰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함으로써 글이 여유를 갖게 된다. 여유가 있어야 '부드러운 즐거움, 번뜩이는 기지, 날카로운 비평 정신'을 담을 수 있다.


제목 붙이기

세상 만물에는 이름이 있다. 사람의 이름을 비롯하여, 짐승의 이름, 가게의 상호(商號), 대회 명, 직장명, 지역명, 따지고 보면 이 모두가 제목에 해당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예전부터 이름이 일의 성패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고 주역에 능통한 이를 찾아가 음양오행을 따져서 이름을 짓는 등 작명에 정성을 다하여 왔다.
문학 작품이나 작품집의 제목도 그 성패를 가름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문학작품 뿐만 아니라 신문기사도, TV 프로그램 그 타이틀에 따라 성패가 좌우되는 경우를 흔히 본다.
이렇게 중요한 제목이기에 제목 붙이기는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아무리 산뜻하고 멋있는 제목이라도 내용과 사리에 맞아야 한다.  미사여구만을 붙여서는 독자는 곧 실망하게 되고, 지나치가 거창하거나 지나치게 구체적이거나 딱딱하게 붙여도 실패하게 된다.

수필에 있어서의 제목이란 사람의 얼굴과도 같은 것이다. 얼굴만 보고 첫눈에 반했다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제목만 보고도 곧잘 그 글에 이끌려 들어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작가들은 어떻게 하면 좋은 제목을 붙일 수 있을까 하고 고심을 하게 된다.
그러나 첫눈에 반했다 해도 교제를 하면서 실망 할 수 있듯이 아무리 호기심을 자극한 멋진 제목이라 하더라도 그 글의 내용이 뒷받침 되지 않을 때는 독자는 곧 실망하게 된다.
무슨 유형의 수필이든 제목을 붙일 때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첫째, 제목만 봐도 문장의 내용을 대강 짐작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반점만 봐도 얼룩말인 줄 짐작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둘째, 글을 쓰는 목적이 적절하게 나타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예를 들어 '여행'을 가지고 제목을 만들어 보자.

    ▶여행은 자유로의 탈옥 (재미에 목적)
    ▶1박 2일로 다녀온 비경 (정보전달에 목적)
    ▶여행은 낭비요 사치인가 (설득에 목적)
    ▶나는 내 생의 종착지를 점찍어 두었다 (감동에 목적)
    ▶우선 떠나라, 자유의 혼을 찾아 (행동화의 목적)

셋째,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이는 제목뿐 아니라 내용에도 적용되는 말이지만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며 남의 제목이나 비슷한 것을 모방하는 것은 피해야 할 것이다. 제목 자체도 개성적이고 창작적이어야 한다.

넷째, 논문이나 학술적인 것, 실용적인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문학은 상식적이어야 하고 미적(美的)이고 쾌락적이고 상징적이어야 하므로 지나치게 전문적인 용어, 평범한 실용어는 그 자체가 적합하지 않고 매력이 없는 것이다.

다섯째, 쉽고 구체적인 것이 좋다.
지나치게 쉬운 것만 찾아도 안되고 너무 구체적이어도 안되지만 이해하기 어려거나 무겁거나 광대하거나 생경한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특히 작품의 분량에 맞는 제목이어야 한다. 10매, 15매짜리 글에다 거창한 철학적 명제를 붙여도 안 되고 1권의 수필집에다 가냘픈 제목을 붙여서는 안된다.

책이나 작품의 제목도 유행이나 시류(時流)를 타는 것 같다. 한때 수필집의 제목이 긴 문장으로 된 것이 유행하더니 요즘은 짧아지고 있다. 지나치게 서정적인 긴 제목은 설익은 감정의 표출을 강요할 수 가 있고,  읽지 않아도 그 내용을 대부분 짐작하게 만든다.
수필의 제목은 간결하면서도 암시적이고, 서정적이며 참신한 의미의 용어를 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수필의 내용과 주제



수필은 다양한 제재를 자유로운 형식으로 다룬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한 신변잡기를 끝난다면, 문학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문학 작품에는 읽는 사람에게 감동과 감명을 주는 의미 있고 깊이 있는 주제가 담겨 있어야 한다. 그래서 모든 문학 작품에는 주제가 있다. 수필은 다른 갈래보다도 주제가 더 중요하다. 서사나 극갈래는 꾸며 낸 것들이고, 흥미진진한 사건이 있어 거기에서 읽는 재미를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수필이 속한 교술 갈래는 사실을 중시하기 때문에 그런 흥미진진함은 자연 덜할 수밖에 없다. 수필은 이런 약점을 깊이 있는 주제로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수필이 관조(觀照)의 문학, 사색의 문학, 예지의 문학이어야 하는 이유도 이런 사정과 깊은 관련이 있다.
수필의 내용을 이루는 요소에는 제재와 주제가 있는데, 주제는 제재를 통하여 형상화된다. 주제는 제재에 대한 필자의 해석이요, 가치 평가이며, 의미 부여라고 할 수 있다.
수필의 제재는 매우 다양하고 무한하다. 인간이 체험하고 사고할 수 잇는 모든 것이 수필의 제재가 될 수 있다. 곧 일상생활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이 수필의 제재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인생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사회 현상에 대한 것일 수도 있으며, 자연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수필의 내용적 특징은 바로 이 제재의 다양성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수필의 제재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주제를 구현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수필의 내용은 이러한 인생, 사회, 자연 등에 대한 지은이의 체험과 사색의 결과가 중심을 이룬다. 개인 문제를 다루는 수필은 지은이의 생각이나 느낌이 내용을 형성한다. 사회 문제를 다루는 수필은 사회 현상이나 사회 구조상의 불합리성에 대한 지은이의 비판적인 견해가 담길 수 있다. 자연을 제재로 한 수필은 자연의 본질이나 질서에 대한 지은이의 사색 결과가 내용의 중심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수필은 제재가 다양하게 때문에 주제도 다양한 양상을 띤다. 체험을 통하여 터득한 인생에 대한 예지는 인생관이 주제가 되기도 하고, 인간 사회나 자연에서 느낀 주관적인 정서가 주제가 되기도 한다. 여행에서 느낀 객수(客愁)나 답사에서 얻은 지식이 주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수필의 주제는 삶을 통하여 느낀 사소한 감상에서부터 인간의 삶과 죽음이 주는 철리(哲理)에 이르기까지 무한한 영역에 걸쳐 있다.
그러나 수필에서 주제의 본령(本領)은 역시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에 있다. 신변잡기적 수필도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본질과 가치에 대한 깊이 있는 인식을 담고 있는 중후(重厚)한 수필이야말로 우리에게 깊은 감명을 준다. 삶의 향기와 의미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독자가 '아! 인생이란 참으로 이런 것이구나.' 하고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칠 수 있게 하는 데 수필의 진정한 묘미가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깊은 사색과 예지가 필요하다. 이것들을 통해서 수필은 인생의 깊은 의미와 가치를 천착(穿鑿)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탐구하고 천착하는 일은 문학의 멋과 운치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가운데 망각한 수필의 철학적 가치를 되찾는 작업이며, 수필이 가지는 차원 높은 특질을 발휘하게 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깊이 있는 철학적 사색을 바탕으로 한 수필들이야말로 인간의 고양된 정신적 지표와 교양적 가치를 동시에 충족시켜 준다.









수필을 어떻게 쓸 것인가 / 鄭 木 日


  가. 소재를 보는 안목

문학의 소재 발견이나 창작에 있어서 시각(視覺), 청각(聽覺), 후각(嗅覺), 미각(味覺), 촉각(觸覺) 등 5감각(感覺) 기능을 잘 이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보는 것은 글을 쓰고 싶은 동기를 제공하고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하는 중요한 정보기능을 한다.
숱한 소재들 중에서 어떤 것을 제재(題材)로 선택할 것인가? 이는 사람마다의 안목과 경지에 따라 달라지며, 작품의 성패와 직결된다.
여행지에서 유적이나 풍경을 함께 접했다고 하더라도, 보는 사람들의 안목과 시각에 따라 보석처럼 빛나는 제재를 얻을 수도 있고, 그냥 스쳐버릴 수고 있다.
한번 보는 것이 백 번 듣는 것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사물이나 사건을 보되,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 문학을 하는 것은, 보는 법을 배우는 것에 다름없다. 18세기 독일의 시인 노발리스는 이렇게 말했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 접촉되어 있다.
들리는 것은 들리지 않는 것에 접촉되어 있다.
그렇다면 생각되는 것은 생각되지 않는 것에 접촉되어 있다.'

어떤 사물을 볼 때, 보는 시각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하나의 사물일지라도 어떤 사람은 앞면만, 어떤 사람은 측면만, 어떤 사람은 뒷면만 볼 수 있다. 어떤 사태나 상황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부정적으로, 종합적으로 볼 수 있다. 일부분만 볼 수 있고, 전체적으로 볼 수 있다. 주관적으로 볼 수 있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본다는 것'은 단순하게 생각될지 모르지만, 보는 사람의 삶을 통한 총체적 경험과 지식 정보를 투과해서 인식하는 행위이다.
이집트에서 피라미드를 본다고 할 때, 한쪽에서 보는 한, 4면을 보지 못하고 항상 3면밖에 보이지 않는다. 한꺼번에 어떤 사물에서 얻어지는 측면은 한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어느 한 쪽에서 보고 판단한다는 것은 성급한 일이고 착각을 일으킬 수도 있다.
전체를 보기 위해서는 한 바퀴 돌아야 하며, 공중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피라미드들 그냥 거대한 입방체의 구조물로만 보아선 안된다. 피라미드의 외형만을 보지 않고, 신비속에 가려져 있는 불가사의한, 보이지 않는 내면을 바라보는 눈이 필요한 것이다.
이번에 『나무』를 본다고 생각해 보자.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지상의 가시영역의 것일 뿐, 지하의 불가시영역의 뿌리는 보지 못한다. 또한 나무의 보이는 모습과 접촉해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 이를테면 햇빛, 바람, 비, 세월, 새, 나무의 일생을 연상해서 보아야 한다.
  보이지 않는 뿌리와 닿아있는 세계까지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이 보는 것은 눈을 통한 '가시영역'에만 국한돼 있다. 그리고 가시영역의 대상물은 누구나 다 볼 수 있는 것이지만, 보이는 것과 접촉돼 있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이것이 세상을 보는 눈이고, 수필을 쓰는 법을 깨닫는 일이다.
새를 보면서 단순히 보이는 외양만을 보는데 그치지 않고, 보이는 것과 접촉돼 있으나, 보이지 않는 하늘, 구름, 자유, 방향, 바람, 새의 삶, … 이런 불가시 영역의 것까지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꽃의 외양의 아름다움은 누구나 볼 수 있다. 꽃의 보이지 않는 세계, 꽃씨가 새싹을 튀워 성장하기까지의 과정, 햇빛, 물, 바람, 나비 등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꽃이 져야 할 때와 의미까지를 보아야 한다.
'본다'는 것은 충동, 발견, 관찰, 탐구와 관련이 돼 있다. '본다'는 행위가 오감과 닿아있을 뿐 아니라, 어떤 관점에서 볼 것인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다음 동시, 시 한편에서 '소재'를 선택하여 어떻게 형상화하였는가를 살펴본다.

꽃씨 속에는 ! 파아란 잎이 하늘거린다.
꽃씨 속에는 ! 빠알가니 꽃도 피어 있고
꽃씨 속에는 ! 노오란 나비 떼도 숨어 있다.
                        <최계락  '꽃씨' 전문>

답답할 땐 귀 대고 / 바다 소리를 듣노라/ 네 목소리 듣는다
격정의 성난 파도/ 어떻게 잠 재웠나
피가 맺혀 뼈가 된 /빠알간 산호초
비늘 고운 물고기떼/ 헤일 길 없는 네 가슴 속
그 세상이 꾸는 꿈은 / 미주알 고주알까지
알고 싶어 슬픈 날엔 / 귀 대고 듣는다
                            <유안진 '소라 껍질' 전문>

'꽃씨'라는 소재에서 외형적으로 보는 것은, 꽃씨의 모양(생김새)이지만, 이 보이는 것과 접촉해 있는 보이지 않는 것은 '파아란 잎' '빠알간 꽃' '노오란 나비떼'가 있다. 글쓰는 이는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내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또한 '소라 껍질'이란 소재는 그냥 외형적으로는 한낱 조가비에 불과하지만, 이를 통해 '바다 소리'와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성난 파도, 천길 물속, 헤아릴 길 없는 네 가슴속을 응시하고 들을 줄 아는 눈과 귀를 가져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소재를 발견하였다고 하여, 단번에 글이 씌어지지 않는다. 이 소재를 면밀히 관찰하여 속속들이 알고나서야 비로소 글을 쓸 수 있다. 오랜 관심과 정성을 기울여 소재와 친근해지지 않으면 그 소재가 지닌 독특하고 새로운 세계를 알 수가 없다.
예컨대, 어떤 집에 할아버지가 정성껏 기르던 난초에 꽃이 피었을 때, 할아버지에게선 1년만에 감격과 전율을 느끼는 큰 일이 되겠지만, 무관심했던 다른 가족들은 감격하지 않는다.
미지의 별 하나를 찾기 위해 밤마다 망원경으로 우주공간을 탐색했던 천문학자가 드디어 새로운 별을 찾아냈을 때, 충격과 감동의 소용돌이 속에 눈물을 흘리게 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별다른 감흥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처럼 관심과 정성을 얼마나 쏟느냐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짐을 알 수 있다. 좋은 소재를 찾았다고 해서, 곧 글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그 소재와 대화를 나누고 정을 들여야만 새로운 세계를 발견해 낼 수 있다.
어떤 현상에 대해서도 사회학자, 법률학자, 의사, 생물학자, 경제학자, 역사학자는 각각 자신의 학문적 측면에서 접근하고 해석하려 할 것이다. 보는 법과 시각을 달리한다.
사람마다 다른 시각과 안목으로 대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새로움과 개성이 빛을 말한다.
보는 법을 익히는 것이야말로, 세상을 살아가는 법과 이치를 깨닫는 일이며 글을 쓰는 법을 깨치는 것이 된다.
가시영역의 것만 보지 않고 불가시 영역의 것을 보는 법, 가청 영역의 것만 듣지 않고, 불가청 영역의 것도 듣는 법을 터득하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보는 법'을 예시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일부만 보지 않고 전체를 본다.
*바깥만 보지 않고 내부를 본다.
*시(時), 공(空)을 초월해 본다.
*정면에서만 보지 않고 거꾸로 본다.
*일시적으로 보지 않고 오랫동안 본다.
*시간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을 본다.
*형식만 보지 않고 내용을 본다.
사물을 보는 눈썰미가 있어야 하며 새로운 발견과 해석과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  


  나. 미래 수필의 개척 방향

(1) 퓨전수필
  수필은 영상 정보화 시대, 변화의 시대의 삶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20세기 영상 정보 시대의 문학 형태는 인쇄 매체로서의 틀에서 벗어나 대중과 영합하려는 시도와 몸부림을 생존적인 차원에서 보일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퓨전(fusion) 수필이 활발하게 전개될 것으로 본다.
좋은 하나의 예를 미술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실내공간에 회화, 조각품을 전시해 놓고 관객들을 기다리던 소극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이젠 대중들을 찾아 나서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종전의 평면적이고 실내 전시에 국한했던 권위적 자세에서 벗어나 대중들 속으로 전시 공간을 전방향으로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미술 행위는 종래의 '그린다' '붙인다' '긁는다' '뿌린다' 등의 표현 기법에서 벗어나 움직이고, 소리치고, 체험하게 하는 동적인 형태까지를 수용하는 다양성을 취하고 있다. 표현 기법의 다양성뿐만 아니고, 미술과 다른 예술 장르와의 통합을 통해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미술+문학, 미술+영화, 미술+음악, 미술+사진, 미술+건축 등이 이뤄지고 있으며 2개 이상의 타장르와의 결합 형태도 있다. 이벤트 미술, 설치미술이라 불리는 이런 새로운 미술장르는 꾸준히 그 영역을 넓혀 가고 있으며 시청각성을 살리고 있어 영상시대 예술로서의 가치를 추구한다.
권위적이고 정적인 미술이 어떻게 이런 변모를 보이는가? 이것은 생존을 위한 시대적 변화의 필요성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문학의 경우에도 인쇄 매체만을 고집할 시대가 아님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시, 소설, 수필, 희곡이 고전적 형식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영상시대의 대중과의 만남 자체가 용이하지 않다.
21세기엔  문학 장르간의 통합이 활발하게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예컨대, 시+소설, 시+수필, 시+수필, 시+희곡, 소설+수필, 시+소설+수필 등을 생각할 수 있다.
문학 장르간 2∼3개의 통합이 이뤄질 때, 수필의 역할이 증대할 것으로 예측된다. 시, 소설, 희곡의 경우는 일정한 형식과 구성의 엄격한 적용을 받지만, 수필의 경우는 자유스런 형식의 문학이다. 장르간 결합때 이 자유스런 공간이 매우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필은 문학 장르간의 통합을 주도할 것이며. 형식과 구성의 다양성과 개방성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문학 장르를 여는 촉진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 영상시대에 문학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인쇄매체의 시각화뿐만 아니라, 영상성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미술 장르의 변화에서 보듯이 타예술 장르와의 결합 형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수필에 있어선 이미 미술수필, 음악수필, 건축수필, 영화수필, 사진수필 등이 시도되고 있고, 타예술장르와의 결합을 이끌어 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음악+문학, 미술+문학, 미술+영화, 미술+사진, 무용+문학의 결합을 상정해 볼 때, 시나 소설보다 그 중간 형태를 취하고 있는 수필 쪽이 효용성 다양성 개방성이 있어서 유용하리라는 판단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앞으로 퓨전수필이 대두될 것으로 전망된다.

(2) 5매 수필
'장편(掌篇)'이란 '극히 짧은'이란 뜻이다. 단편소설보다 짧은 장편 소설은 있었지만 장편(掌篇)수필의 대두는 근래의 일이다. 윤오영의 '달밤'이나 피천득의 '오월'은 5매 내외로써 장편수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두고 굳이 '장편수필'이란 말을 하지 않았다.
'수필과 비평'지는 2001년부터 장편수필을 기획하여 1년이 넘게 게재함으로써 처음으로 장편수필의 전개를 보여주었다. '촌감단상(寸感斷想)'이란 명칭으로 제51호에 김시헌, 정봉구, 정진권, 정목일, 안재진, 제52호에 구자분, 유병근, 장생주, 최병호, 허창옥, 제53호에 반숙자, 박재식, 심영구, 황다연, 제54호에 김수봉, 맹난자, 박영학, 이재인, 정진채의 작품이 선보였다. '수필과 비평'지는 계속해서 장편수필을 청탁하여 게재하고 있다. '새 천년 한국문인'지에서도 기획특집으로 장편수필을 게재한 바 있다
장편수필의 대두에 대하여 문단의 구체적인 반응으로써 '월간문학'지 출신 수필가들의 모임인 '대표에세이문학회'에서 2002년도 연간집을 '5매수필'로 하기로 결의하고, 세미나의 주제를 '5매 수필'의 개척과 방향'으로 잡은 것이 본격적인 논의의 시초이다.
대표에세이문학회에서는 '장편(掌篇)'이란 단어가 추상적이기 때문에 분량에 대한 구체적인 명시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따라, 5매 내외가 적당한 하다는 합의를 도출하였다. 따라서 '장편수필'이란 애매한 개념 대신에 명확한 개념인 '5매수필'이란 말을 붙이기로 했다. 장편수필의 전개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장편수필'의 불분명한 분량에 대해서 명확한 개념정리가 필요한 것이므로, 대표에세이문학회에서 규정한 '5매수필'이란 용어에 대해 검토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수필과 비평'지의 장편수필의 게재와 대표에세이문학회의 5매수필 연간집 발간은 본격적인 장편수필의 전개를 보여주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왜 5매수필의 전개가 대두되고 있는가 하는 점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수필의 분량은 대개 15매 내외로 비교적 짧은 산문이기에 현대인들이 읽기에 적당하다. 시의 장점과 소설의 장점을 두루 취하면서 독자적인 개성을 드러내는 수필은 시와 소설의 중간 거리에서 가장 경제적인 효능을 인정받아 대중문학의 성격을 띄고 있다. 그런데도 3분의 1로 줄여 5매 정도의 분량을 취할 까닭이 있는 것일까?
  짧은 수필의 요구는 '속도'를 가치화 하는 시대적 추세 속에서 파악해야 할 것으로 본다. 독서의 경향을 보더라도 대하소설이나 장편소설이 차츰 퇴조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반면, 만화나 간단한 읽을거리, 짧은 분량의 글을 선호하는 양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시간절약의 경제성이 스피드한 생활을 영위하는 현대인들의 삶과 부응하는 면이 있으며, 5매 내외의 분량은 전철이나 여행 중에서도 시간적 공간적인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 장점이 아닐 수 없다. 짧은 글 속에 함축된 심오한 사상과 값진 체험, 인생적 발견과 의미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 장편수필의 매력이다. 5매 내외의 글은 독자들에게 눈의 피로나 마음의 부담을 주지 않기 때문에 열독성이 있고 경쾌감을 주기 마련이다. 실제로 신문을 볼 경우에도 뉴스 벨류에 따라 톱뉴스의 제목과 부제에서부터 시작하여 필요하다면 본문을 읽어 가는 방식이 신문 읽기의 통례이다. 간결과 축약을 바라고 있다. 이는 모든 면에서 경제성을 요구하는 현대인의 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런 요인들이 수필의 분량을 더욱 짧게 요청하는 하나의 경향을 이루고, '5매수필'의 전개를 바라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3) 기행수필
  근래에 기행수필이 많이 발표되고 있다.
  GNP의 증가, 해외여행의 증가현상을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다.
  여행할 때는 여행하지 않을 때보다 시간이 가득한 느낌을 가진다. 한 순간에 많은 것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새로운 체험의 수용방법으로서 '여행'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여행은 미지에 대한 기대와 흥분, 새로운 세계의 발견과 깨달음 등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인생을 총체적으로 생각해 보게하는 좋은 계기를 마련해 준다.
  삶에 새로운 자극과 활력소를 제공하며 안목을 높여준다.
  기행수필의 진가는 일과성적 체험을 통하여 영원을 수용하며, 동·서 문화, 과거와 현재, 삶과 죽음, 찰라와 영원, 인간과 환경을 동시에 살필 수 있어 미래의 삶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어떤 체험일지라도 글로서 기록하지 않으면 망각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기행수필은 독자들에게 삶의 양식, 방법, 문화, 제도, 풍물에 대한 인식, 다양성, 충동, 창의성을 경험하게 한다. 또한 기행문은 작가의 세상과 인생을 보는 관점, 발견법 그리고 해석법을 보여 주며 적나라하게 자신을 노출시킨다.
기행수필은 인생의 안목과 체험 공간을 최대한 확대시켜준다는 점에서 좋은 기행수필은 독자 들에게 신선함과 즐거움을 안겨준다.
  앞으로 삶의 질(質)을 높이고 체험공간의 확대를 위해서 기행수필이 늘어날 것이고 점차 수필 장르의 한 축을 이루면서 수필문학의 활로를 열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오늘날 국내에 발표되고 있는 대부분의 기행수필들은 '본대로 느낀대로'의 주마간산(走馬看山)식 겉훑기에 불과한 글들이 많고 내면을 투시한 깊이 있는 기행수필을 찾기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또한 여행안내 수준의 상식성에 그친 기행문이 많다는 것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근래에 발표되고 있는 기행수필들을 살펴보면 여행안내서나 안내자의 설명에 의존한 부분이 많고, 단편적인 감상과 지식을 혼합시킨 게  대부분이어서 감흥을 일으키는 글을 찾기가 어렵다.  소설가 강석경씨, 법정스님의 인도기행 수필집을 비롯하여 전숙희씨의 소련기행 수필집 등과 최근 출판사의 기획에 따라 이집트, 몽골, 지중해 등지의 기행수필집들이 간행되어 기행수필의 새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작품으로 기행수필의 진수를 보여준 것으로 폴 브린튼의 「인도명상기행」「이집트의 신비」를 비롯하여 알베르 카뮈의 「안과 겉」, 장 그리니에 산문집 「섬이 고독한 이유」를 들 고 싶다.
  국내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유홍준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비롯한 문화답사기 등은 문화유적과 문화재에 대한 안내성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작가의 깊은 체험과 명상을 느낄 수 없다는 점에서 「기행수필문학」의 범주에 수용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바람직한 기행수필의 전개와 방향을 모색해 본다.  

① 관점과 테마를 가져라
기행문을 쓸 때 대개의 작가가 출발에서 귀환까지 '본대로 느낀대로' 쓰겠다는 의도를 지닌다. 이런 집필태도와 발상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어떤 관점과 시각에서 볼 것이며 테마가 무엇인가를 분명히 정하여야만 기행수필의 방향과 목표가 뚜렷해진다.  
  목표설정이 없으면 안내자의 설명과 여행안내서 내용 등이 조잡하게 삽입될 뿐 만 아니라, 작가의 주관과 견해가 결여돼 주체성을 잃게 된다.
본대로 느낀대로 쓰는 것도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전공분야와 탐구분야를 살려 테마를 설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며, 일관된 시각으로 관찰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전체적으로 살피려다 보면 겉 훑기에 그치고 만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② 전문성과 탐구성이 있어야 한다.
  문화기행, 경제기행, 민속기행, 문학기행, 미술기행, 종교기행, 풍물기행 등 전문성과 탐구성이 있는 테마기행수필이 많이 나와야 한다.
문화기행을 하려고 한다면 동·서양의 비교적 관점에서 볼것인가, 문화사적 관점에서 살필 것인가, 문화비평적 관점인가, 혹은 문화 양식적 특성을 찾을 것인가 등을  결정하는 일이 중요하다. 또한 자신의 관점과 시각을 중시할 것인가, 아니면 전문가나 많은 사람들의 인터뷰나 견해를 넣어서 다각적인 시각을 수용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③ 구성이 있는 기행수필
  일기형식의 기행문을 쓸 것인가, 아니면 소주제별로 쓸 것인가, 시간별로 쓸 것인가, 장소별로 쓸 것인가 하는 것을 결정해야 한다. 구성을 생각하면서 전체적인 주제성과 조화성을 살려야 한다.  

④ 개성적인 문장
개성적인 문장의 구사가 중요하다. 기행수필에 있어서 작가 특유의 개성적 문장이 빛을 발해야만 생동감을 얻게 된다.
  작가 자신의 느낌과 사물에 대한 해석, 그리고 인생의 총체적 체험의 산물로서 얻어지는 정감으로 흠뻑 적셔 놓아야만 독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이다.
  근래에 발표되는 기행수필의 단점, 취약점은 작가의 통찰력과 느낌, 견해, 정감, 발견의 세계가 적다는 것이다.
  이러한 취약성은 체험의 폭이 좁은 점, 전문성 결여, 문장력의 부족에서 나타난다.
⑤ 사실(본대로)과 감상(느낌)을 균배하라
기행수필엔 기록성이 바탕이 되고 있지만, 작가의 느낌과 견해가 중요하며 기록과 감상이 적절히 균배되어 조화를 얻어야 한다.
  본대로(사실)에 치우치면 기록문에 가까워지고 느낀대로(감상)에 치우치면 감상문이 되기 쉽다. 기행문은 새로운 대상과 경험을 쓴 글이므로 사실성과 감상을 조화시키고 여기에 인생에 대한 해석을 가미시켜야 한다.

⑥ 관찰, 탐구, 해석이 있어야
  한 번 스쳐가면서 일별하는 것으로 좋은 기행수필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순간적이고 일과성적 살핌으론 한계가 있다. 대상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내면 투시가 있어야 하며 관찰과 관조가 뒤따라야 한다.
  여기에 탐구와 명상이 곁들여져야 하며 인생과 결부된 작가의 해석이 요구된다. 일과성적인 살핌속에 깊이있는 관찰과 해석을 요구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작가의 전문적인 안목과 통찰력을 기대할 수 밖에 없다.

⑦ 독특한 체험과 흥미
  기행수필에 있어서 전문적인 탐구에만 몰입해 있다면, 독자들의 폭넓은 호응을 받기가 어렵다.
  인간적인 체취, 뒷골목의 풍경, 잘 드러나지 않는 이색지대, 독특한 풍물, 음식, 벼룩시장, 지역주민과의 친교와 대화, 삶의 양식과 모습 등이 적나라하게 펼쳐지고 여행 중에 실수나 사건 등이 어우러질 때 기행수필의 진미가 우러날 것이다.

(4) 테마수필
앞으로는 테마수필의 전개가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신변잡사의 나열, 평범한 생활기와 감상 등은 개성과 참신성을 얻지 못해 독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독자적인 주제와 소재를 통해 전문수필가로서의 면모를 부각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수필가는 보다 전문적이고 독자적인 세계와 관점을 가져야 할 것이고 평생 탐구할 수 있는 테마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관성있는 테마를 갖는 것이 당면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테마수필이 정착되어야 수필문학의 새 시대를 구가할 수 있을 것이다.  



깍두기 說 / 수필가  윤 오 영

  C君은 가끔 글을 써 가지고 와서 보이기도 하고, 나와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나도 그를 만나면 글 이야기도 하고 잡담도 하며 시간을 보내는 때가 많다. 저녁을 같이 먹으면서 깍두기를 좋아한다고, 한 그릇을 다 먹고 더 달래서 먹는다. 그래서 오늘저녁에는 깍두기를 화제로 이야기를 했다.

깍두기는 이조 정종(正宗)때 영명위(永明慰) 홍 현주(洪顯周)의 부인이 창안해 낸 음식이라고 한다. 궁중에 경사가 있어서 종친(宗親)의 회식이 있었는데, 각궁(各宮)에서 솜씨를 다투어 一品料理를 한 그릇씩 만들어 올리기로 했다. 이 때 永明慰 부인이 만들어 올린 것이 누구도 처음 구경하는 이 소박한 음식이다. 먹어 보니 얼근하고 싱싱한 맛이 일품이다. 그래서 위에서 「그 희한한 음식, 이름이 무엇이냐」고 하문하시자「이름이 없습니다. 평소에 우연히 무를 깍둑 깍둑 썰어서 버무려 봤더니, 맛이 그럴 듯하기에 이번에 정성껏 만들어 맛보시도록 올리는 것입니다」「그러면 깍둑이구나」하고 크게 찬양을 받고, 그 후 오첩 반상의 한 자리를 차지해서 상에 오르게 된 것이 그 由來라고 한다.

그 부인이야말로 아마 다른 부인들은 산진해미 희귀하고 값진 재료를 구하기에 애쓰고 주방 주위에 흔히 볼 수 있는 무·파·마늘은 거들떠보지도 아니했을 것이다. 갖은 양념 갖은 고명을 쓰기에 애쓰고, 소금·고추가루는 무시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재료는 가까운 데 있고 허름한데 있었다. 옛날 음식 본을 뜨고 혹은 중국사관(中國使 )이나 왜관(倭 ) 음식을 곁들여 규격을 맞추고 법도 있는 음식을 만들기에 애썼으나 하나도 새로운 것은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官中에 울릴 음식을 그런 막되기 썰은 규범에 없는 음식을 만들려 들지는 아니했을 것이다. 무를 썰면 곱게 채를 치거나 나박김치본으로 납작 납작 예쁘게 썰거나 장아찌본으로 걀쭉걀쭉하게 썰지, 그렇게 꺽둑 꺽둑 썰 수는 없다. 기름·깨소금·후추가루식으로 고추 가루도 적당히 치는 것이지 그렇게 시뻘겋게 막 버무리는 것을 보면 질색을 했을 것이다.

  그 점에 있어서 깍두기는 무법이요 창의적인 대담한 파격이다. 그러나 한국 음식에 익숙한 솜씨가 아니면 이 대담한 새 음식은 탄생될 수 없다. 실상은 모든 솜씨가 융합돼 있는 것이다. 이른바 무법중의 유법이다. 무를 꺽둑 꺽둑 막 써는 것은 곰국 건지 썰던 솜씨요, 발효시켜서 익혀 먹도록 한 것은 김치 담그던 솜씨가 아니겠는가, 다 재래에 있어 온 요법이다.

  요는 이것이 따로 따로 나지 않고 완전동화 되어 충분히 익어야 하고 싱싱하고 얼근한 맛이 구미를 돋구도록 염담을 잘 맞추어야 한다. 음식의 염담이란 맛의 생명이다. 그리고 이것이 한국인의 구미에 상하 귀천 없이 기호에 맞은 것이다. 그러면 되는 것이다. 격식이 문제 아니요 유래가 문제 아니다.

  이름이야 무엇이라 해도 좋다. 신선로(神仙爐)니 탕평채(蕩平菜)니 두견화다(杜鵑花茶)니 가증스럽게 귀한 이름이 필요 없다. 깍두기면 그만이다. 깍두기가 반상(정식) 오첩에 올라 魚·肉과 어깨를 나란히 하되 오히려 中央에 놓이게 된 것이요, 위로는 官中士大未家로부터 일반 빈사(貧士) 서민(庶民)에 이르기까지 애호를 받고 있는 것이다.  

  C君은 영리한 사람이다. 「先生님, 지금 깍두기를 빌어 隨筆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지요. 수필의 소재는 우리 생호라 주변에 있고 다시 평범한 데 있는 것이요 신기하고 어려운 데 구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습니다.」「그러나, 무가 싱싱하고 단 무라야 깍두기 맛이 나지 썩은 무나 시든 무야 되겠나」「그것은 글의 품위에 관계되겠지요, 청신하고 진실한 것으로 깊이를 찾을 수 있는 것이라야 되겠지요」「이름이야, 小品이라고 하든 에세이라고 하든 잡문이라고 하든 상관할 바 아니지요, 나는 내 글을 쓰는 것이니까요. 어느 이름에 구애될 필요는 없지요. 어느 형식이나 유파에 따를 필요도 없지요. 오직 파격이 필요하지요. 램의 수필이. 어디까지나 환상的이요, 정서的인가 하면 노신(魯迅)의 수필은 정열적이지요. 혁명적이었고, 주자청(朱自淸)의 수필이 서정적이요 미문적이었다 하면 프루스트의 수필은 사색적이요 내심적이었거니와 그들의 수필을 기준으로 할 아무 필요도 없으니까요.

  서구적인 저널리즘이 칼럼니스트들을 수필 문학가라 하고 한편에서는 서투른 작문을 수필 명작이라고 떠드는 것을 추종할 필요도 없지요. 그러나 남들이 내 글도 수필이라고 불러 준다면 그런대로 받아들여 족하고요. 다만 읽어서 싱싱하고 얼근한 깍두기 맛만 낸다면 소설·시와 같은 문학들과 함께 오첩 반상에, 오히려 중앙을 차지하게 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지금 말씀하시던 중 무를 숭덩 숭덩 썬 것이 무법인 듯하되 곰국 건지 썰던 법이요 云云하시던 말씀인데 수필에서 그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는 없을까요」

  「자네가 내 말을 너무 지나치게 생각하니까 좀 무서우이마는 수필에 정서가 흐르는 것은 서정시에서 빌어온 법이요 수필에서 서술이 긴박하고 빈틈 없이 나가는 것은 단편 소설에서 빌어온 법일세. 설리는 평론의 수법에서, 묘사는 배경 소설의 수법에서, 문장의 탁의는 시의 메타포에서 확충된 것이요, 문맥의 정연함은 논설문의 수법에서, 독자에게 친절감을 잃지 않는 것은 서명한 서간문의 수법에서, 사색적이요 반성적인 것은 저명한 일기문의 수법에서, 문장의 활기있는 긴장(緊張)은 희곡(戱曲)의 수법에서, 문단과 문단이 갈릴 때마다 청신(淸新)한 전환(轉換)은 시나리오의 씬을 바꾸는 솜씨에서 자유자재로 섭취 활용해 가며 자기의 독특한 문체와 참신한 문태(文態)를 창조해 나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것이 드러나거나 의식적인 기교에 지나치거나 익지 아니한 날내가 나면 그 글은 원숙한 글이 아닐 것일세」

「음식의 맛의 생명은 염담 맞추기에 있다고 하셨는데 문장에서 염담이란 무엇에 해당됩니까?」
  「문장의 농담(濃淡)이지. 문장의 농담(濃淡)이 없으면 정물화(靜物畵)에 음영(陰影)없는 것과 같고, 음악에 박자 없는 것과 같지. 문장은 이 농담에 의해서 含蓄도 있고 餘韻도 있고 奇幻도 있고 내재적인 리듬도 있어 비로소 시취(詩趣)를 갖게 되는 것일세. 고인이 농담(濃淡)없는 문장을 가리켜 몰골도(沒骨圖)라고 풍자한 이가 있어. 우리 모양으로 문장이 미숙하고, 또 배워 보려는 사람들은 이 깍두기에서 얻는 바가 있을 것일세.」
  日後의 참고 삼아 이 날의 문답을 적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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