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이 말하는 좋은 시

2014.02.15 04:14

동아줄 김태수 조회 수:627 추천:18


시인들이 말하는 좋은 시



1.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가 말하는 좋은 시



에즈라 파운드는 시의 요소를 ‘센스, 사운드, 이미지, 톤’ 네 가지로 설명하였다.



첫째 ‘센스(sense)’는 지적인 감각, 상투적인 감각이 아닌 참신한 감각을 말한다. 독자들의 이해력이 요청되는 까닭에 더러는 난해하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둘째 ‘사운드(sound)’는 음악성을 말한다. 시의 표현 재료는 언어인데, 음악성을 띤 언어라야 시어가 된다. 언어의 음악성, 곧 운율은 독자에게 예술적인 흥분과 쾌감을 주는데 외형률보다는 미묘한 내재율에 현대시의 묘미가 있다.



셋째 ‘이미지(image)’는 심상 또는 영상, 형상 등으로, 시를 읽어 가는 동안 우리의 마음속에 그려지는 그림을 말한다. 대체로 비유로써 형성되는데 직유와 은유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미지를 표현할 때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비밀 암호 같은 비유를 써서는 곤란하다.



넷째 ‘톤(tone)’은 어떠한 자세로 인생 또는 세계를 보는가, 어떠한 어조로 말하는가를 뜻한다. 이러한 현대시의 네 가지 요소 ― 센스, 사운드, 이미지, 톤을 고루 조화시킨 그러한 시를 훌륭한 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 박태일 시인이 말하는 좋은 시



좋은 시와 나쁜 시를 결정짓는 취향의 요건은 단순하지 않다.

그것은 시 자체에서 오는 것 못지않게 시 바깥에도 있다. 각급학교 문학교육, 등단방법, 문학상과 같은 다양한 인정기제나 제도적 틀, 대중매체, 또는 인맥, 학맥, 지맥, 판매지수나 기호도 순위 등이 그 내면화의 세부를 이룬다. 이른바 시의 역장(力場)이다. 고급시와 대중시 그리고 교양시의 세가지 역장이 있는데, 이 셋은 서로 다른 시적 취향과 목표를 겨냥한다.

좋은 시인가 나쁜 시인가 하는 잣대와 조건은 이 역장 안에서 다시 나뉠 수밖에 없다.



첫째, 좋은 시는 좋은 시인으로부터 말미암는다.

시인을 바라보는 눈길에는 크게 둘이 있는데, 심리적 시인관과 사회적 시인관이다.

심리적 시인관이란 시인 안쪽에 시인이 됨직한 특질을 갖추고 있다고 보는 생각이다.

사회적 시인관은 시인은 여느 사람과 다름없지만 시 창작 수련과 발표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 이를 뜻한다. 우리 근대시사에서 좋은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이들은 그 삶에서 흔히 특별한 면모를 지닌다. 따라서 심리적 시인관들 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좋은 시인은 끊임없이 시와, 언어와 다투는 이다.



둘째, 시는 언어 관습 가운데 하나이며 언어의 특이성과 가능성을 극대화하려는 갈래다. 따라서 좋은 시는 언어의 진폭이 넓고, 다채롭게 그 활용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런데 언어는 자민족 중심적이다. 언어 활용의 가능성이란 바로 민족어의 가능성과 다르지 않다. 즉, 좋은 시는 전통을 따르면서도 그것을 더욱 변화, 발전시킨 경우다.



셋째, 표현에서 볼 때, 시는 무엇보다 언어의 긴밀성을 요구한다. 따라서 수필이나 소설과 달리 압축과 생략을 바탕으로 삼는다. 이것이 뜻하는 궁극적인 자리는 반복불가능성, 곧 다르게 씌어질 수 없는 상태에 이른 표현이 그것이다.



넷째, 작품 내용에서 볼 때, 낯설게하기란 개념이 있다. 이것은 단순히 형식적 일탈에 붙인 이름이 아니다. 손쉽게 이를 수 있는 생각이나 느낌, 이미 타자에 의해 만들어진 기지의 세계를 겨냥한 시는 좋은 작품이 되기 힘들다. 손쉬운 고정관념으로부터 매몰차게 등을 돌리고 서려는 작품이 좋은 시라 할 수 있다.



다섯째, 독자 쪽에서 볼 때, 늘여서 읽기 어려운 시, 뻔하고 빤하지 않아 한 번에 쉽게 뜻이 잡히지 않은 시, 그것이 무엇인가를 거듭 고심하게 만드는 힘이 큰 작품이 좋은 시일 가능성이 높다. 적게 말하면서 많은 생각과 느낌을 일깨우고자 하는 역설적 갈래가 시다.



좋은 시란 바로 이렇듯 독자들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고, 그들을 작품 안에 묶어두는 힘이 강한 작품인 셈이다. 위의 요건들이 뜻하는 궁극은 하나다. 뜻있는 말놀이, 문화관습으로서 이르기 힘듦이 그것이다. 그 방위가 어디든 더욱 이르기 힘든 상태를 보여준 작품, 그것이 좋은 시다.



3. 강은교 시인이 말하는 좋은 시



첫째, 장식 없는 시가 좋은 시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 시적 공간만으로 전해지는 것이 시의 매력이다.

남이 하지 않는 얘기를 하되 관념이 구체화되고 형상화되었을 때 시가 될 수 있으므로 묘사하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둘째, 시는 감상이 아니라 경험이다. 경험은 구체적 언어를 이끌어 내준다.

감상적인 시만 계속 쓰면 ‘나’에 갇히게 된다. 하지만 시는 개인으로부터 시작하지만 개인을 넘어서야 감동을 줄 수 있다.



셋째, 시가 어렵게 느껴지는 순간엔 처음을 돌아보고 자신을, 자신이 시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신념을 갖고 시를 쓰되 남이 이해할 수 있는 시를 써야 한다. 그것이 곧 좋은 시다.



넷째, 시는 정신적으로 전율을 느껴야만 나올 수 있다. 그러므로 시를 쓰려면 전율할 줄 아는 힘을 가져야 한다. 표현과 기교는 차차로 연습할 수 있지만 감동과 전율은 연습할 수 없는 부분이다.

순수한 전율을 맛보기 위해서는 시인은 남다른 노력을 해야 한다.



다섯째, 자유로운 정신(Nomade)이란 정착을 싫어하는 유목민에서 나온 말로, 무정부상태, 틀을 깬 상태, 즉 완전한 자유를 의미한다. 예술의 힘, 시의 힘은 바로 이 노마드의 힘이 아닐까? 그러므로 우리는 틀을 깨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



여섯째, ‘낯설게하기’와 ‘침묵의 기법’을 익혀야한다.

상투의 틀에 붙잡히지말고 끊임없이 새로운 정신으로 긴장을 살려나가야 한다. ‘시 자체’와 ‘시적인 것’은 확연히 구분되어야 한다. 시적인 것에만 너무 붙들려 있으면 시가 나오지 않으므로 현실에 사로잡히지 않는 자유정신을 지녀야 할 것이다. 또한 침묵의 기술, 생략의 기술은 우리를 긴장시키는 힘인데 이를 익히려면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일곱째, 시를 쓰고, 어느 정도의 성취를 맛보려면 약간의 결핍 현상이 필요하다.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해선 안된다. 왜냐하면 매사 풍요한 상태에선 시가 나오기 힘들기 때문이다.



4. 고재종 시인이 말하는 좋은 시



범속한 사물과 일상 속에서 생의 의미를 들여다보고자 갈망하는 이들이야말로 시인이다. 시인의 삶의 절절한 체험이 상상력을 통한 시적 체험으로 올라서야 삶의 의미와 꿈을 담은 시가 된다. 그러므로 상상력을 잘 구사할 수 있게 하는 몇 가지 시적 전략이 중요하다.



첫째, 발견이다.

발견이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발명과 달리 고작해야 이미 존재하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수많은 삶의 편린들 속에서 시가 될 수 있는 특정한 편린들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 새로운 눈을 가져야 한다. 소재 자체는 우리가 흔히 일상에서 체험하는 것이더라도 발견적 상상력이라는 엄격한 시선이 시를 관장하고 있고, 또한 그 밑에 시대상황 혹은 시대정신에 대한 주제의식이 치열하게 깔려 있다면 시로서 성공한 것이다. 독자들은 일정한 전이해(前理解)를 갖게 마련이다. 전이해는 작품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며 일종의 선입견으로, 동시대의 삶의 상황과, 시와 시인에 대한 기대 그리고 언어지식, 자신의 인생관 등등이 얼크러져 있는 인식의 배경이다.

한편의 시를 읽을 때 그 시에 대한 전이해가 중요한 해석의 수단이 된다. 그러나 전이해가 그대로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작품 속의 구체적 사실들의 의미를 전이해를 통하여 해명하지만, 그 부분들은 다시 이해 틀을 수정한다. 즉, 전체의 의미는 부분들의 의미를 밝혀주지만 그 부분들의 의미는 다시 전체의 의미를 변환시킨다. 그러므로 독자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전이해에 아무런 변화를 요구할 수 없는 시는 새로움이 없는 시다.



둘째, 관찰이다.

갈망이 있을 때에야 늘 범속한 사물과 일상 속에서도 생의 의미를 들여다보고 관찰해 낼 수 있다. 관찰만 예리하게 잘 하여도 시의 절반은 이룬 셈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관찰은 시적 묘사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묘사가 없는 시가 있을 수 없듯이 관찰이 없는 묘사 또한 있을 수 없다.



셋째, 연상이다. 사랑은 시와 흡사하다.

사랑이 시와 흡사한 것은 양자가 모두 논리의 대척점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사랑에 빠졌을 때 나 아닌 또 다른 존재를 향한 갈망 또한 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도 이 곤혹스러운, 무어라고 규정할 수 없는, 예전엔 느껴 본 적도 없던 이 독특한 감정이야말로 시와 다르지 않다. 완벽한 주관성, 타자에의 몰두, 그 어떤 언어로도 자신을 드러낼 수 없다는 절망과 모색 등이야말로 시와 사랑의 교차지점이다. 이 모든 독특한 갈망들을 연상은 너끈히 감당한다.

연상이야말로 의미를 은폐하고 세계를 자신의 내부로 끌어들이는 유효한 방법이며 모든 세계를 한 곳으로 끄러 모으는 힘이다.



넷째 투사이다.

주체는 반드시 주체의 관점을 통해서 대상을 바라본다.

그 관점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그럼에도 그 주관은 삶의 본질을 날카롭게 가로지르는 주관이자, 어떤 객관적인 언술로도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을 향해 비약하는 주관이다. 심정적 깨우침을 안겨주는 이 주관을 가?케 하는 힘을 투사라고 한다. 투사는 또 직관력을 절대로 필요로 한다.



다섯째, 유추이다.

시란 다른 질서 안에서 존재하는 사물을 자신의 질서로 바라보는 것이다. 타자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는, 혹은 자신의 질서 안으로 타자를 끌어들이는 시적 관계 양상을 유추라고 명명할 수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삶을 배운다’는 생각이 필요하다.

두 상징이 얼마나 엄밀히 조응하는가에 따라 유추의 효과는 그 빛을 발한다. 일반적으로 유추를 통해 획득되는 시적 인식은 계몽적이거나 풍자적인 형태로 드러난다. 그러나 시가 문제 삼는 삶은 특정한 삶이지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추상으로서의 삶이 아니기 때문에 시가 어떠한 삶을 풍자하거나 외경스러워하는지를 무엇보다 명료하게 인식해야 한다.



여섯째, 전복이다.

현상을 통해 현상의 이면에 숨죽이며 떨고 있는 본질을 드러내는 사유의 힘, 그것이 꿰뚫어보는 상상력이며 뒤집어보는 상상력이며, 일체의 허위를 전복하는 상상력이다. 뒤틀린 현실을 전복하고자 할 때 전복적 상상력은 비판적 세계인식을 드러내는 유효한 무기가 된다. 따라서 이것은 앞의 발견적 상상력과 함께 리얼리스트들의 중심적인 상상력을 형성한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시적 상상력의 개진 방식들은 사실 추상화되어 있다. 한 편의 시는 모름지기 단 하나의 주도적인 상상력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섬세한 발견과 관찰, 날카롭게 대상의 본질을 길어 올리는 투사와 유추, 분리된 것을 결합하는 연상과 현실을 부정의 눈으로 확인하는 전복의 상상력들은 사실 한 편의 시에 긴밀하게 어우러져 있다.

상상력들은 동일한 깊이로 시적 세계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주도적인 상상력이 전면에 배치된 채 여타의 상상력들은 후경에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시적 상상력을 통해 시를 읽고, 나아가 시를 쓰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틀의 이면에 잠복해 있는 시정신이 더욱 소중한 것이다.



5. 신경림 시인이 말하는 좋은 시



첫째, 현실의 삶이 뿌리 깊이 박힌 시가 좋은 시다.

둘째, 시로써 사람 사는 세상에 보다 나은 역할이 있어야 한다.

셋째, 우리의 좋은 것을 드러낼 수 있는 우리만의 목소리여야 한다.

우리 문화를 지키는 역할도 필요하다.

넷째, 남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만지지 못하는 것을 찾아 써야 한다.

다섯째, 시를 통해 나 자신과 대화하고 나 자신을 탐구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섯째, 시를 읽으면 만져지고 느껴지는 분명하고 선명한 이미지가 있어야 한다.

일곱째, 좋은 독자가 먼저 되어야 한다.

좋은 시를 많이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좋은 시도 예외가 있을 수 있고, 느낌으로 느끼는 시, 설명할 수 없지만 좋은 시도 있을 수 있다.




6. 정민 교수가 말하는 좋은 시





좋은 시란 운문으로서의 운율적 요소를 바탕으로 독창적인 이미지와 새로운 인식 내용을 보여주는 작품 일 것이다.



첫째, 시인은 시 속에서 벌써 다 말하고 있지만 겉으로는 이런 사실을 하나도 표현하지 않는다.

좋은 시 속에는 감춰진 그림이 많다. 그래서 읽는 이에게 생각하는 힘을 살찌워 준다.



둘째, 시인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직접 하지 않는다.

사물을 데려와 사물이 대신 말하게 한다. 즉 시인은 이미지(형상)를 통해서 말한다.

한편의 시를 읽는 것은 바로 이미지 속에 담긴 의미를 찾는 일과 같다.



셋째, 시 속에 시인의 마음이 담기지 않으면 아무리 표현이 아름다워도 읽는 사람을 감동시킬 수 없다. 겉꾸밈이 아니라 참된 마음이 깃든 시를 써야한다.



넷째, 시에서 하나하나 모두 설명하거나 직접 말해 버린다면 그것은 시라고 할 수 없다.

좋은 시는 직접 말하는 대신 읽는 사람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다섯째, 하나의 사물도 보는 방향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사물 속에는 다양한 의미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좋은 시는 어떤 사물 위에 나만의 의미를 부여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시이다.



여섯째, 사물 위에 마음 얹는 법을 배워야 한다. 시는 우리에게 사물을 바라보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시인은 사물을 관찰하며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일곱째, 좋은 시는 남들이 생각한 대로 생각하지 않았기에 좋은시이다. 시인은 사물을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사람이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든다. 그래서 사물을 한 번 더 살펴보게 해 준다. 시는 사물이 시인에게 속삭여 주는 이야기를 글로 적은 것이다.



여덟째, 위대한 예술은 자기를 잊는 아름다운 몰두 속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훌륭한 시인은 독자가 뭐라 하든 자신이 몰두할 때까지 고치고 또 고친다.

우리가 쉽게 읽고 잊어버리는 작품들 뒤에는 이런 보이지 않는 고통과 노력이 담겨 있다.



아홉째, 시는 그 사람과 같다. 시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다 드러난다.

사물을 보며 느낀 것은 사람마다 같지 않다. 그 사람의 품성이나 생각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시인은 그래서 말을 조심하고 행동을 가려서 할 줄 아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열째, 시 속에서 시인이 일부러 분명하게 말하지 않을 때가 있다.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읽는 사람은 이렇게 볼 수 있고 저렇게도 볼 수 있다.

모호성이라 할 수 있으며 다의적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분명하게 다 말해 버리고 나면 독자들이 생각할 여지가 조금도 남지 않는다.



열한번째, 직접 말하는 것보다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 좋다.

시 속에서 시인이 말하는 방법도 이와 같다. 말하지 않고 조금만 말한다. 그리고 돌려서 말한다.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대신 스스로 깨닫게 한다. 마음이 고이는 법 없이 생각과 동시에 내뱉어지는 말, 이런 말속에는 여운이 없다. 들으려고는 않고 쏟아 내기만 하는 말에는 향기가 없다.

말이 많아질수록 공허감은 커져만 간다. 무언가 내면에 충만하게 차오르는 기쁨이 없다.



열두번째, 시에서는 한 글자 한 글자가 모두 소중하다.

한 글자가 제대로 놓이면 그 시가 살고, 한 글자가 잘못 놓이면 그 시가 죽는다.

훌륭한 시인은 작은 표현 하나가 가져오는 미묘한 차이도 놓치지 않는다.









7. 이건청 교수가 말하는 좋은 시





첫째, 상상력과 감수성이 긴장 상태에 있어야 한다.

둘째, 표현에 대한 사무치는 욕구가 내재해야 한다.

셋째, 표현 욕구의 정점을 표현할 최초의 말이 있어야 한다.

넷째, 표현욕구는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체험과 연결되어야 한다.

다섯째, 표현 욕구를 대신할 형태를 찾아야 한다.

여섯째, 형태를 이룰 말들이 적절하고 최선의 것이어야 한다.



다양한 상상, 이질적인 대상들을 통합해보는 돌발적인 상상, 층위가 넓은 사유,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상상을 할 수 있어야 좋은 시를 쓸 수 있다. 일상과 타성으로부터의 탈출이 필수적이다.

좋은 시가 되기 위해서는 제목도 매우 중요하다. 독자를 작품속으로 불러들일 수 있는 표제가 좋은 표제이다. 표제는 시 구조의 키 워드이며 구조를 심화시키고 완결시키는 것이다. 표제와 내용은 가급적 의미의 층위가 먼 것으로 선택되어, 독자가 시를 읽어가면서 ‘알아차리기 효과’나 ‘충격효과’를 통해 경이로움을 체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출처 : http://blog.daum.net/junggongsim/9696271 시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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