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신춘문예 시조 총평

2014.04.28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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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신춘문예 시조 총평




                                                                                     이 봉 수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매년 정월 초하루에는 신춘문예 당선작이 발표된다. 연말에 많은 응모작을 단시일에 심사하여 급히 발표된 신춘문예 당선작은 느긋한 시간을 가지고 엄격한 심사를 거친 시조 전문지의 당선작보다 인기가 없을 것 같지만 현실은 정반대이다. 독자가 한정된 문예지의 발표작은 파묻혀 버리기 쉽지만 전 국민이 보는 언론사의 발표작은 대중의 관심을 끄는 순간파괴력이 크다. 게다가 소규모의 문예지들은 난립하여 사이비 시인까지 마구 양산해 내지만 신춘문예는 언론사별로 1년에 1편씩만 당선시키므로 귀하고 무게가 있어 화려한 등용문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에 따라 여러 신문사의 신춘문예에 많은 지망생들이 모이고 어려운 경쟁에서 이긴 당선작들은 장래 시조단의 방향을 향도한다. 오늘날의 시조는 정형이 허물어지고 자유시와 비슷하게 변질되어 있는 데, 이는 기성 시인들의 책임이 크지만 신춘문예도 자유롭지 못하다.

  

  신춘문예 심사위원들을 포함하여 많은 원로․중견 시조시인들은 수의 구별을 없애고 정형을 벗어나 자유시 흉내를 내는 것이 몸에 배어 교정하기 어렵게 되었다. 불행히도 시조 지망생들은 시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심사위원들을 따르고 있다.

  

  2014년 신춘문예 당선작들도 정격 우수작품은 거의 없고 대다수가 파격작품이지만 그런대로 예년에 비하여 음보정형에 많이 접근하고 있다. 왜곡된 시조를 시급히 바로 잡고 자수정형을 확립해야 할 것이다.

  

  이하 정형을 재는 기준으로 자수정형 3434 3444 3543을 정면 상좌에 앉혀 놓고 한두 자 가감이 허용되는 음보정형을 보조저울로 삼아 2014년도 신춘문예 작품들의 무게를 달아 본다.

  

  

(1) 중앙일보

(중앙일보는 신춘문예대신 연말에 대상, 신인상 및 신인문학상 등 3분야로 나누어 시상한다. 대상은 시집 1권 이상 출간하고 등단 15년 이상인 기성시인의 작품, 신인상은 시조 10편 이상 발표하고 등단 5-10년인 기성시인의 작품, 신인문학상은 시조백일장 연말장원 당선작이다.)

  

<대상>               오래된 시장 골목

                                                        박명숙

누구는 호객하고 누구는 돈을 세는

양미간이 팽팽한 노점 앞을 지나는데

꽃집의 늦은 철쭉이 여벌옷처럼 펄럭인다

가끔씩 여벌처럼 세상에 내걸려서

붐비는 풍문에나 펄럭대는 내 삶도

마음이 지는 쪽으로 해가 지듯. 저물 것인가

퍼붓는 햇살까지 덤으로 얹어놓아도

재고로만 남아도는 오래된 간판들을

쓸쓸히 곁눈 거두며 지나는 정오 무렵

  

<신인상>                 윷놀이

                                                         서정택

치자 향 풀풀 내며 내려앉는 함박눈

넉가래 손잡이를 매만지는 잡부 앞에

김 서린 비닐하우스 노란 오이꽃이 핀다

하루치의 일당과 한 켤레 털신을 위해

살얼음 얇은 눈이 안 녹은 듯 녹은 내를

우리는 해진 발 대신 신을 들고 건넜다

이제는 갈라지고 자꾸만 터지는 손

칼바람 밀쳐 내며 어딜 향해 뻗는지

던지는 나무 윷가락 모였으면 좋겠다

  

* 심사위원 심사평 심사위원: 장경렬·정수자·이지엽(대표집필 이지엽)

 (대상 당선작은) 제목에도 드러나듯이 작품은 오래된 풍경을 소재로 하고 있다. 힘이 들어가 있지 않은데도 읽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호객하고 돈을 세는 ‘양미간이 팽팽’하게 느껴지는 치열한 삶의 긴장이 있지만 동시에 행간의 쓸쓸함이 있기에 그렇다. ‘늦은 철쭉’에서 연상된 ‘여벌옷’의 심상이 ‘붐비는 풍문에나 펄럭대는’ 우리네 삶으로 연장되면서 세상의 이치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소시민의 심리가 둘째 수 종장에 압축돼 있다. 그러지 않으리라 생각하면서도 ‘마음이 지는 쪽으로’ 저물어가는 삶의 깊은 속내가 오래도록 시선을 붙든다. 삶의 내면에 닿아 있는 울림과 밀도 높은 서정성이 엮어내는 커다란 힘의 자장이 징소리처럼 길고 깊다.

  신인상... 서정택씨의 ‘윷놀이’는 ‘하루치의 일당’으로 살아가는 한 잡부의 삶을 통해 고통을 감내하는 아픔과 희망을 동시에 변주하고 있다. 우리 대다수 서민은 ‘해진 발 대신 신을 들고’ 살얼음 내를 건너고 있지 않은가. 유달리 힘들었던 이 한해라도 우리가 내뻗는 윷놀이판, 나무 윷가락이 모여 ‘윷’이나 ‘모’쯤으로 한 번 훌쩍 뛰어 넘는 신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높이 샀다.

  

* 필자의 종합평

  <대상>수상작은 시조의 형식면에서 보면 3수의 구별이 없는 1연 9행의 자유시이다. 3수를 붙여 놓은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총 36마디 중 10마디(28%)가 자수정형을 벗어 난 파형시조이다.

  내용상으로는 ‘정오의 시장골목을 때 늦은 철쭉과 오래된 간판들을 보며 지나간다.’는 것이 전부이다. [양미간이 팽팽한 노점]은 어떤 노점이며, [마음이 지는 쪽으로 해가 지듯]은 해는 서쪽으로 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지는 쪽으로 진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하니 독자는 어리둥절하다. 첫째 수(수라고 할 수도 없지만)의 종장 [여벌(옷)처럼]과 다음 수의 초장 [여벌처럼]이 중첩되어 점수를 깎아 먹고 있다. [해가 지듯] 다음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무슨 뜻일까? 가장 무게를 두어야 할 셋째 수 종장을 [정오 무렵]으로 끊어 꼬리 잘린 도마뱀같이 작품의 완성도를 낮추고 [정오 무렵]을 핵심 관념으로 만들어 작품의 가치를 떨어트렸다.

  

  <신인상>당선작 역시 1연 9행의 자유시이다. 첫째 수(수라고 할 수도 없지만) 종장 [노란/ 오이꽃이/ 핀다]는 2.4.2조로 4.3조와는 거리가 멀어 사이비 시조이다.

  둘째 수 중장 [살얼음 얇은 눈]은 ‘살얼음인 얇은 눈’이므로 있을 수 없는 개념이다. 눈이면 눈, 얼음이면 얼음이지 ‘얼음인 눈’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눈이 녹은 내를 ‘우리는 해진 발 대신 신을 들고 건넜다’는데 왜 신을 들고 건넜는지, 또 평소에는 발을 들고 건너는 것이 정상인 듯 표현하였는데 어리둥절할 뿐이다. 대단한 예술성이 있는 듯이 포장하여 독자를 속이는 것 같다. 심사위원들도 우리 대다수 서민은 ‘해진 발 대신 신을 들고’ 살얼음 내를 건너고 있지 않은가. 라고 놀랄 소리를 하였는데 발을 들고 내를 건너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많은 서민이 어렵게 살고 있지만 발이나 신을 들고 내를 건너는 것은 아니다. 비유가 적절하지 않으며 말도 되지 않는 비유가 작품을 망치고 있다.

  이 작품은 제목이 ‘윷놀이’이지만 첫째 수에서 윷과는 관계가 없는 잡부를, 둘째 수에서는 살기 어려운 서민생활(?)을 묘사하였고, 셋째 수의 종장에서 돌연 ‘윷가락’이 등장하였지만 전체적으로 우리의 전통문화인 즐거운 ‘윷놀이’와는 거리가 먼, 내용을 헛짚은 작품이다. 닭을 그려야 하는데 메추리를 그려 놓았다.  




<신인문학상>     바둑 두는 남자

                                                       김 샴(김태년)

쉰다섯의 전장까지 판판이 패자였다

실패한 한 중년의 마지막 한 판 승부

밀리면 더 갈 곳 없는 종점에 서 있었다.

  

이겨도 얻어내는 전리품은 없었지만

함몰된 눈알 가득 불꽃들 살아 튄다

세상에 남길 유흔이 살아있는 눈빛이듯.

  

마지막 외통수가 비수로 남았을 때

찌르지 못한다면 찔러야 했었기에

파르르 손이 떨리던 일대기가 끝났다.

  

여름옷 입은 채로 한 겨울에 발굴됐다

바둑 두는 남자의 노숙터 부장품은

살아서 빛나던 한때 아버지란 칼 한 자루.

  

* 심사위원 심사평 심사위원: 오승철·권갑하·강현덕·이달균(대표집필 이달균)

  ‘바둑 두는 남자’는..주검의 발견을 ‘발굴’로, 소지품을 ‘부장품’으로 표현한 것이 독특했다.

 

* 필자의 종합평

  자수정형 3434 3444 3543에는 못 미치지만 정격시조이다. 수․장․구의 구별이 뚜렷하고 한두 자 가감한 곳이 있지만 음보정형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내용도 칼 한 자루와 함께 발굴된 한 남자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옥에 티라 할까? 넷째 수 종장 [아버지란 칼 한 자루]는 작품의 완성미가 없는 꼬리 잘린 도마뱀이고 의미도 선명치 못하다.

  시조의 형식과 내용 양면에서 기성시인의 <대상>이나 <신인상>수상작보다 훨씬 낫다.

  

  

(2) 조선일보

            꽃피는 광장

                                                        정승헌

돌담도 스크럼 짠 유월의 대한문 앞

물대포 날아드는 왜자한 화단 너머

샐비어 붉은 깃발이 자리싸움 한창이다

  

질끈 두른 머리띠에 징소리가 울린다

응어리진 선소리꾼 목이 쉰 구호마다

신호에 발 묶인 차들 덩달아 소리치고

  

발 디딘 한 뼘 땅을 탐하려는 트레바리

촛불도 고개 숙인 분향소 흘금대다

저물녘 도시 소음에 귓불이 시려온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꼬리 문 메아리들

흘레바람 비를 몰아 묵은 앙금 씻고 나면

헐벗은 저 꽃밭에도 봄은 그예 오겠지




* 심사위원 심사평 심사위원: 정수자

삶의 장면 뒤로 보이는, 廣場의 새로운 힘-

  낡은 서정이나 안이한 관념의 세계를 벗어낸 작품이 늘어 반가웠다.....'광장'이라는 현실의 역동적 장소성과 삶의 장면들을 네 수에 고르게 배치하며 우리 사회의 바람을 '꽃피는 광장'으로 승화해 가는 역량도 뛰어나다. '스크럼 짠 유월의 대한문 앞'에서 꿈꾸는 '봄'은 당면한 계절과 상관없이 우리가 모두 바라는 상징적인 봄이겠다. 주문을 덧붙이면, 바라보는 자의 시선에 머물 수 있는 공소성의 우려를 넘어서야 한다는 점이다.

  

* 필자의 종합평

  3장 6구 12마디가 분명한 4수. 자수정형에는 못 미치지만 음보정형에 맞는 정격 연시조이다.

  이 작품은 어느 해인가 용산 철거민 참사를 내세워 서울시청 앞 광장에 분향소를 차려 놓고 항의 투쟁하는 장면을 그린 작품으로 보인다. 물대포 날아드는 광장(첫째 수), 불법 도로점령으로 흐름이 막혀 아우성치는 자동차들의 빵빵거림(둘째 수), 남의 일에 끼어들어 한몫 보려는 건달들(셋째 수), 그런 다음 평온을 찾는 꽃피는 광장(넷째 수)을 그려 내었다. 심사평은 삶의 장면들을 4수에 고르게 배치하였다고 하지만 다양한 삶의 장면이 아닌 특정 사건을 집중 조명한 작품이다. 제목 ‘꽃피는 광장’으로는 내용이 맞지 않고. ‘몸살 앓는 광장’이라야 할 것 같다.

  트레바리(이유 없이 남의 말에 반대하기를 좋아하는 사람), 흘레바람(비를 몰아오는 바람) 등 사전을 찾지 않고는 알 수 없는(일상생활에 쓰지 않는) 단어를 동원한 것이 눈에 거슬린다. 시는 시장에 내어 놓으면(발표하면) 독자의 것이지 작자의 것이 아니다.

  

(3) 동아일보

            바람의 풍경

                                                            김석인

억새의 목울대로 울고 싶은 그런 날은

그리움 목에 걸고 도리질을 하고 싶다

있어도 보이지 않는 내 모습 세워놓고

  

부대낀 시간만큼 길은 자꾸 흐려지고

이마를 허공에 던져 비비고 비벼봐도

흐르는 구름의 시간 뜨거울 줄 모른다

  

내려놓고 지워야만 읽혀지는 경전인가

지상에 새긴 언약 온몸으로 더듬지만

가을은 화답도 없이 저녁을 몰고 온다

  

* 심사위원 심사평      심사위원: 이근배·홍성란

현대인의 고독 억새에 버무려… 쓸쓸함의 상투성 벗어난 절창-

  현대인의 소외와 고독을 억새밭에 이는 바람과 바람이 변주해내는 풍경으로 은유한 당선작은 낯선 발화에 실린 유려한 시어 구사가 돌올(突兀)했다. 시조의 유연성을 잘 보여주는 이 작품에서 “이마를 허공에 던져 비비고 비비”는 억새는 “있어도 보이지 않는” 나를 표상한다. “화답도 없이 저녁을 몰고” 오는 “가을” 속에 “내 모습”은 간데없으나 개성적 어법으로 쓸쓸함의 상투성을 벗어난 절창이다.

  

* 필자의 종합평

  음보정형을 지킨 3수 연시조이다.

  이 작품은 제목부터가 추상적 관념으로 짜여졌다. 형체를 잡을 수 없는 [바람]과 [풍경]이다. 중심 시상은 [지상에 새긴 언약]을 찾아 헤매는 장면이다. 따라서 현대시의 특징인 ‘정서나 관념의 형상화’는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추상적인 내용을 이해하기에 진땀을 빼지만 손에 잡히는 것이 없다. 심사평에서 절창이라고 하는 ‘개성적 어법’은 무엇인가? ‘현대인의 소외와 고독’은 이미 많은 작품에 등장한 낡은 소재이다.

  

(4) 서울신문

          바람의 책장

                   -여유당*與猶堂에서

                                                                   구애영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그대의 표정을 보네

파도소리 스며있는 머리말 속살을 타고

첫 장을 지나는 노을

갈채로 펼쳐지네

  

오래도록 서 있었을 배다리 뗏목 위로

저문 하늘을 업고 떠나는 새떼를 향해

별들도 산란을 하네

넘어가는 책장들

  

갈잎은 결을 세우려 마음을 다스리는가

안개의 궤적을 뚫고 스러지는 이슬안고

목민의 아슬한 경계

은빛 적신 판권이었네

                *다산 정약용 생가

  

* 심사위원 심사평       심사위원: 문인수 이근배

감각적 은유와 언어의 새로운 조형에 가산점-

  당선작 ‘바람의 책장-여유당에서’(구애영)는 다산 정약용의 생가에 가서 그 생애와 드높은 학덕의 온축(蘊蓄)을 감각적 은유로 풀어 가는 능숙함과 사실(史實)에 얽매이지 않고 새롭게 조형하는 어법이 가산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그대의 표정을 보네”로 첫 수 초장을 산뜻하게 깨치더니 “목민의 아슬한 경계/ 은빛 적신 판권이었네”로 끝 수 종장을 닫는 결구 또한 흠집이 없다.

  

* 필자의 종합평

  3수 36마디 중 16마디(44%)가 자수정형을 벗어났지만 음보정형은 비교적으로 잘 지키고 있다. [저문 하늘을/ 업고/ 떠나는/ 새떼를 향해] 5235는 시조중장 3444 를 완전히 벗어난 자유시형이다.

  내용은 정약용의 생가 여유당에 그의 저서 목민심서를 오버랩시켜 묘사한 작품이다. 첫째 수에서 파도와 노을, 둘째 수에서 별과 새떼들, 셋째 수에서 갈잎과 이슬을 재료로 하였다. 그러나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표정],[머리말 속살],[안개의 궤적],[목민의 경계] 등 추상적인 시어의 나열뿐, 작품 전체의 이미지를 선명하게 형상화하지는 못하고 있다.

  

(5) 국제신문

        무지개를 수놓다

                                                           김정수

사다리 걸쳐놓듯 계단 쌓은 다랭이논

시금치 초록 한 뼘 유채꽃도 덧대놓고

종다리 박음질 소리 자투리 천 깁고 있다

  

시침질 선을 따라 꽃바늘로 감친 삶을

한 땀 한 땀 길을 내며 구릉 위에 서고 보면

지난날 눈물겨움도 무지개로 떠있다

  

개다리 밥상위에 옹기종기 놓인 그릇

아이들 크는 소리 가만가만 듣고 싶어

스르르 색동 한자락 꽃무늬로 앉는다

  

* 심사위원 심사평         심사위원: 임종찬 전일희

신인다운 패기에 언어 함축·절제미까지 갖춘 작품-

  언어의 함축미와 절제 면에서 '무지개를 수놓다'를 당선작으로...당부하고 싶은 바는, 시어를 보다 참신하게 갈고 닦는 일에 노력을 더 해 달라는 것이다.

  

* 필자의 종합평

  자수정형에는 못 미치지만 음보가 매끈한 정격시조이다.

시금치 조금 유채꽃 조금, 그 위에 종다리 지저귀는 다랑논이 첩첩이 쌓인 마을에서 힘들게 살아온 지난날을 회상하며, 밥상에 둘러앉은 아이들이 커 가는 모습을 보는 아름다운 장면을 그린 작품이다.

  대체로 당선작의 문학적 가치와 우열은 심사위원의 시조에 대한 인식과 실력을 그대로 반영한다. 심사위원이 그릇된 인식을 가지고 뽑은 작품은 볼품이 없다. 자신의 작품이 변격․ 파격이면 그가 뽑은 당선작도 그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당선작을 보면 심사위원의 작품세계를 알 수 있다.

  위 국제신문 당선작은 가히 2014년도 신춘문예 시조 중 장원이다.

  

(6) 대구매일신문

  흑점(黑點)

                             이나영

한사코 뿌리치는

너의 어지럼증엔

무언가 있지, 싶은

가을날 해거름 녘

비밀리

자라고 있다던

뇌하수체

꽈리 하나

좁아진 시야만큼

햇빛도 일렁인다며

태양의 밀도 속에

움츠러든 코로나처럼

궤도를

이탈하는 중

너는, 늘

오리무중

  

* 심사위원 심사평        심사위원: 이정환

의학·과학 용어 도입…상징·은유로 집약-

  두 수로 직조된 '흑점'은 은유의 깊이와 폭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전문적인 의학`과학 용어가 시어로 도입되어 효과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 흑점이 폭발하면 지구의 기후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것이 ‘어지럼증’을 안기는 셈이다. 흡사 몰래 자라고 있는 머릿속 ‘뇌하수체 꽈리’처럼.

  흑점 폭발로 태양의 밀도가 높아지면서 이온화된 고온의 가스로 구성된 태양 대기의 가장 바깥 영역인 ‘코로나’는 움츠러든다. 우리 삶의 한복판에도 ‘코로나’처럼 정상적인 궤도를 이탈하려는 존재가 있다. 궤도를 벗어나면 어떻게 되는 줄로만 여기는 기성세대의 눈길로 볼 때 ‘오리무중’으로 일탈하는, 일탈을 감행하는 요즘 청소년들이 몹시 불안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다.

  당선작 '흑점'은 그런 시각을 바탕으로 시조에서 잘 찾아볼 수 없는 중층구조의 상징과 은유로 집약화한 결실이다. 즉 형식에 구애되지 않는 새로운 발화로 생명의 존엄과 생태계의 미래에 대한 우려를 명징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이것은 신인으로서 신뢰가 가는 강점이다. 그 점을 높이 산다.

  

* 필자의 종합평

  이 작품의 외형은 1연 16행의 자유시이다. 시조라고 써 놓고 수의 구별을 없애버린 것도 모자라 과도하게 불필요한 행갈이를 하여 자유시처럼 낭송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더욱이 [있지, 싶은] [너는, 늘] 등은 1음보의 자리에 쉼표(,)를 찍어 2음보로 갈라 읽도록 강요하고 음보수를 늘려 놓았는데 그 의도를 도무지 모르겠다. 아예 시조 정형은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심사위원은 이 작품이 (시조)‘형식에 구애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이를 [새로운 발화]라고 극찬하였다. 작자나 심사위원이나 시조가 정형시임을 부정하고 시조장르의 해체에 앞장서고 있다.

  내용을 보자. 통사론(統辭論)으로 분석해 보면 첫째 수(수라고 할 수도 없지만)는 어지럼증에 박힌 뇌하수체 꽈리 하나, 둘째 수는 궤도를 이탈하여 오리무중인 ‘너’를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시적화자가 무엇을 전하고자 하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시는 과학이나 전문 지식을 동원하여 읽는 것이 아니다. 심사위원은 의학‧과학 용어가 도입된 시라고 칭찬하며 일반 독자가 이해할 수 없는 설명을 곁들여 작품을 해설하고 있다. 심사평이 아닌 ‘해설’이다. 이 해설(심사평)을 읽지 아니한 독자들은 접근이 금지된 문 밖의 사람들이다.

  

(7) 경남신문

          풀꽃을 말하다

                                                              박복영

햇볕이 제 몸 꺾어 담벼락을 올라간 곳

담장 밑에 땅을 짚고 깨어난 풀꽃하나

시간의 경계 밖으로 내몰린 듯 애처롭다

  

뿌리박고 살아있어 고마울 따름인데

손때 묻은 구절들이 꽃잎으로 흔들린다

흔하디 흔한 꽃으로 피어있는 이름처럼

  

살면서 부딪치며 견뎌온 시간들이

따가운 햇볕에 파르르 떨고 있다

켜켜이 자란 잎들이 꽃 향을 우려내고

  

풀꽃, 하고 부르면 네, 하고 대답할 듯

감아쥐고 올린 꽃은 또 흔들리고 흔들려도

중심을 잡고 일어선 꽃 대궁이 절창이다

  

* 심사위원 심사평         심사위원: 장성진 이달균

풀꽃의 안간힘 형상화 뛰어나-

  최선을 다해 자연의 한 존재로 살아가려는 풀꽃의 안간힘을 형상화한 노력에 점수를 준다. 군데군데 서술적 표현이 거슬리지만 넷째 수 종장의 완결미가 이를 보완해 주었다.

  

* 필자의 종합평

  거의 음보정형에 맞는 4수 연시조이다. [풀꽃, 하고]와 [네, 하고]는 띄워 읽도록 중간쉼표(,)를 찍어 음보수를 늘여 놓아 정형을 크게 이탈하고 있다.

  아무도 시선을 주지 않는 담장 밑의 풀꽃. 그러나 꽃 대궁을 올려 꽃이 피기까지의 성공한 삶을 예찬하고 있는 가작이다.

  

(8) 경상일보(울산)

   뜨게부부 이야기 외 1편

                                                            곽길선

내 가난은 에멀무지 뜨개질 하고 있다

도안 없는 가시버시 그 실눈 크게 뜨고

허공에 색실을 놓아 곰비임비 재촉한다

이랑뜨기 몰래하다 코 놓친 지난날이

너설을 빠져나와 휘감아 본 길이지만

마음은 삐뚤삐뚤한 아지랑이 길이 된다

어영부영 또 하루가 저녁으로 흘러가고

양지에 펼쳐놓은 눅눅해진 저 그리움들

오늘도 발바닥에 밟힌 티눈을 뽑아낸다

  

        -뜨게 부부: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고 함께 사는 남녀.

        -너설: 험한 바위나 돌 따위가 삐죽 나온 곳.


  

          양파의 시

  

날마다 집에 갇혀 봄날을 기다렸던

한겨울 불면의 밤 스스로 걸어 나와

창문에 드리워진 슬픔

입김으로 닦는다

  

긴긴날 시린 생각 껍질을 벗겨내고

반짝이며 날아온 햇살의 지문으로

꽉 막힌 울대를 만져

닫힌 말문을 연다

  

얼룩진 그리움들 눈먼 시간도 지워

백지로 떠오르는 욕망의 흰 속살에

몸으로 움켜잡은 먼 길

바람이 읽고 있다

  

* 심사위원 심사평         심사위원: 이우걸

기성시단의 유행에 감염되지 않으려는 노력 돋보여-

  이 작품은 우리말에 대한 남다른 사랑과 천착, 기성시단의 유행에 감염되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신산한 우리시대 삶의 풍경을 잘 삼투시키고 있다. 그런 미덕들이 개성적이고 실험적으로 보였다. 같은 시인의 ‘양파의 詩’를 더하여 두 편을 당선작으로 뽑는다.

  

* 필자의 종합평

  당선작 ‘뜨게부부 이야기’는 1연 9행의 자유시이다. 의도적으로 수의 구별을 없애버려 스스로 시조가 아님을 고백하고 있다. 시조는 수․장․구의 구조를 가진 시이기 때문이다. 안채, 사랑채, 행랑채 등 단독 건물 3동이 있는 전통가옥이 시조이지, 3동을 한데 붙여 동의 구별이 안 되는 집은 연립주택이거나 아파트일 것이다.

  또한 당선작은 [뜨게부부][에멀무지][가시버시][곰비임비][이랑뜨기][너설]등 일반인이 사전을 찾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단어들로 도배를 하여 독자를 골탕 먹이고 단어실력을 과시하였다. 다행히 너무 심했다는 일말의 자책감은 있었던지 [뜨게부부][너설] 2단어는 주를 달아 친절을 베풀었다. 이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심사위원은 우리말에 대한 남다른 사랑과 천착, 기성시단의 유행에 감염되지 않으려는 노력 이라고 과대평가하며 독자를 골탕 먹이는 일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무릇 현대시는 현대에 살고 있는 일반 국민(독자)이 부담 없이 읽고 감상할 수 있어야 한다. 한 번 읽고 바로 공감하는 시라야지, 극소수의 특정지식인만이 이해할 수 있는 글은 생명력이 약하다. 즉 사전을 찾아가며 두 번, 세 번 읽어야 하는 시는 오래 가지 못한다. 바쁜 세상에 어느 누가 귀찮은 글을 읽어 줄 것인가? 작자나 심사위원들의 그릇된 인식이 독자를 밀어내고 시조가 앉을 자리를 더욱 좁히고 있다.

  

  곁들여 발표된 ‘양파의 시’는 훨씬 좋다. 자수정형에는 못 미치지만 음보정형에 가깝고, 누구나 쉽게 읽고 감상할 수 있어 내용상으로도 손색이 없다. 구석에 갇혀 있던 양파가 햇살을 받아 움이 트는 광경을 [꽉 막힌 울대를 만져 닫힌 말문을 연다]고 했다. 정형은 벗어났지만 절창이다.




* 필자의 주 (네이버 사전 참조) :

에멀무지: 사전에도 없음

가시버시: [명사]‘부부’를 낮잡아 이르는 말.

곰비임비: [부사]물건이 거듭 쌓이거나 일이 계속 일어남을 나타내는 말.

  



(9) 영주일보

               옥돔

                                                            이명숙

지느러미 가시 같은 까칠한 손잔등이

햇살을 뒤척이며 꾸득꾸득 말라간다

함지 속 대여섯 뭉치 하얗게 핀 소금꽃

갈매기 비린 문자도 졸고 있는 오후 세시

굵은 주름 행간마다 서린 미소 너른 여백

때 늦은 국수 한 사발 입술주름 펴진다

식용유 한 스푼에 열 올려 튀겨내면

뼈째 먹는 보약이라나 오일장 할망 입심

바다도 통째 팔겠다 검정 비닐 속 찬거리

  

* 심사위원 심사평       심사위원: 권갑하 박명숙

  시조는 정형양식의 시이다. 정형양식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현대시로서 불리한 점이기도 하다.....「옥돔」은 오일장에서 옥돔을 파는 좌판의 풍경을 배경으로 우리 시대의 서정을 우려낸 작품이다. ‘갈매기 비린 문자도 졸고 있는 오후3시’에서는 감각의 수준을, 할머니의 구수한 입심이 실린 ‘바다도 통째 팔겠다’에선 시의 너른 품이 읽혀진다.

  

* 필자의 종합평

당선작은 1연 9행의 자유시이다. 시조는 정형양식의 시라고 하는 심사평을 믿을 수가 없다. 자유시를 뽑아 놓고 시조라고 하기 때문이다. (위 경상일보 참조)

내용은 무난하다. 어느 한 곳 껄끄러운데 없이 옥돔을 말리며 파는 오일장 할머니(할망)의 수수함을 잘 드러낸 작품이다.

  

(10) 농민신문

     진천 삼용리 백제 토기요지에서

                                                                 홍수민

 미호천 끼고도는 야트막한 구릉지

 안내판만 정자세로 오는 이 반기고 있다

 그 곁에 오랜 침묵 깨고 말을 거는 토기요지

 달빛 한 점 받아내서 토기를 빚었을까

 돗자리 두드림 문양 양념처럼 넣고서

 반지하 움집 같은 가마 속 잉걸불에 뒤척이며

 인사동 골동품점 자리잡고 앉아 있을

 질박한 타날문 토기 어둔 등요 빠져나와

 둥기둥 춤추고 있다, 나뱃뱃한 얼굴로

  

* 심사위원 심사평           심사위원: 이근배, 한분순

역사적 유물 삶과 결부 시킨 것 인상적-

  이 작품은 진천 지역에서 발굴된 가마터의 역사적 유물을 삶과 결부시켜 형상화했다. 역사성과 문화성이 짙게 묻어나 있고, 시대적인 무게감에서 공감대를 형성해냈다. 한 가지, 현실성이 다소 미흡하다는 점도 지적되었다.

  

* 필자의 종합평 

  당선작은 1연 9행의 자유시이다.(위 경상일보 참조)

  내용은 비교적으로 읽기 쉽고 작품성도 눈여겨 볼만하다. 다만 [(인사동) 골동품점 (자리잡고 앉아 있을)]은 [(인사동)골동품점에]라야 말이 된다. 토기가 골동품점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인사동에(또는 의) 골동품점이 자리 잡고 앉아 있는 것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1자를 줄여서 정형에 맞추는 것이 좋은가 1자가 넘치더라도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어야 하는가는 두말할 것도 없이 후자가 맞다. 정형을 맞출 수 없으면 자유시로 쓰면 되지만 의미가 바뀌어 버리는 것은 자유시로도 글의 가치가 없는 쓰레기에 불과하므로 폐기처분해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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