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식과 사회비판의식을 아우른 현대시조


이 승 하





  

  2012년 여름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행해진 만해축전의 일환으로 ‘권영민의 문학 콘서트’가 행해졌는데 권영민 교수는 행사명을 ‘시조만세’로 정하였다. 권영민 교수는 100명의 시인에게 시조 청탁을 하면서 시조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밝히는 창작노트도 함께 청탁하였다. 그런데 37명의 시인이 청탁을 거절하면서 크게 네 가지의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첫째, 시조에 대한 부정론이다. 시조가 파격이니 뭐니 하면서 현대시와 다를 바 없어진 지 오래라는 이유로 시조를 부정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이다. 둘째, 시조에 대한 무용론이다. 시조는 이미 지나간 시대의 유물 같은 거라서 시대적 의미가 사라졌고, 지금은 별 소용이 없는 것이다. 셋째, 시조에 대한 무지론이다. 나는 시조도 모르고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겠어서 청탁에 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넷째, 시조에 대한 무관심이다. 나는 시조를 써본 적도 없고 써볼 생각을 해본 적도 없으니 시조시인에게나 청탁하라는 시인들이 있었다고 한다. 권영민 교수는 한국의 시문학이 자유시로서의 현대시와 정형시로서의 시조를 함께 가짐으로써 더욱 풍요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틀 간에 걸친 열띤 토론과 시인들의 자작 시조 낭송 자리를 잘 이끌어갔다. 내 경우 시조의 발전과 융성을 옹호하는 입장이어서 신작 시조를 써 낭송도 하였고, 시조에 대한 생각도 글로 펼쳐보았다. 아무튼 시인들의 시조에 대한 무시 내지는 멸시는 상상 이상이었다.



  2013년 봄호 시조 전문 계간지를 몇 권 살펴보니 시조가 ‘옛날형식’이며 ‘순수서정’이라는 많은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불식시킬 만한 수작들이 즐비하였다. 이번 호 계간평은 봄호 문예지에 실린 현실참여 계통의 시조에 대한 고찰인데, 이것을 다루게 된 연유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길었다.




구급차를 따라가며 또 하루가 저물고

시간이 멈춰버린 시계탑에 눈이 내린다

아마도 짓밟힌 꽃잎을 덮어주려나 보다.




하나 둘 모여드는 얼굴 없는 군중 사이

바람은 돌아와서 제 과거를 닦는지

찢겨진 현수막 앞에 공손히 엎드린다.




“광장을 닫으려면 자유도 함께 닫아라”

누구도 소리 질러 외치지 못했지만

허공을 떠돌고 있는 뜨거운 목소리들.




그 누가 침묵더러 가장 큰 소리라 했나

하나 되기 위하여 건네주는 촛불 속에

밟혀도 밟히지 않는 발자국이 보인다.



―민병도, 「광장에서」 전문(『유심』, 2013. 3)




  광장은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만들어졌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종종 시위 현장이 된다. 우리는 서울 청계광장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중단을 촉구하는 촛불 집회가 있었다느니 반값 등록금 실현을 촉구하는 대학생들의 촛불 집회가 열렸다느니 하는 언론 보도를 수시로 접하고 있다. 시인은 일단 광장의 의미를 “구급차”와 “시간이 멈춰버린 시계탑”과 “짓밟힌 꽃잎”으로 짚어본다. 특히 제2연에서 “찢겨진 현수막”이라는 은유를 사용하여 시민 일부의 평화적인 시위를 공권력이 과격하게 진압하는 데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확실히 견지한다. “하나 되기 위하여 건네주는 촛불 속에/ 밟혀도 밟히지 않는 발자국이 보인다.”는 결구는 촛불 시위가 벌어지는 광장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전당임을 말해주기 위한 멋진 매조지다. 시민들이 왜 광장에 모여 촛불시위를 하는지, 당국은 그 이유에 대해서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그저 교통체증을 유발한다거나 사전에 신고하지 않은 불법 집회라고 경찰 병력을 보내 탄압을 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시인이 시위의 순기능과 민중의 저항의지를 예찬하기 위해 이런 시조를 썼다고 여겨지는데, 시조가 그저 자연 관조의 음풍농월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가히 충격적인 작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를 게 없을 텐데 그냥 달리 보는구나

똑같은 일을 해도 아니라고 하는구나

누구도 원치 않았던

아닐 비非는 슬플 비悲



―이광, 「비정규직」 전문(『오늘의 시조』, 2013. 봄)




  지금 우리 사회가 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라고 볼 수 있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비애를 단형시조 속에 담았다. 우리 주변에는 채용 시의 불리한 조건 때문에 전전긍긍하다가 자살까지 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시인들도 잘 거론하지 않던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비판의식이 이처럼 뚜렷하다. 마지막 행이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작년 5월 31일, 광주지법 순천지원 민원실 출입문 앞에 휘발유를 쏟고 불을 붙인 혐의로 김모씨(52)가 기소된 적이 있었다. 징역 1년 6개월 형을 받고 지금 복역 중인데 바로 이 사건을 소재로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법원 방화사건’의 범인이 자신의 아기를 면회실에서 처음 만나는 극적인 장면을 그린 시인이 있다.




한 목숨 담보잡고 그곳을 빠져나와

법원 방화로 무전유죄 맞서려던 그 사내

첫 만남!

백일 된 아이 웃음에

두 눈이 콱, 찔려서




몇 날 며칠 앞 못 보고 가슴팍 쥐어뜯고

물조차 못 넘기며 묵언수행 엎드렸다

왔던 곳 되돌아가며

눈빛으로 쓰는 일기



―나순옥, 「눈빛으로 쓰는 일기」 앞 2연(『시조21』, 2013. 봄)




  ‘그곳’이라고 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어디 교도소라고 장소를 밝혔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아무튼 그 사내는 “법원 방화로 무전유죄 맞서려고” 했다고 한다. 원래 ‘무전유죄 유전무죄’는 탈옥수 지강헌이 북가좌동의 한 주택을 점거하여 인질극을 벌였을 때 했던 말이다. 가난한 자들은 큰 죄가 없어도 중벌을 받고 돈이 있으면 큰 죄를 지어도 가볍게 처벌받는 우리나라 법조계의 모순된 관행을 이 말로 비판하여 지강헌과 이 말이 함께 유명해졌다. 1988년 올림픽 직후의 일이었다. ‘그 사내’는 많이 억울했는지 법원 방화로 ‘무전유죄’에 맞서려고 했지만 다시 투옥되는 비운을 겪는다. 문제는 백일 된 아이와의 첫 만남이다. 면회실에서 아이 얼굴을 보고 와서 “가슴팍 쥐어뜯고/ 물조차 못 넘기며 묵언수행 엎드렸다”는 것이니, 참회의 몸부림이 자못 처절하다.




대물리는 이 가난 징한 고리 끊어보려

푸르른 날 다 사르며 밤낮을 헤맸어도

길마다 덫에 옥조여

우듬지를 꺾였단다




모진 겨울 눈 속에서 이미 펴버린 내 희망아

새하얀 마음결로 네 웃음과 눈 맞추도록

까맣게 엉겨 붙은 죄의 씨

철창 안에 다 쏟고 올게



―「눈빛으로 쓰는 일기」 뒤 2연




  제3연이 영 애매하게 처리된 것이 마음에 걸린다. 마지막 연에서는 ‘그 사내’가 화자가 된다. 아이에게 마음속으로 하는 두 마디의 말이 마지막 연이 되었다. 철창 안에서 죄를 다 씻고 출소하여 아이의 맑은 눈동자를 보겠다는 사내의 맹세가 이 시조를 아름답게 하고 있다. 이런 지극히 현실감 있는 시조를 읽게 되니 반갑고 기쁘다. 시조가 관념의 산물이 아니라 이처럼 때로 경험과 관찰의 산물임을 웅변해준 작품이어서 그렇다. 경험과 관찰의 산물인 시조가 또 있다.




뱃속에 새끼가 든 어미개가 버려졌다




데려가서 키우라는

등에 몇 자 써 붙이고




의지할

바람막이는

둘러봐도

없다




사는 동안 얼마나

짐처럼 놓였을까




뱃속의 어린 것들 살아 있다 꿈틀하는데




등짝의

종이 한 장이

폭설처럼

무겁다



―김영주, 「첫눈 오던 날」 전문(『시조21』, 2013. 봄)




  언뜻 봐서는 시조 같지 않은데 자세히 보면 단형시조 두 수가 모인 시조 작품이다. 첫눈 오던 날, 새끼를 밴 어미개가 버려진다. “데려가서 키우라”는 종이 한 장을 등짝에 붙인 채. “의지할/ 바람막이는/ 둘러봐도/ 없다”는 제3연이나 “뱃속의 어린 것들 살아 있다 꿈틀하는데”는 제5연이 진한 감동을 전해준다. 이러한 시조는 파격이 아니면서도 외양이 무척 새롭다. 그 내용도 인간세계의 비정함을 드러낸 다큐멘터리적인 기법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같은 지면에 게재된 서일옥의 「속울음」은 약한 손자를 본 할머니의 안쓰러움이 “여리디 여린 생명 안아보지도 못한 채/ 인큐베이터에 내려놓고 신의 은총을 기다리는 밤”에라는 시구에 잘 나타나 있다. 이종문의 「부고라도 해야겠다」는 풍뎅이 한 마리가 죽기까지의 과정이 무척 유머러스하게 전개되는 위트 넘치는 작품이다. “아 돌연 그 풍뎅이가 온몸을 빙빙 틀며/ 푸드더, 푸드더더… 더더더더, 더덕떡떡,/ 맹렬한 뒤집기 한 판을 시도했던 것이다”라는 제3연에 이르면 웃을 장면이 아닌데 미소를 짓게 된다. 누가 시조를 지나간 시대의 유물 같은 거라고 했단 말인가!



『오늘의 시조』에는 제주도 4ㆍ3사건이나 해군기지가 들어서게 된 강정마을의 아픔을 다룬 시조가 4편이나 보인다.




긴 여운

숨비 적시는 모슬포길 물어 간다.

늙은 해녀 젖은 속살 즈려밟힌 구럼비 해안

돌할망 구멍 숭숭 뚫린,

이내 저민 가슴앓이.




4ㆍ3 잔설

억장 바람 녹는 물에 독경 왼다.

시린 살 서걱대며 천 년을 맞비비는

키 작은 산죽나무 숲

백록담 받들고 사네.



―이정홍, 「탐라에 들다」 부분(『오늘의 시조』, 2013. 봄)




  4개 연으로 된 시조의 제2, 3연이다. 구럼비해안은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의 해안이다. 4ㆍ3의 상처를 지니고 있는 제주도에 또다시 “돌할망 구멍 숭숭 뚫린,/ 이내 저민 가슴앓이”가 찾아온 현실을 시인은 가슴아파한다. “굵고 선한 퉁방울눈”을 지니고 있던 돌하르방이 “차마 입에 못 담는 말, 눈 부릅뜬” 돌하르방으로 바뀐 현실을 또한 가슴아파한다. 시인은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것에 대해 노골적으로 비판하지는 않음으로써 오히려 감동의 넓은 영토를 확보한다.




갑론을박 사각지대

비워둔 말풍선처럼

불가피한 시간들이

뼈만 앙상해질 무렵

우,

두,

둑,

이빨을 갈며

집게발을

드는

너,



―김영란, 「강정 1-붉은발말똥게」 전문(『오늘의 시조』, 2013. 봄)




  게의 일종인 붉은발말똥게를 묘사한 시가 아니다. 그 게에 빗대어 강정마을에 들어설 해군지기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는 일 자체를 못마땅해 하고 있다. 국내 여론도 둘로 나뉘어 시끄럽고 마을 주민들도 찬반으로 나뉘어 설전을 벌인다. “우,/ 두,/ 둑,/ 이빨을 갈며/ 집게발을/ 드는/ 너,”는 붉은발말똥게가 아니라 바로 시인 자신이리라. 조용한 이 마을이 왜 이 이렇게 “갑론을박 사각지대/ 비워둔 말풍선처럼/ 불가피한 시간들이/ 뼈만 앙상해지”게 되었나, 무언의 항변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부끼는 깃발들이 서릿발로 들뜬 들녘

쓰러져 누운 어미 무명 홑겹 앞섶 더듬던

젖먹이 옹알이마저 돌무덤에 잠이 들고


울지 마라,

말하지 마라

눈물마저 죄가 된다

청맹과니 정낭에도 금줄은 채워지고

민방위 사이렌소리 허공엔 금이 갔다



―임채성, 「너븐숭이」 부분(『오늘의 시조』, 2013. 봄)




  5개 연으로 된 시조의 제2, 3연이다. 시인은 제목 ‘너븐숭이’가 4ㆍ3사건 당시 단일규모 최대의 인명피해로 기록된 북촌 대학살의 현장이라고 각주에서 설명한다. 제2연에서 시인은 4ㆍ3사건이 일어난 그 시절의 끔찍했던 상황을 은유적으로 말하고, 제3연은 사건 이후 쉬쉬하면서 살아간 66년 세월의 아픔을 들려준다. 시인은 제5연에서 “동백과 철쭉꽃이 왜 그리 붉은지를/ 빗돌 밑 순이삼촌이 귀엣말로 일러준다”고 하면서 이 시조가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을 모티브로 한 것임을 밝힌다. 이 시조는 역사의 비극을 다루면서도 서정성을 잃지 않고 있어 높은 작품 수준을 유지한 것이다. 임태진의 작품도 4ㆍ3사건을 다룬 것이라고 여겨진다.




어릴 적 달빛 타고

그림자로 다녀가던

살아생전 한 번도 불러보지 못한 이름

아버지, 이승의 매듭 다 풀고 가셨는지


미움도 철이 들어

구름을 걷어내는 밤

파제한 제사상에 끄지 못한 촛불 하나

초가을 그리운 이름 빨갛게 익어간다.



―임태진, 「한라 청미래덩굴」 후반부(『오늘의 시조』, 2013. 봄)




  왜 화자는 아버지의 이름을 한 번도 불러보지 못한 것일까. 산으로 들어간 사람, 즉 빨치산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아버지는 “어릴 적 달빛 타고/ 그림자로 다녀가던” 사람이어서 온 가족에게 구름을 드리운 존재였다. 하지만 세월도 많이 흘렀고, 아버지의 입장을 생각해보니 “미움도 철이 들어/ 구름을 걷어내는 밤”이 왔다. 그 아버지의 이름이 이제는 “그리운 이름”이 되었는데, 여기까지 걸린 세월이 장장 66년이다. 광주 5ㆍ18민주화운동을 다룬 시조도 있다.




네거리 노란불이 시간을 재고 있다

만장 같은 돛을 내건 시월의 금남로

오던 길 되짚어보면 가야 할 길 보인다


저기 저 가지 사이 매달린 지난 기억

어머니가 쥐어주신 주먹밥 한 입 물고

상무관 뒷골목에서 멈춰버린, 흑백사진


떨켜 키운 은행나무 새순으로 다시 서듯

단풍으로 몸을 태워 일어서는 저녁노을

가만히 귀를 세우면 푸른 외침 들려온다



―유헌, 「시월, 금남로에서」 전문(『오늘의 시조』, 2013. 봄)




  너무나 정공법으로 쓴 시조인지라 심심한 것이 흠이긴 하지만 5ㆍ18민주화운동 당시 사망자들을 임시로 안치했던 구 전남도청 맞은편에 있는 상무관의 역사적 의의와 현재적 의미를 고찰한 이 작품도 시조가 음풍농월의 차원이 아니라 역사의식과 사회비판의식의 산물일 수 있음을 잘 말해주고 있다.



  봄호 문예지를 보면서 시조가 틀에 갇힌 구닥다리 형식도 아니요, 내면을 파고드는 심리주의에 치중하지도 않고 있음을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시조에 대한 독자와 시단의 관심을 촉구하고 싶다.







                                                                                   권영민 평론가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80 순수를 꿈꾸며-윌리암 블레이크- 동아줄 김태수 2016.08.03 892
79 작가로 등단을 준비하시는 분들께 드리는 글 동아줄 2015.01.19 822
78 수필 공부 동아줄 2013.05.25 803
77 사랑의 시 써보기 동아줄 2012.11.13 729
76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가 표절? 동아줄 김태수 2015.08.05 649
75 시인들이 말하는 좋은 시 동아줄 김태수 2014.02.15 627
74 시조의 기승전결에 대하여 동아줄 2014.09.23 622
73 2014 뉴욕문학 신인상 당선 기사내용(미주한국일보, 앵커리지 한인신문) 동아줄 2014.07.09 613
72 미당 서정주 토론방 내용 동아줄 김태수 2016.10.15 588
» 역사 의식과 사회 비판 의식을 아우른 현대 시조 동아줄 2014.09.25 568
70 2014년 신춘문예 시조 총평 동아줄 2014.04.28 560
69 수필 문장 구성하기 동아줄 김태수 2012.02.20 555
68 시인이란 무엇인가? 동아줄 2012.05.19 541
67 이런 詩語가 들어가면 그 詩는 낙제 수준 동아줄 2012.08.24 507
66 좋은 글쓰기, '갈등과 반전의 묘미' 함께 살려야 동아줄 김태수 2012.02.10 499
65 김태수 씨 사이버 문학 공모전 입상(앵커리지 한인신문 기사 내용 9/26/2012) 동아줄 김태수 2012.10.02 476
64 제22회 뉴욕문학 신인상 심사평 및 당선 소감 동아줄 2014.08.01 463
63 서북미문인협회 제9회뿌리문학상 수상자 발표(시애틀 N 뉴스 기사 내용 8/22/13)/심사평 동아줄 2013.09.23 444
62 더 좋은 시를 쓰고 싶어하는 여러분에게 동아줄 2012.07.23 436
61 미당문학 신인작품상 선정 기사 모음 동아줄 김태수 2016.10.20 434

회원:
2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15
어제:
47
전체:
1,167,9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