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시조 당선작(2005-2007)

2016.03.08 08:45

동아줄 김태수 조회 수:1443

[2005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조당선작]

 

문을 열고 / 이민화


어수선한 사건들이 지나간 자리마다
골 깊은 등줄기에 멍으로 남은 자국
세월의 회초리 앞에 허물을 벗는 시간

혼돈을 움켜쥐고 방황하는 시대가
늦가을 설거지로 타오르는 불 마당에
두꺼운 가면을 벗어 미련 없이 태운다.

들국의 마른 꽃대가 겨울 앞에 꺾이고
새로 움틀 봄을 위해 눈 덮인 들녘처럼
마지막 가을을 빌어 날려보낸 묵은 일기

새로운 베틀 앞에 정좌하여 눈을 뜨고
절망은 가려내고 희망의 씨실 잡아
용서와 화해의 교차 한 필로 짠 순수 무명


[시조 심사평] 수준작 3편 끝까지 경합

문단으로 가는 꽃길 신춘문예,연말이면 문학 지망생만이 아니라 심사자들도 가슴이 설렌다. 어떤 재사가 머리에 빛나는 어사화를 꽂고 그 자랑스러운 모습을 드러낼까. 응모작의 상당수는 그 역량이 인정될 만큼 전반적으로 수준이 향상되어 있었다. 시조의 앞날을 위하여 경하스러운 현상이다. 종심에 오른 작품은 김경태씨의 '겨울꽃',김종훈씨의 '화첩기행 3',김진수씨의 '하구에서 서성이다',문근식씨의 '채석장',이민화씨의 '문을 열고' 5편이었다. 이들은 한 시절 전 같았으면 다 당선감으로서 손색이 없다 할 만큼의 수준작들이었다. 특히 '하구에서 서성이다''화첩기행 3''문을 열고'의 3편은 그 우열을 가리기가 어려워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였다.

숙의 끝에 '문을 열고'를 당선작으로 낙점했다. 신인작인 만큼 다소의 결함은 접어두고 다음 두 가지가 주목을 끌었다. 먼저 함께 낸 작품들이 대체로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기본적인 역량이 인정된 점이요,다음으로는 고뇌와 방황 등 내적 갈등을 극복하고 스스로를 긍정으로 이끌어 낸 건전한 시정신이 가상타 한 것이었다. 이제 장거리 경주의 총소리는 울렸다. 이 선수,얼마만큼의 신기록을 낼지 다 함께 지켜 볼 일이다. 시조시인 장순하·최승범


시조 당선소감] 가문 땅 물 찾는 심정 간직 - 이 민 화

해마다 겨울이면 습관처럼 앓았던 아름다운 고질병은,나를 무척이나 단련시킨 후에야 그 문을 열어 주었다. 꿈을 품고 산다는 것은 아름답다는 것을 비로소 체험했다. 이 순간,응모작품 중에 '아버지와 낚시'가 문득 떠오른다.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월척을 꿈꾸며,먼 수평선을 바라보던 아버지의 눈빛을 이제야 이해할 것 같다. 가끔 손맛을 느끼는 희열에 꿈을 버리지 못했던 아버지처럼,나도 해마다 12월이면 가슴이 두근거림을 그냥 보낼 수가 없었다.

나는 왜 그토록 신춘문예를 꿈꿔 왔던가? 그것은 남다른 작품을 써 보겠다는 욕심이기 전에,나를 수많은 경쟁자 속에 매몰차게 내놓고 싶어서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가끔 시들어 가는 내 시심을 깨울 수 있었고,자칫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시 세계를 다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 주어진 이 영광은 결코 내 것이 아니다. 그동안 지도해 주신 박정선 선생님께 먼저 감사드리고 싶다. 그리고 아이들을 돌봐 주신 부모님과 남편께 감사드린다. 아,그리고 사랑하는 두 아들 한얼,한범이에게 손 빠짐이 많았던 엄마의 미안함을 이 영광으로 대신 채워주고 싶다.

나는 이제 겨우 시작이다. 지금부터 가문 땅에서 물을 찾는 심정으로 나의 시 세계를 찾아갈 것이다. 끝으로 수고하신 심사위원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약력:1966년 부산 출생. 1997년 '현대시조' 신인상,2001년 부산아동문학 신인상. 현재 부산 남성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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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당선작] 대설주의보 - 김영완

1
거친 숨결 허옇게 얼어붙는 역 광장 앞
어디론가 가야 하는 길손들이 서성이고
그 몇은 허방을 딛고 빙판 위로 넘어진다.

제 한 몸 세우기도 버거운 이웃들은
손잡아 일으켜 줄 온기마저 놓아버리고
저마다 제 그림자 옆을 흘깃 흘깃 지나친다.

몇 날 찌푸린 하늘, 끝내 싸락눈 흩날리고
둥지 잃고 날아든 난간 아래 저 굴뚝새들
한두 톨 옹색한 모이, 이 겨울이 너무 시리다.

2
대설주의보 내려진 오후의 늦은 귀가
매운 바람 얼얼하게 외투 깃을 후려치고
움츠린 어깨 너머로 희끗희끗 눈발 설 때

통 속의 군고구마 냄새 웅숭그린 담 모퉁이
추위도 조금씩은 익숙해진 모습들이
장작불 환한 눈빛을 봉지 속에 담아간다.


[심사평]
손에 잡히는 묘사 돋보여

시조의 형식적 장치는 풀어지기 쉬운 현실을 긴장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신춘의 신인을 가리는 작업은 이 긴장을 어느 정도 잘 운용하고 있느냐에 있을 것이다.

3·4조의 기계적 율격은 너무 옥조여 숨이 막히기 마련이고 조금만 느슨해지면 시조 아닌 것이 되기 때문에 완성도에 이르는 것은 시보다 훨씬 어렵다. 이병일씨의 ‘빗방울 화석’은 세밀한 묘사가 돋보였으나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이 부족했으며, 임채성씨의 ‘모르핀을 꽂다’는 능숙한 가락의 운용에도 불구하고 여과되지 않는 생경한 표현이 걸렸다.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들 중 김영완씨의 ‘대설주의보’는 단연 돋보였다. 가락을 이끄는 만만찮은 호흡과 사실적 묘사를 바탕으로 한 서사적 얼개가 신뢰를 갖게 하였다. 시조는 형식적 제약으로 인해 관념화되기 쉽고, 그 관념은 손끝의 기교에서 비롯되기에 마땅히 경계해야 한다.

관념화로 치닫고 있는 시조단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킴은 물론, 지치고 힘든 이 시대의 복판을 넘어가는 이웃들에게 “장작불 환한 눈빛”을 전하는 따뜻한 가슴의 시인으로 대성하길 바란다 <이지엽>


[당선소감]
시조 세계 늦게 접한 만큼 쉼 없이 창작의 길 걷겠다

아침저녁으로 지나다니는 길가의 낮은 담장 아래 늦게 돋아난 ‘별꽃아재비’꽃이 자세히 보지 않으면 얼른 눈에 띄지도 않는 눈송이 같은 별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저 꽃들이 은근히 걱정이 됩니다.

이상 기후를 만드는 ‘엘니뇨 현상’ 때문에 따뜻한 겨울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겨울인데 저렇게 자꾸만 꽃을 피워서는 어떡하겠다는 것인지….

신춘문예에 응모는 하면서도 설마 당선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당선되었다는 전화에 어쩔 줄 몰라 허둥대다가 오늘은 나도 저 철모르는 별꽃아재비가 되어 작은 별꽃 하나 그려봅니다.

어쩌다가 찾아든 아직은 낯선 이 길, 이제는 뒤돌아 설 수 없는 길이 되었습니다. 남들보다 늦게 출발한 길이지만 쉬지 않고 가리라 다짐하면서 부족한 글을 뽑아 주신 심사위원님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아직은 서투른 글을 더 열심히 하라는 의미에서 뽑아주신 것으로 새기고 그 뜻에 어긋나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동안 같이 공부한 직장 문우회 동료들, 가르쳐 주신 선생님과 선생님 밑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시조모임 회원들, 그리고 저를 알고 있는 여러분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끝으로 지켜보아 준 아내와 아이들을 포함한 가족들과도 이 기쁨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 1953년 해남 출생
․ 1973년 광주 숭실고 졸업
․ 서울지방국세청 근무
․ 민족시사관학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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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당선작] 마량리 동백 - 이석구
             

길이 아닌 곳에서만 가는 길이 보인다고
외발 수레바퀴 끌고 오는 눈발 따라
그림자 뒷걸음치며 마른풀을 밟는다.

여기 아무도 모른 낯선 세상에 내가 있듯
악보에는 없는 음표 호흡을 조절하며
얼음장 빗금 친 파도 겨울 바다를 건넌다.

앞선 사람 대신 좁혀오는 바람처럼
지상의 문을 여는 미지의 열쇠구멍 속에
발자국 찍힌 눈꽃이 꽃망울을 터뜨린다.


[심사평]
동백을 현대적 이미지로 빚어

시조를 쓰는 것은 시의 정수를 찾는 일이다. 시 속의 시를 찾는 일이다. 시조부문 응모 작품에는 대학생부터 80대 할아버지까지 그 열기가 뜨거웠다. 세 차례의 심사를 거치며 다섯 작품이 최종심에 남았다.

‘안단티노 알레그로토로’(정행년)와 ‘소록도 해돋이’(이태호)는 소재와 주제의 신선함이 뛰어났으나 명품을 만든다는 정성이 다소 부족했다. 시조시를 빚는 자신감과 운율을 휘어잡는 힘을 가지길 부탁한다.

‘이중섭 미술관’(김희천)은 보기 드문 건강한 작품이었다. 제주의 바다 내음과 화가 이중섭의 세계가 건강하게 표현되어 좋은 점수를 얻었으나 운율이 불안했다. 징검다리가 놓인 강을 편안하게 건너는 것이 시조의 운율이라면 자연스러운 보폭을 만들어낼 수 있는 징검다리에 대해 좀더 고민하길 바란다.

‘나비경첩’(이윤호)과 ‘마량리 동백’(이석구)은 어떤 작품을 당선작으로 내놓아도 손색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를 오래 고민하게 했다. ‘나비경첩’은 어머니가 남긴 제기함 나비경첩을 통해 아름다운 사모곡을 빚었고 ‘마량리 동백’은 동백을 현대적인 이미지로 빚어냈다.

‘나비경첩’은 너무나 익숙한 작품이었다. 그 익숙함이 신인을 뽑는 자리에서는 작은 흠이 되고 말았다. ‘마량리 동백’도 첫째, 둘째 수의 자연스러운 호흡법과는 달리 셋째 수에서 호흡이 흔들렸다.

신춘문예는 완성된 작품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신인을 찾는 일이기에 ‘마량리 동백’을 당선작으로 정했다. 함께 투고한 작품에서 보여준 다양한 실험정신이 당선의 영광을 받는 데 가산점이 되었음을 밝힌다. 시의 정수를 뽑아 시조시를 빚는 명품 명장으로 남길 바란다. <이근배, 정일근>


[당선소감]

원고를 보내고 며칠 동안 아무런 생각 없이 보내다 당선 통보 전화를 받았다. 망치로 뒤통수 한 대 얻어맞고 명치끝에 무엇인가 울컥 얹힌 듯한 그런 기분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와 아내, 두 딸이 생각났다. 항상 죄송하고 고마운 어머니, 감사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불평과 불만을 내색하지 않고 맨 먼저 원고를 읽고 평해 준 아내가 고맙다. 두 딸들아!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길을 걸어왔다. 늘 길 위에서 나는 곧은길로만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돌아보면 그 길은 직선이 아니었다. 그러나 햇빛은 굴곡에 상관없이 모든 길 위에 고루고루 빛을 내려주고 있었다. 그 빛을 따라서 앞으로도 길을 걸어가야 한다.

내 타고난 성격 탓이 크지만, 시조는 항상 흥에 취해 혼자 쓰고 며칠 뒤에 원고를 들여다보고 지우고 버리는 작업이었다. 그러다가 마음에 드는 시구를 얻더라도 제한된 글자에 운율을 맞추고 현대적 감각을 더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단어 하나에 의미를 찾다가 단 한 줄뿐인 글을 쓰는 더딘 걸음을 하는 발자국이 될지라도 그 길을 직선으로 여기며 앞만 보고 걷겠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동아일보와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쓰겠습니다.

․ 1960년 충남 청양 출생
․ 성균관대 한문학과와 교육대학원 졸업
․ 2004 ‘월간문학’ 신인상 시조부문 당선
․ 현재 안양 백영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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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매일신문 시조당선작] 가을, 전갈자리-생일에 / 이경임


하필이면 눈 시린 가을날의 점지였나
어머니 자궁 속을 가랑잎처럼 비우고
깊은 물 맨발로 걸어 배냇짓도 겨운 날.

한 그릇 정화수에 먼 하늘빛 담아 놓고
오래 전 눈 여겨 둔 살뜰한 전갈자리
광년을 가로질러 온 서릿길이 보인다.

이제야 알 것 같네, 어머니 시린 무릎
때로 종종걸음치며 그 별자리 쓰다듬어
환한 빛 사위지 않게 외오 섰던 속내를.


[심사평]
신산과 질곡의 시대일수록 정서의 힘에 기대는 인간의 욕망은 팽창하는가. 응모자들의 분포가 거의 전국에 걸쳐 있는데다, 질적 수준 또한 전반적으로 상향 평준화 현상이 뚜렷하다. 이 점은 최근 들어 한층 두터워진 시조의 지층을 실감하는 하나의 증좌로 볼 수도 있다.
느낌이 닿는 대로 뭉뚱그려 읽으면서 작품성을 가늠하고, 사고의 깊이를 따져 다시 몇 사람으로 압축하기까지는 적잖은 숙고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배제된 이태호, 백윤석, 한석산, 조은세, 송순만, 김병환, 배인숙 제씨의 경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미지의 선명도와 표현의 적확성, 시상의 압축과 작위성의 탈피 등을 앞으로의 과제로 제시한다.
여느해처럼 당선권에 들 만한 작품들을 두고 마지막 한 편을 가리는 일은 말 그대로 고통과 희열의 교차였다. 박진아씨의 '흔들리는 골목', 임채성씨의 '금호강의 하루', 이지윤씨의 '바다' 등은 하나같이 리얼리티가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그러나 품격과 가락이라는 시조 본연의 미학을 강조할 때 더러는 표현의 변화에서, 또 더러는 자연스러운 가락의 운용에서 제가끔의 흠결이 드러났다.
'임진강, 가을'과 '오후 3시'를 쓴 이태순씨는 다양한 주제를 무리없이 소화하는 역량이나 심상을 밀도있게 녹여내는 감각이 탁월하다. 하지만 간혹 평이한 진술로 떨어지는 부분을 다잡지 못한 점과, 일부 종장에서 드러나는 음보 문제가 가시처럼 마음에 걸린다.
이경임씨의 '가을, 전갈자리'를 뽑아놓고 거듭 읽어 본다. 생명과 존재의 영원성을 좇는 이 작품은 무엇보다 시류를 의식하지 않는 신선한 발상이 좋다. 사유의 폐활량이 넉넉한 동시에, 미세한 감각으로 이미지의 변용을 꾀하는 능력 또한 놀랍다. 시조단에 또 한 사람의 이미지스트가 출현할 것인가. 그가 끌고 온 전갈자리의 먼 별빛이 척박한 서정의 허상을 뚫 고 날아가는 화살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박기섭(시조시인)


[당선소감] - 이경임

철이 들 무렵부터 뚜렷한 이유도 모른 채 칼날 같은 겨울아침이 좋았습니다. 겨울 아침의 명징한 추위나 속눈썹에 내려와 앉는 햇살이 사무치도록 새롭고 또 새로웠던 날들이 분명 제게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물의 선명도는 혼탁한 늪 속의 그것들처럼 흐려진 채로 제 삶 속으로 건너오곤 했습니다. 그 속에 오래 웅크려 있으면서 빛살 무더기 속에서 맛보던 감성의 번뜩임을 잊어가고 있었습니다.
몽매한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그 뒤 어딘가는 틀림없이 예전의 겨울 아침처럼 눈부시고 있었을 텐데요. 호주머니 깊숙이 손을 감추고 땅만 내려다보며 걷던 오랜 세월을 가로질러 다시 제게 날아든 빛 한줄기 잘 보듬어 감감한 세상에 펼쳐놓고 싶습니다.
무뎌지지 않고 결코 느슨해지지도 않는 겨울 아침의 쨍쨍한 서슬 닮은 빛들을. 끊임없는 격려와 관심으로 이끌어주신 선생님과 시조의 길을 벗어나지 않도록 곁을 지켜주신 배흘림시조동인회 회원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도 머리 숙여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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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농민신문 시조 당선작] 오후 3시 - 이태순


벌개미취 흐드러진 간이역쯤 와 있다
흠집 나고 닳아진 나무의자 앞에서
내 모습 참 많이 닮아 편안함이 배어든다

흙 묻은 발을 털며 앉아볼까 생각하다
방금 보낸 이별이, 너무 아플 것 같아
쓸쓸히 머금고 있는 물기를 닦아 준다

내겐 아직 식지 않은, 오후 3시가 기다리고
떫은 물 삭힌 홍시 발갛게 익을 때까지
밝혀 둘 가슴 한켠으로 남몰래 비워둔다


*심사평-박시교, 유재영

응모된 작품 모두 고른 수준이었다.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은 모두 56편. 그 가운데 〈가을 미시령〉〈오후 3시〉〈자옥산의 봄〉〈금동반가사유상〉이 최종심에 올랐다. 작품의 완성도 면에서는 〈가을 미시령〉〈금동반가사유상〉, 시의 깊이나 미학적 관점에서는 〈자옥산의 봄〉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가을 미시령〉은 잘 짜여져 안정감을 주는 반면 신인으로써 패기가 부족해 보였고, 〈금동반가사유상〉도 낡은 소재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 〈자옥산의 봄〉은 2년째 같은 제목의 작품을 응모한 것이 문제였다. 숙고 끝에 우리는 완성도보다는 앞으로의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기로 했다. 당선작으로 뽑힌 〈오후 3시〉는 첫수 초장부터 참신하고 신선했다. 또 기존 시조의 낡은 상투성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오후 3시〉라는 만만치 않은 주제를 섬세하면서도 활달한 시적 세계로 잘 표현했다. 이는 시조에서 드물게 발견되는 따뜻한 상징과 투명한 이미지의 결과다. 분명히 시조의 새로운 권역을 확장하리라 믿으며, 우리는 비로소 한 시인의 미래에 대해 신뢰를 갖기 시작했다.


*당선소감-이태순

아주 낡고 조그만 초성리역이 있습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쓸쓸함에 나를 부르고 있는 것 같은, 눈이 내리면 또 가보리라 생각했는데 눈보다 먼저 당선 통보를 받았습니다. 이제 제 글이 세상에 첫 발을 내디딘다는 사실에 부끄러움과 행복이 교차합니다.

내 삶 속에 글을 쓰는 시간만큼은 환하게 살아있는 꽃밭이었습니다. 늘 따뜻한 시어들을 시들지 않게 가꾸어야겠습니다.

유년시절을 온통 손녀사랑으로 채워주셨던 할아버지가 보고싶습니다. 떡갈나무 밑에 누렇게 쌓여 있던 도토리, 얕은 냇물이 말갛게 흘러가고 할아버지가 매어주신 그네를 타던, 지금도 그 보물같은 삽화 한장 내 안에 고이 접혀 있습니다.

뿌리만 박혀 있던 제 밑바닥에 이제 봄이 오면 싹이 돋을 것입니다. 머리는 차갑고 가슴은 뜨거운 시인이 되겠습니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과 농민신문사에 감사드리며, 시조의 신발을 신겨주신 스승님께 이 영광 돌립니다. 그리고 여러모로 도움을 주신 선생님들, 사랑하는 가족, 보고 돌아서도 또 보고싶은 문우님들과 이 기쁨 오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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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전북중앙신문 신춘문예 시조당선작] 대장간 - 한석산


속살까지 죄 들어낸 화덕 안 잉걸불에
안으로 결 삭으며 붉게 익은 쇳조각을
담금질, 담금질한다, 뿌지직 노을이 탄다

시우쇠 무딘 정수리 쌍메로 두들겨서
숫돌에 양날을 세워 殺意가 번득이는
갓 벼린 조선낫 들어 검은 밤을 가른다

벌건 불꽃 입에 물고 쇠붙이 기다리는
대장간 언저리서 곁불 쬐던 한 소년이
얼룩진 사진 속에서 풀무질을 하고 있다


<시조 심사평>

고려말부터 오랜 세월을 이어온 시조는 여느 시와는 달리 3장 6구 12음보의 형식을 갖춘 한국 고유의 전통시이다. 또한 고시조와는 달리 음악으로부터 분리된 현대시조는 시조의 형식미와 함께 현대 감각에 걸 맞는 참신한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상상력이 표출된 이미지를 일관되게 끌고 가는 호흡도 중요하지만 비유와 상징, 절제되고 함축된 시어를 제자리에 앉히는 솜씨가 있는지 즉 시의 완성도를 가늠해보아야 한다.

심사과정을 살펴보면 먼저 응모자의 이름과 주소 등 인적사항이 삭제된 응모작품 200여편 중에서 읽고 또 읽으면서 눈에 띈 작품 20편을 골라내고 다시 10편으로 압축한 후 각 작품을 낭송하면서 다시 검토한 결과, 한석산의 ‘대장간’, 이태호의 ‘소록도’, 정행련의 ‘가자미 낚기’, 이종대의 ‘모둠발로 서는 미륵사지탑’ 등 4편을 최종심 작품으로 선정하였다. 고심 끝에 작품의 순위를 정하고 신문사 담당기자에게 결격사유 유무를 확인케 한 후 한석산의 ‘대장간’을 당선작품으로 합의했다.

한석산의 ‘대장간’은 인간의 존재론적 문제와 실존에 대한 연민이 있으며, 그 삶의 정서를 예술적인 안목으로 형상화시킨 작품이다. 대장간은 쇠를 다루는 곳이지만 인생 또한 계속된 담금질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고 곁불 쬐던 한 소년이 이제는 사진 속에서만 풀무질하는 모습을 지난날 자신의 초상으로 떠올리면서 무리 없이 이끌어간 힘이 돋보였고 적절한 시어의 조탁으로 시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태호와 이종대의 작품은 고르고 안정적이었으나 신선한 면이 부족했고, 정행련의 작품은 거칠지만 이끌어 가는 힘이 좋았으나 생경한 시어의 남용이 거슬렸다. 앞에 거명한 네 사람의 작품 모두 수준급 이었으나 신춘문예의 특성상 한석산의 ‘대장간’을 당선작으로 밀게 되었다.

심사위원에게 넘겨진 작품들은 몇 편을 빼고는 정형시로서 시조의 기본에 충실하였으며 작품 수준도 고른 분포를 보였고, 시조 창작에 오랜 수련을 거친 각자 개성이 드러나는 작품들이 많아 고무되었다. 전북중앙신문의 신춘문예 공모야말로 가람 이병기 선생의 고장에서 시조문학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당선자는 앞으로 자만하지 말고 더욱 정진하여 시조단의 거목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정순량 우석대 대학원장/ 시조시인·양점숙 시조시인>


<당선 소감> - 한석산

떨린다. 다시 손 떨리는 긴장감을 안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 너무나도 먼 길, 피 말리는 시조의 세계를 향해 외롭고 괴로운 여행길, 그 험한 가풀막 길을 기어 올랐나 보다.

3장 6구 12음보의 율격을 갖추어야 하는 시조문학. 시조 한 수는 45자 안팎의 글자 수로 이루어진다. 작다고 보면 작고, 짧다고 보면 형편없이 짧은 그 ‘그릇’ 속에는 세상 모든 이치와 우주의 섭리까지도 담아내야 한 다.

세계에서 유일한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문학인 시조문학은 독특한 형식미학을 갖춘 정형시이다. 그러므로 율격을 흐트리지 않으면서 그 안에 사상을 담아내기란 지난한 일이었다.

득음(得音)의 경지가 어떤 것인가. 시조문학이 지닌 오묘한 묘리(妙理)를 터득하는데 얼마나 많은 방황을 계속했던가.

부족한 나의 시 끈을 놓지 않도록 흙을 북돋아 주신 경기대 문창과 윤금초 교수님, 아직 모자라는 글을 어여삐 여기시어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큰 절을 올린다.

그리고 가파르고 머나먼 길 늘 함께 해온 문우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아내 선녀, 큰 아들 대섭, 새 애기 윤수, 딸 은선, 막내 건섭에게 사랑한다는 말 전하고 싶다.

함께 응모하셨던 선생님들께는 죄송한 마음 금할 길 없다. 끝으로 전북중앙신문사 관계자 분들께 감사드린다.

* 한석산 약력

1949년 충남 태안 출생. 분당거주 한의원 원장 30년.
2003년 현대시문학 시 부문 신인상 당선.
2004년 7월 중앙일보 시조백일장 장원.
사회교육원. EBS. 케이블TV 등에서 대체의학 강의.
민족시사관학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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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조당선작] 겨울 운문사에서 - 박수민(본명 박순희)


오래된 풍문처럼 밤새 폭설이 내리면
극락전 솔가지는 그리움에 늘어지고
대숲에 바람 드는 소리 하얗게 쌓였다

묵언에 드는 길은 아득히 멀다마는
어둠을 밟아 오르던 저 단아한 예불소리
문 밖에 기대어 서서 미륵 되어 보았다

마음에 때가 끼어 앉힐 수가 없었을까
가부좌 튼 자세로는 벽을 허물 순 없었다
고요에 몸을 맡기면 조금은 알 것 같은데

단층 끝 소리물고기 절간 바람을 흔들 뿐
햇살에 순은이 되는 숲길을 간직한 채
아무도 밟지 않는 길 발자국 하나 찍었다


[심사평]
율조 따른 세련미 탁월

사설시조는 이 땅에 자유시가 발붙이지 않았을 때 자유시로서의 기능 일부를 감당했다고 할 수 있다.

창의 입장에서는 달리 설명되겠지만 사설시조는 그 형식이 일정하게 고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신춘문예의 시조는 정형시로서의 시조를 뽑아야 한다. 그런 연유로 사설시조는 일단 선에서 제외하기로 하였다.

전년에 비해 응모작품 수가 대폭 늘었다. 작품의 우열을 가리는데 많은 논란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예선을 거쳐 2심을 거친 작품은 '겨울 운문사에서' '금동반가사유상' '난분을 옆에 두고' '하구에서 서성이다' '紅玉' '바위' 등 여섯 작품이었다.

논의를 거듭한 끝에 '겨울 운문사에서'와 '하구에서 서성이다' 그리고 '바위' 등이 높은 점수를 얻었다. 그 중 형식의 파괴가 마음에 걸리는 '하구에서 서성이다'를 제외하기로 하고 마지막 두 편을 두고 고민에 들어갔다.

어느 작품이나 장·단점은 있다. 언어의 세련미와 시조로서의 율조를 잘 따른 '겨울 운문사에서'를 당선작으로 밀기로 했다. 임종찬(부산대 교수) 전치탁(시조시인)


[당선소감]
힘겨웠던 글쓰기 시간들 하나 가득 눈 꽃 되어 비상

12월 끝자락에 서면 문득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잘한 일보다 그렇지 못한 일들이 겨울바람 채찍이 되어 돌아옵니다.

낯선 전화번호가 휴대전화에 찍혀 있었고, 혹시나 하는 두근거림에 마음이 잠시 흔들렸습니다. 그러나 막상 당선 통지를 받았을 때는 정작 차분해졌습니다. 혹 꿈은 아닐까, 몇 번이고 되뇌어 보았지만 분명 꿈은 아니었습니다. 누구나 간절한 바람이 현실로 다가올 때처럼 저도 똑같은 말을 쓰고야 말았습니다.

남들보다 항상 한 발 늦게 출발한 탓에 앞서 간 이들의 뒷모습이 한동안 저를 지치게도 했지만 이제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 앞에서 큰 힘을 얻습니다. 기쁩니다. 정말 기쁩니다. 글을 쓰면서 힘겨웠던 지난 시간들이 한꺼번에 눈꽃이 되어 하늘 가득 날아오릅니다. 제 가고 싶은 대로 가는 저 눈꽃들처럼 저도 이제 제가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쓰겠습니다.

얼마 전 세상을 등지신 어머니를 떠올려 봅니다. 살아 계셨다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조용히 생각해 봅니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는 것을 미리 안다는 듯 이제 제 마음에 연둣빛 물이 돕니다. 그러나 아직 저는 많이 부족합니다. 제 앞에 놓여진 매듭을 하나씩 풀어내듯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항상 지친 어깨를 토닥이며 격려해준 남편과 책상 앞에서 씨름하는 엄마에게 응원을 아끼지 않는 아들, 그리고 저를 아는 모든 분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부족한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과 좋은 자리를 마련해 주신 국제신문에는 더욱 좋은 작품으로 보답할 것을 다짐해 봅니다.

약력
1960년 부산 출생
한국방송대 국어국문학과 재학 중
2004년 여수 해양문학상 수상.
부산 서구 동대신동 2가 2의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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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당선작] 동백,몸이 열릴 때 - 장창영


한때는 너도
불 밝히던 심장이었다
눈 밟는 소리에도
온통 가슴 설레어
어쩔 줄 몰라만 하던 붉디 붉은 눈이었다
하기야 그때는
너조차 몰랐을게다
네 몸을 사정없이
훑으며 지나간 것이
한 떨기 바람, 그도 아니면 감당 못할 욕망이었는지
꽃무리 지고 난 후
다시 또 여기 서 있다
실팍한 가슴 한켠
환한 불씨 동여맨 채
안에서 밀어올려낸 향기 한 올 풀어 건네며


[심사평]

신춘문예는 기존의 작품수준을 월등 뛰어넘는 새로운 패기, 새로운 목소리,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기대한다.

올해 응모된 작품들은 종전에 비해 수준높은 작품들이 많았다. 우리 고유의 전통시인 시조에 대한 열기가 그만큼 높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반가웠다.

응모작품 대부분이 시조의 틀을 지키면서도 현대성을 지녔고 소재면에서 다양했으며, 삶의 현장성을 갖고 노래한 것과 우리 역사성을 갖고 노래한 것 등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었다. 심사기준은 시조가 갖는 형식을 지키되 어떻게 새로운 리듬, 감각으로 현대적 기능으로서의 기법을 구사했느냐에 초점을 맞췄다.

당선작 ‘동백, 몸이 열릴 때’는 하나의 꽃이 깨어나는 신생의 날카로운 감성과 언어의 배합 같은 것들이 신선했다. 시조의 운율을 갖고 재구성하면서 새맛나는 기량을 보여준 근래 보기 드문 수작이었다.

‘금동반가사유상’(한분옥)은 안정감 있고 상당한 시적 수련이 엿보이는 작품이었다. 최종 당선작과 겨루었으나 소재 면에서 신선감이 덜해 선외로 밀려났다.‘광개토태왕비’(방승길)는 고구려 역사왜곡과 잃어버린 고구려의 역사성을 면밀히 관찰하는 투시력으로 힘줄 넘치게 쓴 작품이다.

그러나 힘에 너무 치우쳤고 언어의 조탁에서 밀렸다.‘사랑’(이지윤)은 서정성과 시조다움에 가까운 작품이다. 첫발을 내딛는 신인의 시조로는 문제가 있다는 점이 결함으로 지적되었다.‘진도아리랑에 부쳐’(이태호)는 시조 가락이 철철 넘치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현대시로서의 의미, 새로운 감각을 살려내지 못해 아쉬웠다.
<이근배·한분순>


[당선소감]

당선 연락을 받던 날은 동지였다. 그날 저녁, 글쓰는 형 몇몇과 함께했던 술자리에서 팥죽을 먹었다. 얼굴도 모르는 이웃이 끓인 팥죽이 한 다리 건너 우리에게까지 건네지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사람들 사이에 정은 이처럼 소소한 것에서 생겨나 다른 이들의 마음 속에 웅숭깊게 자리매김하는 걸 게다. 아마 시조가 지향하는 바도 팥죽을 끓이는 이의 마음 씀씀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쓰지 못할 때처럼 비참한 경우가 또 있을까. 매년 신춘을 겪어 본 이들이라면 찬바람이 불 때마다 제 몸 안에 갇혀있던 무엇인가가 목청을 돋우는 것을 느꼈으리라. 이제 매번 마감시간 직전까지 휘둘리게 했던 그 무엇이 이 자리에 내디디게 만든 힘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글을 쓰는 매 순간마다 숨쉬게 하며, 살아 있음을 온 몸으로 느끼도록 만드는 힘이, 이 자리에 서기까지 마음 써 준 가족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그들은 내게 가장 큰 스승이다. 지금까지 글과의 인연을 놓지 않도록 도와준 이들에게 다시 한 번 큰 빚을 진 셈이다. 이 자리를 빌려 시조라는 거대한 물줄기에 합류할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의 절을 올린다. 누군가 길을 만들었기에 다음에 나선 이들은 보다 쉽게 갈 수 있다. 만약 그 길을 누군가와 함께 걸어갈 수 있다면 인생은 외롭지 않다. 나로서는 이제 시조라는 든든한 벗을 얻은 셈이다. 나 역시 후에 오는 이들에게 또 다른 길을 열어 주고 싶다. 세상은 아직 살 만한 것이기에.

약력

1967년 전주 출생
전북대학교 국어교육과 졸업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문학박사(현대시 전공)
2003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전주대학교 교양학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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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조당선작] 물안개 자욱한 날-평창강 섶다리/홍준경


싸릿대 잔솔가지 얼기설기 얽어 입고

옷자락 나부끼던 그 세월 어찌 났을까

거칠은 진흙을 덮고 평창강 지키고 있다

물안개 자욱한 날, 강물 그리 흘러 보내고

새벽 국밥 한술 뜬 눈빛 순한 사람들이

저마다 봇짐을 지고 분주하게 오며 가네

장돌뱅이 허생원도, 누렁소도 건너가고

세상이 흔들리면 섶다리도 휘청거린다

이따금 마파람 불면 헹가래 치듯 들썩인다.

※섶다리=강원도 평창군 평창강에 놓여있는 다리. 소나무 및 싸리 가지를 얽은 다음 그 위에 진흙을 덮어 섶다리를 만들어 마을 사람들이 지나 다닌다.

 강여울<본명:홍준경·양구군 양구읍 학조리>


[강원일보 신춘문예 심사평]시조부문

 시조부문 응모작품 경향을 분석하면,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구획 지을 수 있다. `뼈다귀의 시조’와 `껍데기의 시조’가 그것이다.

 `뼈다귀의 시조’는 글 속에 담을 이른바 사상이란 것을 미리 설정해 두고 거기에다 격에 맞지 않은 미사여구를 짜 맞춘, 그러므로 문맥이 자연스런 유기체가 되지 못하고 앙상한 뼈대만 드러낸 정형시를 말한다. 김진실씨의 `생존’과 이기준씨의 `부활’이 여기에 해당된다.

 `껍데기의 시조’는 표현 형식에만 매달려 감동적 내용을 담아내지 못한, 알맹이 없는 시조를 의미한다. 박진아씨의 `우수절’과 이석구씨의 `꽃집 앞에서 꽃을 심다’와 같은 작품이 이 계열에 든다. 외중내졸(外重內拙) 즉 겉모양(형식)에 치중하게 되면 내용이 치졸해진다.

 당선작 `물안개 자욱한 날’(강여울)은 앞에서 지적한 `뼈다귀 시조’와 `껍데기 시조’의 함정을 절묘하게 극복한 작품이다. 따로 떼어두면 별 의미 없는 이미지들이지만 그것이 제 짝을 만났을 때 비로소 의미망을 확충하는, 마치 퍼즐 같은 언어 조립의 미학이 격렬하게 펼쳐진다. 평창강에 놓여 있는 섶다리를 소재로 하여, 이 고장에 뿌리 내리고 사는 백성들의 정서를 강물 푸른 빛깔로 풀어낸 것이다. `새벽 국밥 한술 뜬 눈빛 순한 사람들'을 떠올리는가 하면,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 등장하는 허생원과 장돌뱅이도 불러들이고 있다. 긴장을 늦출 틈을 허락하지 않는 이 작품에서 우리는 시조 특유의 순간적 임팩트(충격)를 느낄 수 있다.

■심사위원:김영기(강원일보논설고문·문학평론가) 윤금초(시조시인·민족시사관학교대표)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시조부문-강여울

 섶다리를 찾아 평창강에 갔었다.

 검푸른 강물위에 부표처럼 놓여있는 섶다리는 선사(先史)의 비밀과 민중의 애환을 간직한 채 묵묵히 평창강을 지키고 있었다. 그 여울목에는 심한 어지럼증과 흔들림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강원도의 끈질긴 역사를 이끌어 가고 있었다. 끊어질 듯 이어가는 한반도의 힘이 그 강물에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것은 운명 같은 만남이었다.

 응모작 `물안개 자욱한 날'을 완성하기 위해 수많은 날을 평 창강에 매달렸다. 수백리 산길, 들길을 달려가서 강물에 발 담그고 섶다리와 친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많은 무언(無言)의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 결과가 당선의 영예를 안겨 준 것 같다. 시조는 어느 문학 장르보다 언어의 조탁이 뛰어나야만 좋은 작품을 창조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시조만이 가지는 형식 미학의 특성 때문에 그러하다. 절제된 언어의 미학(美學), 그 매력과 깊이는 입문해 보지 않고는 감칠맛을 느껴볼 수 없을 것이다. 시조에는 우리 민족의 살아 숨쉬는 `정신'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그 가운데서도 시조는 민족 정서를 대변하는 문학의 정수인 것이다.

 우선 창간 60주년을 맞은 강원일보에 축하를 보내며 회갑을 맞은 신문사의 신춘문예(시조부문)에 당선하게 되어서 더없이 기쁘다.

 아직 가야 할 길은 멀고 험하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다. 새로운 각오로 정진할 것을 다짐한다. 졸작을 당선시켜 주신 심사 위원님들께 큰절로 인사를 드리며 신부전증으로 고생하면서도 구김 없는 가정을 일구어낸 아내와 식구들에게도 가슴 뭉클한 온정을 느낀다. 나를 아껴주신 주위의 많은 분들께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프로필

△1954년 전남 구례 출생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경영대학원 국제경영학과 졸업
△재단법인 구례장학회 운영이사(현)
△대평 주택 건설 주식회사 대표이사
△감사원 주최 부실공사 방지 전국 수기공모 대회 입선(감사원장상 수상)

 

[2006 부산일보 신춘문예 - 시조]

겨울, 새벽 일터 / 김진길


외투깃 절로 서는 대한절 이른 아침
밤새 지친 가로등이 어둠을 배웅하고
발갛게 얼음 든 귓불,목도리를 후빈다.

장작불 익어가는 공사장 한 모퉁이
곁불 쬐는 인부들의 웅숭그린 어깨위로
허어연 입김 오가며 안부를 건네고

아직 어스름한 언 땅위의 그림자들,
잉걸불 환한 온기로 가슴마저 녹여내며
묵직한 삶의 봇짐을 한 덩이씩 부린다.

알큰하게 몸 더워야 하루가 거뜬하다고
바람 숭숭 든 찌개에 소주 한 잔 곁들이는
한평생 노역의 훈장이 새벽달에 빛난다.


[2006 신춘문예 - 시조] 심사평
남성적 육성, 그 다양성의 발견

응모작의 양은 평년보다 약간 웃도는 정도였으나 근년 들어 두드러지게 눈에 뜨이는 현상 두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는 고른 질적 향상으로 응모 된 거의 전 작품들이 시조의 모양새로서 손색이 없다 보니 심사에 고심하는 즐거움을 누리게 되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응모자의 지역적 확장으로 영남 일대보다도 그 밖의 지역의 응모자가 더 많아졌다는 점이다.

예선에서 윤평수의 '저녁놀',김명희의 '어떤 귀가',송재선의 '가을 산행',송필국의 '안개 저편',김진길의 '겨울,새벽 일터' 등 다섯 편이 뽑혔다. 이 작품들은 특출한 가작이 없는 대신 고른 수준작으로서 어느 것을 당선작으로 세워도 좋을 만한 것이었다. 우리 시조는 대체로 가냘픈 여성적 서정,가야금 산조 같은 아기자기한 가락이 그 특징처럼 되어 왔는데,김진길의 '겨울,새벽 일터'는 다소 거친 흠이 없지 않은 반면,낮고 굵은 남성적 육성,거문고 같은 중후한 가락이 다른 작품들과 뚜렷이 구별되는 점을 사서 시조의 다양성을 계도하는 뜻을 더해 당선작으로 낙점했다.
시조시인 최승범·장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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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주산지 물빛 / 조 성 문


청송땅 샛별 품은 갈맷빛 외진 못물 갓밝이 저뭇한 숲 휘감아

도는 골짝만 된비알 뼈마디 꺾는 물소리 가득하다.

호반새 울음 뒤에 퍼지는 새벽 물안개 실오리 감긴 어둠도 한

올씩 풀어내고 삭은 살 연기가 되고 재 되는 저 춤사위.

사는 일 짐 부려 놓고 제 거울 들여다보는 고요도 버거운 이

차갑게 돌아앉고 못 속에 누운 왕버들 퉁퉁 부은 발이 시리다.

숨 돌릴 겨를 없이 짙붉게 타는 수달래 먹울음 되재우고 저마

다 갈 길 여는가 내 앞에 툭툭 튄 물살 쌍무지개 지른다.


[2006 신춘문예] 시조 심사평
세밀한 묘사, 뛰어난 시적 에스프리

일차로 우선 가려진 작품을 놓고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정 수준에 오른 작품이 작년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이었다. ‘주산지 물빛’ ‘민둥산의 봄’ ‘삽자루’ ‘쌍화점’ ‘어떤 우산’ ‘수화’ ‘하늘 가마’ ‘엑스트라’ 등의 작품은 어느 것을 당선작으로 밀어도 좋을 만큼 특징적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가혹하게도 단 한 작품을 선택해야 하고, 그럴 경우 심사자는 보다 엄정하고 공정한 시각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몇 번의 정독을 거치면서 나는 다음의 세 가지를 염두에 두었다. 시적 대상에 대한 묘사력이 어느 정도 새로운가, 시조의 가락적 운용을 얼마만큼 자연스레 하고 있는가. 이 요건들이 비슷하다면 같이 응모한 작품의 수준이 동등한 수준을 이루고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삽자루’ ‘어떤 우산’ ‘수화’ ‘하늘 가마’ ‘엑스트라’ 등은 소재나 표현기법 등에서 새로움은 있었으나 다소 어긋나는 가락의 운용이나 뒤를 받쳐주는 다른 작품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민둥산의 봄’과 ‘쌍화점’의 응모자는 각각 오랜 숙련을 거친 탄탄함이 돋보였으나 시적 상상력의 새로움이 다소 미흡하여 다음 기회를 보기로 하였다. ‘주산지 물빛’은 세밀한 묘사도 그렇지만 시적 에스프리가 뛰어나고 감각과 가락의 운용 또한 수준급이다. 보내온 작품 전체가 태작이 없이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 또한 시인될 단단한 자질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긴장을 늦추지 말고 시조단에 새로운 정신을 열어주는 좋은 시인이 되길 바란다. /이지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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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동아일보 신춘문예]시조 당선작

화첩기행 / 김종훈


오종종한 징검돌이 샛강 건너는 배경으로
미루나무 두엇 벗삼아 길나서는 물줄기와
기슭에 물수제비 뜨는 아이들도 그려 넣는다

여릴 대로 여리더니 어깨 맞댄 물길들이
한 줄 달빛에도 울렁이던 맑은 서정을 삼키고
여울은 화폭을 휘적시며 세차게 뒤척인다

구도마저 바꿀 기세로 홰를 치며 내달리다
분 냄새 이겨 바른 도회지 그 풍광에서
노을 빛 그리움에 젖어 물비늘 종일 눕는다

어느새 귓가 허연 강가 풀빛 아이 불러내며
캔버스를 수놓던 현란한 물빛 지운 채
꿈꾸던 역류를 접고 강은 고요 속으로 흐른다


[2006 신춘문예]시조부문 심사평

시조 100년의 새해가 밝아왔다. 오랜 역사를 끌어안고 소리치며 달려온 오직 하나 뿐인 겨레의 시가 새롭게 태어나는 아침을 맞고 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는 이호우 김상옥 선생 등 현대 시조의 선각들을 발굴한 것을 비롯해 겨레의 얼과 모국어의 속 깊은 울림을 가장 드높게 빚어 올려왔다. 올해도 그 기대에 도달하기 위해 치열하게 쌓아온 기량들이 번뜩이며 날을 세우고 모여들었다. 형식의 제약이 시를 구속한다고 생각하면 시조는 제 모습을 지니지 못한다.

오히려 시조는 모국어를 깊고 아름답게 숙성시키는 이상적인 그릇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당선작 ‘화첩기행’(김종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저 쉽게 눈에 띄는 강 하나를 아주 섬세한 붓끝으로 화폭에 옮겨놓고 있다.

시대의 아픔을 드러내거나 목청을 과장하지 않으면서 눈으로는 다 볼 수 없는 내면의 풍경들을 투명한 감성으로 한 올씩 건져 올리는 품이 한 경지를 이루고 있다. “오종종한 징검돌이 샛강 건너는 배경으로” “여릴 대로 여리더니 어깨 맞댄 물결들이”에서 새처럼 날개를 펴고 물고기처럼 꼬리치며 뛰노는 생동감이 넘친다.

여기까지 밀고 온 힘을 더욱 북돋아 시조의 내일을 밝혀주길 바란다.

‘고구려에서’(방승길) ‘겨울 탱자나무’(임채성) ‘화인(火印)’(석연정) ‘고로쇠나무’(설인) 등이 글감 뽑기와 그 깎고 다듬기에서 당선권에서 끝까지 머물렀음을 밝혀둔다. 이근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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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국제신문 신춘문예-시조]

화첩 기행 / 김종훈


폭포 소리 휘몰아친다
강하고 화려하게
절창의 한 대목을 풀어놓은 가을 캔버스
제 노래 겨워 겨워서 산과 산이 자지러진다

굿판은 끝이 났다
주연은 이미 가고
추임새로 덧칠하던 꾼들마저 하나 둘 떠나
늦은 밤 불꺼진 무대, 시나브로 무너진다

뉘우침이 밀려온다
섣달 초입 그 한기처럼
버릴 거 다 버리고 구원하듯 팔 벌린 나무
나이테 또 하나 그리며 속절없이 여위어간다

이제 붓을 놓으려나
다독이는 침묵의 말들
화폭마다 다복다복 여백을 채워 넣고
순백의 적요 속으로 풍경들이 걸어간다


[2006 신춘문예-시조] 심사평
현실과 낭만 어우러진 어휘 돋보여

수많은 작품을 앞에 놓고 선자들은 잠시 환상에 젖었다. 미지의 시인들, 새로운 언어의 비밀을 아는 시인들이 신새벽의 문을 열고 다가오고 있었다.

눈을 뜨고 정성스레 한 편 한 편을 정독하면서 그 환상은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 될 것 같은 믿음을 갖게 했다. 김종훈의 '화첩기행', 김종학의 '늦가을, 남천강에서', 우은진의 '서원 태양광 발전소'가 그 증거였다. 이 투고자들은 어느 곳에서라도 시인의 반열에 올려놓기에 부끄럽지 않은 수준이었다. 단아하면서도 운문성을 잘 살린 작품, 모국어의 결을 티없이 풀어내는 작품, 건강하고 사실적인 눈으로 대상을 그려내는 작품이 제외된 세 작품의 매력이었다. 그러나 신춘문예가 지닌 특성을 곰곰 되새기면서 이 작품들이 지닌 실험의식, 참신성, 종장의 긴장감 등에서 당선작과는 조 금씩의 아쉬움을 드러내었다.

결국 올해의 영광은 '화첩기행'을 투고한 김종훈에게 닿았다. 적절한 비유, 활달한 구도, 현실성과 낭만성이 조화를 이룬 어휘 구사 능력 등에서 단연 돋보이는 시인이었다. 응모한 작품의 수준이 고를 뿐 아니라 시조라는 정형의 체득면에서도 적공의 연륜이 적지않아 보였다. 다만 최상의 기교는 그 기교를 독자가 알아차릴 수 없을 때라는 사실을 명기하면서 삶의 현장에서 채굴한 언어들을 정성껏 시조에 담아내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가인이 되길 기대한다. 이우걸·박옥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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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국립중앙박물관 / 한분옥


투명한 유리 집에 한 여인이 살고 있다

천년이 흘러간 뒤 다시 천년 반석에 놓여

꽃 같은 싱싱한 웃음,늘 그 자리에 바치고

세속 모든 언어들이 여기와 갈앉는다

풍경도 울지 않는 채,감도는 작은 고요

해묵은 청동의 녹이 봄빛 파랗게 물들이고

가까이 다가서면 이웃집 아낙도 같은

어쩌면 옷깃 한번 스치고 간,머언 인연 같은

아니야,나를 어루신 우리 어머니 손길 같은

실선 따라 흘러내린 빛나는 고운 눈썹

떨쳐낸 유혹하며 숨겨진 예감하며

살 에는 바람 소리도 춥지 만은 않구나


■ 심사평 “손길 닿는듯 감각적 시어 돋보여”

응모된 작품들은 예년에 비해 높은 수준을 보였다. 해가 거듭될수록 시조에 대한 관심과 열의가 그만큼 깊다는 점에서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한다.

이번 작품들은 다양한 소재를 시조의 형식으로 형상화하는 역량들이 크게 눈에 띄었다. 시조가 갖는 형식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감각과 리듬으로 참신한 내용을 담아내어 현대적 기능으로서의 기법을 구사해 낸 점이 돋보였다.

당선작 한분옥의 ‘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 문화의 중추적 사물을 대상으로 설득력 있게 파고 들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진술한 전개가 아니라 손길에 닿는 감각적 표현으로 시선을 끈 수작이다.

이밖에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김종학의 ‘늦가을, 남천강에서’, 조성문의 ‘다도해 무화과’, 한마루의 ‘자음과 모음(문자 메시지)’, 정행년의 ‘월포리 단상’ 등으로 이들 네 사람의 작품은 모두 시조의 기본 형식에 충실하면서도 각자 나름대로 개성있고 고른 수준을 보여준 작품들이다. 김종학의 ‘늦가을, 남천강에서’는 언어의 조탁이 상당한 수준에 이른 작품으로 당선작과 마지막까지 겨뤘으나 아깝게 밀려났다. 조성문의 ‘다도해 무화과’는 안정감을 주는 대신 평이한 표현으로 참신성이 결여돼 보였다. 한마루의 ‘자음과 모음(문자 메시지)’은 현대적 소재를 무리없이 전개한 작품이다. 다만, 생경한 시어로 작품을 가볍게 만든 점이 아쉬웠다. 정행년의 ‘월포리 단상’은 동일한 작품을 타사에도 응모한 것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이근배 한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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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강원일보 신춘문예]시조부문 당선작

용대리 황태덕장 / 이우식

 
저들은 지금 한껏 목청 돋우고 있다
동해 푸른 목숨 비릿한 몸을 빌어
가슴 속 대못 지우며 뽑아내는 판소리

파도가 울어대고 폭풍이 내달리는 건
결코 환청(幻聽)이 아닌 누군가의 거친 숨결
본능의 아름다움이란 아, 바로 이것인가

벌떡 일어나서 성큼 성큼 다가온
산이 불을 토하듯 단숨에 휘갈겨버린
그것은 저 이중섭의 `흰 소'같지 않은가

서릿발 맺힌 매듭 한결 풀어 젖히고
언 몸 서로 부딪쳐 뜨겁게 비비다가
벼랑끝 붙잡은 손을 타악 놓은 그 장엄.


[신춘문예]시조부문 심사평

 예심을 거쳐 본심 심사위원 손에 넘어온 원고 66편 가운데 1차로 걸러낸 작품은 `콩나물을 다듬으며(정영화)' `강아지풀(김수진)' ‘아버지의 내(서정택)' `용대리 황태덕장(이우식)'이었다. 이 네 작품은 어느 쪽 손을 들어주어도 좋을 만큼 모두가 당선 반열에 오른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 작품은 개성이 두드러진 글이긴 하지만, 한결같이 그만그만한 결점을 안고 있었다. `아버지의 내'와 `강아지풀'은 주제가 구체적으로 소화되지 못한 채 생경하게 겉돌고 있다. 소화불량의 주제는 결국 백화점식 언어의 나열, 우편엽서 같은 풍광(風光) 묘사에 치우치는 결과를 낳고 만다. 시는 현실을 끌어안되 그 현실을 날것으로 드러내지 않고, 그것을 발효시켜 새로운 그 무엇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콩나물을 다듬으며'는 우리가 너무나 많이 보아온 익숙한 세상 현실을 직설적으로 드러내는데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시의 알레고리가 무엇인가. 현실 자체를 드러내기보다는 현실을 해체하여 시적 공간 속에 재구성하고, 이를 통해 시 문맥 바깥 - 즉 일상의 공간 속에서와는 다른 체험이나 정서적 울림을 안길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콩나물…'은 글쓰기의 기본 덕목인 띄어쓰기, 맞춤법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주제의식이 강렬하면 강렬할수록 거기에 압도된 나머지 서술구조를 포기하는 실수를 저지르기 십상인데 당선작 `용대리 황태덕장'은 그 함정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끈기를 잃지 않고 있다. 황태덕장이라는 강원도 정서를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담아냈다는 점도 후한 가산점을 받은 것이다. <심사위원:김영기·윤금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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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농민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휴대폰 / 서정택


기약에서 멀어질까 시시로 하늘창 열고
소슬한 목청 걸어 임에게 보냅니다
목련꽃 도드라지며 향 올리는 사월이면

생전에 못 다한 말씀 무슨 생각 그리 깊어
매냥 어루던 항아리에 젖은 꽃잎 띄웁니까
김장파 실뿌리보다 짜고 매운 눈물 꽃

당신의 등 뒤에는 다 큰 눈이 있습니다
진동처럼 흔들릴 때 함께 움찔하면서
긴 세월 종지에 담긴 겨자 찍던 눈입니다

아버지 내 아버지 버들잎 같은 내 아버지
여린 가지 죄다 꺾어 이 몸에게 내리소서
깍지 낀 손가락 풀어 사다리 엮어 드릴게요


심사평〈시조〉-휴대폰
“문명·전통정신 연결능력 돋보여”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일곱사람, 35편이었다. 일차적으로 세사람의 15편을 추려내고 네사람, 20편을 두고 깊이 있는 검토를 했다. ‘휴대폰’ 외 4편, ‘동검은이오름에서’ 외 4편, ‘모슬포 해넘이’ 외 4편, ‘255㎜의 세상’ 외 4편의 작품이 최종심 대상이 된 것이다.

이 작품들은 우열을 가리기가 만만치 않았다. 모두 시조의 형식을 잘 소화해내고 있었으며, 시상을 안정적으로 끌고 가는 능력도 있었다.

따라서 이 작품들 중에서 수사적 능력보다 깊이 있는 사유 쪽의 작품, 현대시조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부합되는 작품을 뽑자는 합의를 하게 되었다.

심사 기준으로 정한 두가지 사항을 염두에 두고 여러 번 검토한 끝에 작품 ‘휴대폰’이 사유의 깊이가 있고, 시대 변화 속에서 문명의 이기와 우리 고유의 전통적 정신을 연결하는 능력이 있으며, 내일에 대한 기대치를 높일 수 있다고 판단,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밀기로 했다.

나머지 세사람의 작품도 아쉬움이 많이 남았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고, 아쉽게 탈락한 분들께 위로를 전한다. 심사위원 : 한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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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대구매일 신춘문예] 당선작

주남저수지 / 이화우


한기가 엄습하는 주남지의 겨울은
보냄이 두려운지 제 몸까지 얼어붙어
조그만 흔들림에도 파열음을 내보인다.
지상에 매인 시간, 속절없이 풀리고
붙박인 삶을 거듭 강요하는 갈대들
시린 손 하얗게 닳아도 거둘 줄을 모른다.

묵묵히 떠날 때를 기다리는 새들은
습관처럼 부리로 물속을 더듬지만
채우면 채운만큼의 헛배도 불러온다.

묻어나는 그리움, 별빛에 길을 두고
귀향을 서두르는 부산한 마음 있어
어둠에 눈은 더 커져 그 빛까지 삼킨다.


[심사평]

김종학,임채성,정행년,임정윤,이서원,배다랑,이화우 등의 작품이 종심에 올랐다. 숙고를 거듭한 끝에 이서원의 ‘매듭’, 배다랑의 ‘봄, 바지랑대’, 이화우의‘주남저수지’로 압축했다.
‘매듭’은 제목부터 무언가를 기대하게 했고, 시종일관 사유의 깊이를 보였다. ‘봄, 바지랑대’는‘어둠살 헹궈내자 실눈 뜨는 무늬들’과 같은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두 편 모두 당선작에 비해 다소 미흡했다.
‘주남저수지’는 4수 한 편이 유기적인 체계를 직조해 보인다. 자연스러운 호흡, 안정된 전개와 마무리, 끝까지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절제력에 믿음이 갔다. 철새 도래지인 주남지의 겨울 풍광이라는 비근한 일상을 눈여겨보고 이렇듯 밀도 높게 언어로 육화해 삶의 의미에 깊이를 더한 점이 주목된다. 또한 비교적 긴 연시조를 무리 없이 소화해낸 기량과 형상능력도 신뢰를 더했다.
다만 ‘그리움’,‘삶’과 같은 말이 적절한 것인지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 이 점은 응모자들의 전반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형식을 부리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데 비해, 부적절한 시어 선택과 얕은 물밑을 들여다보는 듯한 평범한 묘사와 진술이 때로 완성도를 떨어뜨리고 있다. 이런 점의 극복에 특히 유의해야 할 것이다.
당선의 영예를 안은 이와 종심에 오른 이들 모두 시조만이 가진 ‘3장 6구 12음보’라는 창의적인 공간을 어떻게 ‘내 것’으로 육화할 것인지에 대해 부단한 고심과 천착이 있길 바란다. 이정환(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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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내소사 설화 - 이은정


내소사엔 아직도 꽃봉오리 맺혀있다
꽃살문 사이 사이 천여 일이 맺혀있다
바래고 지워진 세월 결 따라 맺혀있다.

사미승 두고 간 마음 한쪽 들여다보면
아득하고 아득하여 목탁소리 처연하다
몇 번의 업을 닦아야 꽃봉오리 피어날까.

내소천 가로질러 살아나는 시간들
물이 되고 흙이 된 사람들을 잊지 못해
천년의 대웅보전 곁에 꿈결처럼 맺혀있다.


2006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조 심사평]

시조는 내용과 형식이 조화를 이루어야 성공할 수 있는 시다. 물론 내용은 현대성에. 형식은 가락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서정시의 품격을 가진 시이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작품들을 읽었다. 작품 수는 많지 않았지만 수준은 고른 편이었다. 그러나 눈에 띄는 작품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지나치게 현대성에 무게를 둔 나머지 응집의 묘를 체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까지 선자의 손에 남았던 작품은 <내소사 설화>. <남천강에서>. <해수욕장>. <어떤 귀소> 등이었다.

<남천강에서>는 모국어 구사 능력이 돋보인 대신 참신성이 부족했다. <해수욕장>은 시조의 형식적 특성을 잘 보여주는 대신 시적 긴장감을 가지지 못했다. <어떤 귀소>는 평시조로는 비교적 긴 호흡의 다섯 수 연시조였다. 그러나 그 긴 사연들 속에서 시적 묘미로 독자를 감동시킬 만한 어떤 장치도 발견하기 어려웠다.

결국 선자들은 숙의 끝에 <내소사 설화>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현실과의 거리감으로 울림이 다소 적다고는 할 수 있지만 형식미. 연가의 전통적 품격. 운문성의 확보 등에서 모범적인 서정시라고 보았다.

좋은 시는 그 시인의 생의 파편들을 거짓없이 담아내는 시들이다. 공소하지 않고 우리 생활 가까이에서 누구나 발견할 수 있는 소재 그러나 쉽게 노래할 수 없는 첨예한 감성의 언어들을 자연스레 구사하는 시들이다. 이 과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이 시인에게 축하와 더불어 애정으로 전해주고 싶은 과제다. 대성을 빈다. 심사위원= 이우걸(시조시인). 장성진(창원대 교수.사진)

 

 

[2007 부산일보 신춘문예-시조] 장작불 / 민달            

1.
궁핍한 땅 말뚝 박아
지열(地熱)에 앓고 나니

계절을 뒤로하는
소소리 바람 산득하고

시나위
질펀한 곡조로
밑불을 토해 낸다

2.
회붉은 목질부(木質部)
너울진 꿈이 있어

겯고 트는 젖줄 위로
끔틀대는 봄배냇짓

한밤내
섣부른 불길
북천(北天)을 찾아 간다

3.
줄지은 산맥들
부푼 구름 보듬고

동강난 불기둥
아직은 뭉근해도

옹골질
맥박 이으며 우 적 우 적 타구나


[2007 신춘문예 - 시조] 심사평 / 묘사보다 더한 것-임종찬 / 시조시인

초심을 통과한 작품은 16편이었다. 다시 재심 끝에 '섬'(이광수),'차를 마시며'(박문숙),'홍옥'(한마루),'장작불'(민달),'담쟁이'(윤평수),'어떤 동행'(조춘희),'인생'(이상윤),'사북역에서'(정영화),'달팽이'(문경희),'해일'(배은상),이렇게 10편으로 줄어들었다. 줄인 근거는 인생의 골똘한 의미를 담았느냐 아니면 사물의 묘사에 그쳤느냐,였다. 삼심은 무척 힘들었다. 그 나름대로 장점이 있는 작품들이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종심에 잡힌 작품은 4편이었다.

'달팽이'는 살아 있는 언어가 마음에 들었으나 시조로서의 단련된 언어라는 점에서는 모자랐고,'장작불'은 민족의 아픔과 열망을 장작불을 통해 바라본 시점이 훌륭했으나 상징이 추상화된 흠이 있었다. '담쟁이'는 시심을 길게 이어가는 수법이 보통이 아니었지만 반대로 압축미가 모자랐다. '섬'은 딱히 흠을 잡기 어려웠으나 신인다운 티가 좀 모자랐다.

끝까지 선자를 괴롭힌 작품은 '장작불'과 '섬'이었다. 다 훌륭한 작품이지만 묘사보다는 시상(詩想),시상 그 너머 역사성에 가점을 주다 보니 '장작불'을 당선작으로 밀 수밖에 없었다. /임종찬 시조시인


[2007 신춘문예 - 시조] 당선소감 / 민달
"겨레시 생명줄 잇기 온 힘"

◇1967년 경남 산청 출생. 부산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92년 '전망'시 부문 등단. 2004년 3인 시집 '낙하산을 펴다' 출간. 현 금성고등학교 교사.

늘 세상의 변혁을 꿈꾸어 왔다. 세상은 꿈쩍도 않고 내겐 절망이라는 흉터가 생겼다. 나는 결국 해체시의 인질이 되었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해체시의 끝을 향해 추락하던 몸뚱어리가,더 이상 해체할 수 없는 시조로 귀착했으니.

나를 키운 8할인 은사님들이 먼저 떠오른다. 해운대중학교 때 최낙복 선생님,금성고등학교 때 故 정관영 선생님,부산대학교의 이영일 선생님. 세 분의 격려 말씀 덕분으로 이제껏 포기 않고 문학에 영혼을 저당 잡힌 셈이다. 모교 국어국문학과와 국어교육학과 은사님들의 가르침에도 깊이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예순이 넘도록 일기를 쓰고 계시는 아버지,가족을 위해 날마다 기도하시는 어머니,핏줄 당기는 글친구 종석,해환,형오,효제,얼굴 모르는 펜벗이었던 혜수 형,한 번씩 먼지를 털며 꺼내보는 삼중당문고 시집들,성지순례하듯 찾아갔던 술집들,옥죄는 현실 앞에 비상구로 다가선 추상(追想)명사 선(?). 모두가 내 시의 탯줄이다.

하나님은 분명코 살아 계신다. 내게 과분한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기적같은-당선소감을 쓰면서도 내가 나비인지 인간인지 믿기지가 않는-일이 일어났고,난해하고 술빛 가득한 자유시보다는 반듯하고 솔향 나는 정형시 같은 남편이길 바랐던 아내의 기도가 이루어지고 있으니. 어린 예슬이와 예리도 기도했으리. 아직은 갈 길이 멀고 부끄러운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누가 되지 않도록 우리 겨레시의 생명줄 잇기에 온 힘을 다할 것이라는 약속을 드린다. 그리고 시조라는 아뜩한 고지로 오르는 초입을 마련해 주신 부산일보사에도 고마움의 인사를 올린다.

◇1967년 경남 산청 출생.
부산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92년 '전망'시 부문 등단.
2004년 3인 시집 '낙하산을 펴다' 출간. 현 금성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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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동아일보 신춘문예-시조] 눈은 길의 상처를 안다 - 이민아


무제치늪* 골짜기에 사나흘 내린 눈을
녹도록 기다리다 삽으로 밀어낸다
사라진 길을 찾으려 한삽 한삽 떠낸 눈

걷다가 밟힌 눈은 얼음이 되고 말아
숨소리 들려올까 생땅까지 찧어본다
삽날은 부싯돌 되어 번쩍이는 불꽃들

성글게 기워낸 길 간신히 닿으려나
내밀한 빙판 걷고 먼 설원 헤쳐가면
삽 끝은 화살 같아져 모서리가 서는데

결빙에 맞서왔던 삽날이 손을 펴고
쩌엉 쩡 회색하늘에 타전하는 모스부호
마침내 도려낸 상처 한땀 한땀 기워낸다

*무제치늪 : 울산 울주군 삼동면 정족산(鼎足山)에 자리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층습원(高層濕原). 6000여 년 전 생성됐으며 지금도 수많은 습지 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심사평] - 이근배시조시인

땅속 깊이 뿌리박은 나무가 봄을 만나 꽃을 피우듯이 시조는 신춘문예를 만나 새 잎을 틔운다. 시조가 현대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난 지 100년을 맞은 지난해에는 모국어의 가락이 크게 소용돌이쳤다. 그런 까닭일까, 응모작들이 예년에 비해 형식과 내용의 각도에서 날을 세우고 있었다.

신춘문예를 의식한 소재와 주제를 다룬 작품들이 고른 수준을 유지하며 앞서 달려오고 있었으나 의욕과 실험정신을 완성도 높게 채우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또한 시조는 시각적 형식미에서 자유시와 식별시켜야 함에도 의도적으로 구와 장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는 표기법을 쓰는 유형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조가 자유시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형식의 파괴가 아니라 내재적 의미의 농축에 힘써야 하고, 글감잡기에서 형상화까지 치밀하게 결구(結構)해야 할 것이다.

당선작 ‘눈은 길의 상처를 안다’(이민아)는 순수한 원형을 지닌 눈이라는 오브제에서 상처를 만들고 그것을 도려내는 메스를 잡는 손이 능숙하다. 계절성을 띤 소재이면서 일상에서 끄집어내기 어려운 시의 줄기를 찾아가는 생각이 살아 있다. 명사 ‘삽’을 거듭 쓰는 것과 새맛내기가 덜한 점이 있으나 발상의 깊이가 있고 감성의 칼끝에 날이 서 있어 시조에 한몫 하리라는 기대를 갖는다.

마지막까지 겨룬 작품으로 ‘무용총수렵도를 보며’(방승길), ‘신 공무도하가’(박채성) ‘탁본’(송은율) ‘그 겨울의 갯벌에서’(송유나), ‘숲과 그루터기’(설우근) 등이 숨 가쁘게 시조의 벽을 타고 넘고 있었으나 다음 기회로 넘겨지게 되었음을 밝힌다.


[당선소감] - 이민아

△1979년 서울 출생
△2002년 부경대 국문과 졸업
△2004년 해양수산공모전 창작부문 해양수산부장관상 수상
△2007년 대구매일 신춘문예 시조 부문 당선
△현재 울산 보라컨트리클럽 근무

이태 전 고속도로 교통사고 이후 시 습작은 한 손에도 꼽지 못할 만큼 빈약했다. 열정에 대한 자기검열과도 같았던 이번 투고는 시마(詩魔)에 들린 듯 밤을 새며 쓴 연애편지였던 셈이다.

심사위원 선생님과 동아일보사에 충심으로 감사드린다. 7년 간 거듭된 낙선의 시간이 시어의 살결을 단단하게 하기 위한 염장(鹽藏)의 숙성기와 닿아 있음을 깨닫는다. 객토를 하듯 스스로 경계하며 시조의 부단한 걸음을 한 발씩 딛고 나갈 것을 약속드린다.

당선 통보를 받고 일터인 골프장으로 나가 솥발산 무제치늪 너머를 오래 바라보았다. 은현리에 계신 정일근 선생님의 응원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부경대 국문과 은사님, 국제 가족들과 박정애 선생님께 감사의 눈물로 연하장을 적는다. 학창시절 문학을 꿈꾸게 해 준 대산문화재단과 절정문학회에도 안부를 전한다.

지금처럼, 눈 덮인 길을 함께 헤쳐 갈 어머니와 가족. 더불어 내 생의 모든 필연과 4월 이후 잠시 찾아온 회복과도 같은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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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 시조 부문

사과를 만나다 / 박연옥

길어야 일주일쯤 머무는 줄 미리 알아
올핸 꼭 만나리라 서둘러 꽃 피워놓고
받침이 집인 줄 모른 채 사과꽃은 지더니

떠난 자리 들어선 열매 뙤약볕에 담금질하고
비바람에 지는 벗들 가슴으로 배웅하며
모질게 견뎌온 나날 과즙으로 고이더니

끝내 그를 알고 안절부절 못하는 낯빛
그걸 헤아린 듯 크게 한 입 베어 무니
달디단 사과향 속으로 그림자 두엇 잠긴다


당선자 박연옥씨 소감

어려서부터 말수가 적던 나는 언제나 혼자였다. 여럿이 어울릴 때마다 언제나 뒷전에서 서성대던 나. 그런 나에게 시는 마음의 언어였고 시조는 언어의 중요한 일부였다.

여름은 유난히 무더웠다. 얼떨결에 월 장원을 하고나서부터 내가 버린 밤은 얼마이며, 맞이해야 했던 바람은 또 얼마였던지. 이제 빈 그릇 하나 조용히 내 앞에 갖다 놓는다. 이 그릇에 내 운명처럼 담아내야 할 3장 6구 푸른 파도소리가 들리는듯하다. 박재삼 선생님의 고향에서 태어난 것이 행복하다. 오늘은 다도해가 보이는 남해 금산, 구부러진 소나무 한 그루 보러가야겠다. 글쓰기를 이해하고 보살펴 준 가족들과 멀고 가까운 여러 이웃께 감사한다.

◆약력=▶1959년 경남 사천 출생▶2001년 방송통신대 국문과 졸업


심사평

신인문학상을 가리는데 올해도 치열한 논의를 거쳤다. 당선작 '사과를 만나다'는 따뜻한 관찰을 통한 시간의 육화가 일품이다. '받침이 집인 줄 모'르고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다시 앉아 '과즙으로' 고이는 과정이 사뭇 그윽하다. 시조 종장에서는 조심스러운 '지더니', '고이더니' 같은 결구도 셋째 수에서 효과적으로 수렴하고 있다. 다른 작품의 고른 수준과 종장 처리 능력이 평가에 한몫했음을 밝힌다. 이번 심사에서 특히 중시한 것은 미학적 완성도다. 참신성을 형식에 잘 앉히지 못할 경우, 이후의 작품이 흔들리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끝까지 논했던 김대룡.김주용.연선옥.임채성.정상혁.조은아 제씨는 이와 같은 이유로 순위에서 밀렸다. 이미지와 형식이 겉돌거나(김대룡.김주용.정상혁), 의미의 과잉(임채성) 혹은 공소한 내용(연선옥.조은아) 등이 지적되었음을 덧붙인다. 더 좋은 작품으로 만나게 될 것을 믿는다.
<심사위원 : 유재영·이한성·김영재·이정환·이지엽·정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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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국제신문 신춘문예-시조] 저울 / 이광


달아보면 느껴지는 저마다 지닌 무게
눈금 하나 사이에서 추를 살짝 멈추고
평형을 이루어내던 대저울이 생각난다

한 걸음 물러서면 한 쪽으로 쏠리고
괜한 욕심 앞세우다 흔들리어 떠는 몸짓
눈앞에 그려보고도 어긋나는 평형의 길

하루 가면 하루치 빚을 지고 돌아와
그 무게에 비스듬히 기울어진 생의 저울
언제쯤 수평에 서서 저 해넘이 바라보랴


[시조 심사평] 진솔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사유 돋보여

좋은 시조는 어떤 모습일까? 심사를 할 때마다 새삼스럽게 이 질문을 먼저 떠 올린다. 정형시인 시조는 물론 그 형식을 잘 소화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런 공정 자체가 언어를 시적으로 극화시키는 적절한 압축과 긴장의 아름다움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리고 시대를 투시하는 예리한 시인의 눈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신춘문예의 경우 하나 더 욕심을 낸다면 참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대를 가지고 수백 편의 응모작을 조심 조심 정독해 갔다.

대체로 시조 형식을 모르는 응모자는 없었다. 수준도 예년에 비해 높은 편이었다. 그러나 시상이나 어법이 지나치게 평이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지막까지 선자의 관심을 끈 것은 '숭어 뜀을 담아오다', '프리즈 프레임', '판자촌 봄비', '저울' 등이었다.

'숭어뜀을 담아오다'의 경우 리듬이 살아 있고 이미지가 참신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울림이 없다는 점이 적지 않은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프리즈 프레임'의 경우 시상이 자유롭고 기법 또한 참신했다. 그러나 전통시조 작법에서 바라보면 지나치게 이탈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낳게 했다. 언어의 밀도, 시상의 구체성 면에서도 아쉬움이 있었다. '판자촌의 봄비'의 경우 시조를 잘 알고 습작한 경험이 오랜 시인의 작품으로 읽혔다. 그럼에도 지나치게 소박한 시상과 긴장감 부족이 흠이었다. 결국 올해의 영광은 '저울'의 작가 이광 시인에게 돌아갔다. 이 시인의 장점은 시상의 진솔성과 결코 가볍지 않은 시적 사유의 깊이에 있다. 함께 응모한 다른 작품들이 보여주는 공통점은 한결같이 생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빚어낸 만만치 않은 작품이라는 것이다.

부분 부분 지나치게 비시적이거나 다른 시인의 그림자 같은 것이 있고 회고조의 정서도 노출된다. 그런 면에서 비교적 완성도가 높은 '저울'을 내세우기로 했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제재지만 쉽게 성공하기 어려운 것이 '저울'이다. 앞서 거론한 바와 같이 오랜 시적 수련과 사유의 깊이가 인생론적 의미를 띤 울림 있는 작품으로 빚어놓았다. 참신하지 않다는 흠이 있지만 신뢰가 가는 시인의 탄생을 축하하지 않을 수 없다. 대성을 빈다. 이근배 이우걸 (시조시인)


[시조 당선소감]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작품 쓰고파"

당선 소식을 접하고 흥분이 가라앉을 때쯤 어머니의 산소가 눈앞에 그려졌다. 하늘 어딘가에서 흐뭇해하실 어머니를 떠올리며 지난했던 지난 날들을 잠시 되돌아 보았다.

사십대 중반에 들어 시조 잡지를 구독하기 시작했다. 살아가는 일이 자꾸 시들시들해져 내적 변화를 모색하던 차에 만나게 된 시조였다. 자유시와는 다른 단아한 품격과 3장 6구의 짜임 속에 흐르는 운율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시조를 공부하며 한 수 한 수 습작을 늘리는 동안 찢어진 삶의 옷가지들도 한땀 한땀 기워져가던 그 위안의 밤들을 잊을 수 없다. 한 줄의 시구를 가다듬느라 생각이 길어지다 보면 어느 사이 결 고운 우리 말이 제 자리를 알고 소곳이 앉아줄 때 그 줄거움 또한 일품이었다.

이제 내 나이 쉰, 해가 바뀌면 쉰 하나다. 늦은 출발이라 창문 너머 지나가는 바람 소리에도 귀기울이며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아야겠다.

초등학교 시절에 배운 옛 시조가 아직도 머릿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 지은이의 사상이나 의지가 종장에서 빛을 발하듯 표출되는 옛 시조의 멋을 현대시조에서 배제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기보다는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작품을 쓰고자 다짐해 본다. 그리하여 우리 고유의 정형시인 시조의 대중화에 미력하나마 정성을 다하리라고 욕심도 가져본다.

오랜 친구 양수, 상호와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다. 추운 겨울 밤늦도록 고생하는 아내의 두 손을 꼭 쥐어주고 싶다. 여전히 가정의 중심에 계신 아버지 그리고 사랑스런 아들과 딸의 축하에 가슴으로 따뜻함이 벅차오른다.

〈약력〉▲ 1956년 부산 출생 ▲동아대 농대 원예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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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전북중앙신문-시조] 더덕 - 박신양


노도처럼 밀려가는 지하철 환승 통로
아련한 선율로 코 끝 간질이는 천연향
오석에 물이 스미듯 촉촉하게 젖어든다

깊게 옹이진 가슴 실뿌리 촘촘히 뻗어
손 발 다 닳도록 안으로 쟁여온 세월
주름살 월계관인가 설움인양 둘려 있다

맨손으로 일궈 온 아버님의 칠십 생애
뭉툭한 손 마디 마디 가난 마저 물러서던
때늦은 저녁 밥상에 더덕향이 넘쳐 난다


시조 심사평

전북지역에서 오직 하나 신춘문예 시조장르를 유지할 수 있어 감사하게 생각한다. 현대시조의 태두이신 가람 이병기 선생님의 전통적인 시조의 틀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제재를 찾아내어 시어를 아껴 함축과 정제가 잘 이루어졌는지를 살펴보았다.

124편의 응모작품을 일독하면서 9명을 선별하고, 이들의 작품을 정독하면서 13편을 뽑은 후 최종적으로 3편의 작품을 견주어보며 고심하다가 박선양님의 ‘더덕’을 당선작으로 밀게 되었다. 참신함이 돋보이는 실험적 작품이 없어 아쉬웠으나 응모작품의 수준은 희망적이었다.

박신산님의 ‘지리산 벽소령’은 6.25동란을 겪으면서 이념 때문에 동포끼리 총을 겨눠 씻을 수 없는 상흔을 남긴 곳으로 “죽어서 북으로 간 바람 버섯구름 피우지 마라”며 오늘의 남과 북 얘기를 담고 있다.

김형태님의 ‘담쟁이덩굴의 사랑’은 장애인 부부가 서로 돕고 사는 애틋한 사랑을 벽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덩굴로 상징화하여 꾸밈없는 시어로 쓴 순애보로서 감동을 준다.

박신양님의 ‘더덕’은 가시적인 평범한 이미지 속에 힘겹게 살아온 아버지에 대한 애정과 아련한 모습이 숨겨져 있다. “손발 다 닳도록 안으로 쟁여온 세월/ 주름살 월계관인가 설움인양 둘려있다”. 말도 안 되는 조어로 글자 맞춘 게 아니라 일상 언어에 남다른 상상력과 직관에 의해서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내었고, 내재된 리듬과 율격이 자연스러웠다.

끝으로 고등학생 신분으로 응모한 서상희양은 시조라는 그릇에 아름답고 맛깔스러운 음식을 담을 수 있는 조리사로서의 재능이 엿보였다. 좀 더 수련하여 이름을 떨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순량 시조시인·우석대 명예교수>


<시조 당선소감>

백의환향(白衣還鄕). 때늦은 나이에 초라한 작품을 들고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감회와 부끄러움이 앞섭니다. 문학에의 꿈을 품은 지 50년. 그러나 생활이 문학으로 가는 길을 가로 막아 방황하던 세월을 보내고 늦게나마 시조에 매달릴 수 있었던 지난 6년의 세월은 참으로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우선 부족한 작품을 영광의 자리에 올려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전북의 시조문학을 이끌고 갈 젊은 세대들의 자리를 차지한 것 같아 한편으로는 무척 미안한 마음이 앞섭니다만, 저 개인적으로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시조에 더욱 정진하라는 채찍으로 알고 더욱 압축된 삶으로 하루를 열흘, 일 년으로 알고 남은 시간 최선을 다해 우리 민족시인 시조, 특히 전라시조의 발전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칠 것을 다짐 드립니다.

2006년 ‘창작수필’ 여름호에 수필 ‘더덕’이 당선되고 같은 제목의 시조 작품으로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저로서는 특별한 기쁨과 감회에 젖습니다. 작고하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쓴 저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담긴 글이기 때문입니다.

평생 동안 문학이라는 열망 때문에 공간적으로는 한 곳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마음은 천마 하늘을 날듯 어느 때 이룬다는 보장도 없는 문학에의 꿈을 좇아 들뜬 삶을 살아온 생활 무능력자인 나를 옆에서 묵묵히 지켜주며, 버팀목이 되어준 내 인생의 반려자인 아내에게 이 자리를 빌어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아들들 내외들과 가족 친지들과도 이 기쁨을 함께 하고자 합니다.

특별히 오늘이 있기까지 내 문학에의 길을 열어주고 함께 동반자가 되어 걸어온 ‘시로 여는 e좋은 세상’ 부설 문예창작대학 문우들과 권갑하 시인님께 깊은 감사와 함께 당선의 기쁨을 나누고자 합니다. <박신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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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조선일보 신춘문예-시조] 젖 물리는 여자-노영임


뜨건 국밥 후후 불며 젖 물리고 앉은 여자
어린 건 한껏 배불러 빨다가 조몰락대다
꽉 쥐고 해살거리며 또글또글 웃는다

한길에는 늦게 깨어난 게으른 햇살들이
엉덩이를 흔들며 사뿐사뿐 걸어가는
살짝 휜 S라인 여자들 발꿈치를 좇고 있다.

공갈빵처럼 부푼 가슴 아슬아슬한 실루엣
필라멘트 깜빡깜빡 전류를 방출하는
뾰족한 고욤 두 개가 손끝만 대도 터질듯

휘청, 가는 허리 애기집 하나 못 얹어도
둥지 속 알 넘보듯 집요한 사내들의 눈
왜일까, 늪에 빠지듯 지독한 허기 몰린다

순환소수처럼 잇고 이어 사람에 사람을 낳은
빌렌도르프 비너스 따뜻한 양수의 기억
넉넉히 젖 물려주는 그런 여자가 그립다.


[심사평] 현대의 잘못된 여성상3 묘사 빼어나 / 이지엽시인

응모된 작품을 정독하면서 금년 들어 새롭게 일어난 변화가 주목되었다. 새로운 시어를 찾아 쓰려는 노력, 시조의 장 구분 등에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 적지 않은 사설시조 작품들이 창작되고 있다는 점 등이 바로 그것이다.

마지막까지 선자의 손을 떠나지 않았던 작품들은 ‘둥지 잃은 새’ ‘자전거의 독백’ ‘냉이꽃’ ‘밤낚시’ ‘이상한 나무’ ‘빛깔’ 등이었다. 이 작품들은 모두가 상당한 수련을 거친 솜씨여서 옥석을 가린다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았다. 그러나 이들 작품들은 관념이 잘 육화(肉化)되지 못하거나, 종장에서 시적 긴장감을 풀어버리거나, 작품이 갖는 의미가 미약하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당선작으로 택한 노영임의 ‘젖 물리는 여자’는 외모 중시의 덫에 치여 점점 나약해져가고 있는 현대의 잘못된 여성상에 일침을 가하고 있는 의미 있는 작품이다. 동시에 시상을 잡아나가는 구성과 묘사가 빼어나다. 같이 응모한 작품들도 모두 정제된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신뢰를 얹을 만하였다. 특히 전통을 재해석한 ‘쌍화점’과 생태 사설시조라 할 만한 ‘북새통 났네’는 소재의 다양한 운용과 단단한 기량을 짐작케 한다. 늘 문제의식을 가지고 정진해 좋은 시인이 되길 바란다.


[당선소감] 꿈 영그는 고향집 같은 시 쓰고파

노영임 두둥실 꿈이 영그는 집 한 채 짓고 싶었다. 뚝딱뚝딱 속살 다듬어 덩그런 대들보 올리고 지붕엔 용마루 얹어 해와 달도 띄워놓고 자르르 쏟아진 빛살 찰랑찰랑 조리질 하는, 꼭 이만한 품으로 드리워진 처마 밑에 후, 후 바람결에 홀씨까지 다 불러들여 넉넉히 깃들 수 있는 그런 집이면 어떨까, 그런 시를 쓰는 것이 꿈이었다.

갈무리해둔 씨오쟁이까지도 죄다 풀어주신 나순옥 선생님께 이 자리를 빌려 큰 절 올린다. 내가 다 자라도록 젖 물려준 내 고향 진천 땅, 비싼 일수(日收) 찍듯이 하루 벌어 하루 에우듯 키워 오신 내 어머니 임정숙님께, 긴 시간 함께 손잡고 걸어와 준 남편과 가족 그리고 이웃들, 이젠 애엄마가 되었을 테고 군인아저씨가 된 제자 녀석들과 마냥 신나하는 학교 아이들과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

▲1963년 충북 진천 출생
▲충북대학교 대학원 국어교육과 졸업
▲현재 서경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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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대구매일 신춘문예-시조] 가면놀이 - 이민아

1
이삿짐 꾸리다가 담지 못한 소품 하나
각시탈 연지곤지 낯붉히던 어린 시절은
내 생애 최초의 극장 눈물어린 퍼소나다.
2
미간도 맞지 않은 가면 뒤에서 숨을 쉬면
얼굴과 얼굴 사이 맺히는 눈물방울들,
웃자란 새 각시 되어 붉은 입술 부딪히던

두 눈도 입도 코도 내 것이 아닌 듯 해
마당에 널브러지고 허방도 짚었던가
손쉬운 방백조차도 난청 속에 헤아렸었다.

3
걸립에 열뜬 이마 푸르게 서는 핏발
혼미한 정신의 틈 한바탕 뒤흔들며
바람의 유장한 지문 가만 엿듣고 있다.


[심사평]
신인에게 요구되는 덕목 중에 참신성과 패기를 들 수 있다. 삶의 의미를 확장·심화시키는 당찬 시선과 기량을 보이지 않는다면 눈길을 끌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3장 6구 12음보의 시조는 정형의 율격에 시상을 잘 녹여 담아야 하는 겹의 창작 과정을 거쳐야 하며, 형식에 충실하되 거기에 얽매이지 않는 활달한 언어 운용의 묘미를 체득해야 한다. 그러므로 한 편의 시조 속에 자연스러움이라는 요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공정과 천착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선작인 이민아의 '가면놀이'는 가면놀이라는 비근한 소재를 원용하여 실감실정을 살려 인생의 의미를 성찰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어떤 측면에서 볼 때는 보이지 않는 탈을 쓰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사람살이다. 자아의 진면목을 깊숙이 숨기고, 또 다른 나를 전면에 내세워 세상과 부딪칠 때가 적지 않은 것이다. 이 시는 시종 잔잔한 어조로 그런 이면의 세계를 육화하여 보여주고 있는 점에서 이채롭다. 다소 난해한 마무리 부분도 깊은 울림과 시적 묘미를 내장하고 있어 그 의미를 여러 번 곱씹어 되뇌게 한다.
최종심에서 김종학, 이효정, 장중식, 김지송 등의 작품이 눈에 띄었으나, 몇 가지 문제점을 극복하지 못하여 당선권에서 밀려났다. 즉 편편이 완성도를 보인 반면에 소재가 회고적인 자연 경물 묘사에 머물거나, 신인으로서 패기와 기량의 부족하거나, 형상능력은 엿보이나 지나친 실험성과 파격으로 신뢰가 가지 않는 점 등이었다. 새 물꼬를 트는 각고의 노력이 가일층 뒤따라야 할 것이다. 새로운 신인의 등장을 축하하며, 오늘의 영광에 값하는 꾸준한 정진을 보여주기 바란다. 이정환(시조시인)


[당선소감]
“전화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좋은 작품 보내주셔서 저희도 감사합니다.”
문화부장님의 매력적인 목소리에 실려 전해져 온 당선 소식은 대구 매일신문에서 받은 올해 성탄 선물이었다. 뜻밖의 선물을 받고, 그 순간 격정적으로 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난 1년 반 동안, 고속도로 추돌 사고로 인한 후유증으로 몹시 앓았다. 한동안 책을 읽지도, 시를 쓰지도 못하고 물 위에 뜬 수련처럼 스스로 내 주변을 맴돌기만 했다. 이명과 흉통을 안고 지내온 날들, 가슴으로 털어 넣던 알약들. 무시로 찾아와 말을 걸던 통증은 몸이 감추고 있던 말들을 하나씩 길어 올리게 했다.
뭔가 달라져야 했다. 나를 추스르고 더 나아진 나를 만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 때, 오랫동안 습작을 하던 시조를 떠올렸다. 여고시절 시조백일장에 마실갔던 인연으로 시조를 쓰기 시작했던 내 습작기의 처음, 교과서에서만 배우던 시조를 오늘에 다시 살려 쓰는 시조시인의 얼굴을 직접 보며 시조의 맥박을 느꼈다.
대학시절 고전시가 강의를 들으며 몸이 걸어가는 호흡으로 한 글자씩 시조를 새기던 가인(歌人)들의 정신을 탐하리라 다짐했다.
시조와의 언약을 이어갈 수 있도록 베풀어주신 매일신문사와 심사위원님의 호명에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정제된 말의 우주와 같은 시조의 마당에서 한 판 다채로운 탈놀음을 벌여 볼 것을 감히 약속드린다.
찬연한 슬픔을 머금은 각시탈의 미소를 선물해주셨던 어머니와, 사랑하는 가족들. 고난의 고비마다 나를 지켜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인연의 깊은 눈들에게도 감사를 전한다.
먼 하늘나라에서 가슴으로 기뻐하고 있을 오랜 벗 현희에게 새해 첫날 신문을 선물하러 감포바다로 가야겠다.

▒ 약력 ▒
△1979년 서울 출생
△부경대 국어국문학과 졸
△2005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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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경남신문 신춘문예-시조] 어떤 귀가-김명희


캄캄한 어둠이 오글거리는 골목길
야트막한 대문 새로 삐져나온 엷은 불빛
아이들 수군거리는 창밑마다 찾아든 별

깎아지른 언덕길을 막 올라선 발걸음이
거친 숨 몰아쉬고 담벼락에 기대서면
찬바람 쏘아붙이듯 귓불 치고 달아난다

움츠린 어깨위에 지난날 꿈 아른거리고
젊은 시절 당당했던 목소린 작아졌다
기대설 누군가 있다면 짊어진 짐 놓고 싶다

돌아갈 집이 있어 기다려줄 아이 있어
오늘도 기름 떼 낀 목수건 걸고 대문 연다
거머쥔 붕어빵 봉투 인생 줄에 매달렸다


신춘문예 시조- 심사평
허점없는 언어 밀도 돋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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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국어의 새로운 발성법을 지닌 시인을 만나고 싶었다. 그 발성법이란 소재의 확장. 깊이있는 사유의 천착. 참신한 언어감각에 의해 드러나는 치열하고 당돌한 개성을 말함은 물론이다.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는 작품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남아서 선자들을 고심케 한 작품은 ‘봄비’. ‘레이스를 짜는 여자’. ‘어떤 귀가’였다. ‘봄비’는 아름다운 서정시일 뿐 아니라 시조의 율감을 적절히 살릴 줄 아는 시인의 작품으로 무리없이 읽혔다. 그러나 도발적인 혹은 치열한 작가정신을 감지하기 어려웠다. 지나치게 무난하다는 것은 결국 지나치게 안이하다는 것이고 이 점이 신인의 자격으로는 적지않은 결함이라 생각했다. ‘레이스를 짜는 여자’의 경우는 우선 참신성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제목이 그랬고 베르메르의 그림을 소재로 원용한 것도 그런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정형시에서 특별한 이유없는 동어반복은 치명적인 약점으로 보였다. 그러한 약점은 상의 불분명함과 함께 습작기간의 부족으로 다가왔다. 강파른 현실의 단면을 은유적으로 그려내고 싶은 작자의 의도에 비해 그 구성이 지나치게 서투르다는 것이 선자의 공통된 견해였다. 이런 결함을 극복한다면 좋은 시인이 될 것으로 보였다.

올 해의 행운은 결국 ‘어떤 귀가’에 닿았다. ‘어떤 귀가’는 적지않은 미덕을 지니고 있었다. 우선 이 시인의 응모작 모두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특히 비교적 호흡이 긴 연시조들도 쉽게 허점을 드러내지 않는 언어 밀도를 보였다. 아울러 어떤 제재를 가지고도 시조를 빚어낼 수 있을 것 같은 저력을 감지하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인의 작품을 선택할 때까지 우리를 괴롭혔던 것은 새롭지 않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신년 초에 독자에게 찾아갈 신춘문예 작품이라면 신선함이 중요한 미덕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기준에서 본다면 분명 빗나간 낙점이다. 그러나 시조를 빚기 위해 쌓아온 내공이 역력히 드러나는 믿음직한 작자를 천거한다는 것 또한 작은 기쁨이 아니다. 하루의 영광 뒤에 쉽게 사라지는 많은 당선자들을 생각할 때 더욱 그러하다는 확신으로 이 시인을 민다. 이제 더 새로운 작품으로 선자의 우려를 불식시켜 대성하길 당부하며 축하를 보낸다. ▲심사위원: 이우걸. 장성진


신춘문예 시조- 당선소감
추억의 열병을 앓고

어둠이 소 울음처럼 머리를 묻는 들녘. 기다림에 괜스레 설레는 마음들이 마중 오면 별 무리 꼬리를 물고 등 뒤로 다가선다. 한번쯤 텅 빈 세상 서성이는 하늘가. 살아가는 흔적 찾아 지난날을 되뇌면 생명력 흠뻑 날리는 대문 밖 길 배인 인연마다 설레발을 든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옛 추억을 곱씹으며 열병을 앓는다.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한 후회로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던 어리석음으로 지인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었다. 때로는 그리움으로 머물러 서글픈 인연들로 남아 툭툭 떨어지는 잎 새 위에 시린 마음을 들키곤 했다. 달려온 길 위에 인연들을 누이고 질겅질겅 지난날을 새긴다. 차 한 잔의 향기에 호흡을 멈추어 기대어 있으면 나는 어느새 내 유년의 길에 서 있다.

나의 유년에서 아버지의 귀가는 늘 허기져 있었다. 배움이 짧아 견뎌야했던 설움은 길고 깊었다. 홀로 우뚝 서 당당하게 세월을 헤쳐 나갔던 젊은 날의 패기는 비탈길을 내려와 저 멀리서 들려오는 구슬픈 노랫가락을 타고 어릴 적 내 마음을 더욱 춥고 배고프게 했다. 오늘날 이 땅위에 사는 가난한 아버지의 한 모습이 아니었을까. 칼날처럼 매서운 바람을 어깨에 달고 어둠속을 걸어오시다 흥얼거리는 노랫소리는 지금도 가슴팍을 파고들어 하나의 문처럼 내 감성을 열고 닫는다. 흐드러지게 봄을 수놓았던 개나리꽃 더미에서 웃음을 나누었던. 첫눈 내리던 새벽을 황홀하게 바라보았던 어린 시절과 함께.

지금 내게 다가온 이 가슴 벅찬 마중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이다. 또한 내 삶의 거름이 되어 지치고 힘들 때마다 든든한 마음 줄이 되리라. 달려온 길을 되돌아볼 줄 아는 나무처럼 제살을 뚫고 나온 헛된 욕심을 깎아 아픔을 기쁨으로 끌어안고 내일의 삶을 계획해야겠다. 겸허한 자세로 시조의 율과 격을 내 안에 심으며 나를 보듬고 다듬어 보리라. 그리고 자신을 절제할 줄 알고 정갈한 맛을 느끼며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

시조의 길을 열어주시고 쓸 수 있도록 징검다리를 놓아주신 분께. 부족한 작품에 불 밝혀 주신 심사위원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마음 한 조각 따스함으로 채워주셨던 유숙경 선생님. 자신을 헌신하며 며느리의 부족함을 채워주시는 시부모님. 자식들을 위해 새벽기도로 하루를 여는 친정어머니가 옆에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통영에서 가장 아름다운 충렬초등학교 선생님들과 지금은 사진 속에 남아 겨울밤처럼 긴긴 편지되어 다가오는 하늘나라 아버지께 무엇보다 이 기쁨을 전하고 싶다.

△1964년 부산 출생 △진주교대 졸업 △2004 교사예능경진대회 시조부문 1등급 △2006년 제17회 경남시조백일장 장원 △통영 충렬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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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서울신문 신춘문예-시조] 남해기행/이아영

손에 묻은 모래알을 훌훌 털어내고 싶어
바다에 나와서면 먼 기억들이 달려오고
가슴은 빈 바람 소리로
동굴 하나 만든다.
지나온 발자국들 돌아보면 또 묻히고
갈매기 흰 울음이 저녁놀에 잠겨들면
달 하나 키우고 싶은
섬이 하나 솟는다.
물때에 부대끼는 서러운 몸짓으로
꿈을 잠재우는 파도와 마주서다 보면
일몰은 또 하나의 탄생
산이 나를 맞는다.


■ 당선 소감-뼈처럼 단단하고 튼튼한 작품을 빚고싶어

무디고 더딘 내 감성의 더듬이를 세워 나는 시조라는 벽을 오르고 있었다. 우리 민족시인 시조를 쓴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면서 말이다. 학창시절 백일장에서 입상하게 되면서부터 내 삶은 시의 더듬이를 곧추세우고 현장에 있었다. 이 시대의 이야기들을 시조에 담아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글을 읽고 생각을 다듬어야겠다고 조바심을 내면서도 나는 늘 뒤처져 있다는 생각에 안절부절했다. 몇 해 동안의 신춘문예 낙방 소식은 내게 익숙한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이 어둡고 긴 터널을 뒤로하고 뜻밖의 당선 소식이 찬란한 햇발처럼 먼데서 밀려온 것이다.

이 무거운 짐을 어떻게 지고 나아가야 할까?

나는 지금 촉수를 가다듬고 시조가 걸어온 먼 길을 되짚어 걸어가 본다. 뼈처럼 단단하고 근력 튼튼한 작품을 빚고 싶다. 부족한 작품에 불을 밝혀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과 서울신문사에 앞으로 창작의 불을 영원히 피워갈 것을 약속드린다. 내게 시를 지도해 주신 최문자 교수님과 시조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도록 손잡아 주신 권갑하 선생님께 감사를 올린다. 그리고 나를 격려해 주신 ‘시로 여는 이 좋은 세상의 문예대학’ 문우님들과 늘 믿음으로 지켜봐주신 부모님, 그리고 사랑하는 언니에게 이 기쁨을 바치고 싶다. 감사드려야 할 분들이 너무 많다. 언제나처럼 인생의 모티프를 주시는 사부님과 나의 벗 효진, 현진에게도 깊은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아영 약력 1985년 서울 출생,2000년 전국 만해백일장 시, 시조부문 장원, 협성대 문예창작과 3학년


■ 심사평-세밀한 관찰로 이미지 표출

시조는 우리말이 갖고 있는 가락을 가장 잘 살려낼 수 있는 장르이다.

이번 신춘문예에 응모한 작품들은 신인다운 패기와 참신성을 보여준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예년에 비해 편수도 늘었고 응모작 수준도 높았다.

그러나 어떤 아류에 휩쓸린 경향에 만연되어 있거나 이름을 가리고 보면 똑같은 톤과 연결하는 법이 동일한 경우의 작품들도 만날 수 있었음은 문제로 지적되었다.

당선작 이아영의 ‘남해기행’은 삶의 현실에서 내다보는 희망과 자연과의 호흡, 숨결이 피부에 와 닿는 작품이다.

기행이라고 해서 표면에 나타난 사물 그대로만을 묘사하지 않고 세밀한 관찰을 통해 내면의 이미지로 표출해낸 감성적인 작법이 뛰어났다.

최종심에 오른 이태호의 ‘지리산에 들다’는 작품을 다루는 솜씨가 만만치 않았음에도 표현 형식에서 시조의 형식미를 살려주었으면 하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의도적으로 3장6구 형식을 분할하더라도 시각적으로 시조의 특징을 살렸더라면 당선권에 들었을 것이다.

김종학의 ‘물밀어오는 뜨락’은 작품을 갈고 닦은 노련함이 엿보이나 진실성과 메시지 전달이 부각되었으면 하는 점, 말의 치장이 필요 이상 과한 점이 아쉬웠다.

연선옥의 ‘그 숲에 들면’은 시적 대상에서 바깥 세계와의 폭넓은 시야나 통로를 마련했더라면 한결 우수한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숲 안에서만 안주한 점이 당선권에서 멀어지게 했다. 이근배 한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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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농민신문 신춘문예] 구석집-김사계


또 다녀갔나 보다 구석집 아들 내외
눈 어두신 할머니 삼십촉 등 켜시면
그 소식 궁금한 마을 길어지는 시골밤

남은 건 두 마지기 비탈진 감자밭뿐
말없는 노안 속에 좁아지신 마음이
남의 말 일축하시듯 어두운 등 끄신다

새벽잠 대신하여 켜 놓은 텔레비전
자고 나면 평당 가격 수백씩 오른다는
도회지 삶터 값들을 며칠째 쏟아 낸다


시조 심사평-“빼어난 종장 처리, 현실감 생생 ”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아홉사람의 48편이었다. 단수로만 응모한 사람도 있었고 연시조, 혼합연형시조 등 시조의 다양한 형식을 활용한 작품들이었다. 응모자들이 시조를 다루는 솜씨들이 여간 아니었다. 따라서 시조의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가져도 좋겠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이 작품들을 두고 심사위원들은 시조 창작에서는 시조의 형식을 다루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이 점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 작품의 완성도에 주목하기로 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두 개의 달력〉 〈구석집〉 〈그 겨울, 갯벌〉 〈울 할매 젖〉 등의 작품을 두고 논의를 거듭했다.

그 결과 작품 〈구석집〉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구석집〉은 농촌 현실과 홀로 사는 노인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었으며, 특히 시조의 형식 활용에서 종장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잘 살려낸 것은 압권이었다. 그리고 압축과 생략으로 할 말을 다 하면서도 말을 줄이는 능력을 높이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작품 외에 함께 응모한 작품들에서도 당선작에서 보인 미덕을 살리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개인적 서정에 머물지 않고 시야가 넓은 점, 회고조에 기대지 않고 현장성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 등을 높이 샀다.

본심에 오른 다른 응모자의 작품들도 시조의 형식을 잘 이해하고 형식미를 살려내고 있었으나 조금씩의 아쉬움이 남는 작품들이었다. 다음 기회를 기대하면서 창작의 열정을 불태우길 바란다. / 심사위원=한분순, 문무학


시조 당선소감-“시조 더 사랑할 길 열어줘 감사”/ 김사계 경기 안산시 고잔동

먼저 시조를 더욱 사랑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신 농민신문사와 미흡한 글을 뽑아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에게 큰절 드리고 싶습니다. 많은 눈이 내렸던 길이 녹았다 다시 얼어붙는 시간쯤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 제 몸도 얼고 있었습니다. 당선소감을 적어 보내라시는 전화에 의심의 귀가 자꾸 대답하는 목소리를 작게 만들었습니다. 땅거미가 오는 시간. 의심을 푼 마음이 이젠 걱정을 앞세워 자신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먼 길이 보입니다. 첫걸음을 놓는 발끝이 무척 무겁게 느껴집니다.

지나간 이른 봄에 산을 다녀오면서 엉겅퀴 새싹을 보고 느낌을 쓰다가 우연히 시조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 어린 새싹에도 자기 모습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 주었던 엉겅퀴의 가시. 아무렇게 돋아난 게 아니라 규칙적인 그리고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그 거리에서 엉겅퀴가 엉겅퀴로 자라고 있었습니다. 음수를 놓고 음보를 재고하던 일이 결국 시조를 가까이 사랑하게 된 이유가 되었습니다.

당선이라는 말을 가끔 접하긴 하지만 이처럼 부끄럽게 만들 줄 몰랐습니다. 가야 할 길이라면 소신껏 가야 할 것 같아 뽑아 주신 심사위원님들에게 누가 되지 않는 길을 가리라 다짐합니다.

습작 때마다 제일 먼저 읽고 그 느낌과 호흡을 말해주던 독자1호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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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경남일보 신춘문예] 하수종말처리장 - 이우식


그것은 기적이다 H2O가 물이란 건
타는 목을 적시며 생명을 느끼는 건
찬 겨울 긴 가뭄 끝에 눈발이 날리는 건
 
오늘 하루 나의 증인 두 발을 씻으면서
그 속에 투영되는 자신을 들여다 본다
뒤틀려 일그러지는 자아의 굴절현상
 
문득 솟구쳐 오는 낯선 원소기호들
배수관 구멍 속에 회오리지는 바다
꿈꾸는 푸르른 별은 이렇게 물드는 걸까
 
빙판 길 밤새도록 맨발로 걸어와서
비움과 낮춤으로 다시 태어난 그대
구도의 긴 여정 앞에 난 용서를 빌고 있다.


당선소감-이우식

 저는 강원도 평창이라는 시골에 살고 있습니다. 시조라는 우리 민족 고유의 글 형식이 현실적으로 다른 문학 분야에 비해 독자들로부터 어떤 거리감 같은 것을 가질 때 무의식적으로 오기같은 뭔가 가슴에 불끈 치솟았고 그것을 훌륭한 시조 작품으로 승화시켜 힘껏 겨루어 볼 순 없을까 나름대로 깊이 고민해 보았습니다.
 어쩌면 문학이란 창작의 샘을 인위적으로 천착하기 보다는 자신에게 그 靈感의 샘이 열리기를 끈기있게 기다리며 꾸준히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시조의 경우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짜릿한 쾌감의 말초신경을 아주 짧은 순간, 강도 높게 자극했다가 슬그머니 사라져 버리는 그런 일회용같은 글의 홍수 시대에 우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때론 아주 쉽고 짧으면서도 가슴 한 구석 오래 저리고 뜨거운 감동의 여운을 잔잔히 느끼게 하는 좋은 글을 만날 때가 있으며 그런 점에서 時調는 대단한 문학적 역량과 높이와 깊이를 지닌 우리 민족만의 아주 독특하고 전통적인 글 형식으로서 세계적인 가치와 잠재적 경쟁력을 충분히 가졌다고 확신합니다.
 평생 대장간을 운영해온 어떤 老匠人의 말씀이 기억 납니다. 남이 보기엔 망치로 쇠를 두들기는 단순 노동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불을 볼 줄 아는 데 한 10년쯤 걸리고 쇠를 다룰 줄 아는데 또, 한 10년쯤 걸리며 적어도 20년은 넘어야 비로서 대장장이라는 이름으로 남에게 불려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時調 쓰기 역시, 언어의 감옥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 유폐된 칠흑의 공간을 맨손으로 깨어 부수고 탈출하는 듯한 치열하고 혹독한 내공과 단련의 연속이며 오랜 세월 깊은 고뇌와 거듭되는 절망이 요구되는, 고도로 정제.세련된 언어의 結晶이 아닌가 합니다.
 
 <주요 약력>
 *1955년생
 *현재 강원도 평창군청 공무원
 *1993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童詩 당선
 *2000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童詩 당선
 *2006년 전국공무원문예대전 시조 최우수상
 

신춘문예 심사평 <시조부문>
 
 경남일보가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혁신적인 발전으로 <신춘문예>의 등용문을 마련하여 문예부흥에 이바지해 주심에 감사드린다. 천년의 가락으로 이어져 온 시조가 문학의 어엿한 장르로 새롭게 우뚝 솟구쳐 현대시조로 발전한지도 100년을 맞이하는 이때에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큰 울림을 지닌 작품이 많아 여간 즐겁지 않았다.
 총 40여명의 응모자가 보내온 200여편 작품들은 몇명의 음풍농월 조를 제외하고는 상당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고뇌와 모색의 흔적이 역역하였다.
 최종까지 오른 작품은 ‘빈자리, 우화를 꿈꾸다’와 ‘하수종말처리장’이었는데 앞선 작품은 전통적인 단아하고 우아한 가락이었고 뒷 작품은 메시지가 강한 울림이 있는 작품이었다. 혼탁한 세상의 정화를 하수종말처리장으로 상징하면서 대상을 의인화하여 ‘…………발을 씻는다’는 구절은 자아성찰의 뜻도 내포되어 있는 탁월한 발상이 예사롭지 않았다. 글감을 찾아서 오랜 고심끝에 이루어진 공정은 맺고 푸는 솜씨가 갓건져 올린 생선처럼 생동감이 넘치는 참신함이 있었다.
 현대시조의 본평에 접근한 시절가조로써 현실인식이 눈을 번쩍 뜨이게 했으며 앞으로 많은 기대를 걸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에 으뜸의 자리에 놓게 되었다.
 정형의 그릇을 고수하면서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감성과 사상을 담아 모국어의 빛과 향을 뿜는 본격적인 시조문학을 고대하면서 ‘하수종말처리장’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이밖에도 빼어난 작품이 많았음을 밝히며 선에 오르지 못한 분들은 더욱 분발하여 다음 기회에 희망을 걸어 주시기 바란다.
 심사위원/ 김정희

 

[2008 부산일보 신춘문예 - 시조] 눈길을 걷다 / 이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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