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 방문을 마치며-명산을 찾아서(1)

2008.05.25 02:34

권태성 조회 수:551 추천:55


한 달 간의 고국 방문을 마치고 무사히 귀가 했다.
고국 방문을 할 때 마다 가끔 느끼는 것이지만 어느 쪽으로 가는 것이 귀국이고 어느 쪽이 출국인지 말하기가 망설여 질 때가 있다.
고국에서 산 세월 보다 이곳에서 산 세월이 훌쩍 넘어 버린 지금 까지도 이런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에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한 달의 시간이 결코 짧은 것이 아니었건만 이번 여행엔 유난히 짧게 느껴진 까닭은 워낙 빠듯한 일정 속에서 서울에 많이 머물지 않고 제주도며 해남의 땅 끝 마을, 그리고 보길도 까지, 국내에서도 최장거리에 속하는 여행을 많이 했기 때문이 않을까 싶다. 그간 매년 봄가을로 일 년에 두 번 고국을 찾으면서도 많은 시간을 서울에서 보내다 보니 지방 곳곳을 둘러 볼 기회가 없어 항상 아쉬웠었다.
이제 건강한 몸으로 여행을 할 수 있는 세월도 그렇게 많이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이번 여행부터는 더 많은 시간을 내가 보지 못한 고국의 구석구석을 찾아보고 100대 명산과 백두대간을 다 찾아 볼 수 있는 시간은 없다 해도 가능한 한 많은 곳을 찾아 가 보고 싶었다.
사실 이번 여행에서 많은 시간을 지방의 산에서 보내다 보니 골프나 술 마실 기회가 많이 줄어들었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산을 오르면서 얻는 육체적인 건강과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정신적인 건강뿐만 아니라 과음에서 오는 육체적인 부담과 터무니없이 비싼 골프 피에서 오는 경제적인 부담에서도 훨씬 자유로울 수 있어서 좋았다. 첫 여행은 무박으로 해남 땅 끝 마을을 거처 보길도 여행이었다.
몇 명의 친구들과 함께한 여행이었는데 무박 여행이란 것을 해본 적이 없었고 10시 40분 양재역에서 출발하여 다음 날 저녁에 돌아온다 하기에 그곳에서 일박하는 줄 알고 10시 40분 양재역이란 친구의 말을 의당 아침 시간인줄 알고 나갔다가 아무도 나와 있지 않아 친구에게 전화 했더니 밤 10시 40분이라는 말에 황당해 하기도 했다. 물론 내가 이곳 사정을 잘 몰라 일어난 일이지만 시작부터가 쉽지 않았다. 비몽사몽간에 밤을 새워 달려 땅 끝 마을에 새벽 4시 50분에 도착하여 캄캄한 어둠 속에 전망대에 올라서인지 기억에 별로 남는 것이 없었고 잠을 설친데다 가 특히 군중 속에 무리지어 따라 다니는 여행이 익숙하지 않았던지라 적응하기가 많이 힘들었다. 배를 타기 전에 여행사 측에서 마련한 아침을 간단히 하고 한 시간이 조금 못 미치는 항해 끝에 노화도에 도착해서 새로 개통한 연육교를 통해 보길도 예송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적자봉 정상을 오르는 것과 예송에서 고개를 넘어 고산 유적지를 돌아보는 두 코스 중 친구들과 함께 고개를 넘어 고산 유적을 돌아보고 연육교를 건너 노화읍 까지 걸어오는 코스를 택했다.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앞서가면서 군중 속을 벗어나 조용한 시골길을 걸으며 비로소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주위를 둘러 볼 수 있었다.
사실 고산 유적지라 해서 많은 기대를 해서인지 그다지 큰 인상에 남는 것은 없었지만 깨끗하게 잘 가꾸어진 길을 따라 갖가지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 있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지자체에서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고산 윤선도가 머물다 간 흔적들을 더듬어 새로운 건물들을 짓는 등,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았지만 고산 윤선도의 자취를 더듬어 보고 싶었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무박 여행에서 오는 피로감과 너무 시간에 쫒기는 스케줄로 인해 여유로운 시골의 정서를 맛보려 했던 나의 생각과는 많이 빗나가 있었고 많은 사람들과 같이 하는 여행은 좋은 점도 있지만 나만의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없게 하기 때문에 많은 아쉬움도 남는 여행이었다. 다음 기회에 다시 찾아 와 며칠 묵으면서 여유로운 시간 속에서 섬이 갖는 독특한 맛을 느껴 보고 싶었다.

다음은 2박 3일로 제주도와 한라산 등반 이었다.
제주도를 몇 번 방문 했지만 한라산을 등반 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기에 이번엔 한라산 등반을 주 목적으로 하고 하루는 관광을 하기로 했다. 한라산 등반은 첫날 하기로 하고 아침 일찍 제주에 도착해서 호텔에 짐을 풀고 나니 9시30분경이었다. 택시를 잡아 안내를 부탁하니 정상 등반은 이미 늦었다며 어리목으로 가서 영실로 내려오는 코스를 권했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에 어리목으로 향했다. 처음 얼마는 상당한 급경사로 계속해서 계단을 올라야 했기 때문에 조금 힘들고 지루 했지만 윗새오름이 가까워 오자 넓은 분지가 나오고 탁 트인 경치가 독특한 아름다움으로 다가 왔다. 바람을 막아줄 나무들이 없다 보니 제주 삼다의 하나인 바람이 엄청난 위력으로 불어 왔다. 몇 년 전 제주 골프장에서 바람의 위력에 곤혹스러운 경험을 했었는데 그때의 바람 보다 훨씬 위력이 대단한 것 같았다. 바람은 윗세오름을 지나 영실로 내려가는 쪽이 더 심했다. 아마도 심한 바람 때문에 영실로 내려오는 길의 철쭉 밭은 아직도 꽃망울을 피우지 못하고 6월을 기다리고 있었나 싶다. 용암으로 이루어진 한라산에 비교적 높은 곳에 까지 물이 풍부하다는 것이 신기 했다. 아마도 백록담 물이 바위틈으로 스며들어 흘러나오는 것은 아닐까? 윗세오름에서 휴식과 함께 한라산의 신비스러운 자태를 감상하고 하산 하는 동안 여기까지 와서 한라산 정상을 밟아 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린다는 것이 너무 아쉬워 우리는 내일 제주 관광을 취소하고 다시 한라산 정상 등반을 시도하기로 헸다. 저녁은 제주도 특산인 흑돼지 삼겹살 구이와 말고기 회에다 한라산 소주를 곁들여 맛있게 들고 내일을 기약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어제와 같이 날씨가 아주 청명했으나 어제의 무서운 바람에 놀라 속옷을 하나 더 껴입고 8시반경에 성판악을 시작으로 해서 정상을 올라 관음사로 내려오기로 하고 출발했다. 어제와는 달리 비교적 완만한 경사와 잘 닦여진 길, 그리고 소나무와 잡목들로 우거진 숲속은 한결 걷기가 편했다. 예상외로 바람도 거의 없어 첫 휴식처에서 속에 껴입었던 옷을 벗어내야 했고 그리 급경사는 아니었지만 끝없이 계속되는 돌길과 앞이 보이지 않는 숲속이 우리들을 지치게 할 때쯤 진달래 밭에 도착을 했고 막 피기 시작한 진달래와 탁 트인 시야가 우리들의 눈을 즐겁게 해 주었다. 진달래 밭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정상을 향했다. 거리상으론 얼마 남지 않았지만 여기서 부터는  나무들이 거의 없기 때문에 시원한 바람이 있어 좋았지만 한편으론 가파른 경사와 한낮의 햇살에 그대로 노출되는 어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정상이 눈앞에 들어오고 오랫동안 가보고 싶었던 백록담이 있고 남한에서 제일 높다는 한라산을 내 품에 안을 수 있다는 감격에 피곤한 줄도 모르고 정상을 향해 발길을 재촉했다.
사실 대한민국에 태어난 건장한 남성으로서 평생 한라산 정상 한번 밟아 보지 못한다면 말이 되겠는가!! 나는 그렇게 해서 비록 반쪽의 제일봉이지만 한라산의 정상을 품에 안았고 백록담의 맑은 물에 내 손과 얼굴을 씻을 수 없어 아쉬웠지만 우리 민족의 얼이 담긴 그 호수위에 오래도록 눈길을 떼지 못했다. 알맞게 불어주는 바람과 화창한 날씨에 정상인데도 덥지도 춥지도 않아 휴식과 주위를 관망하기에 알맞았고 사방으로 시원하게 쭉 뻗어 나간 바다가 한눈에 들어와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이토록 한라산과 백록담이 나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옴은 이 산과 이 호수가 높고 크다 해서가 아니라 이곳이 내 조국이고 이곳에 내 조상과 나와 내 후손들의 혼이 영원토록 같이 할 곳이기 때문이 아닐까? 카나다와 미국에 살면서 한라산 보다 더 크고 백록담 보다 훨씬 더 큰 분화구 호수를 보고 등반도 했지만 나는 이런 감동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아름답고 웅장한 모습에 감동은 했을지라도 마음 깊은 곳에서 울어 나오는 감격의 떨림은 느껴보지 못했었다.
이번을 기회로 다시 한 번 마음속으로 고국의 명산들뿐만 아니라 조상들의 얼이 담긴 유서 깊은 역사 유적지들을 찾아 가능한 한 많이 우리들의 소중한 역사의 발자취를 밟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함부로 아무에게나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다는 한라산과 백록담, 이틀의 산행 동안 흔치 않은 청명한 날씨로 그 아름다운 자태를 나에게 허락 한 까닭은 아마도 오랫동안 흠모해 온 나의 간절한 마음을 알았지 않았나 싶다. 무사히 8시간에 걸친 산행을 마치고 관음사로 내려와 휴게소에서 잔치 국수와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휴식을 취하고 이틀에 걸친 뜻 깊은 한라산 등반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오는 나의 발길은 무척이나 가벼웠다.
다음 이야기는 두륜산과 지리산 그리고 마이산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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