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 방문을 마치며-명산을 찾아서(3)

2008.06.18 13:30

권태성 조회 수:634 추천:67

나는 지리산 산행을 몇 번을 시도 했다 그때 마다 제대로 지리산 자락의 봉우리 한번 밟아 보지 못하고 돌아 온 아쉬운 기억이 있다. 한번은 친구들과 차로 실상사 쪽에서 뱀사골을 거처 노고단까지 일단 차로 올라가기로 하고 출발했으나 휴일이라 차가 너무 밀려 중간에서 포기하고 정령치로 해서 남원으로 내려 왔고 또 한 번은 하동 쪽에서 차로 노고단으로 갔으나 안개가 너무 짙어 지척을 분간 할 수 없어서 포기하고 내려 와 야만 했다. 고향이 지리산 자락이라 할 수 있는 전북 장수이면서도 아직 천왕봉을 한 번도 찾아보지 못한 것이 항상 아쉬웠었다.
나는 이번에는 2박 3일의 일정이라 응당 천왕봉을 포함해서 지리산을 종주하는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친구가 짜 놓은 일정은 서울에서 점심 식사 후에 출발해서 저녁 전에 뱀사골 와운 마을에 도착해서 일박하고 다음 날 바래봉을 등반하고 남원으로 나와 일박하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친구의 입장에선 나에게 무리한 일정이 되지 않도록 편안한 여행 일정을 잡은 것 같은데 아무래도 내 성엔 차지 않는 것이었으나 지리산을 잘 알지 못한 나의 무지가 빚어낸 또 하나의 해프닝이었으니 어찌하랴.
워낙 넓게 뻗어 있는 산이다 보니 지리산을 간다 해도 여러 가지의 산행이 있는 것을 나는 지리산 등반이면 응당 제일봉인 천왕봉을 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확실히 전달하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니 스스로의 무지를 탓할 수밖엔 없었다. 아무튼 뱀사골에 도착해서 전쟁 기념관 쪽의 좁은 길을 한참 올라가니 와운 마을 못미처 맑은 계곡이 나오고 저녁 시간까지는 한 시간 반 정도의 여유가 있어 우리는 계곡을 따라 화계제 방향으로 짧은 산행을 했다. 비록 산행 일정은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지만 뱀사골 계곡을 걸으며 너무 아름다운 경치에 서운함도 잊고 깊은 계곡의 풍부한 맑은 물과 곳곳에 만들어진 아름다운 소 그리고 긴 세월을 두고 다듬어 졌을 계곡의 바위들은 이제까지 내가 보아 온 어느 계곡 보다 그 크기나 아름다움에 있어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다. 마음 같아서는 계속해서 화계제까지 올라가고 싶었지만 다음 기회를 기약하고 아쉬움을 달래며 저녁 식사 시간에 맞추기 위해 하산을 했다. 6시가 넘어 찾아 들어간 심심산골 와운 마을은 10여 가호가 산비탈에 자리 잡고 반절은 관광객들을 상대로 음식점과 숙박업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친구가 단골로 다니는 집으로 이미 우리의 도착 시간에
맞추어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 식사엔 푸짐한 산채 나물과 된장찌개 그리고 이름도 모르는 여러 가지의 산채 쌈들이 나오고 즉석에서 구은 흑돼지 삼겹살과 약초에 담근 술을 곁들인 저녁 식사의 황홀함을 어찌 이 짧은 글에 다 담을 수가 있겠는가!!
더욱이 옆 계곡을 흐르는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깊어가는 산속의 밤을 좋은 친구들과 약주 한잔 곁들여 나누는 대화는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밤이 깊어가자 산속의 기온은 급히 떨어졌고 우리는 식사를 끝내고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따뜻한 온돌방은 넓었고 가라오케까지 있어 한 친구가 노래를 부르는 사이 나는 산속의 밤하늘을 보고 싶어 밖으로 나 왔다.
달이 없는 밤하늘의 별을 보고 싶었지만 불행(?)이도 밝은 가로등들 때문에 내가 기대했던 옛 시골 고향에서 캄캄한 밤에 영롱하게 빛나던 그 별들의 모습을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이 좋은 밤, 저 가라오케와 가로등 대신에 모닥불 피워 놓고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 그 별을 혜는 밤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문명의 이기는 우리에게 주는 것이 있지만 우리에게 소중한 것을 빼앗아 가기도 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아침 식사 전에 마을 뒷산에 있는 천연기념물인 천년송을 볼 겸 가벼운 아침 산책도 할 겸 뒷산을 올랐다. 와운 마을의 상징인 천년송은 할아버지 나무와 할머니 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할아버지 나무가 더 크고 우람한 모습이 단연 주위의 모든 나무들을 압도 하고 천년을 자랐다 해서 천년송이라 이름 지어졌다 한다. 천년송을 보면서 우리 고향 마을에 있었던 소나무 생각을 했다. 내가 어릴 때 자란 고향 마을에도 천년송에 못지않은 소나무가 한그루 있었다. 마을의 상징이었던 이 소나무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20여 년 전에 죽었고 지금도 마을 사람들이 모이면 고향의 상징을 잃어버린 것을 무척 아쉬워하고 있다. 천년송이 오래 오래 건강하게 자라 주길 기원하며 하산을 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뱀사골 쪽에서부터 시작해서 바래봉을 향해 출발했다. 우리가 출발한 마을은 한 때는 60가호가 살았고 초등학교 분교도 있을 정도로 큰 마을이었지만 다 타지로 떠나고 달랑 한 가구만 마을을 지키고 있다가 요즘 들어 몇 가구 더 늘었다 한다. 철쭉이 유명하다는 바래봉엔 운봉 쪽에서 올라 온 관갱객들이 많아 복잡했고 철쭉도 끝물이라서 그런지 그 화사함이 기대치만은 못했다. 그러나 바래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지리산의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이어지는 능선과 크고 작은 수많은 봉우리들 그리고 울창한 숲을 이루며 뻗어 나간 계곡들은 마치  아름다운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여인네의 단아한 모습 같았다.
천왕봉을 눈앞에 두고도 발길을 돌리려 하니 많은 아쉬움이 남았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운봉 쪽으로 하산을 했다. 하산을 마치고 개운하게 목욕도 할 겸 황토 찜질방을 가기로 하고 알아 봤으나 가는 곳 마다 오일 값이 너무 올라 수지가 맞지 않아 문을 닫았다는 말에 요즘 시골 경제가 상당히 어렵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다행히 장수읍에 들어 와 새로 생긴 승마장 내에 호텔과 사우나 시설이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갔다. 찾아간 곳은 기대 이상으로 서울 못지않은 최신식의 사우나와 호텔 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이 곳에서 일박을 하기로 했다.
고향이 이곳 장수군 장계면인 나로선 이런 시설이 고향에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이곳 유지가 국내 최대의 승마 경기장과 특목고인 마사고를 세우고 호텔 시설을 완공하고 파3 9홀 콜프코스도 한창 공사 중이었다. Blue Saddle resort라는 이름이고 장수군 천천면에 있으니 그쪽으로 가는 분들은 한번쯤 들러 보시라 추천하고 싶다.
진안으로 나와 추어탕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마이산으로 향했다.
마이산은 처음은 아니지만 갈 때 마다 절과 돌탑만 구경했기 때문에 이번엔 가능하면 올라 갈 수 있는데 까지 가보기로 했다. 하지만 마이산 두 봉우리 중 어느 것도 등산은 금지 되어 있어 아쉽지만 마이산을 감아 도는 2시간 반 정도의 등산로를 따라 산행을 마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전주에서 일박하고 서울로 돌아오는 것으로 이번 귀국에서의 산행 일정을 모두 무사히 마쳤다. 아쉬운 점도 있지만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배웠고 좋은 시간을 같이 해 주신 많은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회원:
0
새 글:
0
등록일:
2015.06.19

오늘:
0
어제:
0
전체:
14,899